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성능과 최고로 비싼 스포츠카를 들라면 이탈리아의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꼽는다. 람보르기니는 바로 복수심에서 태어난 사연을 가진 스포츠카이다. 페르치오 람보르기니는 농부의 아들이지만 일찍이 기계에 관심을 가져 블로냐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공군에서 제대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불하받은 군용차를 농업용 트랙터로 개조하여 판매하여 크게 성공한다. 스피드 광이었던 람보르기니는 1950년대에 엔초 페라리가 만든 3대의 페라리를 구압했으나 잦은 고장을 일으키자 1959년 페라리를 만든 엔초 페라리를 직접 만나 문제점을 지적해준다. 그러자 화가 난 페라리로부터 "페라리를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 트랙터나 몰아라"라는 폭언을 듣고 페라리보다 더 우수한 스포츠카를 복수심에서 만들기로 결심한다.
1963년 람보르기니자동차회사를 세우고 수공방식으로 제작한 V12통 · 3,500cc · 360마력의 엔진을 얹은 제1호인 `람보르기니 350GT`를 내놓는다. 이어서 1966년에는 4,000cc V12기통 380마력에 최고시속 290km를 내는 GT40, 일명 미우라를 개발하여 페라리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차는 페라리보다 스피드, 성능, 스타일에서 앞선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카운타크, 디아블로 등을 내놓아 페라리와 쌍벽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닌 차, 가장 비싼 자동차, 첨단 스타일의 슈퍼 카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70년부터 국내의 거센 노동쟁의와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73년 회사를 매각한 후 은퇴했다. 이후 87년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매수한 뒤 94년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도코 그룹으로 넘어갔다가 98년 초 폴크스바겐 그룹이 인수했다. 페르치오 람보르기니는 은퇴해 이탈리아 엄브리아주에 광대한 포도농장을 마련하여 여생을 와인 생산에 바치다가 1993년 2월 7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