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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식의 시에 임준철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겨레의 노래에 수록되어 세상에 나타났다. 그의 음반에도 실려 있지만 아마도 겨레의 노래에서 제일 신선한 노래가 아니었나 한다. 이 노래를 정말로 이해한 것 같았고, 진정 좋아진 것은 야생초 편지를 읽고 난 후가 아닌가 싶다. 야생초편지를 읽으면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진정으로 노래와 활자가 몸에 들어 오는 듯한 느낌을...
문부식의 그 뒤 행로에 대해서는 논할 바가 못되지만 이 시는 당시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했다. 인간의 한결됨은 참 힘든 일이다. 16년만에 CD로 복각되어 작년에 발매되었다. |
꽃들 - 문부식詩
01 아침 [2:04] 전래동요 02 이 작은 물방울 모이고 모여 [4:05] 서울대 방송연구회 작사 / 변재원 작곡 | 김성민 / 어린이들. 연세대 성악과 남성 4중창.국립합창단원 노래 (도입부는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주제부 변용) 03 꽃들 [4:04] 문부식 시 / 임준철 작곡 | 임준철 / 신형원.장필순 노래 04 이 세상에 [4:34] 함영국 작사.작곡 | 최진영 / 배훈.김승기.이승환 노래 05 이태원 이야기 [4:06] 변승욱 작사.작곡 | 노찾사 노래 06 이등병의 편지 [4:50] 김현성 작사.작곡 | 전인권 노래 07 고려산천 내 사랑 [3:58] 로광욱 작사.작곡 | 소프라노 김학남 / 국립합창단원 노래 08 내 고향 [3:57] 작사 미상 / 정사인 작곡 | 김소정 할머니 / 서유석 노래 09 반갑구나 [4:21] 김경련 작사 / 안국민 작곡 | 테너 이영구 / 국립합창단원 노래 10 자장가 [2:04] 김순남 작사.작곡 | 장필순 노래 11 고리 [3:25] 윤석중 작사 / 이성복 작곡 | 구의국민학교 어린이들 노래 / 노영심 이야기 12 이 세상 어딘가에 [3:56] - 노래극 [공장의 불빛] 中에서 김민기 작사.작곡 / 송창식.조경옥(노찾사)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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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레의 노래 1 (1990)
<겨레의 노래>는 하나를 위한, 통일을 위한 노래 모음집이다. 여기서 '통일'이란 단순히 분단 국토의 재결합이라는 피상적인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겨레의 노래>는 눈에 보이는 경계선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차별과 편견, 개인주의와 배타적 이기주의로 인해 갈라선 진보와 보수, 옛 것과 새 것, 우리 것과 외국의 것, 장르와 장르의 간극을 음악을 통해 해소하고 극복하고자 한, 범사회적인 '음악운동'의 산물이었다.
'겨레'는 그런 화합을 위한 매개적 언어일 것이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 그것은 1980년대의 잔재와 새 시대의 급진적인 변화의 물결이 충돌하던, 1990년의 혼란한 사회상과 문화적 아비규환을 초월하기 위해 선택된 궁극적인 단어였다. '겨레'는 그 사전적 의미 범주에서 모든 종류의 차별을 부정하는, 하나가 되기 위한 마음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 내용물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염원의 표현이었다.
<한겨레신문>의 주도로 1989년 여름에 시작된 '겨레의 노래 찾기 운동'은 국내외를 막론하는 놀라운 성원 속에 채 일 년도 안 되어 수백 곡의 노래들이 모이기에 이르렀으며, 그 중 190곡이 <우리의 가락, 우리의 노래 겨레의 노래 제 1권>이란 책으로 출판되었고, 그 중에서도 12곡을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 바로 이 앨범 <겨레의 노래 1>(1990)이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분리 병존하던 대중가요와 민중가요의 양대 세력이 한 앨범 안에 올곧은 상태로 융합되었으며, 대중음악 영역 외로 소외받던 가곡과 동요, 국악까지도 포용할 수 있었다.
총감독 김민기를 중심으로 전인권, 서유석, 송창식, 故 허성욱, 노영심, 신형원, 장필순 등 역량과 의식을 겸비한 대중음악계의 가수와 연주자, 세션 맨들이 대거 참여하여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최영섭, 김학남, KBS관현악단, 시립 교향악단 등 클래식계의 참여도 두르러지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임준철은 민중가요를 대표하여 노래한다. 나각 연주자 이용탁은 국악의 기운을 첨가하였으며, 특히 85세의 할머니와 여고생, 구의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같은 아마추어의 기용은 앨범이 가지는 범사회적인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창작 민중가요와 가요의 성격 외에도 전래동요, 독립군가, 해방 공간에서의 연변가, 노동가요까지 수록곡들은 그 출신 성분부터 창작 시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기성 작곡가의 곡들이나 아직 앨범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유명 민중가요를 발표하는 것이 대중적으로는 보다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을지 모르지만, 이토록 시대와 공간, 연령과 계층을 초월하며 포괄하는 선곡에서부터 진정한 '화합'을 소망하는 기획 의도는 순선하게 드러난다.
'아침'은 나각의 맑지만 둔탁한 울림으로 전래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연주하고, 허성욱 이 연주한 두터운 키보드 군(群)이 중반부에 등장하며 묵직한 몽환감을 자아내는 짧은 연주곡이다. 대표적인 민중 가요 작곡가인 변계원이 쓴 '이 작은 물방울 모이고 모여'는 전국대학생 협의회가 주최한 <통일 노래 한마당>에 출품되었던 곡으로, KBS관현악단과 시립 교향악단이 함께 한 연주와 어린이 합창단과 남성 4중창, 국립합창단원이 함께 부른 노래가 모여 웅장하고 경쾌한 행진곡의 분위기를 담아냈으며, 통일에 대한 의지와 희망적인 메시지의 가사를 잘 담아냈다.
'꽃들'은 문부식의 시에 임준철이 곡을 쓴 전형적인 단조의 민중가요이다. '이 세상에'는 당시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노래 실력과 작곡능력을 검증받았으며, 이후 1990년대 중반에 많은 인기를 얻게 되는 최진영이 불렀다. 최진영의 솔로 음반이 전형적인 발라드 위주의 가요 앨범이었고 본인 스스로 이후에 “이 곡에 목적의식은 없다”고 따로 밝혔을 만큼, 음반 작업 중에도 다소의 충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은 탁월한 발라드의 감성을 보여주는데, 최진영의 노래도 노래지만 조동익과 허성욱의 프로듀스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어느새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나아가 주류 가요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이태원 이야기'에 참여했다. 오밀조밀 귀여운 키보드 스타카토 연주에 맞추어 여성 보컬들이 곡을 주도하는데, 가사는 한 어린 소녀가 말로만 듣다 처음 가본 이태원의 풍경을 솔직하게 얘기하며, 어지러운 사회를 비꼬는 풍자적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곡구성과 노래의 분위기, 멜로디, 리듬 모두 밝고 재밌으며 유쾌하다.
앨범을 처음 듣는 사람들의 눈과 귀에 가장 띠는 것은 바로 전인권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김광석의 담담한 고백으로 기억되겠지만, 본디 원곡자인 김현성이 자기 앨범에 부른 곡이고, <겨레의 노래>에는 전인권이 다시 불렀다. 20대 초반 이상의 남자라면 대부분이 공감하고 한 번은 불러봤을, 전인권 특유의 처연한 '꼬장 보컬'로 외치는 노랫말은, 김광석의 여운의 정서보다 더욱 큰 감정의 앙금을 남긴다.
초반부의 노래들이 당시로선 근래의 민중가요나 대중가요들을 위주로 선곡하여 다시 불렀다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후반부의 다섯 곡은 원로 작곡가들의 노래들과 전래되어 오던 구전가요들을 수록하였다. 현재 상황에서 좀처럼 구하고 듣기 어려운 귀한 노래들이기에, <겨레의 노래>는 역사적인 자료의 성격까지도 가지게 된다.
<'고려 산천 내 사랑'은 교향악단의 연주에 소프라노 김학남이 노래한 전형적인 가곡으로, 해방공간에서 민족 음악운동을 전개한 로광욱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포성과 빗소리로 시작하는 '내 고향'은 1920년대부터 구전된 독립군가로, 북에서도 '사향가'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85세의 김소정 할머니가 구성진 탁성으로 1, 2절을 부르고, 서유석이 특유의 정겨운 목소리로 3, 4절을 나누어 부른다. 3절부터 등장하는 서러운 아코디언 연주에서 실향민의 아픔이 은은하게 전해오는 것 같다.
'반갑구나'는 중국 조선족 음악 협회 주석을 지낸 안국민이 만든 곡이다. 테너 이영구의 목소리로 '고려산천 내사랑'에서 들려주었던 장대하고 무거운 가곡의 분위기를 잇고 있다. 전주와 간주에서 들려지는 고음역대의 명징한 하프 소리가 청감을 자극한다.
'자장가'는 어쩌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곡일지 모른다. 우리 현대음악사의 거인인 김순남의 곡으로, 40여년 전의 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현대적인 멜로디가 장필순의 은은한 탁성에 실려 온다.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비참한 개인사는 이런 멜로디를 확인하는 순간 더욱 안타깝게 다가올 것이다.
'고리'는 윤석중의 동시에 이성복이 가락을 붙인 동요이다. 노영심 특유의 선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담담한 나레이션과 어린이들의 맑은 합창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단절된 마음을 고리로 잇고 싶다'는 계도적인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전달된다.
마지막 트랙 '이 세상 어딘가에'는 총감독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서 가져온 노래이다. 송창식 특유의 도인적인 절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 조경옥의 정갈한 목소리가 돋보이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들이 부른 코러스와 함께 하는 2절은, 공장 노동자의 절박한 염원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시킨다. 2004년에 <노래굿 '공장의 불빛' >앨범이 발표되면서 <공장의 불빛>의 음원이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앨범이 발표된 1990년에는 아직 많은 이들에게 미지의 상태였다. 본작의 '이 세상 어딘가에'의 질감은 이소은, 이승열이 노래한 2004년 버전의 현대적인 질감에는 분명히 미치지 못하겠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호소력의 여분을 청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앨범을 다 듣고, 무엇보다 1990년이라는 시점이 새삼 부러워졌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세계에 대한 진중한 시선이 살아 있었고, 또한 그런 사람들이 음악계의 절대 다수였기에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일정 부분 그렇기도 했다. 그런 1990년과 사실상 무뇌 상태에 처한 2006년의 한국 음악이 같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감독을 맡은 김민기의 역할일 것이다. 물론 이 거대한 편찬 작업은 <한겨레신문>의 창간 2주년 기념사업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프로젝트의 기획을 총괄하며 작업의 진행을 선두지휘하고, 각 계 각층의 음악인들을 집결시킨 것은 그의 공이었다. 실제로 그는 선곡 작업부터 열의를 보여 직접 채록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젊은 지성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우리 음악사의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김민기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의 지도자로서 최선의 적임자였음에 틀림없다.
태생 덕에, "이것도 운동권 노래 아니냐?"는 반박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반부를 수놓은 민중가요의 가사는 기존의 공격적이며 어두운 성향을 지양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세상을 노래한다. 가수들의 목소리에서도 현실에 찌든 차가움보다는 소박한 온기가 먼저 느껴진다. '우리의 옛 노래를 찾아서'라고 부제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후반부의 희귀한 음원들은 성향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소중한 사료이다.
<겨레의 노래>는 진정한 우리 노래를 찾기 위해 비롯된 창대한 시도였으며, 그런 노래들을 통해 분열되고 와해되어가는 1990년을 반추하며 하나된 '겨레의 세상'을 희구했다. 전례가 없던, 또한 앞으로는 없을지도 모를 중요한 노래 모음집이자, 순전히 음악계 내부에서 자체 발생한 '음악 통합 운동'이었다. 극도로 분열되어 있던 우리 음악의 하부체계들은 이 앨범 안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로 통합되며 조화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
<겨레의 노래 1>은 리마스터링의 수혜를 입어 2006년의 우리 앞에 CD로 다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이 앨범이 지금의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앨범에 들어 있는 1990년 우리 음악의 '뜨거운 심장'을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16년 전에 그 형태를 갖춘 우리네 '참 음악'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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