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은혜로운 성모성월을 맞아 성모님의 전구로 교구민 모두에게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이 늘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5월 8일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전파된 이 땅 위에 대전교구가 설립된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모두가 잘 알듯이 우리 교회는 순교의 텃밭 위에 세워졌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변혁이 절박하던 시기에 천주교 신앙 안에서 그 희망을 발견한 선조들이 먼저 교회 공동체를 창립하고 사제를 모셨습니다.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는 교회 공동체는 길고 험난한 순교의 역사를 견디어내며 우리에게 신앙을 전수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후예들입니다. 저는 교구장으로서 대전교구 전 지역이 순교지요 소중한 신앙 사적지라는 데에 감사와 더불어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교 신앙은 오늘 우리의 삶에 크나큰 영감을 줍니다. 현 세계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이면에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고, 엄청난 과학의 발전은 AI의 출현으로 미래 사회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세계는 경계 없는 교역을 하면서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생태계 파괴는 이제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그리고 남보다 앞서가려고 무한 경쟁을 하면서 이루어진 사태입니다. 참 행복의 길은 예수님께서 선언하셨고(마태 5,1-12), 순교자들이 믿음으로 걸어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가 교구의 여러 순교지와 중요 사적지들을 자주 방문하여 주님의 가르침과 순교 선열들의 신앙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을 발견하는 은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에 본 주교는 교구 내의 순교성지와 중요한 사적지들을 순례지로 공식 인준하면서 교구민 모두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 유산에 더욱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자주 순례하기를 권고합니다. 신앙 선조들의 자취를 따르는 우리의 순례는 물리적 행보를 초월하는 종말론적 신앙 행위입니다. 자비로우시며 순교의 원형이신 주님께 깊은 신뢰를 두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증거를 보여준 순교자들은 희망의 발걸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모든 하느님 백성의 귀감입니다.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를 배우게 됩니다.
아울러, 이번 교령을 통해 인준된 순례지와 그 밖의 순례지는 신앙적 가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혀둡니다. 담당 사제를 통해 말씀의 선포와 정기적·지속적으로 성사가 이루어지는 곳을 우선 인준하였고, 다른 순례지도 조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인준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교구에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앙 사적지들도 산재해 있습니다. 계속된 연구와 발굴을 통해 신앙의 유익이 되는 순례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계 기관들은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준된 순례지와 그 밖에 순례하기를 권장하는 순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준 순례지
갈매못 순교성지는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르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장주기 요셉 등 5위의 성인과 동료 교우들이 순교한 현장입니다.
강경성당은 중국 상해에서 서품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귀국하여 잠시 머물며 첫 사목활동을 시작한 장소이며, 강경지역의 신앙 역사를 기념하는 곳입니다.
공세리성당은 1890년 합덕성당과 더불어 박해 후 충청도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조선 순교자 32위의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근현대 신앙 순교자 하느님의 종 조제프 뷜도 신부의 마지막 사목지·피체지이기도 합니다.
다락골성지는 두 번째 사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그의 부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탄생한 곳이며, 최 신부의 모친 복자 이성례 마리아와 동료 순교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대흥봉수산 순교성지는 복자 김정득 베드로의 순교를 기념합니다. 대흥 출신의 김 베드로는 열심한 신앙생활 끝에 체포되어 대흥 읍내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덕산 순교성지는 복자 정산필 베드로와 동료 교우들의 순교 현장입니다. 내포 지역의 회장이었던 정산필은 덕산의 관아에서 모진 형벌을 받은 끝에 순교하였습니다.
삽티성지는 박해시대 교우촌으로 성 황석두 루카를 비롯하여 여러 순교자의 자취가 배어 있는 곳입니다.
산막골성지는 박해기 교우촌으로 다블뤼 주교님과 함께 활동했던 페롱 신부님의 사목활동 근거지였으며, 성 황석두 루카의 거주지이기도 했습니다.
성거산성지는 깊은 산 속에 자리한 박해기 교우촌으로, 선교 사제들이 은거하며 기력을 회복하고 사목 서한을 작성하였습니다. 이곳 출신의 순교자가 가운데 일부가 성거산 줄무덤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솔뫼성지는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입니다. 그의 증조부 복자 김진후 비오, 작은할아버지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등도 이곳 출신입니다.
신리성지는 조선 최대의 박해기 교우촌으로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최후 활동지입니다. 순교 성인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그리고 황석두 루카가 이곳에 체포되었고 성 손자선 토마스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여사울성지는 충청도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이 전해진 곳입니다.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를 비롯하여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김희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입니다. 복자 홍낙민 루카와 성 홍병주, 성 홍영주의 활동지입니다.
진산성지는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 그리고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신앙을 기념합니다. 진산지역은 이들의 출신지이자 신앙 활동지였습니다.
합덕성당은 공세리성당과 더불어 박해 이후 충청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본당입니다. 충청도와 내포 순교의 결실이자 순교 신앙을 계승하는 본당에서는 근현대 순교자 하느님의 종 필립 페랭 신부와 윤복수 라이문도, 송상원 요한을 탄생시켰습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공주지역의 순교를 기념합니다. 특히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 복자 이국승 바오로 등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홍주 순교성지는 내포의 첫 순교자 복자 원시장 베드로 그리고 복자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황일광 시몬과 동료 교우들의 순교 현장입니다.
2. 이미 인준된 순례지
해미순교자국제성지
3. 그 밖의 권장 순례지
남방제성지, 도앙골성지, 배나드리성지, 원머리성지, 수리치골성모성지, 서짓골성지, 작은재성지, 정산 순교성지, 지석리성지, 황무실성지, 김대건 신부님 유숙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지난 2천 년 전 어느 먼 이방인의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오늘’ 우리 안에서 매일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오늘’ 나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주님을 따라 ‘오늘’ 순교 신앙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도 ‘세상 안에서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려 믿음을 지키도록’(2티모 3,7 참조) 합시다.
2024년 5월 8일 교구 설립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