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식처(신유진, 그라시아, 국악인)
몇 년 전 부모님과 인천에 여행을 갔을 때 그 근처의 성당을 찾아 함께 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평일 오전 시간이라 청년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문득 낯선 젊은이인 제가 눈에 띄었나 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랑 술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푸나요? 보통 어떻게 해요?”라며 신부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빈 성당에 앉아서 하느님께 말씀드려요.” 신부님께서 잠시 멈칫하시더니 대답하셨습니다.
“아, 그래서 이 시간에 여기 미사 드리러 와 있는 거구나!”
저는 하느님, 성모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된 후로 그분들과 자주 마음속으로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저의 다양한 감정들을 말씀드리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거나 상처를 줬을 때도 순간의 화살기도로 저를 보호하곤 합니다. 이렇게 일상 속 기도가 습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제 나름대로 그만큼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겪어왔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판소리를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노래는 저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것은 변함이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무대 경험과 입시를 거쳐 국악 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기까지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을 해준다는 감사함에 눈물 흘린 날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오랜 인고의 시간 동안 쓴 고통을 맛본 뒤에야 찾아온 기쁨이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회를 통해 실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고, 더 많은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전통에 기반을 둔 창작물을 만들며 고군분투했습니다. 고개를 겨우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났고, 그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의 은신처 없이 저 혼자였다면 절대 넘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성모님 손을 잡고 함께 간 것이 불가능을 가능케 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힘든 일이 되었지만, 언제든 성당이 보이면 성전에 들어가 예수님 성체 앞에서 제 마음을 다 털어놓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일들을 긍정적으로 이겨낼 힘이 생겼고, 주님께서 그 힘으로 단단히 뭉친 마음속 응어리들을 얼음 녹듯 사라지게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인생의 고개를 넘고 있는 저와 많은 분이, 힘들 때 마음의 안식처를 기억하고 쉬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어릴 적 피정에서 들었던 묵상 곡의 가사처럼 말이죠.
“넘지 못할 산이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 주님밖에 없어요. 나는 그 길 갈 수 없지만, 주님이 대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