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여고시절에 대해서 이야기 하렵니다
전 여고시절 그러면 세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첬째는 후회이고
둘째는 205번 버스이고
세째는 남학교 입니다
첫번째 후회 입니다
저희 학교는 인문계 학교 여서 3년내내 밤 12시 이전에 집에 간일이 거의 없읍니다
수업 12-13시간 받고 잠깐 김밥 먹고 학교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 집에 가는일이
늘상 반복 이엇죠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 하고는 결과는 너무도 아니엇읍니다
수능 시험을 치루고 결과를 받고는 나자신이 너무도 놀라고 실망 했읍니다 반애들이
야~ 누구는 이대가고 누구는 숙대가고 누구는 서울대 간다더라 라는 말이 귀에 쟁쟁
거리고 맴돌았읍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말 야~ 너는 그렇게 열심히 해놓고 어디가냐? 아마 저~~
지방대 교대나 가겟다 야~ 내가 너처럼 열심히 햇으면 서울대가 아니라 그 위에도 가겟다
하더니 사라지는 것입니다 너무도 부끄럽고 허탈하고 실망하고 정말 어찌해야 할지 난감 했읍니다
그 당시에는 지방에 있는 대학 가는건 상상도 못하고 정말 죽으러 가는게 낫다라고 다들 생각 하던 시절 이었읍니다 지방에는 갈 생각도 안되고 재수를 하려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말도 안나왔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냥 엄마에게 말했읍니다 엄마~ 나 재수하고 싶은데..... 재수해서 내년에 서울에 있는 교대 가고 싶은데... 그랬더니 우리 엄마 너무도 뜻밖으로 자상한 눈빛으로 그래 해라 밀어줄께
아니 이게 무슨 소린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 했읍니다 위에 언니는 맨날 차비도 힘겹게 주고 고등학교도 안보내려고 그러는걸 큰 오빠가 강력하게 보내라고 해서 보냈는데....
맨날 삶에 고통에 찌들어 웃는 얼굴 자상한 얼굴 본적이 별로 없는데
그날 전 정말로 엄마의 사랑을 느꼈읍니다 그런데 막상 엄마의 허락을 받고 나니 자신감이 안생겼읍니다 친구의 말도 귀에 쟁쟁 거리고 나자신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재수 한다고 달라질까? 그래서 포기 하고 말았지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후회로 남는 부분 입니다 지방도 사람 사는 곳 이라는걸 어른이 되고 시간이 한참 흐른뒤에 알았읍니다
그래서 전 대학 못간것에 컴플렉스가 있읍니다 저도 언젠가는 대학 캠퍼스를 밟아볼 날이 있었으면 좋겟읍니다
두번째는 205번 버스 입니다
전 집이 녹번동 이고 학교는 혜화동에 있었읍니다 이 구간을 가는 버스는 205번 버스 한대밖에 없었읍니다 매일 아침마다 등교는 그야말로 전쟁 수준 이었읍니다 사람이 짐짝인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덧 사람 많이 태우는 요령 아닌 요령을 터득 했읍니다 일단 사람을 무조건 계속 태웁니다 계속 태우다 보면 설 공간이 없어 지지요
그러면 다음 정거장에선 사람을 더 태우고 기사 아저씨가 지그재그식으로 지그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 그리고 한쪽으로 쏠립니다 그러면 이순간 안내양 아가씨는 더 태우고 배에 반동으로 서너번 탁탁 칩니다 그리고 강제로 문을 닫으며 오라이~~~를 크게 외칩니다 그때 안내양 아가씨는 힘도 무지하게 쎕니다 그러면 기사 아저씨는 다시 재그를
합니다 그러면 차안의 사람들이 중심을 잡고 정리가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저같이 키작은 사람은 발을 땅에 디딜 공간이 없읍니다 기양 공중에 떠가는 느낌 이죠 여름에는 땀냄새에 열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 합니다 겨울에도 머리와 온몸이 땀으로 젖어 내리면 교복 상의는 거의 단추가 풀어져 내리면서 얼른 잠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런 시절이 어느덧 적응이 되니 마냥 싫지만은 않았고 즐기게 되더라구요 ㅎㅎ ㅎ 그래도 그 버스가 그립고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다음은 남학교 입니다
저희 학교 주변에는 보성고와 동성 고등학교 두학교가 바로 옆에 있었읍니다
보성고는 바로 옆이고 동성고가 좀 더 위에 있엇지요 이 두 학교가 있어서 등하교길에 가슴 설레이기도 하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 품위있게 걸을려고 하고 동복 치마가 360도 후레아 치마였는데 살짝 돌려 보기도 하고 여름에는 완전 타이트한 치마 였는데 더 날씬하게 보이려고 숨도 들이 마시고 걷고 그랬읍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가끔 토요일 집에 일찍 갈때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며 누가 쳐다봐 주기를 바라면서 말걸어 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멋진 폼을 잡으며 곁눈질을 합니다 그런데 옆에 남학생 먼산 처다 보고
있읍니다 그러면 혼자 머쓱해서 저도 앞을 바라 봅니다 이런날은 좀 뭔일이 있어주길 바라는데 절대 안일어 나드라구요
하루는 학교에 가니 우리 학교가 교련 시범 학교로 지정 되엇다고 하면서 잘해야 한다고 강조 하십니다 그날 이후로 그 금쪽 같은 시간을 매일 교련 훈련을 합니다 아이들은 이게 뭐냐고 투덜대고 시간이 아깝다고 난리 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웬 밴드부 소리가 들리더니 멋진 제복을 입은 보성고 남학생들이 연주를 하며 우리학교로 들어 오는게 아니겠어요 아이들은 부끄러우면서도 나무 좋아서 와~~~~ 소리를 질럿읍니다 그날 이후로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아이들 눈이 커지고 초롱초롱 해졋읍니다 사열대 앞을 지날때는 남학생에게 더 잘보이려고 정말 잘했읍니다 그 무서운 여자 교련선생님이 그렇게도 열심히 해야한다 잘해야 한다 그럴때도 투덜대던 우리는 없었읍니다 드디어 시범날 여기저기서 귀빈들이 많이 오시고 높은 군인 아저씨도 보엿읍니다 물론 밴드브도 있구요 정말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 잘한 느낌이 드는데 결과가 나옵니다 최우수 점수가 나온겁니다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났읍니다 그 인상만 쓰던 여자 교련선생님의 얼굴이 어찌할바를 모르십니다 아마도 그날의 결과는그 보성고의 공이라 생각 합니다
그 설레고 잘보이려고 노력한 결과 이지요
그 이외에도 김성희씨가 미스 코리아가 되어서 학교가 정말 요란 했지요 1.23..학년 교실을 다 돌고 인사를 했는데 잘해서 학교 명예를 올렸다고도 하고 오히려 ?니까 일찍 그런데 나가서 참가해서 학교 명예가 손상됐다고도 하구요 어쨋던 이쁘더라구요
연초에 올릴글도 아닌데 괜히 푼수를 부려봤읍니다
조금 이나마 회상도 해보시고 청량제 역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니
쪼금 이쁘게 봐주세요
여러분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던 많~~~이 버시는 한해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