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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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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조선사[朝鮮史]와 남한산성[南漢山城]의 비사[秘史]
환국고려 추천 0 조회 967 13.09.29 19:14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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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9.29 22:19

    첫댓글 병자호란!
    이것에 대한 상세한 원전의 기록을 구성해보고 싶었는데,.........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조선사의 진실은 언제 밝혀질 것인지를 논한다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성원하고, 많은 분들이 공부하며, 연구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늘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주 뵙기를 청합니다.

  • 13.09.30 06:46

    수고하신 력작 감사드립니다 탁마상성의 의미에서 다음의 말 씀 을 드려 봅니다 강화도 고려의 강화도는 왕건의 무덤이 있는 사천성이고 이곳이 충청도입니다 산동성 밑에 있는 제남은 제주의 남쪽으로 이곳도 강도인데 인조의 삼전도 치욕의 장소는 이곳이고 험한 제세를 이용하여 한판 붙어 보려고 남한산성으로 전장을 옮긴 것 입니다 강도는 남한산성을 경유하여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글로 이 정황을 확인 해 봤으면 하는 생각 입니다

  • 13.09.30 06:55

    위 글에서 남한산성의 하천들이 동쪽으로 흐른다고 하니 지나가 틀림없고 깍아지른 천험이라 하니 한반도 남한산성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13.09.30 22:46

    그렇다면 강화도는 호북성이나 강소성의 장강연안(주변)이 아닌, 사천성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요? 고려 태조의 릉인 "영릉"은 사천성 성도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병자호란의 기마대가 남하하는 것에 대해, 몇 번 우리 카페에서 언급한 기억이 있는데, 사실 기병들이 남하하는 과정의 모순점이 아주 많습니다. 수십정도의 기마가 숨어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으나, 수천, 수만의 기병이 달릴 때는 말 그대로 모래폭풍처럼 먼지와 소음이 요란하며, 각 현이니, 진이니, 역참이나 거미줄과도 같이 짜여 있었던 것이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는데........참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 13.10.01 16:24

    사견입니다만 병자호란은 있었지만 실록에서 말하는것은 완전 날조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을 대륙에다 놓고 병자호란을 생각해보면 시공간적인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임진왜란때 몽진한 선조는 조선 각성에 파발을 띄워 병력을 징발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글고 실제 각 지방에서 군대가 올라옵니다. 말탄 원숭이부대도 있고 해귀도 보입니다. 이랬던 조선이 많지도 않은 칭나라군대에 항복해서 삼전도에 머리를 치박는 치욕을 비석과 동판화로 보존하고 있는것자체가 임진왜란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것이지요. 인조도 선조처럼 조선팔도 사방의 각성에 병력을차출해서 항전을하면 충분히승산이있을텥데요....

  • 13.10.01 23:01

    말탄 원숭이부대...해귀(흑인잠수병)...이건 명나라가 파견한 군대중 서남방 용병으로 전 아는데요...

  • 13.10.01 16:38

    결국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것일까요? 즉 광해군이 집권하던 시절에 연왕(燕王)으로 멀리 있었던 인조가 서북도서인(북청인을 포함)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사건이 "인조반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황권싸움(권력투쟁)이지요. 광해군이 남한산성까지 가서 항전할려고 했지만 결국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합니다. 승리한 인조는 "천계"란 년호를 쓰며 화려하게 새시대를 엽니다. 광해군 이하 열족들은 거의 죽는다고 봅니다. 명사에는 명나라 마지막 임금이 자결한다고 나오는데 그분이 광해군일 가능성 있습니다. 명사에 보면 당시에 가뭄으로인육을먹는지방도 있고 지진으로많은목숨을 잃는곳도 있고해

  • 13.10.01 23:36

    저도 오늘 병자호란 부분을 좀 공부해 보니...
    실록대로면...대부여님 말씀의 정반대입니다.
    광해군이 강홍립에 언질하여 명나라를 돕는척 하다 대새를 보아 청에 귀순해 청나라를 돕고...
    이에 대명국을 배신한 강홍립은 역적으로 조선사대부들과 대신들에게 성토당하고...
    임금인 광해에게 은근히 원한을 가지고 있다가...
    이 분위기를 이용해 인조가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퇴위기킨겁니다.

  • 13.10.01 23:37

    정묘호란은...
    이 광해군을 퇴위시킨 인조의 반란에 분개한 강홍립과 그가 이끈 조선군...
    청나라와 연접한 여진족이 많은 북계(함경도)의 조선군사와 주민들이 인조에 반심을 품고
    청나라군을 끌어들이면서 시작돼고...
    병자호란 자체도 함경도내 여진족계 조선인들의 내응으로...
    여진군은 실로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서북경계를 무사통과하며 인조가 준비할 틈도 없었던게 주 패인입니다.

  • 13.10.01 23:38

    그런데 당대 사서들을 보면...
    주뎅이만 살은 조선대신들의 행태는 현재의 딱 대한민국 정치인들 판박이고...
    준비를 100년 했다 처도 필패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정묘호란 후로 10년을 인조가 나름 칼을 갈았다지만...아주 속수무책 당한거고여...
    강단사학도 우리의 수치라서 그 대목은 오히려 대충 둘러대지만...
    실록을 보면 볼수록...더 처참하고...인조와 대다수 대신들은 충분히 비겁했습니다.
    홍익환등 세명의 척화신들이 당당하게 자청해 끌려가 살려 준대도 굴복치 않다 죽은것 외엔여...
    홍익환이 화끈하게 죽더라고여...

  • 13.10.01 16:45

    서 민심이 이반되고 이괄이 난을일으키고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 멀리 연왕으로 봉해 있었던 인조가 무력찬탈을 꿰했던것이 인조반정이고 북청인들을 등에 업고 권력을 쟁취했기땜에 나라이름도 대칭국으로 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부분에서 일제때 많은 왜곡과 날조가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조선을 분리하면서 칭나라를 만들수 있는 구실이 되니까요. 명사에는 이자성의 난으로 되어 있지만 조선사나 명사나 당시사회가 어지러웠던것은 사실인것같습니다.

  • 13.10.01 17:04

    이괄의 난이 있었을당시 명나라에는 이자성의 난이 있었는데 그시대의 산동성 지방지를보면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또 가뭄으로 먹을것도 없는때에 중앙정부에서는 세금을 걷으러 군대가 오니 백성들은 죽을맛이었고 때마침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수 많은 양민들이 도륙되고 빼앗기고 해서 민심이 이반된것은 확실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쿠테타가 일어나는것은 밥통님을 보면 알수 있듯이 인조가 한건한것이겠죠. 즉 서북도서인들(북청인들포함)의 반란으로 중앙권력의 중심세력이 바뀐겁니다. 이와중에 그들은 "인조"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것이지요. 마치 고구려때 련개쏘문이 영류왕을 쪼까내고 "보장제"를 세운것과 같다봅니다.

  • 13.10.01 23:21

    대부여님 역시...조선이 명나라고 천자국이였다 보시는군여...
    실록들 보면 볼수록...조선의 명에대한 사랑과 번국으로서의 충성은 눈물겹습니다.
    그런 실록들을 일제가 고 짦은 시간내에 모조리 다 디테일 하게 왜곡했을 짬이나 있었을까요...
    왕조실록과 지리서 각 집안 족보들...독립을위한 민족주의사서들...등등 대표적인것들 왜곡&파기에도...
    엄청난 기간과 인력이 소요됐을테니...대표적인 것들만 완벽하게 했고...
    나머지 사서들은 핵심들만 건드렸을 수 있습니다.

  • 13.10.01 17:12

    대부여님의 이 부분 사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사건과 시기가 겹치는 것은 이조후기사 와 일본사도 많은 부분이 같은 사건 같은 시기로 나옵니다 역사는 지배자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기에 같은 시기에 같은 사건에서 우두머리들은 모두 그 사건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내세울 겁니다 이런 경우 양쪽을 모두 인정해야지 어느 한쪽은 짝퉁이요 허구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 13.10.01 17:15

    북한의 김성주가 김일성의역사를 자기것으로 하는 예를 생각해 보면 조선사 나 명사가 곁치는 부분도 김일성 = 김성주의 사레 와 같은 것일겁니다

  • 13.10.01 17:29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통일왕조였습니다. 서북도서인 즉 관서지역과 하남 및 강남지역은 그 역사와 배경이 사뭇 다릅니다. 그러니 남쪽지방 사람들 입장에서는 서북도서인(북청인들포함)들이 변란이라도 일으키면 오랑캐라고 욕을 해도 이상할게 하나 없다고 봅니다. 땜에 중원과 먼 지방의 언어가 달라서 이문관을 두었다는것은 다아는 일이고 해서 언어가 다르지만 풍속은 같기에 서로 어울리고 부대끼며 살앗던것이겠지요. 칭나라도 바로 중원과 언어가 다른 족속들인디 호란으로 정권을 잡고부터 즈들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겁니다. 모두다 조선의 한 울타리입니다. 고로니께님의 많은 이미지 삽화를 보면 알수있습니다.

  • 13.10.01 23:26

    중요한건...조선의 조대명이 명(明)이라면...
    조선왕의 사신등이...명나라인들과 역관을 통하거나 필담으로만 대화한단건 모순이 됍니다.
    통치자들끼리나 중앙관료들끼리도 언어가 필담이나 통역만으로 통하는 나란...다른 나라일 뿐입니다.
    모든 기록이 다 그렇게 나오는데...그걸 일제가 다 디테일하게 완벽히 조작했을 시간은 전 없었다 봅니다.

  • 13.10.01 17:40

    태조 리성계의 둘째 아들 리방원도 황제가 되기전까지는 "련왕(燕王)"에 봉해져 있었다는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칭나라애들이 지네들 족보를 백산말갈,흑수말갈까지 치고올라가는것인디 그곳은 바로 고구리와 부여 글고 발해 요, 를 지기들의 역사라고 보는것이겠지요. 이것은 남쪽나라의 력사와는 다르죠.

  • 13.10.01 23:34

    이성계때는 천산(燕지역)넘어 카자흐 우즈벡까지도 후리고 다녔다고 보이니...
    북원의 멸망이훈 연경지역 넘어 중가르 쪽 길은 아마 고려가 잠시 점령했던 무인지경엿을 수도 있다 봅니다.
    그러나 연왕(燕王)이 이방원의 직책였단 사서는 없는걸로 압니다...?
    명태종이겠져...
    그러나 명과 조선의 역사가 판박이...티무르제국과 또 판박이 ..연왕과 이방원 쇼호르의 왕자의난이 판박이...
    이런 이유로...명사의 연왕이란 자와...티무르 아들 쇼호르는....공히 이방원의 얘기라 봅니다.
    문젠 무굴지역인 중앙아의 역사를 중원으로 왜곡하려니...무굴(明)이 대륙조선(현 중원)으로 크로스돼며...
    뒤죽박죽 돼는 이치라 봅니다.

  • 13.10.01 23:49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사서상의 엄연한 서토의 이민족나라 명나라(무굴제국)...그 나라가 조선의 속국(제후국)이라면...
    대륙조선은 천자국일 수 있습니다.
    아주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그 가능성도 항시 열어놓고 공부해 보겠습니다.

  • 13.10.02 00:01

    환국고려님 글 잘 봤습니다.
    저도 전부터 강소성 강도가 강화도라 했는데...지금은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무안(한양)...한수(漢水),,,한강대교...한중...이 지명이 중복돼는 양자강의 서북상류인...
    한수(漢水)줄기중...한중이나 안강시 일대 어디가 한성같고...
    그 동남의 쉰양(旬陽)현 태극성 이란 고성이 남한산성 같습니다.

    원조 강화나 강도도...어쩜 동정호쪽일 수 있단 요즈음의 막연한 예상입니다.
    실록상엔 한양에서 너무 가깝게 나오거든여...
    그러나 환국고려님 말씀대로...강도(강화도)는...강소성 강도가 강력한 후보지로 봅니다.
    상식적으로..서북오랑케들이 내려오면...동남 쪽으로 도망가야하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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