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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글 스크랩 옛 돌담길... / 동심을 돌아,추억을 돌아,고향을 돌아
김두홍 추천 0 조회 78 06.10.30 16:1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학동이라 명명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인 학동 마을은 수태산 줄기가 마을 뒤로, 마을 앞은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우백호’의 지세.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당시 대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문화재자료 제208호 ‘육영재’ 등 일부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어 전통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이 곳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 층으로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경남 고성 학동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 보기
주변관광지
* 고성 당항포 관광지(공룡 엑스포 개최지)
당항포 관광지는 고성군 회화면과 동해면 사이의 당항만에 위치한 당항포해전 대첩지로서 선조 25년(1592년)과 27년(1594년) 두 차례에 걸쳐 이충무공이 왜선 57척을 전멸시킨 호국 성역지. 기념사당(숭충사), 당항포해전관, 전승기념답, 거북선체험관, 동물류의 박제, 공룡알, 어패류의 화석 등을 전시한 자연사관, 양생화와 어우러진 자연조각공원 및 수석관으로 구성된 자연예술원이 있다. 그리고 1억 년 전 물결자국, 공룡발자국화석 등 호수와 같은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경관, 청소년 모험 놀이장, 레저를 겸한 체육시설 등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호국정신 함양과 자연교육 및 가족, 단체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관광지이다.
고성 당항포 관광지 자세히 보기
* 고성 옥천사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된 옥천사는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 이름을 옥천사라 불렀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495호인 임자명반자와 도지정문화재인 자방루, 향로, 대종, 대웅전 및 소장품 119점과 기념물로 청련암의 찰피나무가 있다. 암자로는 백연암, 청연암, 연대암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옥천사 임자명반자, 배불, 옥천사 소장품 등 120
여점의 불교유물의 보관관리를 위한 유물전시관(보장각)이 건립되어 연화산도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성 옥천사 자세히 보기
거창 신씨 씨족마을로,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초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제17호 ‘거창대정리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재는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경남 거창 황산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거창 수승대
덕유산 절경 중에서 가장 유서 깊은 명소는 거창읍에 위치한 수승대이다.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 보낼 송 자를 써서 수송대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수송대라 함을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게 할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다는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그후 조선 중종 때 퇴계 이황선생이 거창에 머물다 떠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
고 수송과 수승이 소리가 비슷하므로 수승이라 고칠 것을 권하는 시 한 수를 짓고 바위에 수승대라 새김으로써 오늘날 수승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구연서원, 사우, 내삼문, 관수루, 전사청, 요수정, 함양제, 정려, 산고수장비와 유적비, 암구대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거창 수승대 자세히 보기
* 함양 상림
지리산 자락의 함양에 가면 꼭 찾아볼 명소는 바로 상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인공 숲으로 당시 최치원이 홍수피해가 극심한 것을 보고 제방을 쌓아 물줄기를 지금의 위치로 돌림과 동시에 제방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당시의 이름은 ‘대관림’으로서 숲의 규모가 오늘날 보다 훨씬 컸는데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숲의 중간이 파괴되어 지금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졌다. 상림 쪽에
는 최치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함양상림은 낙엽활엽수림 110여 종의 나무가 길이 1.6km의 위천 둑을 따라폭 80∼200m 규모로 조성되어 있어 휴양림의 역할과 동시에 식물을 공부할 수 있는 학습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함양 상림 자세히 보기
‘산청쌀’ 로 유명한 단계마을은 세도가와 부농(富農)이 모여 살아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내 전통주택들은 조선후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에 건립된 부농주택으로 규모가 매우 크고 권위적이며 시도민속자료 제4호 ‘단계박씨고가’가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담장은 돌담과 토석담이 혼재되어 있으며 높이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큰 돌로 진흙을 사용하지 않고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는 하부에 사용한 돌보다 작은 돌을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상부에는 판석을 담의 길이 방향으로 담 안팎에 3치 정도 내밀어 걸치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렸는데 이는 기와의 흘러내림을 방지하기 위한 것. 전체적으로 이 마을의 담장은 전형적인 농촌 가옥들과 잘 어우러져 있고 특히 ‘단계박씨고가’ 진입부의 돌담길은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고 있다.
경남 산청 단계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산청 대원사 계곡
대원사 계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웅석봉으로 이어져 길이만 12㎞에 달한다.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압권. 100년 간 용이 숨어 살다가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용소, 가락국 마지막임금인 구형왕이 소와 말의 먹이를 주며 살았다고 하는 소막골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원사계곡 입구에서 2㎞ 지점에 있는 대원사는 예스러움과 정갈한 산사의 모습을 볼수 있다. 청정 비구니 도량답게 소나무와 대나무로 둘러싸인 주변 경치하며 대웅
전 앞의 파초, 원통보전에서 산왕각에 이르는 돌계단과 절 뒤편의 차밭,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힘찬 글씨가 돋보이는 요사채는 피서지 사찰답지 않은 청결함을 보여준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을 하는 의병들의 은신처였고, 6ㆍ25전쟁 때에는 낮에는 빨치산, 밤에는 국군의 수중에 떨어져 수난을 겪는 질곡의 현장이 됐다
산청 대원사 계곡 자세히 보기
* 목면시배유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은 바로 목면시배유지다. 공민왕 12년(1363)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밭을 지키던 노인이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목화 몇 송이를 따서 그 씨앗을 붓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3년간의 노력 끝에 재배에 성공해 전국에 목화재배를 널리 퍼지게 하였다. 문익점이 태어난 곳인 배양마을은 지금까지도 목화재배의 역사를 간직해오고 있으며,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가 오른쪽에는 낮은 돌담으로 둘러싼 백여 평의
밭이 있다. 밭 옆에는 기와지붕을 한 비각 안에 ‘삼우당선생면화시배지’라는 제목의 비석이 서 있다. 그 외에도 목화밭과 면화의 역사, 물레·베틀 등 길쌈도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문익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옛터에 밭을 일구어 해마다 면화를 재배하고 있다.
목면시배유지 자세히 보기

 

 

팔공산이 북쪽 자락에 위치해 있어 사방으로 경치가 대단히 수려한 부계 한밤마을은 마을 전체의 집들이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의 주택은 대부분 전통한옥구조로 그 대부분이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던 것을 1970년대에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되긴 하였으나 유형문화재 제262호 ‘군위대율리대청’ 등의 지정문화재를 위시한 일부 가옥들은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마을의 담장은 대부분 돌담으로 경오(1930)년 대홍수로 떠내려 온 돌들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축조방법은 막돌허튼층쌓기로 하부가 넓고 상부가 다소 좁은 형태로 넓은 곳은 1m 이상인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이 지역에서 채집된 강돌로 자연스럽게 축조된 돌담은 전통가옥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고 곡선형의 매우 예스러운 골목길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어 시간을 거슬러 걸어봄직하다.
군위 부계 한밤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 보기
주변관광지
* 군위 삼존석굴
대구광역시에서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한티재 정상에 올라서면 첫발길이 닿는 곳이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다. 이곳에는 신라 소지왕 15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삼존석굴(일명 제2석굴암)이 있다. 국보 109호로 지정된 삼존석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자연동굴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동굴은 지상 20m 높이에 위치하며 입구는 폭4.25m, 길이 4.3m로 60년대 말까지 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가 70년대 초 학자들에 의해
경주석굴암 보다 1세기이상 일찍 창건된 것으로 그 모태임이 밝혀져 세계적 문화재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았다. 이곳은 주위의 경관이 뛰어나 최근에 주말이면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군위 삼존석굴 자세히 보기
* 의성 고운사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6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는 의성 고운사.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서 식량비축 및 부상병을 뒷바라지 하던 호국불교의 꽃을 피웠고 불도와 학문의 본원지로 함흥대사, 수월선사 등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거쳐간 곳으로 지금도 수도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물 제246호인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지방유형문화재 제151호인 가운루 등 27동의 건물이 유존 하고 있
으며, 입구엔 ‘솔굴’ 이라 불리는 500여m의 산책하기 좋은 송림이 있다.
의성 고운사 자세히 보기
성산이씨 집성마을인 성주 한개마을은 17세기부터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원조, 이진상 등 걸출한 인물들이 마을의 이름을 드높였다 한다. 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영취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청룡등과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백호등의 중앙에 형성된 낮은 구릉에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는 경사지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백내가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마을 내의 주택들은 문화재자료 제354호 ‘극와고택’ 등 지방지정문화재 9동을 중심으로 전통한옥 구조가 잘 남아 있다. 담장은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다. 외곽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체로 경사지에 위치한 관계로 산지에 접한 담과 주택동 쪽의 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되어 있다. 내곽담은 주거 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 또는 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마을 담장의 주류인 토석담은 낮게 혹은 높게 쌓아 올려져 시각적으로 연속 또는 차단시키는 미학적 공간구성을 하고 있어 매우 아름답다.
경북 성주 한개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성주 성산동 고분군
성산(해발 389.2m)의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 성산동 고분군은 성산가야 수장층의 분묘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약 130여 기가 확인되어 정비 및 복원을 하고 있다. 1988년 발굴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분의 묘장(墓葬)형태는 한봉토 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순장에 의한 다장묘(多葬墓)로서 별도의 순장곽을 설치하거나 부곽(副槨)의 한 구석에 순장한 형태이며, 주실(主室)인 석실의 크기에 비해 유물이 빈약하고 부곽에는 넘칠 정도
로 많은 유물을 부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성산동 고분군은 사료가 부족한 가야 부족 국가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학계에서 기대하고 있으며, 현재 이 고분군은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성주 성산동 고분군 자세히 보기
*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독용산 정상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에 쌓은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성 내부에 계곡을 두고 좌우로 성을 쌓은 포곡식 산성인 독용산성은 둘레가 7.7km(높이 2.5m, 폭넓이 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져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리고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천 5백 년 전 성산가야 때 쌓
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는데 성산가야 멸망 이후 사용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왜란을 계기로 다시 활용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임진왜란 중 유일하게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성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독용산성 자세히 보기
옻골마을은 약 400여 년간 경주 최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곳이다. 마을 뒤에는 주산인 해발 390m의 옥고개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왼편에는 황사골, 오른편에는 새가산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터는 세장하며 농토 또한 비교적 좁은 편. 마을의 가옥은 대부분 전통한옥으로 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시골냄새를 물씬 풍길 정도로 예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시도민속자료 제1호 ‘둔산동 경주 최씨종가 및 보본당 사당’은 마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부분 토석담으로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정연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적이다. 전통가옥들과 어울려 자연스런 동선을 만들어 내고 있는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대구 옻골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팔공산자연공원
팔공산은 태백산맥이 남으로 힘차게 내딛다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우뚝 멈추어 장엄하게 솟은 산으로 해발 1,192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과 서봉이 어깨를 나란히 웅자를 겨루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여있다. 또한 이 곳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으며 많은 기암과 계곡이 있어 봄에는 진달래 영산홍이 피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고 가
을은 아름다운 단풍거리가 순환도로를 따라 16.3Km에 걸쳐 전개되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겨울은 설경과 설화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팔공산은 연중 볼거리가 풍부하여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팔공산자연공원 자세히 보기
* 파계사
1927년에 쓰여진 파계사 사적기에는 804년에 심지왕사가 파계사를 처음 세웠고 1605년 계관법사가 중건했으며 1,695년에 현응조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이 곳은 동화사와 더불어 대구 지방의 유명한 풍치지구이며,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의 말사로서 불상, 석등, 석불, 영조대왕의 어의가 보관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구도나 형식에서 특색을 갖추고 있고 필법과 채색 또한 품격을 지닌 뛰 어난 작품으로 18세기초를 대표하는 불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파계사 자세히 보기

 

 

지전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며 마을 옆을 흐르는 남대천가의 오래된 여러 구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마을 뒤로 소백산 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서 발원하여 마을의 좌측을 지나는 남대천은 여름철 명소로서 우수한 경관을 뽐내고 있다. 마을은 개량 기와집 형태의 가옥이 주종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가주택의 면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담장은 본래 기능인 주택의 경계 역할을 하는 담장과 외벽의 기능을 하는 담장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마을의 대부분의 담장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석담은 흙과 자연석을 혼용하여 평쌓기를 한 것으로 이어진 담장은 시각적 연속성을 주고 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로 처리되었다. 또한 전통가옥, 남대천, 노거수와 더불어 마을 전체에 식재되어 있는 감나무는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할 뿐더러 이들과 어우러진 담장 또한 산골 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전북 무주 지전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 보기
주변관광지
* 덕유산 국립공원
무주군의 설천면 나제통문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30km의 계곡 일대에 13개의 대와 10여개 의 못, 여러 개의 폭포가 이루는 무주구천동의 33경을 비롯하여 용추폭포에서 칠연폭포 에 이르는 안성계곡 11경 등 수많은 절경이 있는 덕유산. 덕유산은 두문산(1,051m), 칠봉(1,305m), 거칠봉(1,178m)등의 고봉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을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
울이 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 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
덕유산 국립공원 자세히 보기
* 백련사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 잡은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하 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짓게 된 것이라고 전해온다. 무주구천동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백련사 입구에 있는 아치형 다리 '백련교' 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백련사 계단 : 지방기념물 제42호)이 나타나고, 그 위에 대웅전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 매월당 부도와 정관당 부도가 있으며 고려 때 제작되었다는 삼존석불이 유명하다. 세계
적인 신문 재벌 로드미어의 부도가 이곳에 있어 명산임을 자랑하고 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한다.
백련사 자세히 보기
함라마을은 홍길동전의 작자로 유명한 허균이 함열로 유배 와있는 동안 여러 작품들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있다. 마을 뒤의 함라산을 주산으로 하여 그 옆으로 부를 가져온다는 와우산이 마을전체를 싸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일찍이 부농촌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의 건축물은 새마을운동 당시 상당부분 신축 또는 개축된 것으로 시도민속자료 제23호 ‘김안균가옥’ , 제85호 ‘함열향교대성전’ 등의 지정문화재가 마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 외에도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혼재되어 있다. 평 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되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 농가의 담장이라는 점과 주택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점에 비하여 높은 점이 한 특징. 또한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흙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한 보기 드문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어 눈에 띈다.
전북 익산 함라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숭림사
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창건한 숭림사는 익산 지역의 대표사찰이다. 숭림사라는 이름의 연원은 남천축의 달마대사가 중국의 숭산 소림사에서 면벽9년의 좌선 을 행한 고사를 기리는 뜻에서 숭산(崇山)의 숭(崇)과 소림사 (少林寺)의 림 (林)자를 따서 선종사찰인 「숭림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건물로는 보광전과 우화루 정혜원, 영원전,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 숭림사 보광전은 보물 제 825호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건물이며 내부에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있다. 특히나 보광전은 법식과 기법이 특징인 조선 후기 건축물로 건축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받는 문화재이다.
숭림사 자세히 보기
* 익산미륵사지
동양에서 가장 큰 절터 중 하나인 익산 미륵사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곳.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배치. 특히나 미륵사 내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현재 높이 14.24m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 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전시관에는 미륵사지가 백제 최대 사찰이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 무려 1만9000여점
전시돼 있어 익산을 찾았다면 꼭 한번 들러볼만 한 곳이다.
익산미륵사지 자세히 보기

 

 

병영마을은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마을로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위의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형태의 천연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섰으며 빠른 상업의 발달을 이룬 곳이다. 담장은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으로 하부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이후로는 어른 주먹정도의 비교적 작은 돌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으며 담 위에는 기와로 지붕처리를 하였다. 또한 담장역할을 하는 부속채도 담장과 같은 높이와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어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고 이는 병영마을이라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마을 안길이 직선형으로 되어 있어 담장이 한층 정연해 보인다. 특히, 하멜 일행이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로부터 습득한 것으로 전해오는 담쌓기 방식인,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 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은 타 지방과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 강진 병영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 보기
주변관광지
* 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 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뒤 그 후 10여 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에는 다산선생의 체취가 남아있는 다산4경이 있다. 다산선생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
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 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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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릉경포대(금릉팔경)
설악산 및 청송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월출산이 거느린 여러 계곡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있는 금릉 경포대 계곡이다. 동해안 강릉의 경포대와 이름이 같지만 가운데 한자가 浦가 아닌 布를 써서 鏡布臺다. 또한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첩첩산중의 계곡. 월출산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이 비경의 골짜기는 길이 2km 에 이르며,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를 맑은 물이 굽이
치며 곡류와 폭포수를 빚어내고 있는 선경 지대다. 계곡물이 차디차서 피서지로도 안성맞춤이기에 강진 땅이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승지라 할 만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금릉경포대(금릉팔경) 자세히 보기
삼지천 마을은 예부터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창평 유지들의 요람이었다. 동편에는 월봉산, 남쪽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천의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 안고 있는 형국으로이라 하여 삼지(내)천[三支(내)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내에는 시도민속자료 제5호 ‘담양고재선가옥’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전통한옥이 잘 남아 있어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 마을 담장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으로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하였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되어 있다. 대체로 담 하부에는 큰 돌이,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이 사용되었다. ‘S'자형으로 자연스럽게 굽어진 마을 안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고가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더욱 운치있다.
전남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옛 돌담길 자세히보기
주변관광지
* 대나무골 테마공원
청정호수 담양호 중심으로 추월산과 금성산성의 맥을 따라 고지산 골짜기에 부채살처럼 펼쳐진 분지에 자리잡은 대나무골은 쭉쭉 뻗어 올라간 대나무 숲으로 들러쌓여 더욱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대밭에 땅심을 뚫고 치솟는 죽순은 장관을 이루고 텃새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서식지이기도 하다.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대나무를 주제로 조경화되었고 청량한 대숲 바람 속에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대밭 사잇길과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있다. 특히 대숲에 야
생 죽로차 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차의 멋과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특히나 각종 CF 촬영과 KBS-TV 전설의 고향 "죽귀", "흑수선"과 2003년 3월 개봉된 "청풍명월", MBC 드라마 "다모" 의 촬영지로 이용될 만큼 풍경이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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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인 소쇄원은 주인이 기거하던 제월당을 비롯하여 광풍각, 대봉대, 내원을 감싸는 담장 그리고 시원스런 계류의 흐름으로 조성되었다. 진입공간은 대나무 숲길을 따라 밝고 어두움의 원리를 보여주며, 동쪽 언덕을 가로지른 담장의 ‘애양단’ 이라는 글은 북풍을 막아주고 열린 남쪽의 햇볕이 밝고 따뜻함을 말해준다. 소쇄원 공간의 중추를 이루는 광풍각은 계류에 더 가까이 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지어졌는데 주인과 방문객들이 온갖 풍류를 벌이
던 곳이다. 또한 못을 만들고 담을 둘렀는데도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을 느낄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우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존중했던 선조들의 자연주의 문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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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온 곳 : 행복이네마을 다음카페

http://cafe.daum.net/happyc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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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0.30 23:21

    첫댓글 우리나라돌담길이총집결한것같네.돌담,우리어린시절자주지나던추억의그리운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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