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꿔놓은 여행지 20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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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을 버리고 찬란한 자연의 색을 그리게 된 히바 “초창기에는 구두나 주얼리, 백과 같은 액세서리를 오브제로 사용해 여성의 욕망을 작품에 담았어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후에는 자연의 에너지를 화폭에 담고 있죠. 여행길에서 알게 된 고려인 화가가 적극 추천해 떠난 곳인데 처음 발을 딛는데도 본향本鄕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녀의 예술혼을 뒤흔든 곳은 우즈베키스탄 서남부에 위치한 히바. 히바는 오아시스에 지은 성곽 도시로 유적 50여 곳과 250여채의 집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머무른 2주 동안 그녀에게 큰 감명을 준 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색감이다. “건조한 모래땅 위에 흙으로 지은 도시인지라 주위가 온통 흙빛이에요. 그래서인지 패브릭, 목공예품 등은 컬러가 매우 찬란해요. 강렬한 원색으로 척박한 삶을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듯이 말이죠. 이곳에서 구입한 스카프를 스튜디오 한 벽에 휘장처럼 걸어두었는데 볼 때마다 강렬한 색채가 제게 영감을 줘요.” 그 후 그녀는 작품에 찬란한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에너지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추억은 사막에서 보낸 시간이에요. 히바는 ‘검은 모래’라는 의미의 카라쿰 사막과 ‘붉은 모래’라는 키질쿰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사막 한가운데에 천막 형태로 지은 이동식 가옥 율타yarta에서 3일 정도 머물렀죠. 사막에 밤이 찾아오자 무수한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마치 별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자연이 내뿜는 뜨거운 에너지가 제 온몸으로 흡수되는 느낌.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요. 이 여행을 통해 자연만큼 아름답고 경건한 예술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스스로 자연주의 작가라고 칭하는 강소영. 그녀는 오늘도 풍경화를 그린다. 자연과 더불어 내면의 풍경화를. MILANO 2 치오앤파트너스 김치호 대표 사람이 인테리어에 우선해야 한다는 깨달음, 밀라노 치호앤파트너스의 대표이자 대학교수로 종횡무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치호 대표. 그에게 밀라노가 특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실내 건축을 전공한 그가 유학을 결심했을 무렵, 밀라노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불모지로 불렸을 만큼 인지도가 낮은 도시였다. 하지만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가구 분야의 디자인으로 꽤나 유명한 도시가 밀라노라는 사실에 주저 없이 유학을 떠났다. 그가 말하는 밀라노의 매력은‘무브먼트’란다. 디자인, 패션, 아트 등과 관련된 행사와 전시가 365일 끊이지 않고, 계절별로 볼거리가 풍성하며, 사람들의 움직임 자체가 예술의 한 분야로 다가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두오모 성당이 상징하는것은 비단 놀라운 건축 기술과 조형미만은 아닙니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완성도 높게 지으려 했던 그들의 책임감이야말로 밀라노 디자인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죠. 특히 산업적으로 밀라노 디자인은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마감재, 조명, 동선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선택하죠. 거기다 유머러스한 멋까지 있어요. 마치 놀이를 하듯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이탈리아인의 방식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디자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몰랐을 테니까요.” 멋있는 겉모양, 다소 심각한 형태 등 어린 시절 그가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모두 밀라노를 통해 깨지고 다듬어졌다. 심각한 것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디자인, 그리고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 존재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밀라노에서 깨달은 것이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만든 공간에 머무르게 될 사람을 상상하며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사람들의 삶 자체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사람 사이의 조화를 꾀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 그가 지금 하는 일이자 밀라노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1 패션을 이야기하고 공간의 미학을 토론하며 술을 즐기던 단골 바는 지금도 밀라노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 조나 브레라Zona Brera에서 비아 가리발디Via Garibaldi를 연결하는 동네풍경은 김 대표가 밀라노에서 특히 좋아하는 지역 중 하나라고. 유럽의 귀족과 부호들이 즐겨 찾는다는 그란 바이아 델 두케 리조트는 스페인이라고는 하나 모로코에 더 가까워 이슬람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크루즈를 타고 그 근처 바다로 조금만 나가면 돌고래도 쉽게 볼 수 있다. 리조트에서는 저녁마다 흥겨운 파티가 열린다. 3 김현주갤러리 김현주 관장 알아보는 이 하나 없는 테너리프의 완전한 자유와 호사 “엄마, 저 돌고래 좀 봐. 돌고래가 같이 헤엄치고 있어.” 딸아이의 격앙된 목소리에서 김현주갤러리의 관장 김현주는 달콤한 행복을 맛봤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는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카나리아 제도에서 유럽의 부호가 많이 찾는 다른 고급 휴양지인 테너리프로 향했어요. 그곳의 그란 바이아 델 두케 리조트Gran Bahia Del Duque Resort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죠. 낮에는 골프를 즐기거나 크루즈를 타고, 주변의 화산 지대를 관광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저녁에는 갈라 디너와 가면 무도회에 참석했고요.” 그곳에서는 길을 걷다 한국인과 어깨를 부딪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남들이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곳’이라는 수식어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던 것. “남편과 아이, 우리 가족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어요. 한국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랬을까요? 유독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서로 하나가 된 것 같아요. 럭셔리한 삶? 경제적인 요건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 두 요소가 더 가치 있는 거 아닐까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삶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여행. 그래서 그녀는 때로 삶이 고단할 때 가족과 함께 여행 갈 것을 권한다. 그곳에서 찾은 행복이란 단어가 당신의 삶을 180도 변화시킬 것이라고. 여행을 떠나는 계기도 가지각색.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권기왕에게 한 편의 소설이 안내한 타리파 여정은 더욱 특별하고 신선한 자극이 된 듯하다.
처음으로 한 편의 소설처럼 이어진 여행, 타리파 그에게 여행은 전부다. 아니, 조금 더 살을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업業이자 삶이다. 십수 년 동안 여행 칼럼니스트로 세계 5대륙을 여행한 발 넓은 그는 “그저 가고 싶은 곳을 두루 다녔을 뿐”이라고 단조롭게 답한다. 여행을 지적 호기심의 발로發露라고 정의하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낯선 곳은 미지의 신세계가 아닐까. 다양한 곳을 찾아다니는 그이지만 언젠가 가슴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을 주체하지 못하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을 충만하게 해준 여행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조그만 항구 마을 타리파다. 타리파는 스페인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하고 있다. 언덕 위에 서면 바다 건너 아프리카 대륙이 수평선 앞으로 보이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색 마을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차를 렌트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두 달 동안 여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안달루시아의 해안을 따라 여행하다가 타리파에 들렀죠. 주인공 산티아고가 꿈을 좇아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나갔듯 저 역시 자성磁性에 이끌린 것처럼 타리파를 거쳐 모로코로 그리고 이집트까지 건너갔습니다. 아마 작가 코엘류도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겠죠.”파울로 코엘류와 <연금술사>와 산티아고의 여정. 타리파는 한 여행 칼럼니스트에게 문학적인 상상력과 여행 칼럼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성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후로 그의 글이 훨씬 더 탄탄한 깊이를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여행이 운명이 되어버린 그의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를 몰라보게 성숙시켜준 타리파는 백색의 마을, 광활한 대지, 눈부신 스페인의 태양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준 곳이다.
6 글래스 월드 황병운 이사 무라노 글라스를 만나 인생의 제2막이 열린 베네치아 글래스 월드의 황병운 이사는 다소 이단아적인(?) 행정학도였던 것 같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남들이 뭐라든 자신만의 미적 감각에 사로잡혀 평범하지 않은 패션도 무난히 소화해내고, 게다가 알록달록한 색감과 잘록한 디자인을 유독 좋아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첫 직장으로 선택한 건설 회사가 IMF의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여행 책자를 가이드 삼아 베네치아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일정을 잡았죠.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초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0일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두오모 성당도 버킹엄 궁전도 아닌 화려한 빛깔을 뽐내던 베네치아의 무라노 글라스였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 고민에 빠졌죠. 무라노 글라스에 인생을 걸어도 될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2002년 2월 무라노 글라스만 전문으로 수입 판매하는 글래스 월드를 시작했습니다. 무라노 글라스를 안 이후로 10여 차례 더 베네치아에 다녀왔고, 6년 동안 베네치아와 무라노 글라스를 공부하고 연구했죠.” 20일의 배낭여행 기간 중 단 하루 머문 베네치아.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다.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무라노 글라스의 매력에 빠져버린 그. 진정 베네치아 전문가이자 무라노 글라스의 한국판 아버지가 된 것이다. 원시적이면서도 그 지역 고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프리카의 매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의 작품과 정신세계에 더없이 매혹적인 세계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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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를 타고 사하라 사막 위를 날았던 체험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고. 자신이 하나의 점으로 느껴지는 순간 지금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 카메라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
TUNISIA
15. 사진작가 이상천
보이지 않던 세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튀니지
사막 위를 급하게 걸어 나갔다. 해가 지기 전 조금이라도 사진을 더 찍기 위해, 발이 모래속으로 빠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분명 앞으로 걸었다. 그것이 내 뜻이었고 내 계획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행을 잃어버리고 어느새 나 혼자가 됐을 때에도 나 자신을 믿었다. 높고 낮은 모래 언덕을 얼마나 헤맸을까.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일행의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어릴 적 본
지난 삶 속에서 항상 미래만 조준하고 있었다는 깨달음, 모든 일에서 결과에 조급하던 나.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피고 주위를 돌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얻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건만 옆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행복을 보지 못한채 앞만 바라보며 숨 가쁘게 걸어왔던 것이다. 사진이란 일이 그랬다. 과정이 아무리 좋고 이상적이어도 프린트가 나쁘면 안 되는 작업이니까. 튀니지 여행 후 1 년이 지났다. 결과(사진)가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일과 작업을 대하는 마인드는 크게 달라졌다. 앞만 보느라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의 함정에 다시는 빠지지 않기 위해 결과보다는 과정에, 직선적인 시선보다 부채꼴 모양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할 줄 알게 됐다. 이건 적어도 내게는 그 무엇도 주지 못했던 큰 변화다. 앞으로 더욱 큰 인생의 변화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도 난 도시 한가운데서 천천히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오아시스는 없는지, 야자수 나무를 혹시 놓치지 않았는지 살피며 걸어야 했던 튀니지 사하라 사막에서처럼. 글 | 이상천(사진작가)
유럽 기독교와 아랍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공존하는 마요르카 섬. 이곳에 가면 광활한 평야와 원시 숲은 물론,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바위산도 만날 수 있다. 단 한번만 방문하더라도 왜 이곳이 해외 유명 여행 잡지가 선정한 ‘말년을 보내고 싶은 휴양지 1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MALLORCA
16. <모터 트렌드> 이경섭 편집장
인생의 ‘플랜 B’를 꿈꾸게 된 마요르카
시간 날 때마다 자동차를 끌고 근교로 떠난다는 월간 <모터 트렌드>의 이경섭 편집장. 그에게 마요르카가 더욱 특별한 것은 그저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바람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매달 마감에 시달리며 초 단위로 시간에 쫓겨 사는 삶이 얼마나 남루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곳이 바로 마요르카였기 때문. “두 번 다녀왔는데 모두 출장이었죠. 엄밀히 말하면 제가 그곳을 여행지로 ‘선택’한 건 아니에요. 지중해에 떠 있는 그 섬에 처음 갔을 때는 햇살마저 느리게 쏟아지는 것 같은 풍경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어요. 3년 후 다시 갔는데, 두 번째 방문을 통해 ‘스페인에 정착해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이 자신의 플랜 B’라고 썼던 미국 수필가 폴 퀸넷Paul Quinnett의 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죠. 도무지 바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 소박하지만 모든 생활에 예술적 감각이 묻어나던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 거예요.”
스케줄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와 휴대폰을 항상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인생.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이 세련된 삶이라고 애써 포장하며 살지 않았는지,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한 과정임을 부인하며 채찍질만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삶의 질’을 찾는 것, 이것이 이제 그의 영원한 과제가 되었다. 그는 언젠가 그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물론 출장이 아닌 순수한 여행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그 섬을 둘러볼 생각이다. 속도로부터 자유로운 자전거에 몸을 싣고, 보다 여유롭게 말이다.
잘츠부르크는 작은 도시라 시내 중심지에서 반경 3km 내에 모든 것이 있어 걸어 다니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고, 가끔 마차를 이용해 시내 구경해도 좋다. 빈체로 이창주 대표는 잘츠부르크를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절제되고 정숙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는 여인’ 같다고 표현했다.
SALZBURG
17. 빈체로 이창주 대표
호텔 학교를 만나 인생 나침반을 바꾸게 해준 잘츠부르크
미국과 유럽은 젊은 시절 늘 마음속을 채우던, 언젠가는 꼭 다녀와야 할 대상이었다. 유학 가서 일반 학문이 아닌 예술이나 생활 문화 쪽을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일반 회사에 취직한 후로도 적응을 못한채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다 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독일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보면서 유럽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배웠는데, 그 중에서도 잘츠부르크 여행과 그곳에서 만난 문화적 체험은 내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만들어주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본 경치와 유럽인이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곳이라는 정도의 막연한 정보만 갖고 만난 잘츠부르크. 막상 그곳에 가보니 음악적 풍요로움과 도시의 아름다움이 기대 이상이었다. 늘 음악이 흐르는 도시에는 인구 15만 명에 매일 오가는 관광객이 15만 명이라니 ‘물 반 고기 반’. 잘츠부르크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해가던 중 워낙 관광객이 많은 도시라 훌륭한 호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을 찾아가 성城으로 이루어진 학교 건물과 여러 시설을 둘러본 순간 꼭 이곳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모차르테움이라는 세계적인 음대가 있다는 것도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결국 음악과 호텔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 인생을 결정할 큰 숙제를 안고 귀국했다. 귀국 후 회사 생활은 더욱 마음에서 멀어져 사표를 내기로 마음먹고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서른세 살, 늦은 나이에 미혼이던 난 유학과 결혼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바이올린을 전공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이 역시 운명이 이끄는 일 같았다. 아내는 음대 유학, 난 호텔 학교에 입학하는 금상첨화의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유학 중 아내와 나는 잘츠부르크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오스트리아의 매력을 만끽했고, 특히 신혼 생활을 잘츠부르크에서 보낸 우리는 방 두 개짜리 작은 단독 주택에서 지낸 그때의 생활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며 금년 결혼 20주년을 맞아 다시 그곳을 찾을 생각이다. 이런 인연으로 우리 부부는 잘츠부르크를 새로운 인생이 꽃핀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유자적하며 산책을 즐기는 이들, 보트를 타고 작은 강을 따라 여유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케임브리지. 항상 치열하게 취재하며 뛰어다니던 프로듀서 김예경에게 잠시 쉬어 감의 교훈을 알려주었고, 쇼콜라티에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곳이기도 하다.
PARIS
20. 파티복 디자이너 케이 킴
파리에서 배운 열정이 그녀의 옷을 달라지게 만들다
파티복 전문 디자이너인 케이 킴Kay Kim은 언제라도 떠날 만반의 준비가 된 여행 마니아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아름다운 경치보다도 그곳에서 만나게 될 특별한 인연에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케이 킴은 작년에 방문한 파리를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다. 오랫동안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해온 그녀에게 과연 이 도시가 색다를까 싶은데도 새로운 만남은 늘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며 살포시 웃는다. “프랑스 중견 화가인 장 폴 아고스티Jean Paul Agosti의 작품을 보고는 반해버렸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의상을 디자인했죠. 그러고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옷을 선물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더라고요. 제게 영감을 주는 작가와 만난다는 건 영혼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니까요.” 와인에 깊은 조예가 있는 그녀는 2시간 거리에 있는 에페르네의 돔페리뇽 성인 샤토 드 사랑 Chateau de Saran도 방문했는데, 이곳에서도 그녀의 특별한 만남은 이어졌다. 샤토 드 사랑의 내부는 일부 VIP에게만 공개되어 1 년 내내 VIP나 아티스트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곳이다. “한때 바그너가 이곳에 거주하며 작곡을 했다고 해요. 그가 연주하던 피아노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그 여행을 통해 또 한 명의 아티스트와 만난 거죠. 와인과 어울리는 갈라 디너에 참석했는데 와인보다도 그곳을 떠도는 거장의 창작혼에 취하는 느낌이었어요.” 이처럼 케이 킴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문화를 통해 성장해간다. 특히 미술품에 조예가 깊어 작품에서 영감을 찾는 그녀에게 이번 여행은 그 영감의 원천과 만나는, 그리고 다시 한 번 창작의 열정을 불어넣어 그녀의 생활을 변화시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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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곳을 모두 다니면 제 인생도 바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