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여행 2박3일 –1일
★일자: 2021년 4월 19~21일(월~수) 날씨 맑음
★참가자: 4부부(우용, 혁진, 승표, 후묵)
★여행지(청풍호): 배론성지, 의림지, 작은동산(535m) 탐방, 박달재, 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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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19일, 월)
10:00~10:49 양평휴게소
11:19 신림IC
11:35 배론성지 삼거리
11:45~12:43 배론성지
12:50~13:44 사또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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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5:32 의림지
15:50~17:10 제천 동문전통시장
18:00 청풍리조트힐하우스(콘도)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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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바이러스19)에도 불구하고 2박3일의 일정으로 4부부가 청풍호에 가기로해 집을 나섰다.
효진네가 예정시각 10시보다 15분 이상 이른 시각에 이사장 부부를 태워 제2영동고속도로 양평휴게소에 도착했다는 카톡이다. 3일 내내 맑을 것으로 예보된대로 여행 첫날 쾌조의 스타트다.
상희네와 필자부부가 10시에서 10여분 늦게 도착해 합류했다. 휴게소 주차장은 평일이라 차가 차지는 않았다. 커피 한잔하고 호두과자를 하나씩 먹으며 잠시 3일의 여행을 예상해보았다. 여러번 청풍호에 갔기 때문에 인근에 새롭게 가볼만한 곳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오늘 천주교 성지의 하나인 배론성지와 제천 의림지로 가기로 했다.
신림IC
10:49, 배론성지로 출발. 햇살이 쏟아지니 차안은 쿨링을 해야할 정도로 덥다. 명산 치악산(1,288m)이름을 딴 치악휴게소를 지나면서 양쪽 높은 산에는 하얀 산벚꽃이 희끗희끗 흰버섯을 만들어놓았다. 활엽수의 연두색 새순도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30분만에 원주 신림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내려서 5번 국도로 갈아탔다.
산불이 났었는지 산들이 몽고인의 변발처럼 능선에만 큰 나무가 서 있고 그 외는 풀만 있는 것처럼 민둥이었고 예전에 하남에서 보았던 고(故)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농군학교의 안내판도 신림면 용암리 도로에서 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원주와 충북 제천의 경계
강원도의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경계 인사를 받고 제천시 용암읍 구역으로 들어와 베론성지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제천천의 배론교를 건넜다. 11:35. 말끔한 왕복 2차선 시골풍경을 따라 10여분 들어가니 대형 주차장이 위아래로 두 곳이 나온다. 평일인데다 코로나19로 집단 모임이 억제되어 그런지 그 넓은 주차장이 끝 가장자리만 10여대 서 있을 뿐이다.
너른 배론성지 주차장
배론성지안내판에는 일반 관광지가 아닌 기도하며 순례하는 천주교 성지라며 복장을 단정히 하며, 낚시 및 어로행위, 야영 및 취사, 음주,가무나 텐트설치를 금한다고 되어있다. 개방시기는 동절기 (10월~2월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3월~9월 오전 9시~오후6시)가 다르게 되어있다.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주차장 윗쪽으로 잿빛 대형 현대식 건물이 육중하게 들어서있다. 원주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2020년 8월 15일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 6,900㎡의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가 봉헌미사와 함께 완공됐다. 바이러스19로 두차례나 연기된 후 열린 것.
배론은 천주교 3대 성지 중 하나
배론성지가 서산 해미읍성, 청주 배티성지와 함께 한국 3대 천주교 성지의 하나라고 한다. 배론성지는 고교 국사책에 등장하는 1801년 신유박해라는 이름으로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의 백서(帛書)사건을 배운바 있다.
황사영의 백서 현장
첫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를 최측근으로 모신 알렉시오 황사영은 천주교 박해를 피하기 위해 제천 이 곳 배론 토굴속에서 북경 주교를 통해 로마교황청에 보내려고 흰 명주천[帛]에 장문(13,384자)의 편지를 썼던 곳이다.
그는 당시 조선의 가톨릭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활동, 주 신부의 자수와 순교 사실, 신유박해와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간단한 전기를 기록했다.
문제의 발단은 마지막 부분의 두 가지다. 첫째 중국황제에게 조선에 무안사(총독부)를 설치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 왕비를 중국황제의 딸로 삼아 부마국으로 만들 것, 둘째 로마 교황에게 서양함대를 동원하여 조선정부를 위협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발각한 조정은 천주교가 조선을 해치는 집단으로 보고 탄압을 한다. 특히 황사영은 9월29일 의금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백서도 압수되었으며 11월 5일 서대문밖에서 대역부도(大逆不道)죄로 처형되었다.
백서는 1925년 79위 시복식때 교황 마오로 11세에 증정되어 현재 교황청 선교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토굴은 1987년 고증에 의해 복원된 것. 황사영순교현양탑이 순교자의집 바로 위에 있다.
배론은 ‘배의 밑바닥같이 생겼다’
배론(舟論)이란 지명은 이곳 계곡 지형이 ‘배의 밑바닥같이 생겼다’해서 붙여진 것으로 은총의 성모마이라 기도학교는 천장등에 이를 형상화해서 지은 것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주론산(舟論山, 903m)이 있어 재천천과 함께 배산임수의 입지를 띄고 있다. 이곳도 벚나무가 많아 하얗게 길을 뒤덮었다 절정을 지났고 진분홍 철쭉꽃이 조금만 있으면 만개할 것 같다.
성요셉신학교
황사영 백서 다음으로 큰 의미는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1855년 초 성인 장주기(張周基, 1803~66,요셉)집에 설립된 학교. 두 프랑스 신부의 지도 아래 10여명의 신학생이 라틴어, 철학, 신학등 서양학문을 배우다 1866년초 박해가 일어났다. 두 신부와 장주기가 각각 서울 새남터와 갈매못에서 순교하였고 신학교는 문을 닫게되었다. 병인양요는 두 프랑스 신부 처형의 결과다. 현재 당시 초가집을 재현해놓았고, 그의 이름을 딴 성요셉성당이 있다.
최양업 신부 묘
세 번째 의미는 김대건(1821~46)신부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1821~1861)신부의 묘가 있는 곳이다. 최신부는 1836년 1월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2년 동안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1861년 6월 과로로 문경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11월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그를 기리기 위한 조각공원과 기념성당이 개천 건너편에 있다.
한 사진작가는 “전국에서 성지순레오는 신도들이 많아 주말이면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주차장이 넘쳐난다”며 “코로나19로 모임을 갖지 못하게 해 이렇게 주차장이 비어있다”고 귀뜸해주었다.
고색창연한 서양식 성당을 상상하고 왔다가 이렇게 크게 성지화되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천시에서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지정하게 된 이유가 있었고 사찰을 관광지로 가듯 천주교 성지라도 일반인들이 한번쯤 들러볼 역사적, 종교적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순례자들이 거의 없어 한가해서 좋았다.
사또가든에서 점심
한시간 정도 둘러보고 다시 나와 배론성지 삼거리 사또가든에서 두부전골과 김치찌개로 점을 찍었다. (12:50~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