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계획 A 코스인 천등, 인등, 지등 연계 산행으로 '다릿재 → 소봉(매봉) → 전망대 → 천등산 → H-철탑 → 느릅재 → 갈림길 → 인등산 → 갈림길 → 장선고개 → (관모봉) → 지등산 → 건지마을 → GS주유소 → 동량교 → 대성슈퍼 앞'의 17km, 8시간의 트레킹을 즐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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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天登山]
높이: 807m
위치: 충북 충주시 산척면
북동쪽에 시랑산(侍郞山:691 m), 남쪽에 인등산(人登山:667 m)이 솟아 있다. 북동쪽 비탈면을 흐르는 계류는 제천천(提川川)을 이루며 충주호(忠州湖)로 흘러들고, 서남쪽 비탈면을 흐르는 계류는 영덕천(永德川)을 이루며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남동쪽으로 충북선 철도가 가로지르고, 북서쪽으로 장호원~제천 간 국도가 지난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임아"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사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본래 박달재는 이곳 시랑산에 있는 것이고, 천등산(806m)에 있는 고개는 박달재에서 약 9km쯤 서쪽에 있는 다리재이다.
산행 시작은 박달재 휴게소가 있는 고개마루턱이다. 이 고개가 해발 453m이므로 240m 남짓만 올라가면 되므로 산행의 부담이 적다. - 한국의 산하
인등산
높이: 666m
위치: 충북 충주시 산척면
인등산은 더덕 내음 그득한 철도산행의 적지이다. 세상은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평범한 원리에 따라 북으로 천등산 (806m), 남으로는 지등산(535m)을 이루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다.
또한 동으로는 충주호가 서쪽으로는 남한강이 자리하고 있어 수려한 산세가 그만이며 철도 산행지로 이만큼 걸맞은 곳도 드물 것이다.
충북선 동량역에서 곧바로 산행이 시작되고 산행 종료 지점인 삼탄에서 다시 열차를 탈 수 있다. 정상에서의 인등산은 남으로 계명산이 북으로는 천등산이 눈에 들어온다. - 한국의 산하
지등산[地登山]
높이: 535m
위치: 충북 충주시 동량면
지등산은 천등산, 인등산과 함께 3 등산의 하나로 이름 그대로 따지자면 땅처럼 넓고 편안하며 푸근한 산이어야 한다. 실제로 산의 형상은 그렇지 못한다. 이산의 정상 부근은 마치 갓처럼 뾰족하고 높이도 세 개 산 중에서 제일 낮은 산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으로는 인등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남동쪽으로는 광활한 충주호가, 충주호 왼편에는 계명산이, 동족으로는 관모봉(641m)이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지등산은 크게 내세울 만한 특징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아 자연 그대로를 보존되어 있어 깨끗하고 참신한 맛을 전해준다. - 한국의 산하
2022년 2월 3주 차는 토요일이 아닌 일요 산행으로 대략 총거리 17km에 이르는 충북 충주의 천등산~인등산~지등산 연계 산행을 하기로 했다. 현재 목표로 진행 중인 천고지, 명산, 백두대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산이나, 1월 초 2월 산행 계획을 세우느라 각 안내산악회를 다 뒤졌으나, 목표한 산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눈에 띈 게 이 산행이다. 충주의 천등산에 관해 알게 된 건 지난 2021년 1월 10일 천고지 산행의 하나로 소백산 도솔봉에 오르기 위해 백두대간 묘적령에서 죽령까지[산행기] 달리기 위해 이동 중 산악회 버스가 '천등산휴게소'에 정차했을 때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의 '울고 넘는 박달재'의 천등산이 여기라는 걸 알았다. 실제 박달재는 천등산이 아니라 '시랑산'에 있다는 것도. 그리고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 후 2022년 1월 1일 천고지 산행으로 문봉재에 오르기 위해 다시 대간 팀을 따라 ‘저수령’에서 ‘작은차갓재’까지 달리는 산행[산행기]의 들머리인 저수령까지 가는 중간에 버스가 휴식한 곳이 ‘천등산휴게소’였는데, 거기가 천등산뿐만 아니라, 고구려 테마공원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았다.
천인지 연계 산행 계획을 발견했을 때 이미 버스는 성원을 채우고, 단독 포함 좋은 자리는 주인이 있어, 시일이 지나면 혹시 목표한 산행 계획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어 산행 신청을 서두르지 않고 추이만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구글링으로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의 산행기를 찾아봤으나, 대부분 각 산을 오른 거로 세 산을 연계한 산행은 찾기가 힘들었다. 아마,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증 대상의 산이 아니어서, 주변 도시의 등산객이 시간이 날 때마다 천인지 각 산을 찾은 거 같다. 하긴 2018년부터 안내산악회를 애용하는 중이나, 충주 천등산행 계획은 처음 봤다. 인증 대상도 아닌 동네 뒷산 3개를 이은 17km를 달리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산악회가 얼마나 있겠냐?
그런데 왜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비어 있던 몇 자리도 빠르게 주인을 찾아가더니, 2호 차까지 신청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2호 차 신청이 성원을 채워 같이 출발하는 건 잘 보지 못해, 1월 17일 산악회 주인장에게 1호 차에 그나마 남아 있던 서너 자리 중 한 자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2월에 접에 들자 2호 차도 거의 만원이라 산행 일주일 전에는 3호 차까지 신청을 받다가, 그 정도 인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 3호 차는 없어졌다. 어쨌든 충북 충주의 잘 알려지지 않은 3개 산 연계 산행을 위해 서울에서 새벽부터 두 대의 관광버스가 출발한다. 코스가 길어 등산객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A, B, C 세 개 코스가 있다. 나야 물론 3개 산을 잇는 총 17km거리가 넘는 A 코스를 달릴 예정이다. 그리고 산악회 게시판에는 책정된 산행 시간에 대한 정보가 없지만, 어쨌든 한 시간 빨리 하산해 들머리에 있는 식당 중 하나에서 그 동네 안주를 맛볼 예정이다.
기상청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당일인 2월 20일 일요일 천등산 일대가 날씨는 맑으나, 기온은 영하권이라 조금 추울 거라는 예보다. 날씨가 맑다고 해도 주변에 볼만한 경치나 있을지. 어쨌든 지난주와 다름없는 복장으로 갈 예정이다. 다만, 심설은 없을 거라, 창갈이 보낸 등산화가 그 안에 도착하기를 바라지만, 도착해봐야 아는 거고. 점심은 그동안 컵라면으로 때워왔는데, 이제는 지겨워, 간편식인 영양밥을 가져갈 생각이다. 다만, 지퍼백에 핫팩과 같이 넣어, 식지 않게 하려는데, 사실 이번이 처음이라 테스트나 다름없어 얼음밥을 먹을지 그나마 따뜻한 밥을 먹을지는 까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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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역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 평소보다 20여 분 늦은 6시 5분경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아쉬운 게 있다면 창갈이를 보낸 등산화가 도착하지 않아, 두꺼우면서도 무거운 심설 산행용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거. 불광역에서 6시 12분 열차를 타고 신사역으로 출발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일렀다. 6시 27분 열차를 타면 6시 56분경 신사역 도착이라 4번 출구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7시 10분에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와 자연스럽게 연계되지만, 6시 12분 차를 타고 6시 41분에 신사역에 도착하면 20분이 넘게 할 일이 없어 난감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앉아서 쉴 수 있는 승차장 내에서 대기하다가 7시경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일단 12분 차를 탔다. 이게 다 불광역으로 가는 마을버스 타이민이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며 열차를 타고 가다 뭔가 이상해 책에서 눈을 떼고 정차해 있는 역이 어딘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신사역이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음을 깨닫고, 배낭을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는 이미 열차의 문이 닫히고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다시 주저앉아 지하철 앱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봤다. 분명 앱에 출발역과 도착역을 설정해 알람을 울리도록 했는데, 울리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확인 결과 기동 중인 앱이 없었다. 분위기를 보니 앱 간 충돌로 종료된 거 같았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이 앱을 믿다.’가는 대형 사고를 치는 일이 생길 거 같아 앞으로는 수시로 정상 작동 중인지 확인하기로 다짐하고, 잠원에서 내려 다시 신사역으로 향했다.
잠원역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음에도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은 6시 49분으로 산악회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10분이 넘게 남았다. 그래도 일단 역사로 올라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서 보니, 추위를 피해 많은 등산객이 지하 통로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도 그중에 끼여 통로 끝에서 끝을 오가며 다른 때와 달라진 게 있나 살펴봤다. 토요일이면 산악회가 애용하는 4번과 5번 출구에 가까운 커피집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을 파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처음 보는 “부산 오뎅” 가게가 있었다. 그동안 못 보고 지나친 건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커피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그 집의 김밥만 믿고 있던 등산객이 오뎅 집으로 와 김밥을 찾는데, 없는 거로 봐서는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쪽이 정답이다.
7시가 넘어 4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며 보니, 이미 정류장의 의자는 다른 등산객이 차지하고 있었다. 칸막이가 쳐져 있고, 바닥에 열선이 있어 로열석이나 다름없는데, 조금 늦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옆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 자리에 앉고 보니 여기도 바닥에 열선이 설치되어 따뜻했다. 해서 엉덩이로 두 손을 깔고 앉아 손을 데우며 천등산행 버스를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빠른 7시 3분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가 정차하는 걸 보고 배낭을 짐칸에 넣고 패드와 카메라를 들고 차에 탄 후 잠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휴게소에 들어왔고 내 다리 위에 이번 산행 지도가 놓여있었다 뭐 휴게소에 도착했으나, 추워서 밖에 나가기도 싫고, 딱히 볼일도 없고, 잠도 안 깬 상태라 그대로 잤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정신을 차리고 지도를 카메라와 폰으로 찍었다. 핸드폰에 담긴 지도는 등산 중 수시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는데, 임도가 많고, 이정표나, 표지가 드물어 소위 얘기하는 알바하기 좋은 산이니 조심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대장의 설명에 많은 차이가 있다. 당연히 동네 뒷산이라 생각했는데, 이정표도 표지도 길도 없다니. 이어서 산행 소요에 총 8시간을 책정해 시간은 충분하니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예상대로 8시간이 주어져 만족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버스가 고개를 올라가고 있고 좀 있으니, 마지막으로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5시 20분을 마감 시각이라 공지했다. 아마 9시 20분경 들머리에 도착할 거라 예상했던 거 같은데, 정확히는 9시 9분경 도착해, 실제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8시간 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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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두꺼운 등산화는 미니 스패츠를 착용해 봐야 의미가 없어, 스패츠는 패드와 같이 버스에 두고 내린 후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정표 정도는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없다! 고로 들머리가 어딘지 알 수가 없고, 여기가 천등산의 다릿재라는 걸 아는 것도 가물어 물도 나오지 않는 다릿재 약수 음용수 적격 안내문을 보고서다. 해서 등산객이 어디로 가야 할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앞에 보이는 집 옆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해 약수터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거로 천인지,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연계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천등지맥 산행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당연히 지등산에서 지맥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등산은 천등지맥에서 약간 빗나가 있고, 지맥은 관모봉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있었다.
천등산 태성사가 있는 방향으로 가긴 했으나, 거대하나 활짝 열린 철책 문을 통과하자 왼쪽으로는 슬레이트 지붕의 태성사가 있고, 등산로라고 부를 만한 건 보이지 않아, 앞서가던 대부분 등산객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사실 약수터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임도로 보이는 도로가 나왔고, 그 도로를 따라 도착한 곳이 태성사다. 그리고 과거에 임도였던 거로 보이는 길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서 폰을 꺼내 비정규 탐방로를 표기하는 등산 앱으로 등산로를 확인해보니, 구 임도를 따라 전진해도 되고, 후방 오른쪽 언덕도 길이 있는 거로 나와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등산객 한 명이 이미 지도를 확인하고 그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해서 그 뒤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자 다시 임도가 나타났다. 결과적인 얘기나, 지등산을 제외한 천등산, 인등산을 임도가 둘러싸고 있어 어디로 가나 임도를 만났다. 인솔 대장이 버스 속에서 얘기한 대로다. 다만, 알바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굳이 능선을 따라 난 등산로가 아니라, 임도를 따라가도 목표하는 천등산이나, 인등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사실 그게 더 빠르고 쉽게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었다. 그걸 등산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고!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자 “천등산 임도 노선 현황”이라는 지도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임도 현황이라, 2012년 이후 거의 매주 산에 다녔지만, 이런 입간판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임도만 표기한 게 아니라 당연히 등산로도 같이 표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 위치”인 천등산 1코스를 들머리로, 2코스로 하산할 예정이다. 이번 산행 총거리가 18km가량, 산행 종료 목표 4시, 고로 주어진 시간은 7시간 정도라, 시속 2.6km/h로 가면 된다. 물론 알바하지 않고, 18km가 맞는다는 전제하에서다. 먼저 첫 번째 고비인 천등산 정상까지의 1코스 거리가 1.7km에서 목표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물론 오르막에서 지체한 걸 하산하는 과정에서 보충하지만.
산행 시작 13분이 지난, 9시 24분에 1코스 들머리로 천등산 정상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산이 그렇듯이 천등산 또한 급경사로 시작하는데, 와중에 기온은 낮고 바람은 강한 게, 기상청 산악날씨 예보 그대로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산악지역은 잘 맞는다. 어쨌든 차고 강한 바랑에 귀가 떨어져 나갈 거 같고, 손이 시려, 좀 답답하나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손은 주머니에 넣고 정상으로 향했다. 문제는 급경사라 마냥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갈 수 없어, 그나마 있는 안전시설인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해, 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잠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녹이고 가기를 반복했다. 손을 교대로 사용하면 좋은데, 등산로의 구조상 그게 불가능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배낭에 장갑이 있으니 꺼내 끼면 되는 걸 그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손이 고생했다. 반면 손을 녹인다는 핑계로 오르다 말고 가끔 쉬기도 했다.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를 천등산 정상이라 생각하고 거의 숨넘어갈 정도로 애를 써서 올라보니, 앞에 또 뾰족한 봉우리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해서 핸드폰의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해보니, 500m대다. 그때 문득 ‘혹시 이거 고도 백 미터마다 봉우리가 있는 거 아냐?’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해발 800m대인 천등산 정상까지 가려면, 두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한다. 그리고 거의 맞았다. 들머리에서부터 오르고 내리고를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반복했다. 인솔 대장이 했던 기복이 많은 코스라는 얘기가 과장이기를 바랐는데, 정확했다. 9시 59분에 이번 코스에서 두 번째 보는 이정표에 도착했는데, ‘소봉 0.4km, 천등산 0.5km’란다. 그런데 아직 이 동네 이정표에는 적응이 안 된 상태라 뒤로 돌아 조금 전에 지나온 소봉(매봉)과 이정표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봤다. 400m치고는 너무 멀다! 고로 천등산 정상까지 500m가 5km처럼 느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10시 11분에 돌탑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딱히 볼만한 전경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의 깔딱이 끝나고, 그나마 완경사 능선의 시작이랄까. 전경 대신 돌탑을 사진으로 남기고 100여 미터를 가자, 등산객의 소음이 들리고,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났다. 천등산 정상 이정표로 좌는 동봉이고 직진하면 느릅재다. 느릅재까지의 거리는 3.2km! 다음 목표다. 그런데 최소한 정상석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정표가 다라 실망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 앞선 등산객의 산행기에서 정상석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럼 정상석은? 해서 등산객의 소음이 들리는 직진 방향을 보니, 비석처럼 보이는 흰 돌이 조금 보인다. 정상석이다. 그리고 이정표는 정상이 아니라 갈림길에 있었다. 고로 정상은 조금 더 올라가야 했다. 정상석 주변에는 앞서 도착한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지만, 까만 소나, 다른 기관의 인증 대상이 아니어서 인증에 목숨 거는 분위기는 아니라, 옆에 있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나도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나서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쓴 상태라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스타워즈 ‘다스 시디어스’다!
9시 24분에 1코스로 1.7km 거리의 정상에 오르기 시작해 10시 12분에 도착, 48분이 걸렸다. 평균속도를 계산해 보면 대략 2.1km/h가 조금 넘는다. 급경사 또는 험한 봉우리는 평균 시속 1km/h에서 1.5km/h 정도 나오는데, 속도를 보면 그렇게 힘든 코스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하산주에 목숨을 걸어, 모든 체력을 여기에 다 쏟아 넣은 걸 수도 있고. 어쨌든 정상을 떠나 다음 목표인 느릅재를 향해 출발해 100여 미터를 가자 앞에 웬 건물이 보인다. 정자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있는 정자다. 쉬면서 뭘 먹기 좋은 장소이기는 하나, 차고 강한 바랑에 잠깐이라도 앉아 있기가 무서운 날씨라, 바로 지나쳤다. 그리고 6분가량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은 다락재, 느릅재는 좌회전이다. 그리고 급경사의 시작이다. 낙엽 쌓인 급경사 하산길이라. 오히려 아이젠을 착용한 심설이나, 빙판보다 더 위험했다.
지자체에서도 그걸 잘 아는지 안전시설로 가이드를 설치해 밧줄을 잡고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아, 낙엽에 미끄러지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만, 너무 내려가는 게 걱정이었다. 이번 전체 산행 들머리인 다릿재의 해발 고도가 374m인데, 아무래도 인등산행이 시작되는 느릅재는 그보다 낮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제발 더 낮지 않기를 빌며, 앞선 등산객을 따라 내려가는데, 길이 이상하다. 길은 맞아 보이는데,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되어, 관목이 길을 막고 있어, 나뭇가지에 뺨을 얻어맞기 여러 차례. 오지 산행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등산객을 일행이 부르는 거였다. 이유는 갈림길에서 길을 놓쳤다고. 그러자 선두에서 가던 일행으로 보이는 노년의 세 등산객 중 한 명이 위에 갈림길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며, 계속 가던 길을 간다.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라며. 세 사람을 뒤에서 따라가며 본의 아니게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을 때, 이 코스에 관해 아주 잘 아는 거 같아 등산로에 별 주의하지 않고 따라왔는데, 갑자기 배신감이 확 든다.
그렇다고 길을 찾겠다고 다시 돌아갈 내가 아니라, 계속 그들을 따라 내려가며 가끔 등산 앱으로 길을 확인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앱에 의하면 이 길이 맞다! 앞선 세 산꾼의 오류가 아니다. 해서 한때나마 그들을 의심했던 걸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천등지맥은 이 길을 따라가는 게 맞고, 인적이 끊긴 이유는 지맥 산행하는 꾼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세 명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를 하며 가고 있었다. '요즘은 사서 고생하는 산행은 안 한다.'라고.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공감하며 따라가다 보니, 저 아래로 길이 보인다. 임도다. 그리고 임도에 내려서자마자 눈에 띄는 게 이정표다. '느릅재 1.9km, 천등산 정상 1.3km' 세 노년의 산꾼이 길을 제대로 찾아 내려왔다는 지자체의 인정이다. 산림청인가? 그리고 그 옆에는 "천등산 임도"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느릅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200m가량 가자,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났으나, 정확히는 직진, 아래로 향하는, 위에서 내려오는 임도 사거리다. 그 위에서 내려오는 임도가 아까 관목 가지에 따귀를 맞으며 내려올 때 뒤에서 길이 잘못됐다며 돌아갔던 등산객이 생각했던 길이다. 그리고 그 임도를 따라 등산객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정표는 느릅재로 향하는 길로 임도를 지목하고 있으나, 이정표 바로 앞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 능선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나마 천등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인적이라도 있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다들 이정표가 가리키는 임도를 따라갔는지, 낙엽이 거의 무릎에 육박할 정도로 쌓여 있어, 그걸 헤치고 전진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탔다는 건 봉우리로 올라간다는 얘기라, 언덕이든 봉우리든 정상에 올라가자 저 앞으로 인등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나타났다. 문제는 그사이의 거리와 하산 고도가 꽤 되어 보인다는 거!
역시 예상대로 다시 낙엽 쌓인 급경사다. 저 아래로 보이는 임도. 임도는 산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우리는 능선을 따라 임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계속 반복되자, 그것도 지겨워, 기록하는 것도 중단하고 갔다. 물론 임도에 도착해서 보면, 임도를 따라 내려오거나 내려가는 등산객을 볼 수 있었고,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몇 사람은 임도를 따라 움직이지 않은 걸 후회하고, 그 순간부터 능선을 버리고 임도를 따라갔다. 비록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천등지맥, 즉 능선을 따라가다가, 인등산 들머리 직전 마지막 능선에서 갈림길을 놓쳐, 계곡으로 내려가는 일이 생겼다. 그 계곡을 빠져나오자, 임도가 아니라 차량이 빈번히 다니는 국도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등산로는 국도 왼쪽의 능선 위로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좌회전해야 하는 갈림길을 놓치고 직진하는 바람에 계곡으로 떨어진 거다.
도로는 100여 미터 앞에서 고개를 돌아 사라지는 게 능선도 그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난다는 얘기라, 굳이 다시 능선으로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도로를 따라 그 고개를 향해 갔다. 우리가 가고 있는 국도 아래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산행 덕에 가끔 들렸던 휴게소 이정표도 보였다. 그리고 도착한 느릅재! 그런데 그 어디에도 느릅재라고 알려주는 이정표나 표지가 없다. 다만, "중원 골프클럽"이라는 표지석만 있을 뿐! 해서 이 글을 쓰며 느릅재의 위치를 지도로 확인해본바 맞다. 우리가 제대로 온 거다. 문제는 이정표가 없다 보니, 인등산 들머리가 어딘지를 몰라, 나를 포함 몇 사람은 등산 앱을 보고 있고, 그 노년의 세 산꾼은 도로를 따라, 고개를 돌고 있었다. 그때 계곡에서부터 암묵적으로 우리의 리더가 됐던, 젊은 친구가 골프 클럽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고개를 돌던 노년의 산꾼을 불렀다. 그리고 다 함께 골프 클럽으로 향하는 승용차가 오가는 도로를 따라 그 방향으로 갔다. 물론 나도 지도를 확인해본바 그쪽으로 길이 나 있는 걸 확인했기에 별말 없이 따라갔다.
도로를 따라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젊은 친구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상해서 등산 앱을 확인했는데, 등산로는 우리 위치에서 약간 빗나간 지점에 있어, 혹시나 오른쪽 도로 아래와 위쪽 능선을 확인했는데, 등산로로 보이는 건 없었다. 문제는 골프장 내로 진입하는 순간 등산로를 찾을 확률은 0%에 가까워지는 거라 그 전에 해결해야 했다. 그때 그 친구가 죄송하다면, 그 노년의 산꾼이 갔던 방향이 맞았다며, 다시 돌아가자고 해 두말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 다시 갈림길로 돌아갔다. 하긴 상식적으로 등산로가 능선을 따라 나 있다면, 이정표든 뭐든 그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있을 테니, 그곳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돌아가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노년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본인들의 고집을 피우지 않은 게 더 좋았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국도를 따라 고개를 돌자, 정류장이 보였다. 해서 그 의자에 앉아 등산화를 벗어, 쌓인 낙엽을 뚫고 오느라 등산화에 들어간 이물질을 뺐다. 귀차니즘에 웬만하면 그냥 가는데, 나뭇가지 같은 게 발을 찔러 도저히 더 갈 상황이 아니어서, 마침 정류장 의자를 발견하고 조치했다. 다시 등산화를 신고 10여 미터를 가자, 저 앞으로 "인등산 ⇒"이라 쓴 붉은 기둥의 이정표가 보였다. 골프장 삼거리에서 고개 방향으로 10여 미터만 더 갔어도 길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걸. 그 이정표가 있는 맞은편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뒤로 능선에서 내려오는 등산로가 있었다. 그리고 이정표의 화살표는 임도를 가리켰다. 고로 삼거리다! 내가 등산화를 정비하는 동안 앞섰던 무리는 임도를 따라 저 앞에 가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등산로가 아니다. 등산 앱을 보면 임도도 구불구불 위로 향하나, 등산로는 직선에 가깝게 따로 있었다. 해서 임도로 따라가던 걸 멈추고 뒤로 돌아 도로 왼쪽에서 등산로를 찾으며, 다시 삼거리로 나갔다. 마침 그 젊은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앞서가던 등산객을 불러 다시 돌아왔다.
등산로는 이정표에 도착하기 직전 삼거리가 시작하는 입구에 임도 방향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이정표에 정신이 팔려 전진하다가 인등산 들머리 입구를 놓치는 사태가 발생한 거다. 하긴 임도로 올라간다고 해서 인등산에 갈 수 없는 건 아니다. 좀 돌기는 하나, 오히려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다. 나야 임도로 오를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당연히 능선을 따라 위로 올랐다. 그 젊은 친구를 비롯한 몇 명의 등산객이 뒤를 따라왔고 나머지는 임도로 위로 올라갔다. 능선을 따라가며 오른쪽 아래를 보니, 골프장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란히 가고 있었다. 해서 등산 앱에서는 마치 도로가 등산로처럼 보였던 거다. 그런데 등산로를 골프장 옆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골프장에서 라운딩 중인 골퍼를 볼 수도 있었다. 골프장 경계 철망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자 다시 임도다. 인등산도 천등산과 같이 능선으로 이어진 등산로로 가면 언덕이든 봉우리든 넘기만 하면 임도를 만났다. 물론 임도로 올라오는 등산객도 만나고.
인등산 들머리를 출발해 42분 정도 능선을 따라 올라가자, 이정표가 있는 임도 삼거리가 나타났다. 물론 능선을 따라왔지만, 국내 대기업 소유이자 인재개발원이 있는 산이라, 임도를 피할 수는 없어, 대여섯 번가량 임도를 가로질러야 했다. 그리고 삼거리 이정표에 의하면 인등산 정상까지는 2.4km 거리다. 그리고 그 이정표가 있는 맞은편이 기업의 야외 강연장이라, 등산객에게는 쉼터와 식당으로 제격이었다. 해서 다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나도 최대한 위로 올라가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테스트 겸 봉투에 핫팩과 같이 넣은 간편식을 꺼내 먹었다. 실험은 성공적으로 따뜻하지는 않았으나, 온기가 남아있어 먹을 만했다.
오랜만에 컵라면이 아니라 밥으로 점심을 먹고 야외 강연장 입구까지 내려가기 싫어 경계를 넘었는데, 바로 갈림길이다. 두 길 다 경운기 정도는 다닐만한 넓인데, 밥을 먹으며 관찰한바 지금까지 우리를 선도했던 친구는 야외 강연장 경계를 따라 난 길로 갔다가 되돌아와서 핸드폰을 한참 쳐다보더니 위로 뻗은 길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른 등산객들은 우회하는 길로 갔고. 그 갈림길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진하는 길은 등산로, 오른쪽 길은, 거의 임도나 다름없는 직원 교육용 등산로 같았다. 물론 인등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그래서 우리 리더가 가다 말고 돌아왔을 거다. 해서 나도 미련 없이 바로 직진했다. 그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올라가자, 넓은 길은 사라지고, 등산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오지 산행의 시작이다. 내가 가는 걸 보고 뒤를 따라온 등산객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나마 다행인 건 비록 급경사로 네발로 기다시피 올라가야 했으나, 바로 위로 향하는 코스라, 능선에 짧은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거.
식당(야외 강연장)을 떠난 지 22분만인 12시 49분에 인등산으로 향하는 능선 등산로에 도착했다. 아직도 위로 올라가야 하나 이제부터는 그나마 둘이 나란히 서서 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라, 네발로 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분명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설명하기를 인등산 정상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 위치가 능선을 만나는 지점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간 곳이라 생각해 등산 앱으로 확인했다. 그게 맞는다면, 배낭을 두고 갔다 오려고. 그런데 앱에 의하면 아니었다. 갈림길이 없고,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만약 앱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배낭을 두고 갔으면 피곤한 상황이 생길뻔했다. 그런데 비록 네발로 기지는 않았지만, 이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아 꽤 힘들었다. 20여 분의 오지 산행으로 체력 소모가 많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해서 길목에 있는 돌탑 군 있어 사진을 찍은 후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했는데, 힘들어서 싫다며 계속 가라고 해서 서로 웃고, 다시 앞장서서 갔다.
마지막 체력을 쏟아 오르다 보니 저 위로 정상이 보인다. 다 왔다. 정상에는 생각과는 다른 기업에서 세운 정상 표지가 서 있었다. 어쨌든 정상 표지니 그걸 배경으로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때 사진을 찍어주던 등산객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정상석이 있다고 했다. 해서 그 방향으로 보니, 내가 생각했던 정상석이 있었다. 다시 그 정상석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정상석에는 인등산의 고도를 사탄의 표지 666으로 기록하고 있었고,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나무에 매단 천등지맥 인등산 명패에는 665.1m로 적혀있었다. 인등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마지막 산인 지등산으로 가기 위해 인등산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정상으로 가는 중 확인했던 거지만, 앞에서 얘기한 갈림길은 인등산 정상에서 100여 미터 아래에 있었다.
인등산 하산길도 천등산 하산길과 다르지 않아, 임도가 인등산을 싸고돌아,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임도을 만났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다가 다시 능선상의 등산로로 하산한다. 물론 능선이고 뭐고 임도로 계속 가도 된다. 대부분 등산객이 임도를 애용했기에 등산로는 거의 오지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등산 정성에서 960m가량 내려와 만난 임도를 따라 200여 미터를 가자 능선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리더가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리더에게 가까이 다가가, 예의상 능선을 가리키며 저게 등산로가 맞냐고 물었다. 당연한 긍정의 답을 듣고 임도를 떠나 다시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길도 낙엽이 무릎에 육박할 정도에 가끔 급경사도 있어, 하산이 쉽지 않았다. 조심하며 그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갑자기 웬 철조망이 앞을 막고 있어, 그 용도가 궁금해 자세히 살펴보니, 무덤을 둘러싸고 있었다. 등산로 상에 묘가 있어 그걸 보호하기 위해 후손이 설치한 거다. 그 정성에 감탄하고,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거에 기뻐하며 계속 갔다.
천등지맥 337.1m 고지를 넘어 경사가 있는 등산로에 쌓인 낙엽을 뚫고 내려가자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며 주변의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좌로 보이는 산도 나름 유명할 거 같고, 앞으로는 지등산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있는데, 그럼 능선에서 600여 미터 거리에 있어 1.2km를 왕복해야 한다는 관모봉은? 뭐 이런 추측을 하며 지등산의 들머리인 산정 고개를 향해 갔다. 그러다 관목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곳에 도착해 그걸 뚫고 나가자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나타났다. 무덤이다. 그런데 한두 기가 아니다. 공동묘지다. 기독교 관련 묘지 같은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지금까지 와는 달리 남서사면의 햇볕 따땃한 햇볕에 바람도 불지 않아, 최적의 묘지 위치임이 틀림없었다. 해서 그 잔디밭에 주저앉아, 등산화를 벗어 낙엽을 뚫고 오는 동안 들어간 이물질을 꺼냈다. 물론 나뭇가지가 발을 찔러, 아파서 더는 갈 수 없었다.
공동묘지 잔디밭에 주저앉자, 인등산 정상 직전에서 만나 정상에서 서로 인증을 찍어 주고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왔던 산꾼이 같이 배낭을 내려놓더니, 달걀을 먹을 건지 묻는다. 그리고 술 좋아하냐고 물어 종류가 뭔지 물었다. 배낭에서 꺼내는 페트병의 종류와 들어 있는 내용물의 색깔을 봐서는 담금주로 보여 물어본 거다. 가리왕산에서 수확한 마가목으로 담은 마가목주! 얘기는 많이 들었으나, 처음 맛보는 술이라 기대를 하고 보니, 본인이 가진 잔에 따라줄 기세라, 술은 안 가지고 다니나, 술잔을 가지고 다닌다고 하며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소주잔에 받아 맛을 봤다. 오묘한 맛으로 아주 훌륭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한잔 얻어 마시고 끝내는 거로 시작한 술자리가, 페트병을 다 비울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셨다. 나눈 얘기는 먼저 85학번이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자, 본인은 90학번이라고 했다. 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배낭 뒤에 달린 "관악 85"를 보고 알았다고, ‘그거 알아보는 사람 드문데…’라고 하자, 비슷한 연령대에 85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화제는 하산주였다. 하산주 마실 시간이 있느냐 하는 거다. 애초 내 계획대로 달렸다면, 빠르면 4시 늦어도 4시 20분까지는 식당에 도착해 최소 1시간 하산주 마실 시간이 있었는데, 계획에 없던 술자리를 가지는 바람에 예측할 수 없었다. 해서 일단 4시 20분을 목표로 잡고, 2시 24분에 공동묘지자 술자리를 떠나 앞에 보이는 지등산을 향해 출발했다.
공동묘지에서 내려가자 국도가 나타났다. 이 고개가 지등산의 들머리인 '장선고개'다. 그리고 B 코스 산행, 천등산~인등산 구간만 달리는 등산객의 날머리다. 산악회 버스는 3시에 이 고개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시각 2시 32분. 그냥 여기서 버스 타고 가서 술이나 마실까 하는 유혹이 강하게 일어났지만, 여기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기회가 있을 때 종주하기로 하고 지등산 쪽 들머리를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들머리 표지를 찾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산악회의 노란색 리본이 없으면 도저히 등산로 입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들머리. 볼 것도 없이 그 경사로 올라 지등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등산로가 심상치 않다. 천등산과 인등산도 부분적으로 오지 산행이었으나, 지등산은 시작부터 감당이 안 된다.
그나마 관목을 뚫고 나가자 평지가 나와 좀 걸을 만했다. 그곳을 지나자 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목표가 보인다. 지등산은 왼쪽을 벗어나 있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고, 사진에 나온 능선이 천등지맥이다. 하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지맥이지만. 그리고 임도를 지나 등산로에 도착하자, 멍해진다. 길이고 뭐고 그냥 기어올라갈 뿐이다. 뭐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말고 할 여유도 없다. 2시 58분에 관목 숲을 뚫고 들어가 3시 37분에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관모봉까지 600m. 대장이 얘기한 관모봉 왕복 기점이다. 그리고 지등산 1.4km. 4시 20분까지 식당 도착은 아슬아슬하다. 해서 여유가 있으면 관모봉 왕복할 생각도 있었는데, 포기하고 나에 앞서간 술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냈다.
가끔 오른쪽으로 보이는 천등산과 인등산 그리고 달려온 천등지맥을 감상하며 달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길이 확 바뀌었다. 오지에서 도시로 나온 듯한 변화다. 장선고개에서 지등산에 오르는 사람은 지맥 꾼이 다라 길 상태가 오지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 반대편에서는 동네 뒷산답게 많은 사람이 찾아서가 아닐까? 3시 49분에 지등산까지 5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거기서 10여 미터를 가자, 작은 봉우리가 보인다. 지등산이다. 500m치고는 너무 가깝다. 그런데 그 봉우리 아래까지 펼쳐진 나무가 이상해 자세히 살펴보니 밤나무다. 즉 정상 바로 아래까지 밤나무 농장이다. 그 밤나무 농장 위로 난 길을 따라 더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은 건지마을과 송전탑이고, 좌회전이 지등산 정상은 200m다. 송전탑? 안 보이는데.
3시 58분에 지등산 정상에 도착해 보니 이정표가 있는데, 분명 아래 송전탑 갈림길에서는 건지마을이 1km였는데, 정상에서는 1.5km로 500m가 더 멀어졌다. 그만큼 하산주와의 만날 시간이 멀어졌고, . 정상에는 같이 오지를 기어올라온 나보다 좀 나이 들어 보이는 두 명의 등산객이 인증은 포기하고 쉬고 있었다. 해서 사진을 부탁하기도 좀 그래 늘 그랬듯이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지등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저 아래로 호수가 보여 깜짝 놀라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주댐이다. 사실 멀리서 지등산 뒤로 보이는 산을 보며 설마 저게 지등산은 아닐 거라고, 제발 저 두 산 사이에 계곡이 있기를 빌었다. 그래야 지맥으로 연결 안 되니까. 그런데 계곡 정도가 아니라 충주댐의 충주호다! 거의 4시 정각에 지등산 정상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건지마을까지 1.5km를 20분 내에 내려가면 목표한 4시 20분까지 식당에 들어갈 수 있다. 하산길 1.5km, 20분? 충분하다.
길이 쉽지 않고, 이정표가 제시한 거리와 실제 거리가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정신없이 내려와 몇 개의 이정표를 거처 지등산 0.9km라고 표기된 이정표에 도착한 시각이 4시 12분이고 건지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500m다. 해서 목표를 변경했다. 10분을 추가해 4시 30분까지 도착으로 바꿨다. 산행 마감은 비록 5시 20분이나 예의상 10분까지는 차에 타고 있어야 해서, 40분 정도면, 소주 서너 병 마실 시간으론 충분하다. 건지마을 500m 전 이정표부터 등산로를 벗어나, 포장도로로 접어든 이후 하산주를 위해 속도를 내며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거 같아 돌아보니, 지금쯤 식당에 도착했을 거라 생각했던 술친구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내 모자챙이 날아갔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리고 왜 뒤에서 나타났는지 얘기를 하는데, 다 내려와서 도로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아마, 나도 잠깐 헷갈렸던 조동마을인가 공원인가로 내려간 거 같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다 보니, 저 앞으로 성체 모습의 모텔 뒤로 버스 두 대가 서 있었다. 동량교 건너 공식 날머리인 대성슈퍼가 보였다. 그 옆으로 송어횟집도. 그 시각이 4시 33분으로 변경한 목표 시간보다 3분 늦었다. 어쨌든 하산주 할 아니 2차 할 시간은 확보했다. 해서 횟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술친구와 같이 온 트랭글 순위 200위라는 먼저 달려 도착한 친구가 마중을 나왔는데, 횟집 건너 중국집에 자리를 잡고 있어 중국집을 들어갔다. 천인지,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연계 산행이 끝났다. 그 시각이 정확히 4시 35분이다. 처음 목표 기준 35분, 변경한 목표로는 5분 늦었다.
3
용궁이라는 중국집에는 이미 서너 팀의 등산객이 하산주를 마시거나,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짬뽕을 안주로 이슬이를 마셨다. 기분 같아서는 요리를 시켜놓고 빼갈을 마시고 싶으나, 주어진 시간이 30분에 불과해 과욕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빠른 속도로 마시다 보니, 어느새 3병이고 마감 시각이 가까웠다. 비록 3병을 마셨으나,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어 한 병 더 마시려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등산객이 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정보가 있어, 주문하려는 찰라에 인솔 대장이 찾아와 빨리 탑승하라는 명령에 아쉽지만 술자리를 접었다. 그리고 배낭을 짐칸에 싣고, 자리로 가 앉았는데, 버스가 출발할 생각을 안 한다. 정보대로 여성 등산객 한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등산객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거라면, 왜 술 마시는 사람들 재촉해서 버스에 태워 멍하니 앉아있게 할까?
인솔 대장의 얘기에 의하면 그 여성도 도로에서 길을 잃었다고 했는데, 지등산까지 온 게 맞다면 조동 공원 부근에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장이 그 여성과 통화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면 버스로 데리려 가겠다고 했는데, 그녀의 답이 주변에 사람이 없어 주소를 알 수 없으니, 자기를 버리고 떠나라고 했다. 본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알아서 귀가하겠다고. 그런데 정황을 보면 무언가 이상했다. 주소야 폰의 지도를 보면 나오는 거고. 버스에 본인의 짐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 의자를 뒤로 젖히고 바로 잠이 들어 마이크 소리에 놀라 깨고 보니 죽전에서 내릴 승객 준비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죽전 휴게소다. 아니 죽전 간이 정류장이 아니고 휴게소 얘기를 한 건가? 그럼 죽전 승객은?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죽전 승객 하차 준비하라는 순간부터 죽전 휴게소까지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마가목주와 이슬이 덕분이다.
휴게소에 내려 볼일을 보고 바로 버스에 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버스를 탔던 신사역에 내린 시각이 7시 23분으로 내 예상보다는 늦었지만, 다른 산행에 비하면 많이 이른 시간이다.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두 술친구와 다음에 만날 걸 기약하고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지하철역으로 향해, 승차장에서 다시 두 친구를 만났다. 또 다시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들어온 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해, 녹번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8시가 갓 넘어서다. 아지트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하산 중 술친구가 모자챙이 날아갔다는 게 뭘 의미하는 지를 알았다. 장선고개에서 관모봉 갈림길로 올라가는 와중에 관목가지가 산신령의 지시로 모자를 접수하려다가 실패하고 챙을 망가트려 발생한 문제다. 산신이 달라고 했으며 그냥 줬을 텐데... 어쨌든 등산 장비를 정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씻은 후 하산주, 3차로 진성 빨갱이를 마시는 거로 이번 "천인지" 최종 산행을 마쳤다!
산악회 계획에 따라 '다릿재 약수터 → 1코스 들머리 → 소봉(매봉) → 전망대 → 천등산 → 정자 → 느릅재 갈림길 → 느릅재 사거리 → 국도 → 골프장 갈림길 → 느릅재 → 야외 강연장 → 갈림길 → 인등산 → 임도 → 능선 갈림길 → 공동묘지 → 장선고개 → 관모봉 갈림길 → 송전탑 갈림길 → 지등산 → 송전탑 → 건지마을 → GS주유소 → 동량교 → 대성슈퍼 앞'의 20.45km(트랭글), 7시간 44분의 천등지맥 오지 산행이었다. 이동 7시간 12분, 휴식 22분!
동네 뒷산 수준이라 생각하고 참여한 산행이었는데, 미처 상상도 못한 오지라 최근 산행 중 최고로 만족했다.
지등산에서 아래로 보이는 충주댐과 그에 의해 만들어지 충주호를 빼면 딱히 내세울 건 없는 조망의 산이나, 조망을 떠나 그 능선 자체가 대단히 좋은 천등지맥 구간이다.
생각지도 못한 술친구를 만나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