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2장1~20절
제목 : 구유에 누인 구주
가장 먼저 천사들은 구주 탄생의 큰 기쁜 소식을 세상에서 천대받던 목자들에게 전합니다.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군 천사와 함께 경배합니다.
1. 역사적 배경(1~2절)
1)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호적하라 하였습니다(1절)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엘리사벳이 요한을 낳고, 마리아는 엘리사벳 집에서 석달쯤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얼마가 지난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호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입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수양아들이며,
율리우스의 뒤를 이는 통치자입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 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동안 평화가 지속되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록 명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인구조사(人口調査)를 실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人口調査)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5:2의 예언(豫言)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영(令)(도그마)은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킵니다.
천하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입니다.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입니다(2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족을 정복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A.D.3-4년 가이우스 시이저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21년에 죽었습니다.
수리아-시리아(수리아, :27)는 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첫 번 한 것이라 - 제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6년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 구주의 나심(3~7절).
1)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3절)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 요셉도 호적하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 동네로 갔습니다(4절)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집'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육신 상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일개 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합니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라 불리웁니다.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가 출생한 곳이라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3) 마리아가 잉태하였습니다(5절).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마1:24).
*마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혼은 항상 공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4)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찼습니다(6절).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히 4:15).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습니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제안했다. 12월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회도 거의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날로 지킵니다.
5)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7절).
"[5]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첫아들 -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여러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8:19,20;마12:46, 47;13:55, 56;막 3:31, 32;요 2:12;7:3, 5, 10;행 1:14).
*8:19,20 “[19]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20]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것없는 가족에게 허락 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였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구유(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옵니다(7, 12, 16절;13:15).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 성 맞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굿간 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3. 큰 기쁨의 소식(8~14절).
1)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었습니다(8절).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 되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이 하는 일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3D직업에 해당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풀이 마르는 건기에는 평야 지대 밀 농장 주인들이 심어놓은 돌감람나무(뽕나무) 열매를 배양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가로 추수가 끝난 밀밭에
남은 밀 밑동을 양들에게 먹이며 생계를 이었습니다.(암7:14)
*암7:14“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목자들은 종종 농지의 풀을 훔쳐가는 도둑으로 취급을 받았지만,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이 맨 먼저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 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마 20:18;요 1:29) 암시합니다.
그리고 신구약에서 목자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시 23:1;사 40:11;렘 23:1-4;히13:20;벧전 2:25;5:2).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40:11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2)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먼저 나타났습니다(9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주의 영광 - '영광'(독사)은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양식 중 하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광('독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 속에서도 흔히 등장합니다(9절;9:31, 32;행22:11;계 15: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다시 살아나셨으며(롬 6:4)
영광 속으로 올리워 지셨고(딤전3:16)
지금도 영광의 우편에 계십니다(행 7:55).
또한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듯이 그에게도 돌려집니다(2:14;히13:21).
따라서 그는 영광의 주님이십니다(고전 2:8;약 2:1).
나아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사 40:5)은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딛 2:13).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이나,
본 구절에서 그의 출생시에 영광이 드러난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진작부터 말해주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도 또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요 1:14;2:11;11:40).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요 13:31).
두루 비추매(페리엘람프센) - '빛에 완전히 쌓인 상태'를 뜻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한 빛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대민족들 가운데서는
'세키나'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으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출 24:16;왕상 8:10;사 6:1-3;행 7:55).
3)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절).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 -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러나 천사를 통해 전달된 복음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해 온 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과
'이방'(32절)에로 확대(擴大)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나타납니다.
본문에서의 '좋은 소식' 이란 곧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福音)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명칭이며, '주'(헬,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엡 1:4;3:11;골 4:3),
본체 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그리스도 주시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5) 목자에게 표적을 보입니다(12절).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 감싸 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 부터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됩니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습니다.
(1)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예수님은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
6)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13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두 세 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마 18:16)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군'는 여기서는 일군(一群)의 천사들을 가리킵니다(시 103:21).
*시103:21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7)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14절).
(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말씀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① 하나님의 영윈 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요 1:14).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②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1:20).
③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땅에서는...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 것은,
①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엡 2:14).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됩니다(요 14:27).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②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엡 2:16-18).
여기 언급된 평화(平和)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히 7:2),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7:50;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악취가 나는 축사에서 아기로 태어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인간들과 동행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간혹 정치인 들이 서민과 함께 하겠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재래시장에 가는 일회성 행사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불편함과 제약을 감수하시면서 낮은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 사이에서 33년간 거니시며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비천한 목자들에게 성탄의 복음을 먼저 전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를 통해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구원을 베푸십니다.
3. 목자들의 경배와 찬송(15~20절)
1)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15절)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입니다(24:51;행 1:10).
*눅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행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목자들은 서둘러서 길을 떠납니다.
천사들로부터 받은 말씀이 “이루어진 일을 보고”싶은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빨리 가서 천사가 말씀한 모든 일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천사가 말한 말은 전합니다(16~17절)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벳을 찾아 나선 것 처럼,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섭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떼를 뒤로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십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목자로부터 복음을 들은 자들은 놀랍게 여겼습니다.
3)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들을 놀랍게 여겼습니다(18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이 말은 초자연적적인 혹은 신적인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합니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데 본절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33절)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님의 말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롬 1:20).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4)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19절).
새기어 생각하니라 -'새기어'는 '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생각하니라'는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5)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20절)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입니다(5:25;7:16;13;17:15;18:43;23:47).
그리고 본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중 하나입니다(24:53).
*눅24: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립니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의 관습에서
목자들은 법정에서 증언조차 할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목자들인 이들을 가장 먼저 예수님 탄생의 최초 증인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을 택하여 예수님 탄생 소식을 전했을까요?
1) 순수한 열정
하나님은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성경학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 주셨습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편견을 가지고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고 로마의 억압에서 자기 민족을 구원할 정치적, 군사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어린 아기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편협되지 않고
천사가 전해준 메시지를 듣고 기뻐할 수 있는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양심을 가지고,
겸손한 영으로 준비된 사람에게 계시를 주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참 시키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2) 적극적인 순종
목자들은 놀랍고 감격스런 소식을 접하고 당황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듣자마자 서로 빨리 베들레헴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 하자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순종하는 삶이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찾아서’,‘보고’전했습니다(17절).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찾았고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되어진 일들을 인하여 힘차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며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順從)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순종(順從)하므로 신앙 성장과 참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순종과 헌신은 힘들지만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순종이 힘든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손익을 따지고 타인과 비교하면서 유익을 먼저 챙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순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갖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는 ‘순종하는 손과 발’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이 있는 자들을 들어 일하게 하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참 기쁨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역사를 이루워 가는 과정에서 황제와 목자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주어 마구간으로 불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목자들은 누구를 경배하는 줄 알았고,
어떠한 일을 하실 줄도 알았습니다.
아이의 탄생과 하나님의 계획을 전하는 메신저로 사용되어졌던 목자들이 자기가 네린 명령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도 몰랐던 황제보다 더 복있는 자들입니다.
비교 할 수 없는 복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목자들의 삶이 하나님 알에서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나셨습니다(1~7절)
천하를 호령하며 호적을 명한 로마 황제가 아니라,
구유에 누인 예수님이 진정한 왕입니다.
강력한 군주의 모습이 아니라 ‘한 아기’(사9:6)으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랑과 의’로 다스리시고 ‘불안’(어둠)에 떠는
세상에 참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숱한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황제(제국)가 아니라
한 분 예수님(천국)을 향해 변치 않는 충성을 다해야 할 이유입니다.
2)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10~12절).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구유에 누인 구조’를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저 낮은 구유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지금도 황제(세상)가 조장하는 거짓 평화와 질서를 거부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를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평화를 만드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할 때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마5:9)이라 불릴 것입니다.
3) 무자비한 권력으로 군림하는 자들에게 세상은 ‘살아남기 위해’거짓 경배를 바치지만, 천군 천사들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13,14절).
이들을 보내어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이 경배와 찬양은 오늘도 여전히 구속의 은총을 입은 우리 입술을 통해 울려퍼져야 하지 않을가요?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천사들은 밤에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찾아가 구주의 탄생을 전합니다(8,9,15~19절).
그들은 놀라고 두려웠지만 지체 없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요에 누인 아기를 찾아 경배합니다.
그리고 이 아기에 대해 천사가 말한 그대로 전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과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가 듣고 새기고 전해야 할 가슴 벅찬 구원의 소식입니다.
나만 누리라고 주신 구원이 아닙니다.
올 한 해 꼭 복음을 전해야 할 내 가족과 이웃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