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소련의 수상 흐르시초프가 회담을 벌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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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감사합니다.
피델 카스트로와 흐르시초프의 회담의 성격은
지극히 반미와 반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쿠바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남으로서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에 많은 부분을 의지했습니다.
특히 경제부분과 안보부분에서 많이 협력하고 의존했는데,
흐르시초프와의 회담에서 이러한 부분을 확인하고 체결했으며,
위에 두가지를 기반으로 적극 협력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에 얼마 뒤에 케네디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흐르시초프가 집적 방문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흐르시초프의 정책을 잘 알아야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부분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흐르시초르의 정책의 핵심은 바로 무력과
적대, 안보를 통한 세계 공산주의 승리보다는 소련의 경제, 도덕, 사회 등으로
미국보다 우위를 둠으로서 세계에서 공산주의가 성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는 곧 중국으로부터 수정주의자라는 손가락질과 동시에 소련 내부 수구
공산주의자로부터 매우 혹독한 비판을 받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기반으로
흐르시초프는 서구의 회담을 통해 격렬한던 냉전시대를 온화하게 이끌어갔으며,
자유진영의 종주국인 미국과의 회담도 이러한 정책을 반영해서 나온것입니다.
결국에는 실패하죠....
그리고 흐르시초프가 쿠바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참 뒤에
일어난 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흐르시초프가 직접 미국에 케네디와 회담을 갖고
나서 케네디가 터키쪽에 미사일을 세우려고 함으로서 케네디의 소련답방이 취소되고
급격하게 다시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게 된것입니다. 이에 흐르시초프는 미국의 위협에
미국 바로 밑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을 몰래 세우려고 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회담을 통해 양쪽도 철수를 했습니다. 소련이 철 수 함으로서 미국도 철 수 한것이지요. 이 발언에 의해서 당연히 피델 카스트로는 화가 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료에 의하면 흐르시초프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 하는데 한마디도 같이 카스트로와 함께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즉 소련 스스로 쿠바의 의상와 상관없이 철 수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수에도 불구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소련으로부터 돌아설수 없는것이, 사실상 신생국가인 공산주의 쿠바가 경제적으로 소련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앞으로 국가를 꾸려가는데 있어서 소련의 존재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소련에 크게 돌아설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