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자의 자세 강조 "인과법 정확히 알아야"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자라면 인과법 정확히 알아야 한다”
봉은사 백고좌법회 입재법문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서울 봉은사 백고좌대법회 입재식에서 법문을 설하고 있다.
“불자라면 인과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서울 봉은사 백고좌 대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입재법문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3월26일 오전 11시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스님)에서 봉행된 백고좌 대법회 입재식에서 “(인과법의) 원리를 아는 것은 (수학에서) 공식인 구구단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설했다.
이어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구구단을 모르고 계산하면 굉장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면서 “구구단을 적용시키면 어떤 계산이든 풀리는 것처럼, 부처님의 정확한 말씀을 알아야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강령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동산양개 선사와 노모의 일화를 설명하며 불교의 진리를 쉽게 설한 총무원장 스님의 법문 중간마다 법왕루를 가득 메운 불자들은 박수와 웃음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인연과 연기에 의해서 상의상존하면서 먼지 한 톨은 물론 우주가 맞물려 돌아가기에 인드라망이라 한다”면서 “맞물려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것이지, 단독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기에 불교의 핵심은 연기법 또는 인연법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또한 총무원장 스님은 “지옥에 가서도 분별심만 받지 않으면 지옥이 아니고, 극락에 가도 분별심이 있으면 극락이 아니다”면서 “이것을 알지 못하면 불교를 모르는 것이고, 불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않고 부처님 법을 정확히 알아야 부처님 제자라고 강조했다.
봉은사 백고좌대법회는 2025년 11월16일까지 매월 2,3,4,5주 일요일에 봉행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입재법문에 이어 4월에는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4월9일), 호계원장 보광스님(4월16일), 태국 왕사 아리야왕소 스님(4월23일)이 법상(法床)에 오른다.
백고좌(百高座)는 나라의 평화와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100개의 사자좌(獅子座, 부처님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해 100명의 법사(法師)를 초청해 법을 설하는 법석(法席)이다.
봉은사는 “한국불교 중흥의 큰 원력으로 100분의 큰스님을 초청해 백고좌 대법회를 봉행한다”면서 “봉은사를 대표하는 법회로 전법과 포교를 위한 불법 홍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많은 불자들의 신심과 수행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수희동참을 당부했다.
다음은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부처님 법은 알고 보면 참으로 단순합니다.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화엄경(華嚴經)>의 핵심은 연기법(緣起法)과 인과법(因果法)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감지하는 바깥세상이 연기법이라면, 내가 느끼는 좋고 나쁜 ‘감정 덩어리’가 인과법입니다.
좋은 기분은 왜 생기겠습니까? 나쁘거나 싫은 기분 때문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분별(分別) 또는 인과(因果)라고 합니다. 이것이 생기면 반드시 저것이 생깁니다. 태어났으니 죽음이라는 인과가 있습니다. 젊으니 늙음이란 과보가 남아 있습니다. 이쪽이 하나 생기면 반드시 저쪽이 하나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영원히 살려고 하고, 젊어지려고 하고, 좋은 것만 찾으려고 하고, 행복해지려고 하고, 얻으려고만 합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계속하는 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합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셨지만, 중생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마음을 깨쳐 분별심을 갖지 않으면 지옥도 지옥이 아닙니다. 극락에 갔더라도 분별심이 있으면 극락이 아닙니다. 내가 다 만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하나는 연기법이고 하나는 인과법입니다. 두 가지가 따로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구분한 겁니다. 선구(禪句) 가운데 살불살조(殺佛殺祖)가 있습니다. “부처도 죽이고 조사(祖師)도 죽여라”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하면 벌써 중생이 생깁니다. 큰 것 하면 작은 것이 생기듯 분별이 있으면 윤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과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구단을 외는 것은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구구단 없이 계산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합니다. 부처님 법도 정확히 알아야 강령이 나오는 겁니다. 불법을 알지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죽으면 끝나느냐? 아닙니다. 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릴 뿐입니다.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 따라 나타난 것입니다. 몸은 지수화풍으로 흩어지지만, 과거는 남는데, 영혼, 영가, 식(識)이라고 합니다.
분별심을 인과라 합니다. 다른 말로 업(業)이라고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겨 기분 좋고, 나쁜 일이 생겨 기분 나쁜 것이 업입니다. 이 일이 생기고 저 일이 생기는 것은 또 다른 경로입니다.
‘내 감정’과 ‘내 마음’은 ‘식’이기에 몸이 없어도 남습니다. 정을 제일 많이 주는 대상이 누구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시대에 맞는 도덕과 윤리는 있지만, 나의 좋고 싫은 감정만 남는 것입니다. 중생은 각자 자기 업을 처리해야 합니다. 부처님도 못해 줍니다. 내가 부처가 돼야 해결됩니다. 그것이 성불(成佛)입니다. 자식, 부모, 형제, 친구, 이웃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자작자수(自作自受)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부처님 법을 등불로 삼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자식도, 남편도, 부인도, 부모도, 그 누구도 내 업을 어쩔 수 없습니다. 인연 연기에 의해 서로 만나 작용할 뿐이지, 결국 내 감정은 남습니다.
인연과 연기에 의해 상의상존(相依相存)하면서, 먼지 한 톨도 서로 맞물려 있기에 인드라망이라고 합니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고, 성공했다고 하는데, 인연에 의한 것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시간이 다르듯 기분 좋은 때와 나쁠 때는 별개입니다. 이것이 ‘고락(苦樂)질량불변의 법칙’입니다. 기분 좋은 총량과 나쁜 총량은 똑같습니다. 다만 언제 어떻게 올지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와 어머니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머슴을 살던 홀어머니는 아들이 출가하자, 얼굴 한 번만 봤으면 한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동산양개 선사는 어머니에게 “집착을 놓으시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애가 탄 어머니는 출가한 아들을 그리워하다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탁발하는 스님들이 쉬어가도록 하고, 스님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왼쪽 복숭아뼈에 사마귀가 있는 아들(동산양개 선사)의 발을 씻겨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선사는 오른쪽 발을 씻고 왼쪽 발을 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인 줄 몰랐습니다. 선사는 배를 타고 떠났고,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왔다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쫓아가다 그만 물에 빠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동산양개 선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는 삼생(三生)의 고업(苦業)을 다 멸했다. 머슴으로 살고, 눈이 멀고, 물에 빠져 숨질 삼생의 업을 한꺼번에 소멸했으니 다음 생에는 천상에 날 것이다.”
이것을 두고 좋다, 나쁘다, 잘했다, 잘못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불교는 본인의 업을 없애는 게 목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분별심이 점점 줄어 감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무엇을 보고 들어도 좋고 나쁜 감정이 안 드는 평상심(平常心), 평등심(平等心), 평안한 마음이 깨침이고 깨달음입니다.
조사 스님들은 마음의 동요가 없습니다. 동요가 생기면 인과가 발생해 과보를 치러야 합니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과보를 언젠가는 받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감정 덩어리, 업장, 업식을 소멸해야 중도심(中道心)이 되어 생사(生死)를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생사지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생(生)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여 사라지는 것이 사(死)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소크라테스 제자인 디오게네스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비켜주시오. 햇볕 좀 쬐고 싶소”라고 했을 뿐입니다. 누가 더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좋고 싫은 것은 인연에 맡기면 됩니다. 나쁜 사람을 보더라도 내가 기분 나쁘면 그건 나의 업입니다. 나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별 때문에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기분 나쁜 일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업과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업장 소멸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업장이 완전히 없어진 ‘제로 상태’가 부처님입니다.
업과 분별심을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수행하는 화두에는 연기법과 인과법이 들어 있습니다. ‘연기법과 인과법을 항상 놓지 말고 깨어 있어라’, ‘상기해라’ ‘감정을 일으키지 마라’. ‘생사를 일으키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 수행도 좋습니다. 보살의 행동인 육바라밀을 통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바라밀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부처님과 연기법에 맡기고, 인과인 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상기하고 살아가면 불법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업장이 소멸되어 괴로운 일과 감정이 줄어듭니다. 시시비비(是是非非)하지 말고 마음을 항상 편안하게 하기 바랍니다.
한국불교의 중요한 수행법인 참선에 기반한 ‘선명상(禪冥想)’을 종단 차원에서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불자들은 물론 국민들도 인과법과 연기법을 알아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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