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사막 여행기 2편
글/스텔라 박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56A3457A3995530)
베르베르인의 집에서 카페트 쇼를 보았던 첫날엔 여정 중간 쯤에 있는 한 작은 호텔에서 하루 밤을 묶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국적 여행자들은 타진(Tagine)과 빵으로 식사를 마치고 민트티를 마시며 내일 체험하게 될 모래 사막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었다.
메르주가의 모래사막 언덕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오후녘 드디어 모래사막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멀리에서보니 사막에는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꽃들이 피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게 웬 걸.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플래스틱 백들이 사막의 풀에 걸려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2001년 히말라야를 등반할 때도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관광객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진 쓰레기는 지구 환경과 소중한 자연 유산을 무참히 파괴해가고 있다.
오후 5시. 드디어 사막 투어가 시작되는 메르주가(Merzouga)에 도착했다. 모로코 남동쪽에 위치한 메르주가는 알제리 국경과도 가까우며 사하라의 모래언덕을 즐기기 위해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곳.
우리의 투어 가이드, 버락과 하싼
운전기사는 우리들에게 오늘 밤에 필요하지 않은 짐은 차에 두고 내리라고 지시한 후, 낙타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사막의 투어를 담당하고 있는 여행 가이드들의 손에 맡겨졌다. 우리 팀의 투어를 맡은 가이드는 올해 스물을 갓 넘은 베르베르족 청년, 하싼(Hassan)과 버락(Barak)이었다.
"미국 대통령 이름과 똑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그는 멋적은 듯,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머리에는 터번을 몇 겹씩 두른 버락은 베르베르족 남자들의 전통의상 간도라(Gandora)를 입고 있었는데 어찌나 멋지던지, 한 벌 구해 입고 싶을 정도였다.
낙타 타고 사막을 걷다
한 줄에 굴비처럼 엮여 있던 낙타들은 관광객들을 차례로 태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낙타의 다리는 두 번이 꺾이는 구조로 되어 있어 (인간과 다른 포유류는 대부분 무릎이 하나라 한 번 꺾인다) 일어날 때마다 여간 흔들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뒤로한 채 트래킹을 시작했다. 버락과 하싼이 앞장 섰고 20여 명 되는 우리 투어 팀들은 일렬로 낙타 위에 올라타 마치 아라비아의 대상 무리들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틀이나 시간을 투자한 후 보게 되었다는 이유 말고도 사막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이제 막 지기 시작한 태양 덕분에 온통 금빛이었던 모래가 황토색, 주황색으로 변해가며 장관을 펼쳤다. 그 위에 길게 늘어진 낙타와 각기 다른 색색의 스카프를 두른 여행자들의 그림자… 시간이 마냥 천천히 흘렀다.
그렇다고 천천히 흐른 시간이 마냥 게으르게 다가온 건 아니다. 해질 무렵의 변화무쌍한 하늘의 색채에 반사된 모래밭은 시시각각 놓칠 수 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 순간, 마음을 챙기며 바로 지금, 바로 여기와 하나가 되어 사막을 바라본다. 어느덧 나와 사막은 하나가 된다.
신비하다. 사막은 자연 상태에 구현된 완벽한 미니멀리즘이다. 그런데도 하늘과 모래밭, 그리고 낙타…. 이 3가지 요소가 만들어내는 엄청나게 다양한 조합을 눈 앞에 대하자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모래언덕(에르그쉐비Erg Chebbi)은 바람이 만들어낸 파도 모양의 패턴이 신비로웠다. 여성적이면서도 때론 남성적인 모래언덕을 보며 가장 아름다운 상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완벽한 조화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리를 싣고 걷는 낙타는 쉬지 않고 배설물을 똑똑 떨어뜨린다. 낙타의 변은 물기가 전혀 없고 동그란 모양이라 또르르 굴러 약간 낮은 구릉에 모인다. 히말라야 야크들의 배설물처럼 낙타의 변 역시 땔감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사막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연료를 찾아낸 베르베르족들의 삶의 지혜, 그 끝이 과연 어디까지인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사막을 여행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낙타 타기 만큼 자연친화적인 것도 없다. 마초적인 남성들은4×4 트럭을 타며 사막을 둘러보기도 한다. 타는 사람이야 신날지 모르겠으나4×4가 남긴 타이어 자국이 어찌나 흉물스럽던지, 아예 사하라 투어에서 없앴으면 싶었다.
낙타 등 위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며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나 역시 맨발로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낙타 타기도 날이면 날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사막에서의 하룻밤
버락과 하싼이 안내한 텐트에 짐을 풀고 나는 모래언덕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어린 왕자가 된 듯, 해지는 걸 바라본다. 어느덧 사방은 노을이 붉은 물감 풀어놓은 것처럼 가득했다. 사막에도 땅거미가 지더니 이내 어둠이 찾아왔다.
쌩 떽쥐페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 했다. 풀도 드문 이곳, 과연 어디에 물이 숨어 있는 걸까.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사막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모래밭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잡초들. 어디에서 날아와 이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잡초들은 낙타의 소변을 빨아들였는지, 숨어 있는 물을 먹었는지 강인하고 꿋꿋하게 자라고 있다.
나로 하여금 사막을 꿈꾸게 했던 몇 가지 영화, 소설 가운데 <영국인 환자(English Patient)>는 단연 넘버 원이다. 캐더린과 알마시 백작이 모래 폭풍에 갇혀 꼼짝달싹 하지 못한 채 머리카락을 만지고 사랑의 싹이 돋아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은밀하며 유혹적인 금단의 사랑에 사막은 최적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캐서린은 알마시에게 이런 글을 썼었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지도 위에 멋대로 그린 경계선이 아닌 진정한 나라입니다."
어디 나라뿐일까. 우리는 하나 하나가 우주다.
버락과 하싼, 그 외에 미리 텐트에 와 있던 베르베르 족 여행 가이드들은 속을 야채와 고기로 채운 빵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해줬다. 투박하고 심플한 노마드의 음식이다.
베르베르인 청년, 버락
저녁을 먹은 후에는 텐트 바로 옆에 캠프 파이어가 마련됐다. 불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전통복장 간도라를 입은 베르베르인 여행 가이드들은 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분위기를 돋웠다.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언어, 인종, 문화의 이질감을 잊은 채 하나가 되어 언어 이전의 울림, '북소리'에 몸을 맡겼다.
내 옆에는 우리 가이드인 버락이 앉아 있었다. 올해 스물을 넘겼지만 그는 자신의 정확한 생일을 모른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사막에서 생활하는 노마드로, 달력이나 시계 같은 물건을 갖고 있지 않다고.
예전에 아리조나주의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전기도 개스도 상수 하수 시설도 없는 호피 인디언들은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만끽하며 순간 순간에 충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해가 중천에 떠 있으면 점심 때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저녁 때인 것이다.
버락은 또한 태어나 단 한 번도 '학교'라는 곳엘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청년은 모국어인 아랍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까지 능통했다. 어떻게 한 언어의 알파벳을 모르면서도 그 언어를 이처럼 습득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웠다.
그의 집에는 라디오도, TV도 없단다. 그리고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화'라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캠프 불이 약해지고 내가 춥다고 하자, 그는 낙타 옆에 가면 따뜻하다며 나를 인도했다. 낙타 옆에 가니 낙타의 몸에서 온기가 은은히 전해져왔다. 사막의 남자인 그는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낙타는 하루 종일 먹어요."
그가 말했다. 정말 가까이 다가가보니 낙타는 아침에 먹었던 건초를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신비하지 않은 생명이 없지만 낙타는 신비의 끝판왕이다. 낙타는 사막 생활을 잘 견디도록 진화되었다. 유난히 예쁜 낙타의 눈은 심한 모래바람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이중눈썹 덕이다. 낙타의 가죽과 털은 뜨거운 낮의 태양과 추운 밤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낙타 등의 혹에는 지방이 저장돼 있다. 이 혹에 저장된 지방의 양이 평균 45킬로그램이라니 엄청나다. 그래서 낙타는 며칠 굶어도 끄떡 없다.
하지만 물은…. 낙타가 어떻게 물을 마시고 저장하는지를 버락으로부터 듣고 나는 기겁을 했다. 주변에 물이 있으면 낙타는 10분 만에 100리터 정도의 물을 마실 수가 있다고 한다. 또한 온 몸에 고르게 퍼지도록 저장을 해도 이상이 없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4353457A3995B2F)
지금은 바로 지금 일만 생각해요
"내일 우리 몇 시에 일어나야 하죠?"
하늘에 별도 아름답고 가까이 베르베르족의 북 소리도 멋지게 들리는 가운데 나는 버락에게 질문을 했다.
"왜 지금 이 완벽한 순간에 내일을 생각해요? 지금은 바로 지금 일만 생각해요. 그래도 충분해요."
이교도 청년에게 한 방 맞았다. 교육기관이라는 곳엘 가본 적 없는 이였이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농축돼 있는 삶의 지혜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무리가 있는 곳으로 온 우리들은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핀란드, 독일, 프랑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불가리아…. 그리고 한국과 미국. 우리는 태고적 동굴 생활 하던 시절, 사냥이 끝난 후 불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던 최초의 인류들처럼 함께 불을 바라봤다.
하나 둘씩 잠을 자러 텐트에 들어가 캠프파이어 주변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 나는 일행과 멀리 떨어져 혼자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봤다. 내가 사는 도시의 밤하늘에서도 보았던 별들이지만 빌딩과 가로등이 없는 배경이다보니 크기도 밝기도 훨씬 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431B3457A3995E30)
별들과의 대화
나는 별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1897년에 고갱(Gauguin)이 그렸던 그림의 제목이자 우리 모두 살면서 피할 수 없고, 늘 짊어지고 다니는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라는 화두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별들은 은은한 빛을 뿜으며 내게 말해온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별은 이렇게 얘기했던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거하세요. 개체로서의 에고가 완전히 사라진 당신은 우주 전체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당신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순간들이 연결돼 영원을 이룹니다. 당신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완전합니다."
그렇게 영혼의 대화를 나눈 뒤 나는 고요함 속에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도부터 사막의 밤이 춥다는 경고를 여러 곳에서 들었던 지라, 4월 중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패딩 자켓을 준비해갔었다.
과연…. 후덜덜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꺼내 입고 패딩 자켓까지 든든히 입은 후 이불을 덮었다.
하지만…. 세상에… 세상에. 추워도 이렇게 추운 경험은 처음이다. 히말라야의 산 위에서도 이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마이너스 온도에도 견디는 슬리핑백을 가져 갔었다.) 춥다 보니 화장실은 또 왜 그리 가고 싶은지. 족히 10번은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가 모래밭에 물 주기를 반복했다.
다음날 새벽, 히말라야 산사에서 들었던 것 같은 "뚜…"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기상 나팔 소리였다. 옆 자리에 누웠던 독일 여성이 자기도 거의 못 잤다며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앉아 있다.
해가 채 떠오르기 전, 우리는 다시 낙타에 올라 카라반을 시작했다. 20분쯤 지나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빨갛게 하늘이 물들다가 오렌지색, 금빛…. 어제 해가 지던 장면을 거꾸로 틀어놓은 듯한 모습을 보며 사막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한다.
다시 돌아온 문명 세계
처음 낙타에 올라탔던 장소에 와 버락, 하싼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인근 호텔 부속 식당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며 다시 문명과 조우했다.
그렇게 아쉽지만 그렇다고 하루 더 하기도 망설여지는 사막 투어를 마쳤다.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오래 전 알게 된 존 덴버(John Denver)의 노래, <애니즈 송(Annie's Song)> 이 생각나 흥얼거렸다.
"당신은 숲속의 밤처럼, 봄날을 산들처럼, 빗속의 산책처럼, 사막의 폭풍처럼(like a storm in the desert) 졸리운 듯 푸른 바다처럼 내 모든 감각을 채워줍니다. 내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채워주세요.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 삶을 당신에게 드리게 해주세요. 당신 웃음 속에 빠지게 해줘요. 당신 품 안에서 죽게 해주세요. 당신 곁에 눕게해주세요. 영원히 당신 곁에 있게 해주세요.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절 사랑해주세요."
사막의 폭풍 같은 애니, 과연 그녀는 어떤 여자였을까, 궁금해진다.
모래 사막은 모로코 여행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다.
내게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모든 장식과 잉여, 문명 등을 잘라내고 난 후 남는 존재의 에센스"이기 때문? 그래, 그런 것 같다.
사막 도시 LA에 돌아와서도 나는 여전히 모로코 사막에서의 하루 밤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그처럼 떠나고 싶었던 사막이 이제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여여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1753352F3F54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