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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의 추억(e8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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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님 문화 산책 스크랩 개천에서 태어난 용의 전설! 피아니스트 당타이손
김봉길 추천 0 조회 126 14.12.02 16: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늦었지만 지난 10월 19일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당타이손의 리사치틀을 다녀온 소감을 올립니다.

혹 이 걸출한 피아니스트에 대해 잘 모를 분들을 위해 소개한다면 당타이손은 대부분의 유명 아시아계 연주자들이 대부분 동북아시아 즉, 한국, 일본, 중국 출신인 것에 비해 거의 유일한 동남아시아 베트남 출신이라는 거죠.

1958년 생이니 그가 태어나고 중요한 청소년 시기엔 인도차이나 지역에 전쟁이 한창일 때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그것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그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가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동안 전쟁 중에 겪은 일은 석기시대와 다를 바 없는 다시 말해 생존이 목표인 시기였으니까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나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당시 하노이음악원 피아노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자라다가 7세 때에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산골에 있는 마을로 피난 가면서 그의 어려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무 판자에 건반을 그려놓고 매일 20분 정도를 꾸준히 피아노 연습을 했답니다.

1974년 기적같은 일이 그에게 생겼는데 종전이 다가오던 시기에 베트남을 방문했던 러시아(당시는 소련)의 피아니스트 아이작 카츠의 눈에 발탁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스크바 음악원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게 최고수준의 음악학교니까요.

문화적 교육적인 시차는 그에게 아마 충격이었을 겁니다.

어느 정도 조정기간을 거친 그는 19세부터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모든 게 힘들긴 했지만 다행히 굶주림에서 해방되었기에 모든 에너지를 연습에 쏟아부었습니다.

그결과 1980년 폴란드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동양사람도 쇼팽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음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그는 입상식에서 입을 적절한 의상도 없을 정도였지만 그의 극도로 성실하고 영감에 가득찬 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지요.

 

쇼팽콩쿠르의 우승은 그의 개인적 삶을 바꾸어 놓은 것만 아니라 베트남 전체에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제국주의 자본가 전유물로 알았던 음악이란 이유로 배척했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고 합니다.

 

쇼팽 콩쿠르 이후 그의 활동은 그가 일회성 반짝하다 명멸하는 연주가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서구 유럽은 물론 일본 산토리 홀 등 전세계 40여개 연주장을 순회하며 명성을 쌓아 갔습니다.

그동안 그와 같은 무대에 선 연주자로는 핀커스 주커만, 네빌 마리너, 마리스 얀손스, 이반 피셔 등이며 몬트리올 심포니,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 모스크바 필, 러시아 내서널심포니, BBC 심포니 등 세계적인 관현악단과 협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이치그라마폰, Sony, JVC 등에서 음반을 출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쇼팽 국제 콩쿠르, 모스크바 ㅅ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국제 콩쿠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차이나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몬트이올 음대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1992년 첫 내한 후 여러차례 내한했는데 이번 내한 공연은 2010년 후 4년만에 이루어진 연주로 그에게 항상 따라붙던 쇼팽 스페샬리스트라는 상징에서 벗어난 곡으로 연주되었습니다.

 

이날 연주곡은

프로코피예프의 순간의 환영,

슈만의 다비드 동맹무곡

중간휴식 이후는 모두 라벨의 곡으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소나티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물의 유희, 라 발스 등이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커다란 액션이 없는 아주 조용한 몸짓이 특징이었는데 그럼에도 엄청난 스케일로 연주하여 IBK 홀이 그에겐 너무 작아 적절한 무대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란 걸 23일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멘델스죤의 피아노협주곡의 연주에서 증명해 보였다고 합니다.

IBK홀은 작은 소리의 연주자들에겐 아주 좋은 연주장이지만 당타이손 같이 스케일이 큰 연주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이 피아노 소리가 클 때는 부밍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렇더라도 그의 연주는 정말 좋았습니다. 손의 움직임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들리는 소리는 엄청나서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 보이면 녹음된 장면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그의 연주는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부분에선 과감하게 몰아부치기도 하는 강한 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날 연주된 대부분의 곡은 공연으로 본 게 처음인지라 (앙콜로 단편적으로 들은 것 빼곤) 상세한 소감을 쓰긴 제 한계가 느껴지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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