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양의.사상.팔괘]
깨달음의 실천 편
ㅡ김승호 지음
'들어가는 말'
'주역'과 내 젊었을 적은 인연이 없었을까? 돌이켜서 주역과 관련된 기억의 뒤안길을 되짚어 과거로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어슴프레한 영상
하나가 잡혀온다. 장소는 도서관. 거기 어떤 청년이 소설책을 고르다가 주역을 집어 든다. 그러고는 잠깐 훑어 보고 그는 생각한다. 이 책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딱히 읽고 싶지 않다. 언젠가 먼 훗날 혹 내가 이 책에 호기심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읽으면 되리라.
내 나이 육십삼세에 이르러 비로소 주역책을 집어 들었다.
젊은이와 '주역'은 궁합이 맞을 턱이 없다. 젊은 날부터 주역에 매달렸다는 著者의 말을 들으면서 죄송하지만 뭔가 덜떨어진 하나의 심상이 떠올랐다. 계룡산을 오를 때 보았던, 외딴 계곡에 인위적으로 쌓은 돌담이 생각나고 그 어두침침한 곳에서 道 닦는 유자풍의 남자가 하나 질박하게 떠오른다.
인생을 이만큼이나 살아보니 젊은 날에는 부인했던 운명, 숙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도 있음을 어렴풋하나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바닥에 '王' 字를 새기고 대통령후보에 나온 윤ㅅ열. 대통령 당선,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한 '천공' 이라는 괴인물의 영향으로 인해 나는 주역이 문득 궁금해졌다.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 이렇게 저렇게 천차만별이고, 인간의 본래면목 또한 일정한 듯하면서도 그토록이나 가지각색이 아니던가. 직장의 동료는 내 나이에 자동차 엔진에 꽂혀서 인터넷에서 엔진을 뜯어 고치는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엔진이 그는 왜 그토록 흥미로울까? 나는 이 나이에 주역에 심중이 꽂혀 있고.
내가 주역의 작은 오솔길로 비집고 들어오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내가 읽은 책들이 영향을 주었지 싶다. 주역과는 조금 엇비끼지만 수많은 불교서적을 읽었고 그 중의 경허선사, 혹은 오대산의 탄허스님. 어느책을 먼저 보았을까 헷갈리기도 하지만 구인사를 중창한 상월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의 깨달음.
그리고,
"공부하라!!!" 고 공허하게 일침을 날렸지만 결국 그 공부에 대한 결과물을 남기지 못하고 타계한 김지하 시인. 진보세력과 척을 지고 원주골에 숨어버린 그가 붙잡은 것은 생명사상, 곧 주역이었다. 나는 누가 말하여주지도 않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도 않았지만 김지하의 언행의 흐름을 유추하여 어떤 때에 이르러 그가 주역공부를 하였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토록 큰소리로 공부하라고, 어떤 비책을 얻은 것인가? 반신반의 하던 그의 큰소리가 주역(원본 텍스트는 역경易經이겠다) 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조소를 흘렸었다.
내가 주역에 입문하는 과정은 이렇다. 어느날 유투브를 보다가 도올의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주역강의였다. 솔깃해졌다. 도서관에서 『도올주역강해』를 빌려왔다. 도올은 자신의 저서인 『도올주역강해』 를 그토록이나 사서 보라고 권유하지만ㅋㅋ
도올의 유투브 강의를 50회 쯤, 2회 시청한 연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책,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깨달음의 실천 편' 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주역인문학 기초 원리편'을 찾아 읽지 않을까 싶다. 역시 김승호 저작이다. 아마도 거꾸로 읽는 경우가 되겠지만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주역의 기초를 개략할 수 있을 듯 하다.
저자의 유투브 강의를 보면 조금 어눌하여 불만족스러웠는데, 그의 저서는 텍스트 이편저편의 조화와 배경설명이 기막힐 정도로 흠잡을 데가 없이 깔끔하다. 초심자에게 알맞는 쉬운 언어로, 과히 문장의 조탁사다.
새벽 다섯시 조금 넘어서 잠에서 깼다. 토요일. 도서관 반납이 일주일이 남았다. 책의 제목과 집자를 처음 시작하는 시간의 궁합이 참으로 알맞다ㅎ
본문
인생이란 반드시 그 삶이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산에 토끼 한 마리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한들 우리는 그것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주역을 왜 공부해야하는가. 세상의 지혜를 품고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만물이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만물의 뜻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뱃속의 암 덩어리. 죽음의 징후다. 누가 꽃 한송이를 주었다. 여자에게 받았다면 구애, 예술가가 받았다면 존경의 표다.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면 희망의 뜻. 새가 집으로 날아들어왔다면 이는 생명력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절벽 가까이 어린이가 놀고 있다면 이는 위험의 뜻. 악수를 청하면 교류하자는 의미. 공연히 눈치를 보면 이는 속이는게 있는것이다. 머리를 쥐어짠다면 골치아픈일이 있는 것이다. 여자에게 쩔쩔매며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 여자를 사랑함이다. 설겆이하며 심한 소리를 내면 이는 화가 난 것이다. 말하면서 눈을 심하게 움직이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사는 의미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흘려보낼 뿐이지만 눈여겨보고 뜻을 찾아내려고 하면 보이는 법이다.
사람이 안다는 것은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능한 엄마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듣고 그 마음을 순식간에 읽어낸다. 예민한 여자는 남자가 무슨마음으로 다가오는지 간파한다.
사람이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은 뜻을 알고자 함이다. 축구감독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모종의 뜻이 있다는것을 알기때문에 지시를 내린다.
그리스신화에는 피닉스라는 새가 등장한다. 이 새는 불에 타 재가 되었는데도 그 속에서 다시 소생한다. 이른바 '불사조'다. 그리스신화는 피닉스의 몸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불멸의 존재는 하늘의 속성이다. 왜냐? 하늘은 태어나지도 않고 멸망하지도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괘상은 '일건천'으로 작대기 세개다. 하늘은 불멸의 존재다. 즉, 하늘의 덕성은 영원히 살아있는 '힘'이다. 죽지 않는 마음. 이것이 바로 괘상 '일건천'이다.
우리 영혼은 늙었다고 변하는것이 아닌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몸이 늙으니 영혼이 그것에 속아서 마음마저 늙게 된 결과다.
인간은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에 따라 생명력의 부침이 계속된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고 부덕하다 아니할 수 없다.
본연의 마음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으니 외부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깨우쳐주는것이 바로 주역의 '일건천' 괘상이다.
끊임없이 생명력을 일으키는 것, 이것은 인생최고의 자세다.
한 인간이 하늘의 기운을 본받으면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할것이 없다. 우리는 항상 하늘의 기운과 함께해야 하는데, 이는 하늘에 빌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늘의 기운을 받아내라는 뜻이다.
우주는 무한히 광활하다. 하지만 우주 속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불분명하다면 존재의 가치가 무엇이겠는가? 우리(인간은;괄호 안은 내 편집어다)는 항상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주역이 이처럼 사물의 의미를 규명하는 학문이기에 공자는 평생 주역 공부에 몰두했던 것이다.
주역은 원래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세상이란 처음부터 단순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역이 어려워진 것은 자체의 원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옛사람들은 지구가 둥근지조차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주역을 이해하는 방법도 합리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미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터득하고 있기에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령 이제는 천둥이 칠 때 이를 하늘이 노怒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비록 난해하다는 주역을 다루고 있지만 합리적 이해를 추구했기 때문에 무리없이 주역의 핵심에 접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책에서는 말하지 않는 부분을 논하고 있다. 바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수행의 목표를 밝힌다는 것이다(탄허스님이 이미 주장하셨다). 인생이란 배우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수행하면서 발전하는 법이다. 주역 공부 역시 단순히 괘상의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여 천지의 운행과 합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알고 행하니 깨달음은 점점 깊어진다.
흔히 주역 공부를 통해 최상의 지혜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주역에는 그 이상의 섭리가 들어 있다. 바로 우리가 주역을 통해 천지의 운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역의 모든 것을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역의 전모를 파악해 핵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썼다.
세상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간은 기필코 그 모든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는 대자연의 섭리와 합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깨달음에 이르게 되면 내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일 터인즉 삶과 죽음도 곧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하나를 깨달아 둘에 이르게 하고 둘을 깨달아 모든 것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역의 원리를 포괄적으로 밝혀놓았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적극적으로 수행서로도 사용하(여 주)길 바란다. 물론 그것은 주역의 괘상을 자연 그대로 이해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막연한 신비는 혹세무민惑世誣(거짓무)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비란(주역은) 결국 영원한 진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나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을 통해 성인이 추구했던 신비한 세계를 통찰하고 마침내 삶의 가치를 드높이기를 희망한다.
1장 주역의 문을 열다
개념과 실제. 하늘과 공간. 땅이란 무엇인가?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의 시작점. 영혼과 몸. 삶과 죽음. 위대한 힘.
2장
깊은 주역 공부를 위한 기초
주역의 시작.
음양은 어떻게 다른가?
자연의 4가지 작용.
사상의 다양한 유형들.
주역 공부의 기초.
괘상의 계층.
만물의 존재 방식, 순환.
순환 이론.
만물의 질서.
하늘과 땅과 사람.
3장
64괘의 시작, 군주괘
12개의 특별한 괘.
매력이라는 힘.
사자의 마음.
운명은 있는가?
운명을 대하는 자세.
지금 드러나는 미래, 징조.
시간의 방향.
집과 운명.
4장
군주괘의 의미와 구조
희망의 숨은 구조.
옳은 것을 외면한 결과.
주역을 활용한 병법.
인생은 넓다.
리더의 길.
관찰하는 습관이 주는 힘.
자신에게 맞는 자리.
괘상의 지도.
비교로 분석한 괘상.
군주괘의 내부 구조.
나가며: 주역은 지식이 아닌 지혜
23년3월25일 07:10,
『주역인문학』 기초편에서 몇 가지 기초적인 부분을 옮긴다.
범주(範疇법범.밭두둑주, category) 란 틀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주 편리한 개념이다.
플라톤의 생각을 살펴보자. 그는 '동굴의 비유simile of cave' 로 유명한데, 세상만물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고 동굴 밖에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우주 만물의 구성에 대해 범주로 해석을 하려 노력했다. 정다면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다면으로 이루어진 입체로, 완전한 대칭을 이룬다. 정오각형 12개를 붙이면 축구공이 만들어진다. 그는 4,6,8,12,20 5개의 정다면체를 만물의 원소로 생각했다. 우리가사는 우주공간은 입체고, 입체는 평등한 데서 시작했으므로 만물은 5개 정다면체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생각은 단순했지만 그 내면에 깔린 사상은 아주심오한 것이었다. 바로 사물을 물질과 사상이 통합된 존재로 보고 그것이 근원적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범주론적 세계관이다.
세상에 매우 다양한 범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3가지로 본다고 할 때 이 범주 밖의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렇듯 범주는 모든 것을 망라하는 체계를 말한다.
온 세상에 무수히 많은 날이 있어도 그것은 결국 일곱 요일 중 하나일 뿐이다.
범주란 결국 만물을 다루는大 이론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설명(규명)할 수 있는 이론을 알 수 있다면, 이로써 최상의 지혜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목표다.
인도에서는 만물을 '四大'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흙, 바람, 물, 불이 그로써 세상의 모든 것은 4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개념이다. 다만 사대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에 비유되는가? 사랑은? 자동차는? 권력은?
또 다른 범주를 살펴보자. 중국에는 '五行'이라는 범주가 있는데 '목화토금수'로, 약 5000년 전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오행으로 우리의 세계를 구분해보자. 인격은 5종류, 즉 인, 의, 예, 지, 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오행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仁=木
義=金
禮=火
智=水
信=土
오행을 인체에 적용해보자. 심장, 폐, 신장, 비장, 간장이 그것이다. 아마도 저 먼 우주의 동물이라 해도, 지구의 동물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오행 범주에 해당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심장=화, 폐=금, 신장=수, 비장=토, 간장=목 이는 동물이 만들어질 때 처음부터 오행을 사용해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개미나 파리도 심장이 있고 악어나 황소도 심장이 있다.
한의학은 오로지 오행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한의학은 3000년 이상 중국인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간이 약해지면 심장도 약해진다.
신장의 기운이 지나치면 심장이 나빠진다.
현대의학에서도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학은 모든 장기가 독립된 기능을 갖고 있지, 상호작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오행을 직접 인체에 적용하여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목생화木生火, 나무에서 불이 생긴다. 이것을 인체에 적용하면 간이 심장을 돕는다는 의미가 된다.
수극화水剋(이길 극)火, 물은 불을 약하게 한다. 이것은 신장이 강하면 그로 인해 심장이 손상을 입는다.
즉 오행의 원리가 신체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범주의 위력이다.
하지만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은 신용이 적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목생화와 목극토(木剋土, 나무는 흙을 약하게 한다)라는 오행원리를 적용한 결과다.
정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사람은 사랑이 적은데, 이는 금극목金剋木, 금속은 나무를 약하게 한다)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매운맛,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등의 모든 맛이 오행의 원리에 의해 인체에서 사용된다는 것도 알았다. 이것은 실험에 의해 확립한 이론이 아니었다. 오행이라는 범주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일일이 실험해보지 않아도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쓴맛은 심장에 필요하고, 단맛은 비장(또는 위)에 필요하고 매운맛은 폐에 필요하고, 짠맛은 신장에 필요하고, 신맛은 간에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그 오행의 원리다.
이렇게 오행은 상당히 훌륭한 범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주 최고의 범주는 아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주는 4가지 힘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데 바로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척력이란 것이 하나 더 발견되었다.
잘못된 범주는 또 다른 범주가 나오면 변한다. 완벽한 지혜를 구성하는 범주란 영원해야 하고, 이것을 넘어서는 논리가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
세상은 음과 양으로 나뉜다
자연의 법칙 제1호는 평등이다. 주사위를 던진하고 해보자. 돈이 많은 사람이 던진다고 해서 주사위는 1이 더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사람이 4를 싫어한다고 해서 4가 덜 나오지도 않는다. 주사위는 6개 숫자를 평등하게 보여준다. 이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은데, 이 법칙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평등을 만든 것일까? 평등이란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생기는 것일 뿐이다. 누가 만들면 오히려 평등이 깨진다. 자연의 뿌리는 평등이다. 그러므로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기마련이고, 뜨거운 것이 있으면 차가운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두운 것이 있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고,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좌측이 있으면 우측이 있다.
A가 있으면 A아닌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평등의 법칙은 자연의 제1법칙이므로 이것을 범주로 사용하면 더할 나위 없는 가장 훌륭한 범주가 된다. 세상에 어떤 것이 있을 때 그것의 반대가 없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범주를 사용하여 세상을 살펴보자.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태어나기 때문이다. 부자는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그 돈이 없어지게 된다. 아무리 강한 국가도 언젠가는 멸망하게 된다. 이 법칙은 절대 범주다.
여기서 이 법칙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해보자. 세상에는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 즉 세상에는 음과 양이 있는 것이다. 어떤가? 부정할 방법이 있는가? 양이 어떤 것을 의미하면, 음은 그 반대를 뜻한다. 예컨데 기쁨이 양이라면 슬픔은 음이다. 밝은 것이 양이라면 어두운 것은 음이다. 있으면 양이고 없으면 음이다. 태어난 것이 양이라면 죽는 것은 음이다. 때리는 것이 양이라면 맞는 것은 음이다.
이렇게 계속하면 무한히 많은 사물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는 평등의 법칙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 이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절대로 찾을 수 없다. 자, 이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한 지혜를 얻었다. 바로 세상은 두 종류로 되어 있다는 지혜다.
주역을 공부하는 과학자들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노벨상을 받는 자리에 팔괘도의 복장을 입고 수상하여 주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가 공부한 것은 상보성 원리로 이 이론은 음양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아니라 부족한 것을 서로 도와주는 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다. 원자의 세계에는 파동과 입자, 그리고 서로 상충되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이들은 각각 상대를 도와줌으로써 세상을 존재케 한다는 이론이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되어 있다. 핵은 +전기를 띠고 있고, 그 주위를 도는 전자는 - 전기를 띠고 있다. 어째서 핵이 +이고 전자가 마이너스일까? 핵이 마이너스이고 전자가 플러스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것의 존재가 금지된 것이 아니니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핵이 마이너스고 그 주위를 도는 전자가 플러스인 원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후에 폴 디락에 의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 지금은 그러한 원자에 반원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칼 융은 그의 정신의학 세계를 탐구함에 있어 주역을 길잡이로 삼았다. 그는 주역을 연구하여 동시성(同時性)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 츠를 빼놓을 수없다. 그는 2진법을 발명하여 오늘날 컴퓨터 문명에 기여한 1등 공신이다. 라이프니츠는 주역을 통해 2진법을 알아내 그것을 서양에 보급하면서 주역을 서양 과학세계에 등장시켰다.
주역은 철학이 아닌 과학이다. 특히 주역은 시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조만간 인류는 대규모 연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에게 '미래'라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다. 그런데 미래를 알아내는 방법으로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주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
이제 우리는 비로소 질문다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역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다. 주역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이미 이야기했다. 주역이 세상의 지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만물이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먼저 만물의 뜻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뱃속에 암 덩어리가 있다고 하자. 이것은 죽음의 징후다. 누가 꽃 한 송이를 선물로 주었다고 하자.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구애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절벽 가까이 어린아이가 놀고 있다면 이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악수를 청하는 것은 교류하자는 의미다.
세상사는 의미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그냥 흘려보낼 뿐이지만 눈여겨보고 뜻을 찾아내려고 하면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이다. 사회라는 것은 뜻이 교차하는 무대. 사실 넓게 보면 대자연계는 뜻의 공연장이다.
인간의 행동에도 뜻이 가득 차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인간행동에 담긴 뜻을 분석해서 정신병을 치료했다. 칼 융 역시 인간행동 속의 원형을 찾아냈다. 제갈공명은 산 위에서 적진을 바라보고 약점을 찾아낸다. 의사는 환자의 태도를 보고 즉각 병을 알아내기도 한다. 무술의 고수는 적이 움직이기 전에 그 약점을 찰펴 어디로 공격할지를 안다.
'뜻'이란 사람이 그것을 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노련한 형사. 경제 전문가는 회사의 상태를 점검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이처럼 세상은 뜻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법이다.
모든 사물은 뜻을 함유하고 있기에 그 자체가 이미 좋은 정보다.
(10:14, 통증의학과 들러서 팔뚝을 치료하고 안과에 들러 안경을 가져올 테고, 미선나무꽃을 보러 임학공원에 들렀다 올 것이다.)
(16:20, 한 숨 푹 잤다. 꿈속에서도 봄꽃에 파묻혀있었을까?! 임학공원 위 흔들다리 가까이 '미선나무꽃'. 너무도 하얗ㅎ고 고운향이 이 봄을 표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산 입구에서 만난 남산제비꽃. 진달래 연분홍. 금낭화 닮은 키 작은 꽃. 성긴 산매화 가득찬 폰의 窓. 화살나무순을 채취하다.. 주역의 세계로 몰입하는 한편 動像의 淫聲과,
...사람이 안다는 건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능한 엄마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마음을 순식간에 알아낸다. 예민한 여자는 남자가 무슨 마음으로 다가오는지를 쉽게 간파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 뜻을 알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뜻 없이 살고 뜻 모르고 사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람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는 것은 뜻을 알고자 함이다(전기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분전반을 보고 아무런 뜻도 알 수 없을 터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미국 사람과 대화할 때 그 뜻을 알고자 함이 아닌가?
우주는 생겨날 때부터 이미 뜻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뜻 때문에 자연현상이 있는 것이다. 인생도 뜻이 있다. 인간은 특히 다른 생물처럼 막연히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움직인다. 우리 자신은 하늘 아래 살건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냥 보통사람이라고? 그래서 먹고 자고 본능에 따라 사는 게 전부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자신의 뜻을 높여 나가야 한다. 즉, 큰 뜻을 많이 갖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총체적으로 무슨 뜻이 있는가? 이는 철학적 물음이다. 그 사람의 건강은 어떠한가? 이는 의학적 질문이다. 그 사람은 재산이 얼마나 있는가? 이는 경제적 형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재벌은 많은 돈을 사회에 선뜻 내어 놓는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에게 일침을 가해 민족정신을 드높였다. 돈은 많은데 인격이 없는 사람은 존재의 가치가 아주 작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나 저만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은 아직 인생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산 속의 다람쥐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행복이란 스스로의 문제이지 객관적인 문제가 아니다. 뜻이란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미친 사람이 저 스스로만 아는 내용으로 떠들어댈 때 이를 가지고 뜻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에 객관석이 심히 결여되어 있다면 그가 바로 미친 것이다. 하지만 뜻이 아예 없는 자는 미친 사람보다 더 못난 사람이다.
나 자신은 어떠한가? 우리 삶이 객관적으로 그럴듯한 뜻을 함유하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기다리며 사는데, 그것에 무슨 뜻이 있는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그 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은 자신의 뜻을 알라는 의미다. 상황판단이 잘 안 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뜻을 모르는 사람으로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다. 이런 사람은 승진도 잘 안 된다(어제, "평탄작업 하세요."라고 정과장이 말했다. 그래서 삽으로 모래를 퍼서 104동 오수배관 주변을 잘 다듬어 놓았다. 그런데 다저녁에야 그의 말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것을 서ㅅ명대리로부터 알았다. 이건 누가 잘못한 건가?)
사람은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여 이웃, 세상사람, 더 나아가 우주가 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가득 찬 것이 뜻이니 이것을 알아야 진정한 의미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오대산의 원시림 속에 움막을 짓고 살게 된 한 려객자를 생각한다. 그의 일상은 이 삼림에서 무엇에 쓰이는 물건일까. 저녁이 오면 그는 저녁 준비를 하고 밤을 대비할 것이다. 새벽에 깨면 아마도 道를 굴리고 깨우며 아침을 맞을 것이다).
인간은호랑이보다 값이 더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만물의 뜻을 알아야 가능할 것이다. 뜻을 모르는 자는 목표를 세워봐야 객관적으로 큰 뜻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고양이에게는 꽃을 갖다 놓았든 칼을 갖다 놓았든 의미가 없을 것이다. 벌판에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것이 호랑이에게 무슨 뜻이 있겠는가.
인간은 공부를 많이 할수록 가지고 있는 뜻이 달라진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뜻이 다른 것이다.
대화가 잘 안 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뜻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악의 개념이 없거나 상식이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만큼 남을 알아보게 되어 있다. 남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은 분명 존경받을 만한 그 어떤 것을 갖춘 사람이다. 그렇기에 존경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그 행위를 보면 그 뜻이 드러난다. 내 자신이 그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면 별문제겠으나 내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깊은 뜻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해되는 대목이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 하지 않던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不患人之不己知)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患不知人也).”
존재가치가 높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존재가치가 인생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뜻 없이 평생을 살면 뜻 없는 사람이 된다. 뜻 있게 산 사람은 뜻있는 사람이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
공자는 천지만물의 통합적인 뜻 하나를 알고자 했다. 그것을 '도'라 해도 좋고, 그저 '최고가치'라고 해도 좋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 돈, 권력, 지식, 가족관계를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자신이 천지의 뜻과 부합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고쳐나가라고 했을 것이다.
세상에 별 뜻도 없는 존재가 뽐내면서 살면 안 될 것이다. 자신의 뜻을 알고, 또한 자신의 뜻을 높이는 일이 진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공자가 나이 50세에 주역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던 이유가 바로 주역이 만물의 뜻을 알게 해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뜻을 모르면 되겠는가? 나로 살아가면서 나의 뜻을 모르면 되겠는가?
주역의 실체
☱는 연못을 표현하는 데 쓰기도 한다. 그릇. 자루. 상자. 지갑, 이 모두를 표현한다. 엄마의 품. 고향 땅. 조국도 '태'의 뜻이다. 연못은 물을 담아 놓고 밖으로 범람하지 않게 한다. 침착하고 평정한 사람은 좀처럼 내면을 드러재지 않는다. 요동을 감싸는 능력이 바로 ☱이다. 뛰어난 싸움꾼이었던 김두한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옛말도 침착하라는 뜻이다.
언젠가 내가 TV에서 본 것으로, 고양이의 침착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고양이의 바로 앞에 거대한 악어가 한 마리 있다. 그 악어는 물 밖으로 막 나오는 중이었는데 고양이가 막아섰다. 고양이는 앞발로 악어의 콧등을 탁탁 쳤다. 악어는 약이 바짝 올라서 앞으로 확 달려 나왔다. 단번에 물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면서 피하고는 다시 악어의 콧등을 쳤다. 악어는 잔뜩 벼르다가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양이는 침착하게 피했다. 같은 동작이 여러 번 이어졌다. 마침내 악어는 물속으로 피해버렸다. 고양이는 도망가는 악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별 일 없다는 듯이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교양 있는 사람, 절제력이 있는 사람. 연못같은 사람은 생명력을 안에다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운의 낭비가 심하다. 일찍 죽는 사람도 '이태택'의 기운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사고를 잘 치는 사람도 그와 같은 성향이 있다. 마음의 노출이 심한 사람은 믿기 힘든데, 이런 사람은 쉽게 의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담아놓는 능력이 약한 사람인 것이다.
'이태택'은 주역의 팔괘 중 하나로, 이제 우리는 세상을 분류하는 한가지 방법을 배웠다. 인간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1가지 조건을 확보한 것이다. 저 사람은 침착한가, 그렇지 않은가?
☴는 바람을 뜻하기도 하는데, 참새뿐만 아니라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든 바람이든 먼지든 새든 '오손풍'으로 표현한다. 탁 트인 벌판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새로 발생하는 기운찬 의미도 갖고 있다. 오손풍은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 같은 것이다. 소식은 어떤가? 옛사람은 아침에 새 울음소리가 들리면 소식이 전해온다고 해석했다. 이제 우리는 주역의 팔괘에서 2개를 배웠다.
시원한 느낌이 드는가? 그것은 ☴다. 무엇인가 알 듯한가? 그것은 ☱이다.
우산이 하나 있다. 비를 막는데 쓰고 방패는 창칼을 막는 데 쓴다. 2가지 모두 무엇인가 막는 데 쓴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같다. 이것을 ☶로 표시한다. 담, 벽, 산은 거대하게 막아서고 있다. 진지도 적으로부터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집도 가능한 모든 것을 막으니 '칠간산'이다. 은행에 돈을 저축했다. 이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신용이 좋은 사람. 관우는 의리가 굳기로 정평이 나 있다. 유비를 향한 일편단심은 태산처럼 요지부동이다. 춘향이도 이도령에 대한 절개가 태산처럼 굳건했다. 군대.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있다. 탁자 위에 여자의 핸드백이 놓여 있는데, 이것이 둘 사이에 있다면 이는 무슨 뜻인가? 여기에는 여자의 속마음이 남자의 접근을 막는 중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이럴 때는 물건이 핸드백이라 하더라도 ☱이 아닌 ☶이 된다. 침묵은 무엇인가? 이는 소리 내지 않는 것으로 표현을 정지시킨 것이다. 정지라는 것. 이것은 바로 ☶의 주요 성질이다.
무대에 선 가수나 배우들은 굳어 있으면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굳어 있다는 것이 바로 ☶이기 때문에 유연성 결핍이 오는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 할 때는 굳건히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에 ☶의 덕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지나친 고집을 피우면 해로운데, 이는 ☶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의 좋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이든 과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냐 아니냐는 구분하기 쉽다. 강한가 약한가? 이것이 ☶을 묻는 것이다.
☳은 용의 움직임을 뜻하는데, 탱크의 움직임도 이와 같다. 천둥소리도 ☳ 에 해당된다. 반면 부드러운 음악소리는 ☴다. 사람이 목표를 가지고 의미 있게 움직이는 것은 ☳다. 하지만 목표의식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군대가 정지해 있을 때는 산과 같고 움직일 때는 우레와 같다(不動如山 動如雷霆)"고 했는데, 이는 ☶과 ☳의 도리를 말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 ☴, ☶, ☳이다. 이로써 주역의 팔괘를 반이나 공부했다. 여기까지가 어려웠다. 앞으로 남은 4개의 괘상은 아주 쉽다. 따라서 이 4개의 기초를 단단히 다져둘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생각은 이 4개의 괘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25일, 22:13 내 맘에 드는 감청록색 다초점 안경을 쓰고 집자하였다. 금일 계산역4거리의 '밝은눈안경'에서, (근 사십여만원 가까이 소요) 찾아 처녀사용 했다. 점원은 참 희한한 인물이다. 종내 거래를 이리저리 하여 오늘에사 찾았지만 하나도 그가 싫ㅎ지가 않아요~ 내일은 묻관날. 머리를 깍고 염색을 아내가 해 주었다(만원이다). 꽃피는 계절 천냥값에 달하는 하루의 밤이 깊어간다. 주역을 공부하니까 전기기능사 취득 이후 아무런 목표 없이 살고 있는 나를 비로소 바라다 볼 수 있었다. 주역의 지혜인가! 목표를 세우고 뜻있게 살아가는 '자강불식' 주체자가 되어야만 한다. 대체로 봄꽃도 보고 하여 만족할만한 하루였뜸다)
(...2023.3.26, 05:30
05:15에 눈을 떴다. 00:30에 배뇨를 하고 05:15에 깼으니 어쨌거나 숙면한 것이다. 묻관지일에 잠 잘자고 컨디션 또한 좋다. 괘상으로 치면 어떠한 상태일까?
진달래 피는 봄날이니 몸은 생기가 날 것이요,
나이 63세이니 져 가는 서산 해이긴 하나 아직 잔양 속에 펄펄 끓ㅎ진 않아도 뜨거움은 온전할 것이오.
직장도 비록 서와 정이 불안정하여 마구 정신줄 못차리긴 해도 사람의 기본은 갖추었고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니 마음은 편안하오.
살면서 이런 날 하루 옴팍하게 적셔보며 인간의 욕망을 지켜보는 것 또한 유의미할 것이오
집안 또한 무탈하게 지배, 지휘하고 있으니
분수를 잃지 않ㅎ고 들끓ㅎ지 않으며 오직 하나만을 위하는 가운데, 환락 속에서도 우환을 가슴에 새긴다면
오늘의 괘는 '소음
이 될 것이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觀'하기만 하면 무탈하리라.
지금까지 나온 2태택, 5손풍, 7간산, 4진뢰로 사물을 분석해보라. 그 많은 문제가 순식간에 풀리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4가지 괘상만 제대로 익혀도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달라져 깊이 있는 견식을 갖추게 된다. 나머지 괘상 4가지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보는 즉시 이해가 될 것이다.
4가지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와 ☶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만 강약이 다르다.
☴과 ☳는 움직이는 것인데 강약이 다르다.
사업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가기 때문이다.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이다. 삶의 강력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다. 모든 것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은 무엇인가? 이리저리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는 결실을 얻는 상태다.
(현재 06:04, 알람이 울렸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을 때다. 우측 냉장고 옆 창쪽으로 검은색.고동색의 기타 케이스가 보이고 나를 위해 세 개의 전등이 수고를 해주고 있다. 둥글레 차 한잔을 마시면서 주역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내 인생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이제껏 이런 거 없이도 잘 살아 왔다 아이가. 오늘은 좋네 오늘은 좀 찌뿌둥하네 어쩐지 오늘은 답답하네 그런 느낌은 분명히 있었고 그 느낌에 따라 내 몸도 맞춰 가긴 했었다. 가령 오늘 몸이 좀 안 좋다면 '달'이 지는 때인가!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살아오긴 하였었다. 오늘은 '소음괘' 이니 지천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힘도 있고 서로 호응하며 관여하니 좋을 일이 있을지어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묻자. 그렇다면 왜 주역을 공부해야 하는가? 만물의 뜻을 알고자 함이다. 인생의 뜻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닌가. 주역이란 무엇인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만물의 뜻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해간다. 주역은 바로 이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다.
-계속.
(2023/3/27, 월요일 21:54 ...105동 6라인 교목 큰 거, 새들이 똥을 갈겨 놔서리 자치회장의 베라는 오더가 있었다. 차일피일 오늘 그것을 자르고 또 4개나 더 잘랐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다람쥐나 청설모 흉내를 낸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인간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소장이 일 다 끝나고서 단톡에 그림을 올리자 '수고하셨다'고 이모티콘을 보냈다. 음 뭐랄까~ 삽교천엔 석양이 하얗게 작열하였다. 동년배하고 돌아야겠구나! 이제는 그런 거 필요없다고 느낀다. 그것을 느낀 서천이주꾸미동백정이니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 = 바람, ☶=산, ☳=우뢰, ☱=연못 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람의 어떤 성질을 가진 것이지 바람 자체를 말하는 대명사는 아니다. 산 자체가 아니다. 산의 어떤 성질, 예컨데 움직이지 않는 성질 같은 것을 뜻한다. 이 대목은 주역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것을 모르면 주역의 세계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다시 살펴보자.
☰→하늘 같은 어떤 것
☷→땅 같은 어떤 것
☲→불 같은 어떤 것
☵→ 물 같은 어떤 것
☴→바람 같은 어떤 것
☳→우뢰 같은 어떤 것
☱→연못 같은 어떤 것
☶→산 같은 어떤 것
팔괘를 보자.
여기서 무엇이 보이는가? 모든 괘상은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3층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2층이 그보다 먼저 있다는 뜻이고, 2층은 그보다 먼저 1층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팔괘의 형성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팔괘를 분해해보자.
이것은 사상(四象)이라는 것으로, 사상은 사계절 등 순환을 나타내고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사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2층 구조이다. 사상을 마저 분해하면 양 ― 과 음 ╺ ╸이라 하고, 이것을 효(爻) 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효가 2층 구조로 만들어지면 사상이 되고, 3층 구조로 만들어지면 팔괘가 되는 것이다.
―
↙ ↘
═ 소음
↓미래 ↓ 미래
― ╺ ╸
↓과거 ↓과거
이 그림의 뜻을 알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사물(영 또는 음)이 나타나서 과거로 침몰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림의 세계는 전문용어로 위상공간이라고 하고, 만물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지면도 위상공간인데, 여기서는 단서가 붙는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미래
과거
여기서 시간은 미래와 과거로 전제되어 있다. 무엇인가 전제되어 있을 때를 위상공간이라 한다. 이 말은 그림에는 뜻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미래
☰
과거
위 그림은 하나의 괘상(즉 만물)이 있을 때 그것은 미래와 과거의 중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때 과거를 땅이라고 하고, 미래를 하늘이라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효가 하나밖에 없을 때에는 그 주변은 효의 영향권일 뿐 아직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효가 다른 효를 만나면 그 사이에 작용 공간이 형성되고, 비로소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음효 또는 양효를 말하는데, 1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1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상은 2개의 효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2라고 말하는 것이고, 팔괘는 3개의 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3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하늘이 일, 땅이 이, 사람이 삼(天一, 地二, 人三)."
숫자는 발생 순서를 말하기도 하고 또는 효와 사상과 팔괘를 뜻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팔괘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여기 나오는 순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극히 단순한데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를 정리해내지 못했다. 옛사람들은 신비에 사로잡혀 있어서 과학적 논리를 전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괘를 다시 보자.
건 곤 리 감 손 진 태 간
☰ ☷ ☲ ☵ ☴ ☳ ☱ ☶
모두 8개이고, 각각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4층 구조로 발전하지 않는다. 3층으로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물은 3가지 조건만 있으면 뜻이 형성되기 때문에 팔괘도 이를 따른다. 이렇게 해서 팔괘는 그 전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만물의 뜻이 완성된 것이다. 주역은 팔괘가 서로 만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추적한다. 팔괘는 이미 만물의 분류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추적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팔괘로 온 세상에 밝혀내지 못할 것이 없다. 이제 팔괘를 익혔다면 주역 공부에 여유를 가져도 좋다.
('팔괘를 익히면 여유를 가져도 좋다' 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진작에 팔괘를 익히지 않았는가ㅎ(농담이다) 설익은 자신감이라고 말하면 반론할 수도 엄써라ㅎ 오늘은 집자를 이만큼 하고 잠을 자자. 꿈에 오줌을 지릴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정도로 오늘은 고소에서 벌벌 떤 게 사실이기도 하다. 나무 5개를 자르고 정과장에게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말했는데, 자기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목이 너무 말랐기에, 그도 그럴것이 나무 2개에 올라가 잘랐으니깐드루. 기전실 입구까지 걸어가서, 잠깐 걸음을 멈추어 섰다.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위험한 일을 하는데 음료와 빵하나가 뭐 그리 굉장한 요구일까?' 그리하여 관리실로 올라갔더니 강주임과 관리소장과 주민이 한명 있었다. 얘길 하고 카드로 빵 12개와 음료 3병을 샀다. 빵 하나를 강주임에게 건네고 103동 6라인 현장으로 갔다. 서대리는 계속 딴청을 피우며 쓰러진 나무를 자른다. 최반방은 빵을 먹고 음료를 경비와 먹고 있고. 나는 정과장에게 윤칠이형 왜그래? 그러면서 먹이려 하였으나 깅쿵 그는 마다했다. 그러다가 할 수 없이 음료를 한 잔 먹었다. 별스러운 시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퇴근 때 자른 나무 5개를 올렸더니 소장이 수고했다고 댓글을 달았다. 고맙기도 하고 대댓길을 달았다. 23:10, 금일 집자 終 )
-계속.
(23.3.31, 금요일 06:33
3의 의미
팔괘는 만물의 뜻을 상징한다. 그런데 팔괘를 표현하는 것이 왜 하필 3획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오늘날 과학에서도 왜 공간이 3차원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3차원이란 가로, 세로, 높이 3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 하여 3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다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3이란 완결조건이기도 하다. 카메라를 놓는 삼발이tripod라는 것도 다리가 3개이기에 땅 위에 설 수 있다. 평면에서는 삼각형이 최초로 만들어지는 도형이다. 오늘날 과학에서는 물질은 끈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양 끝이 서로 만나야 안정이 된다. 이때 만남이란 위상수학에서 3이라고 표현한다. 2개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서로 연결하려면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3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에 어떤 사물이 하나가 있으면 그 반대 성질이 반드시 있기에 2개의 사물이 최초의 사물 숫자가 된다. 그런데 2개의 사물이 존재할 때는 그것이 서로 만나는 경우와 만나지 못한 경우인 2가지 상태가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두 사물이 영원히 비교될 수 없다면 이는 하나의 사물만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2개의 사물이라 해도 서로 비교될 수 있어야 2개인 것이다. 비교라는 요소는 아주 중요하다. 남녀가 있어서 영원히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즉,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걸 정리하면,
두 존재 + 만남= 3
세상이 3으로부터 시작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존재란 3개일 때부터 뜻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역의 괘상은 3획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3이란 완결된 존재 단위다.
입법.행정.사법이 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이 있어야 평화롭다. 재판제도도 3심. 과반수 결정에 있어서도구성원이 최소 3인이 있어야 한다. 2명밖에 없으면 영원히 가결될 수 없다. 친구 관계도 3명이 있으면 잘 유지된다. 서로 싸울 때 중재자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30)는 3, 4동 검침하면서 문득 '내가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건가? 하면서 '재미없는 삶'고 평가하는 나. 개들은 무의미하게 짖어댔다. 삼성.럭키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온당한데, 정과장의 꼬붕이 되어 움직이는 나를 용서하기는힘들다. 이제 서는 거의 윤을 까대기하는데 주저없고, 나도 비슷한 입장이 )
(23.3.31, 21:35 ...'2주쯤 있으면 피겠다.' 고 예상했던 벚꽃이 1주일만에 거개 피었다. 계산현대 벚꽃길의, 삼성.럭키도. 부는 바람에 위 아래로 흔들리는 벚꽃의 성숙함은 그야말로 '봄처녀 그네뛰기'와 별다르지 않다. 그뿐이리오. 럭키 영선창고 가는 길의 103동 양지바른 베란다 쪽의 목련화는 처음에는 노오란색으로 벌어지는듯하더니 점점 흰색을 띠면서 이윽고는 폭발하듯이 벌어졌다. 그 그림을 아래에 시간 차로 싣는다.
3월23일
3월 30일
3월 31일
사상은 4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들로 표시할 수 없는 어중간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있다. 이름하여 '토(土)'라고 하는 것이다. 토는 사상의 중앙이다.
사상+◯(중앙점)= 오행
결국 오행이란 사상에다 원점(토土)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오행은 음양이 팔괘로 진화하는 과정 중에 존재하는 것인데, 2차원 공간의 성질을 망라한 것이다. 2차원이라는 것은 평면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옛 사람들은 세상을 평면으로 보았다. 그들은 지구를 평평한 존재로 생각했다. 그래서 동서남북 네 방향만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4방 요소를 자기 자신이 있는 원점과 함께 5원소로 사용한 것이다. 평면이란 이렇게 4방 요소와 중앙 원점으로 이룩되어 있다.
오행은 동남서북과 중앙인데, 이름을 붙이면 목화금수토가 된다.
주역의 팔괘는 3차원으로 되어 있다. 지구가 둥글고 공간이 3차원이기 때문이다. 오행은 2차원 공간요소, 즉 평면구조이고 팔괘는 3차원공간으로서 입체구조를 갖고 있다. 평면과 입체, 이것이 오행과 팔괘의 차이다. 우주는 평면인가?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입체공간으로만 표시될 수 있다.
팔괘는 범주의 완성이다. 우주는 3차원이기 때문에 3차원 범주인 팔괘가 필요하다. 물론 우주는 3차원 요소에 시간을 포함하는 4차원의 세계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3차원 원소 팔괘를 중첩시켜 시간을 추적한다. 이것이 바로 대성괘(大成卦)가 탄생하게 된 이유다.
4
세상을 보는 지혜
그럼 이제부터 주역의 기호 전개를 살펴보자.
이는 사계절의 순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간의 반복성을 보여준다. 만물은 존재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순환이라는 생존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역은 그것을 추적하고 있다.
다음을 보자.
이 괘열은 순환과정에서 상태가 점차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온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용이 변하고 있는데, 주역은 그것을 일일이 추적하여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위의 괘열은 지금은 그 뜻을 몰라도 된다(나 역시 잘 모르겠다). 다만 주역의 표현을 느끼면 그만이다. 인류 문명은 3만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기호 사용의 사작은 최근 몇 백년 전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역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멀고 먼 옛날에 이미 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깊이는 현대 문명이 아직 흉내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또 다른 괘상 전개를 보자.
이 괘상의 흐름은 하나의 사물이 정반대의 사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정반대의 상황으로 변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2:46, 눈이 뻑뻑해지고 슬슬 눈자위가 아른해진다. 베낭을 꿰메고, 버너를 챙겨 놓았다. 일주일 기다리면서 얻은 토요일 휴무는 얼마나 알토란 같은지.. 어딜가면 진달래도 보고 벚꽃도 흐드러지게 볼 수 있을까? 그 어떤 나물을 맛 볼 수 있을것인가. 일단 서울 안산을 제1 목적지로 생각하긴 하였지만 결정은 내일 아침 길에서 정한다. 쩡이 친구, 김은비 작가 결혼이 내일. 연애에 관한 글만 쓰는 그녀의 책은 교보문고에 꽂힐만큼 인지도가 있다. 아무튼지간에 삶의 방향성은 개개인의 능력이자 성향이니 어쩌겠는가. 삶도 직업도 성공하길 기원한다. 오늘 영선창고에 책꽂이를 두개 들였는데, 그곳 근처의 벚나무 꽃 핀 가지를 누군가가 잘라서 바닥에 쌓아 놓았다.
에구 생각없는 어느 놈짜야아~~~ 사람이 아니니 ㅆ놈者로세. 누운 벚꽃의 향은 짙었다. 애닲았던가! 잠깐 벛나무 아래에서 애도의 마음을 갖다. 오늘집자 終.)
(23.4.1, 21:30 '안산' 갔다 온 날. 집자시작,
대성괘란 무엇인가?
사물은 1차적으로 팔괘로 분류되고, 그다음 이것들이 서로 만나면서 대성괘가 만들어진다. 주역에 있어서 팔괘가 '단어'라면 대성괘는 '문장'에 해당되는데, 이 문장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만능 표현도구다. 대성괘는 팔괘가 서로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자연적으로 64개가 되는데, 이것을 이해하면 만물에 통달할 수 있게 된다.
('만물에 통달할 수 있게 된다' 는 이 말을 젊은 날적에 얼마나 찾아 헤메던 아지랑이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거, 그가 바로 道人이다. 나는 그 도인이 '주역'을 통달한 부류인줄을 이제에사 알게 되었으니, 이는 너무 늦고 말았는가? 실수 투성이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니면 아직도 늦지 않았을까? 오늘 집자 終 '포 시즌' 후라 눈이 피곤하고 노곤하여 견딜 수가 없다. 오늘 반납을 1주일 연기하려하였으나 놈이 현장에 없는지 계속 연결시그널이 2에서 끊어지고 만다. 그래서 연기를 못하고 말았다ㅜㅜ)
(일요일 아침, 4월 2일 07:02 오늘은 은지큰딸과 아내와 양수리드라이브가 예정돼있다. 어제는 정말 꽃의 파도속에서 정신을 못차렸던 것 같다. 서울특별시는 돈이 남아도는 것이 틀림없다. 봉화대올라가는 도로 옆의 작은 트렌치에 짐승이 탈출하라고 나무다리를 근거리 간격으로 만들어 놓은 걸 보며 느낀 감회다. 불필요한 자원 낭비라고 혀를 찼다.
[수택節] 은 사물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동적인 상황을 그렸다. 수택절은 아래가 연못이고 위가 물이다. 무슨 뜻일까? 이는 연못에 물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방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지갑에 동전이 들어가 있는 것도 이것이다. 수택절은 잡다한 사물이 하나의 틀 속에 들어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법法이라는 것이 있다. 법은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범위를 설정한 통제장치다. 여기서 통제라는 것은 하나의 틀로 바로 그릇 같은 역할을 한다. 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잡아두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성괘로 보면 다음과 같다.
☵ → 혼돈
☱ → 통제
이 그림은 혼돈스런 마음 또는 행동이 틀 속에 들어가 있어서 밖으로 요동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노래를 잘해서 음정과 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다면 이는 음성.속도를 제멋대로 하지 않고 악보에 잘 가두어놓는다는 뜻이다.
옛 성인이 수택의 이름을 절節이라고 붙인 건 그러한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인간에게 절제의 필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절제력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전쟁에 휩싸일 것이다. 쌍소리가 막 튀어나오면 마음도 순식간에 난폭해지는 법이다. 괘상 수택절은 있을 수 있는 모든 혼란이 잘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이 범람한다면 얼마나 위험한가! 그래서 물은 그릇 속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사가 있다. 그는 어째서 신사라고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말이 교양 있다거나 행동이 단정하다거나 예의범절을 갖추었다거나 자기감정을 통제할 수 있거나 하는 등 그 모든 신사의 특징은 수택절과 닮아 있다. 숙녀도 마찬가지다.
수택절은 당연히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담겨 있지만 스스로에게도 절대 필요한 정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몸을 막 굴린다면, 건강이 안좋아 질 것이다. 말이 많으면 정신이 약해지고, 마구 먹으면 비만이 되고, 쾌락에 지나치면 기력을 상실한다. 아무때나 자고 아무 때나 먹고 제멋대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참을성이 없으면 인간의 몸은 쉽게 망가진다.
인간이 침착한 것도 수택절에 해당되는데, 침착함을 갖추지 못하면 운명도 흔들리는 법이다. 세상 만물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물은 질서가 잡혀 있다. 질서가 바로 수택절을 뜻하는 것이다. 질서는 온 우주에 작용한다.
도인의 자세가 안정되어 있는 것은 안으로 수많은 것을 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수택절의 자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명령에 잘 따르는 것도 바로 수택절인데, 행동의 한계를 상관이 꽉 잡고 있다는 뜻이다. 절제란 세상을 안정시키는 힘이고, 인간 스스로도 절제를 통해 안정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고여 있는 물은 고요히 수택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주역을 통해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깨달았고, 또한 그것으로 사회를 깨우치게 하여 세상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주역은 괘상을 통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수택절은 어린아이가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모습으로, 안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안정되기만 하면 그만인가? 그렇다면 발전은 언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우리 삶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 안정은 그 중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사람은 때로 모험도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에 따른 현상 초월도 필요한 법이다. 사회가 하나의 틀에 머물러 있다면 발전하지 못하거니와 그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얼마나 숨이 막힐 것인가!
[택화혁]
이 괘상은 통제가 지나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택은 그릇이다. 그런데 그릇이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보인다. 괘상은 아래에 있을 때와 위에 있을 때 뜻이 달라진다. 그릇은 택이다. 이것이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그릇이 사물을 깊숙하게 가둘 수 있다는 뜻이다. (08:40, 큰딸 "준비됐어요." 응 그래 우성마트에서 귤을 좀 사갈려구 해. 終)
23.4.3, 13:0 S 기전실 어제는 두물머리에 가서 연핫도그 1개에 4천원짜릴 사먹고ㅋㅋ, 남한강과 북한강 합수지점을 돌아 양수리 시장을 갔지만 터엉 비었기로 바로 귀로에 접어들었다. 팔당 아래 대교 근처의 벚꽃산골은 결국 그냥 통과하였고 미사리의 벚꽃길 역시 그냥 통과했다. 돌이켜 뒤돌아보면 천상의 화원을 한바퀴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든다.
지금 이 계절, 우리집 서재에서 계양산을 보면 첫번째 팔각정에 이르는 골짝에 벚꽃이 무리지어 계곡을 덮어 핀다. 한가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 저 골짝이 우련 화안해지면 전국의 벚꽃이 핀다' 는 것. 오늘 출근해서 일하지만 이곳에도 벚꽃은 생애절정을 지나고 있어서 영선창고 가는 길에 향이 우련 맡아진다. 행복한 거 아닌가? 일터에 꽃이 피니. 흘러서 흘러서 죽음의 진원지로 가는 게 삼라만상의 운명이니 나 또한 그 흐름의 아웃사이더가 아닌 메인스트림이다. 즐거울 것. 마음이 고요하고 맑을 것. 술욕심부리지 말 것. y계곡에 마음 두지 마시오, 그곳은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곳이거니.. 서대리가 카드 가져오라고 성화를 하여 15분 남겨놓고 상가에서 싸인펜 5개와 매직 2갤 샀다. 강주임 낮짝이 컴플레인임을 미루어 알겠다만ㅋㅋㅋ
택화혁은 현재 '리'를 깊숙이 가두고 있다. '수택절'에서는 '택'이 '수'를 적당히 가두는데, 택화혁에서는 '화'을 심하게 가두어놓은 듯하다. ☲는 무엇인가? 밝은 것, 정의로움, 질서, 어른 등의 뜻이 있다.
택화혁을 다시 보자. 밝은 것, 정의로운 것이 심하게 억압받고 있다. 이는 마치 주머니 속에 전등을 켜놓은 듯한 상황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통제받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리'는 질서로, 이것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독재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리'는 다 자란 어른이란 뜻인데, 이 어른이 방 속 깊숙이 갇혀 있다. 이 어른이 스스로 방구석에 들어앉아 있든, 못나가게 다두어놓든 뜻은 같다. 주역은 무심히 결과를 내보이는 것이다. '리'는 또 지식으로, '택화혁'은 지식인의 활동이 억제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는 통제된 사회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는 아직 어리거나 혼란스러운 것이라서 적당한 통제가 필요하다.
옛 성인이 택화혁澤火革이라고 지었는데, ☲이 억압 받는 사회는 머지않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름이다.이것은 현재 꿈틀거리는 상태를 보여준다. ☲이 뛰쳐나오려고 애쓰고, ☱ 이 한계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택화혁은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과보호라는 것만 일단 기억해두자.
[56번째 괘 화산려]
☲ 는 위에 있다. 자유롭다는 뜻이다. 어른이 집을 나선 것이다. 그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는, 편안한 상태다.
아래에 있는 ☶ 은 무엇인가? 이것은 그릇에 있어서는 뚜껑이고, 집에 있어서는 대문이다. 또한 집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산'은 묵직한 그 어떤 것이다. 산은 안으로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집 속에 있으면 감춰지게 된다. 소라 껍데기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 안에 있으면 산처럼 안심이 되는 것이다.
화산려는 집 밖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닫힌 문 밖에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집과 닫혀 있는 것은 원래 뜻이 같다.
[산수몽山水蒙]
어린아이라는 뜻이고 또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원래 통제가 잘 안 되는 법이다. 큰소리를 치거나 명령으로는 되지 않는다. 억압으로 안되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이고 여자이고 산 아래 물이다. 산 아래 물은 벌판으로 제멋대로 나아갈 것이다. 자연의 한 현상이지만 인간 사회의 눈으로 보면 위태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4가지 괘상을 선택하여 대성괘의 뜻과 그것을 해석하는 논리를 보여주었다. 아마아직 확연히 뜻이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공부해나가다 보면 어느덧 뜻이 분명해지고 논리도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대성괘를 하나씩 배워나갈 때 그것에서 우리 인생을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공자가 유의했던 것이 바로 이것인데, 공자는 후학들을 위해 각별한 가르침도 내려주었다. 공자가 이야기한 '이 인생을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놓치지 말라'는 당부는 독자 여러분이 스스로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역은 한문으로해설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서는 수십 년을 지나도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지난날의 한문 가득한 주역은 잊어버리고 과학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분석해야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닐스 보어가 그랬고, 칼 융이 그랬다. 주역은 1만 년 전쯤 출현했지만 그것을 대독하려면 발달된 현대의 시각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괘상을 알면 세상을 알게 된다. 괘상을 모르면 수만 권의 책을 읽어도 세상이 복잡하기만 할 것이다. 주역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단순하게 파악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대성괘에 이르렀으면 이제 먼 옛날 성인이 탐구하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마음을 더욱 굳게세 다지고 계속 공부해보자.
여자는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여자의 마음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것은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너무나 민감하여 아무리 좋게 접근해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항상 조금은 맞지만 다 맞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여자의 본성이 ☵ 이기 때문이다. 물은 혼돈과 섬세함을 나타낸다. 이런 듯해도 이런 것이 아니고, 저런 듯해도 저런 것이 아니다. 그저 캄캄한 밤과 같은 것이다. 여자가 싸움을 하는 이유는 남자가 항상 틀린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논리는 맞다. 하지만 그 논리는 0.01초 후에 달라지는 여자의 마음을 추적할 수 없다.
왜냐하면 ☵ 의 본성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물은 역동적인 사물이다. 제어하기가 몹시 힘들다. 여러분은 물을 손으로 잡아낼 수가 있는가? 안 될 것이다. ☵ 의 성질이 바로 그렇다. 그러면 싸움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싸움이 벌어졌다고? 이는 남자의 잘못이다. 여자는 싸움을 거는 게 아니다. 싸움은 항상 남자가 하는 것이다. 여자는 요구할 뿐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여자의 요구만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마음도 이와 같은데, 옳고 그름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오로지 여자의 요구가 무엇이고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만 알면 된다. 자세히 알려고 해도 안 된다. 그 순간 다시 모르게 되는 법이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모른다. 프로이드나 융도 모르고, 과학자나 점쟁이도 모른다. 그래서 ☵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은 미지의 상태를 나타내는 주역의 암호다. 이로써그만이다. 물은 파고 들어갈수록 혼돈스러운 존재다. 여자의 마음은 자세히 알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알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여자의 마음은 ☵ 로, ☵ 의 뜻을 깨달으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뢰둔] 이 괘상은 혼돈을 상징하고, 길을 잃어버린 사냥꾼의 상황을 보여준다. 여자와 싸움할 때도 이런 상태가 된다. 이유는? 아직도 이유를 따질 텐가? 이유를 따지지 말고 물의 뜻을 음미하라. 이것은 가까이 뛰어드는 순간 수뢰둔이 되어 혼란이 가중된다. 여자가 기분이 상하면 '둔'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재빨리 눈치 채야 한다. 지금 운명이 혼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 을 다루는 방법을 이미 배웠다. ☵은 ☱속에 담겨 있으면 안정된다. ☱는 바로 사랑이다. 그때는 논리가 필요없다. 감싸주면 될 뿐이다. 사랑이란 감싸준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역의 괘상으로는 바로 ☱ 이다.
갓난아이가 울면 엄마는 어떻게 하는가? 안아주고 달래준다. 이유는 알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기분이 안 좋아보이면 사랑을 표현하고 여자를 이해해줘야 한다. 내용을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 안 좋은 여자에게 무엇이든 해줘야 하는 것이다. 노래를 불러주든, 웃기든, 선물을 주든, 안아주든, 살살 빌든, 애교를 부리든, 감싸주고 여자의 편이 되라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자와의 투쟁은 ☱이 약이다. 무조건 여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논리는 수뢰둔 상태가 된다. 수뢰둔은 안개 속을 헤매는 사냥꾼의 신세다.
전쟁에서도 이 논리가 중요하다. 적이 게릴라처럼 각개 전투로 나오면 접근전이 불리한 법이다. 멀리서 포위하는 것이 좋다. 바로 ☱이다. 누구와 계약을 성사시킬 때도 너무 근접하는 것보다 외교가 먼저 필요하다. 바로 ☱ 인 것이다.
☱
아량이 크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을 뜻하는 표☱현이다. 내가 가진 그릇이 커서 무엇이든 시비하지 않고 수용할 줄 알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 여자든 어린아이든 달려드는 친구는 예봉을 피하고 그를 감싸줘야 한다.
☱ 의 덕이 바로 그것으로, 사람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최하의 수준이다. 따지는 것은 ☳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남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행위는 ☱ 이다. 컴퓨터에도 용량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크기가 있다. 그릇을 넓히라는 옛 사람의 말은 ☱을 넓히라는 뜻이다. 사람은 저마다 ☱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편협하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남들이 싫어하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이혼을 했는데, 그 같은 천재 과학자도 주역을 가지고 여자의 마음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나 보다.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깨닫는다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구두끈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무슨 뜻일까?
(23년4월11일, 화욜 강풍, 경포대와 바다 사이에 火魔 103동 럭키 지하주차장의 천장. P 들뜸을 청소하다. 가루가 날리고 바닥에 흩어진 흔적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일을 지금 하고 있는가?' 개잡부가 된 현실에 아연하여 놀란다. 그러면서 사무실에 앉아 이렇게 궁지에 빠진 나를 조소할것만 같은 정ㅇ칠과 서ㅁ상을 생각하니 한시라도 이 짓을 그만둬야 살 것 같아. 나는 곧장 관리실로 올라가 소장에게 4월 17일 부로 사직서를 쓰는 상상을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경험한다. 이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것만을 처분해야 하는 게 영선기사의 몫일 줄 누가 알았으랴? 기전실에서 쉬고 있을 때 서가 들어와서 물분사 어쩌고 했지만 꿈쩍도 안하고 티비를 봤다. "최기사님 뭐 살 거 있어요?" 라고 묻기에 아니요 단말마의 소리만 공허하게 뱉았다. 소장에게 사직 예길 하려니까 문득 어제의 상담이 상기되어 오고, 내 급변침에 실망하는 소장의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이 스치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세대 주방의 원터치수전이 노후되어 썩어 누수되는 것을 조치한 후 단톡에 올리고, 어제 종일 처리하려 했지만 입주자의 노회한 불受로 연기된 105동 105호 난방배관 누수를 단톡에 상재했다. 그러자 사무실 전화가 왔고, 정과장의 목소리.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세요! 그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그에게 냉소적으로 돌아섰던 태도가 회자되어 오고, 그가 내 노력에 대하여 긍정마인드임을 목소리로 확인하고 노여움과 설움이 눈녹듯이 녹는 것을 경험했다. 이건 뭐 완전한 롤러코스터 감정이 아닌가! 오전엔가 강ㅈ수반장에게 "사직해야 할까봐요, 너무 힘들어..." 라고 고백했었고, 오후에 강반장에게 다시금 변화된 심정을 고백했다. 강반장은 힘들면 혼자하지 말고 말해. 도와줄께. 하였다. 오늘도 세대민원을 강반장과 함께 다녔다. 강반장은 일에 있어서는 진심이다. 최ㅎ규반장은 뭔가 진심이 아니고 가심적이다. 금일 집자 終. 다 잊고 편히 자자. 나이 63세에 이 무슨 어이없는 짓이며 고민꺼리인가. 갑자기 롤러코스트의 하루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안사돈이 20킬로 쌀 두 푸대를 갖고 오셨다.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으니 그래서인가부다. 그 마음 쓰심이 다정하고 살갑다. )
[산풍고蠱]
좀 어려운 문제지만 구두끈이 끊어진 것은 주역의 괘상으로 [산풍고]이다. 배신을 당한다는 뜻이 있다. 살면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게 징조인 경우가 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미래를 예측하는 징조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징조일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반지를 갑자기 찾게 되었다면 이는 징조일 가능성이 많다.
(23.4.13, 04:10, 잠에서 깨어 좀처럼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컴 앞에 앉았다. 오늘은 목요일. 나무에 새싹이 움트는 날이니 분명 생기넘치는 좋은날이 될 것이다. 잠자느라 뒤척이느니 이 책의 제목처럼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을 읽자.
『주역』의 키워드는 변화(變化)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좋은 일이 다하면 나쁜 일이 온다(소장이 자신의 월급인상안을 영선기사인 내게로 이관해주었다고 '서'가 말해주었다(어제 12일). 분명 내게 좋아도 너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좋은 일이 다하면 나쁜 일이 온다'고 말한다. 어제 그 말을 들은 순간 좋은 일은 끝났다. 어떻게 내가 처신해야 나쁜 일이 급닥뜨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택뢰수괘는 ‘서로 기뻐하며 따르는’ 괘였다(☱☳). 그런데 ‘서로 기뻐하며 따르다’ 보면 어떻게 될까? 하나 둘 잘못된 일도 따르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결국 세상(관계가)이 어지러워진다. 그런 탓에 이어서 산풍고괘(山風蠱卦)가 나오는 것이다. 오늘은 ‘어지럽고 썩어 빠진 세상’을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알려주는 산풍고괘를 살펴보자.
산풍고괘의 모양을 보자면 위는 산괘이고 아래에는 바람괘다. 초록이 우거진 산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괘상과 괘의 의미가 쉽게 이해갈 것이다. 효의 위치도 산풍고괘를 설명하고 있는데 맨 위의 상구(양)가 아래의 초육(음)을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항상 강한 것이 약한 것을 핍박하지 않는가. 한자를 파자해서보면 고(蠱)자는 ‘좀 먹을 고’라는 뜻으로 벌레(虫) 세 마리가 피(血)을 빨아먹는 것을 상형화한 글자다. 즉, 벌레 세 마리가 피를 빨아먹는 것처럼. 악습에 물든 사람들이 세상을 ‘좀 먹고 있다’는 말이다.
蠱는 元亨하니 利涉大川이니 先甲三日하며 後甲三日이니라.
고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고는 크게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에서 먼저 삼일하며 갑에서 뒤에 삼일이니라.
그런데 괘사에서는 산풍고괘가 크게 형통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산풍고괘는 그 이름부터가 흉한데 도대체 뭐가 형통하다는 건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주역』이 변화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산풍고괘가 처한 상황은 흉하다. 하지만 군자가 큰 내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을 다스리면 길한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무 때나 무작정 달려든다고 해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총 7일 동안 ‘변혁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주역』에서는 선갑삼일, 후갑삼일이라고 한다. 선갑삼일이란 첫 번째 천간인 갑목(甲)을 중심에 두고 앞에 있는 세 개의 천간(辛壬癸)을 말한 것이고, 후갑삼일은 갑목을 중심에 두고 뒤에 있는 세 개의 천간(乙丙丁)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선갑삼일은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을 후갑삼일은 마무리하는 기운을 뜻한다. 신임계갑을병정(辛壬癸甲乙丙丁) 이 7일의 리듬에 맞춰 변혁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彖曰 蠱는 剛上而柔下하고 巽而止ㅣ蠱ㅣ라.
단왈 고 강상이유하 손이지 고
단에 이르길 고는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오고, 겸손해서 그침이 고라.
蠱ㅣ 元亨하야 而天下ㅣ 治也ㅣ오 利涉大川은 往有事也ㅣ오
고 원형 이천하 치야 이섭대천 왕유사야
고가 크게 형통해서 천하가 다스려짐이요, 이섭대천은 가서 일을 둠이요,
先甲三日後甲三日은 終則有始ㅣ 天行也ㅣ라.
선갑삼일후갑삼일 종즉유시 천행야
'선갑삼일후갑삼일'은 마치면 곧 시작함이 있음이 하늘의 행함이라.
象曰 山下有風이 蠱ㅣ니 君子ㅣ 以하야 振民하며 育德하나니라.
상왈 산하유풍 고 군자 이 진민 육덕
상에서 말하기를 산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蠱니, 군자가 이로써 백성을 진작시키며 덕을 기르느니라.
初六은 幹父之蠱ㅣ니 有子ㅣ면 考ㅣ 无咎하리니
초육 간부지고 유자 고 무구
초육은 아비의 고(事)를 주장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죽은 아비가 허물이 없으리니,
厲하야아 終吉이리라.
려 종길
위태하게 해야 마침내 길하리라.
첫 번째는 음효로 초효라고 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서 놀랐을 게다. 하지만 이 또한 『주역』만의 특이한 글쓰기 방식이다. 왠지 『주역』하면 특별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역은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져와서 쉽게 설명해준다. 초육은 똘똘한 아들이다.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벌여 놓은 일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일을 내 맘대로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서 이어나가야 한다.
象曰 幹父之蠱는 意承考也ㅣ라.
상왈 간부지고 의승고야
상에 이를기를 '간부지고'는 뜻이 죽은 아비를 이음이라.
九二는 幹母之蠱ㅣ니 不可貞이니라.
구이 간모지고 불가정
구이는 어미의 일(蠱)을 주장함이니 가히 바르게 못하느니라.
象曰 幹母之蠱는 得中道也ㅣ라.
상왈 간모지고 득중도야
상에 이르길 '간모지고'는 중도를 얻음이라.
두 번째에 양효가 와서 구이라고 한다. 산풍고괘에서 2효는 어머니 자리다. 이번에 아들은 어머니가 잘못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아버지에 이어 이제 어머니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하고 어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면 안 된다. 구이는 산풍고의 내괘인 손괘에서 중(中)을 얻은 만큼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부득불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존립자체를 부정하는 불효자식형을 생각한다. 종교 때문일 수도 있겠다. 더하여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지 생전 어머니 추회나 칭찬을 절대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동네를 관통하는 길을 막아 엄청난 분란을 일으킨 봉준이도 떠오른다. 주역 산풍고의 교훈을 저버린 그들의 삶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봉준이는 아마도 동네에서 왕따당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형은 재테크를 지혜롭게 하지 못해서 의정부 주택에 살지만 육체는 잘 건사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주역의 산풍고 괘 초육과 二구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주역의 위대함을 느낀다. 젊었을 때 이런 삶의 지혜를 얻고 방향타로 잡았으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텐데. 하지만 지금의 나도 그런대로 괜찮은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자위한다.)
九三은 幹父之蠱ㅣ니 小有悔나 无大咎ㅣ리라.
구삼 간부지고 소유회 무대구
구삼은 아비의 蠱를 주장함이니, 조금 후회가 있으나 크게 허물은 없으리라.
象曰 幹父之蠱는 終无咎也ㅣ니라.
상왈 간부지고 종무구야
상에 이르길 '간부지고'는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라.
세 번째는 양효로 구삼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대부분 삼효의 자리는 위태롭다. 그 이유는 삼효가 이미 내괘에서 중을 넘어서 끝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풍고괘의 구삼은 강건한 양으로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니 아버지의 일을 맡아서 하면서도 자기의 성질대로 하다가 조금 후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삼은 일하는 방식이 조금 과격하긴 해도 자신의 일을 야무지게 매듭짓는다. 비록 일을 해결하느라 아버지께 누를 끼치긴 하지만 전력으로 일한 덕분에 일이 깨끗이 해결되니 결국 큰 허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앞의 두 효에서는 일하는 동안 부모님의 뜻을 상하게 하지 않는데 무게를 뒀다면, 구삼에서는 아버지의 뜻은 조금 상하더라도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조언한다. 일을 잘 마무리 짓는 결단성 덕분에 아버지도 일에서 놓여나니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四는 裕父之蠱ㅣ니 往하면 見吝하리라.
육사 유부지고 왕 견린
육사는 아비의 蠱를 너그럽게 함이니 가면 인색함을 보리라.
象曰 裕父之蠱는 往앤 未得也ㅣ라.
상왈 유부지고 왕 미득야
상에 이르길 '裕父之蠱'는 가면 얻지 못함이라.
네 번째에 음이 있어서 육사다. 구삼이 내괘의 끝에서 강건한 양으로 과감하게 자기 일을 처리했다면 육사는 외괘의 첫 번째이자 유순한 음의 자리인 탓에 일처리를 자꾸 미루고 게을러진다. 그러다보면 일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므로 인색하다고 한 것이다.
六五는 幹父之蠱ㅣ니 用譽리라.
육오 간부지고 용예
육오는 아비의 蠱를 주장함이니, 써 명예로우리라.
象曰 幹父用譽는 承以德也ㅣ라.
상왈 간부용예 승이덕야
상에 이르길 '간부용예'는 이음을 덕으로써 함이라.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는 기특한 자식들!
다섯 번째에 음이 와서 육오다. 다섯 번째 효는 두 번째 효와 마찬가지로 괘 안에서 중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지위로 따지자면 인군에 해당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대부분 오효는 군주의 자리면서 동시에 길한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산풍고괘에서는 이 원칙이 통한다. 육오에서도 아버지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육오는 중도를 지키는 훌륭한 덕을 소유한 덕분에 아버지의 일을 하면서 나쁜 일은 현명하게 처리하여 명성을 얻고, 좋은 일은 잘 계승해서 덕을 쌓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기특한 오효인 것이다.
上九는 不事王侯하고 高尙其事ㅣ로다.
상구 불사왕후 고상기사
상구는 왕후를 섬기지 아니하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하도다.
象曰 不事王侯는 志可則也ㅣ라.
상왈 불사왕후 지가칙야
상에 가로되 '불사왕후는 뜻이 가히 법할만(본받을만) 함이라.
여섯 번째에 양효가 와서 상구다. 상구에서는 갑자기 왕이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효에서는 부모님의 일 처리가 중요했다면 효의 마지막 상구에서는 왕의 일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갑자기 부모에서 왕이 되었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라. 동양의 세계관은 부모와 자식 관계나 왕과 신하 관계가 같은 구도로 사유되었다. 상구를 부모로 설명해도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상구는 재물, 지위, 욕심 등 모든 면에서 지나친 자리가 된다. 이것을 설명할 때 부모보다 부귀를 많이 소유한 왕을 빌려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상구를 왕으로 설정한 것이다.
상구는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이때는 큰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며, 있는 욕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니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구의 역할은 무엇일까. 욕심이 아니라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자, 상구 이야기를 구성해 보자. 상구는 왕을 도와서 대업을 완수한 신하다. 이제 대업을 완성했으니 더 이상 힘을 쓸 이유가 없다. 그 때 상구는 대업에 따른 부귀나 명예는 바라지 않고 왕을 떠나 궁벽한 곳으로 가야 한다. 자신이 맡은 바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어떠한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 그것이 『주역』이 상구를 높이 숭상하고 본받으려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꼭 우리 자신이 벌인 일만은 아니다.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공업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업장도 있지만 부모님, 형제, 친구, 사회가 만든 업장을 분담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풍고괘에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들을 알려준다. 어떤 때는 너무 강하게 일을 밀어붙여서 말썽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미적거리다 비판을 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진두지휘한 일을 완수하였는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때도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칭찬이나, 인정, 혹은 물질에 대한 과보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고 꾹 참고 뭔가를 한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과보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라고 한다. 즉,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장을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장으로 진입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소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지금, 나는 주어진 역할을 잘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장으로 진입하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혼란하고 부패한 산풍고괘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매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외면하지 않고 때에 맞게 마무리하는 힘. 그러면서도 어떤 과보도 바라지 않는 마음. 그것이 결국 내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임을 산풍고괘는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데 괘사에서는 산풍고괘가 크게 형통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산풍고괘는 그 이름부터가 흉한데 도대체 뭐가 형통하다는 건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주역』이 변화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산풍고괘가 처한 상황은 흉하다. 하지만 군자가 큰 내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을 다스리면 길한 상황이 펼쳐진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풍고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소장의 배려에 대한 내 행동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장의 상황에 충실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장으로 진입하라! 지금 23.4.13일 시간 06:01,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한 후 잠깐 침대에 들어가 30분쯤 잠을 자려 한다. )
프랙탈(fractal)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는 부분이 전체를 닮아 있는 것을 말한다. 한 조각을 보고도 전체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 프랙탈이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는 우리 몸 전체를 반영하고 있기에, 의사는 우리 몸의 한 곳을 보고 병의 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부분과 전체가 닮아 있는 현상은 생명체에 가득 차 있다. 생물은 몸체가 생길 때 이미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도록 만들어졌다. (산풍고를 이미지에서 가져오기가 힘들었)
1 周易의 문을 열다
개념과 실제
삼각형은 3개의 직선이 모여 3개의 각을 이룬 도형이다. 우리는 실제로 삼각형을 그려 눈으로 그 모양을 볼 수 있다. 삼격형을 그리기로 한다면 무한히 많이 그릴 수 있는데,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삼각형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으며, 그 개념은 누가 삼각형을 그리든 안 그리든 이미 존재해왔다.
우리가 종이 위에 볼펜으로 그려본 삼각형은 우리 눈에 삼각형으로 간주되는 그 무엇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을 똑바로 그리지 않아도 비슷하게 삼각형으로 그려놓으면 그것을 삼각형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우리 마음속의 개념을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만물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이론이다. 개념이란 항상 실제 사물보다 먼저 있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 포옹을 하고 선물을 주고 만나서 기뻐하고 이윽고 결혼을 하고자 하면 이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누가 그것을 실현해 보이지 않았어도 언제나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보자. 우주는 현재 팽창하고 있다. 팽창에 주목하자. 팽창이라는 개념은 우주와 상관없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인간이 팽창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는데, 마침 우주가 팽창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즉 팽창으로 우주를 설명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서로 당긴다는 개념도 별이 있든 없든 원래 있던 개념이다. 중력을 찾아낸 뉴턴이 있건 없건 별들은 서로 끌리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별들이 없어도 끌린다는 개념은 저 홀로 그냥 있었다.
팽창과 축소. 이것을 주역에서는 양의 속성, 음의 속성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는 팽창과 축소 말고 양과 음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개념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만물은 개념을 잘 정의해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대충 말해서는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사는 우주는 팽창에 의해서든 시간에 의해서든 항상 새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새로워진다!!! 이 개념은 팽창과는 달라 보이지만 새로워진다는 것으로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매 순간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 이것은 양의 속성이다. 양으로 우주를 설명하면 '팽창'과 '새로움'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우주에는 팽창과 새로움 말고도 아주 많은 개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양陽일 뿐이다.
우리가 만일 양의 개념을 모른다면 우주를 아무리 연구해도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다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다른 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양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앉아서 연구만 해도 우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저 멀리에 있는 우주 밖을 관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양과 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주, 즉 세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을 잘 모르고 살았을 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양과 음만으로도 모든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 주역을 공부하는 중이다.
하늘과 공간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지구가 둥근지 몰랐다. 땅은 평평하게 계속 이어지고 그위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바다 끝에는 절벽이 있는 것이었다. 태양은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낮에 나타난다. 그리고 별과 달은 밤에 나타난다. 이들은 땅 속에 뚫려 있는 동굴을 통과하여 동서로 순환한다. 더 깊은 땅 아래에는 지옥이 있다. 옛사람은 태양이 그리 크지 않은 불덩이일 뿐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별은 그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뾰족한 물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생각에 제동이 걸렸다. 갈릴레오가 등장하여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교황청은 발끈했다. 그들 생각에 지구는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태양이나 달, 그리고 모든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평생토록 가택에 연금당했다.
갈릴레오가 죽던 날 태어난 또 한 사람의 천재가 교황청의 진리에 도전했다. 그는 바로 뉴턴이었다. 이 사람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들고 나와 교황청을 설득했다. 결국 교황청은 손을 들었고 인류는 우주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우주는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었다. 교황청이든 엉터리 철학자든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 대자연은 저 스스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누구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우주를 보고 말을 해야 했고,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을 설명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인류의 여명기는 서서히 막이 올랐다.
옛날의 하늘은 지구의 지붕이고,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을 뿐 무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늘은 단순한 지붕이 아니고 한없이 열려 있는 공간이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분명해졌다. 이곳에 땅이 있고, 저 끝없이 먼 곳에 하늘이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세계를 '천지간'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하늘은 끝이 없건만 땅은 이 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세상은 끝없이 넓은 것이다.
이제 여기서 다시 지구로 돌아오자. 끝없는 것을 계속 다루다 보면 피곤해진다ㅋㅋ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하늘과 땅 사이라고만 해두자. 하늘 밖을 논해서는 안 된다. 하늘 밖도 그저 하늘이다. 이 문제는 차차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늘을 일단 상징기호로 표시해두자. 끝없다는 말을 계속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하늘은 기호로 '☰'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주역의 기호인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무한이란 뜻으로 알고 있으면 된다. '☰'을 조금 설명하자면 이는 양의 극한을 의미하는데, 양이란 간단히 말하면 확산하고 있는 존재다. 양의 기호인 '─' 하나는 양의 성질인 확산을 뜻한다. 이것을 3중으로 만들어 '☰'로 표현하면 그때 무한이 되는 것이다. 한자로는 천(天)이라고 말한다.
이제 하늘을 정의했으니 그 반대 개념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땅이다. 하늘이 먼저 생긴 후에 땅이 생긴 것이므로 하늘을 먼저 이야기해야 맞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간이 먼저 생기고 별들이 생겼다는 뜻이다.
땅은 주역에서 ☷ 로 표현하는데, 이는 음 덩어리라는 뜻이다. ╺ ╸이 하나만 있으면 덩어리가 아니고 그냥 음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양의 반대 개념으로서 축소하는 성질을 가진 존재 정도로 알아두면 된다. ╺ ╸이 3중으로 모여 '☷'이 되면 이는 음의 극한으로, '☰'의 반대 개념이 된다.
여기서는 '☰'과 '☷' 사이가 세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모든 것이 천지간, 즉 '☰'과 '☷'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과 '☷' 사이를 떠나서 그 어떠한 개념도 존재할 수가 없다.
(23.3.4, 21:03 봄기운 완연. 꽃이 피거나 움이 돋진 않았지만 공기에서 이미 봄은 되돌릴 수 없는 밀물처럼 들이닥치고 있다.拾二萬?)
땅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지표면에 빙 둘러 자리 잡고 있다. 이때 하나의 걱정이 떠오른다. 저 밑에 있는 사람이 떨어지지 않을까? 콜럼버스의 항해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밝혀지자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이 이것이었다.
이 문제는 뉴턴이 물질은 서로 잡아당긴다는 근원적 원리를 밝혀 해결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지구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원래 지구표면은 평등하다. 위아래가 없는 것이다.
"둥글다고? 그럼 저 밑에 있는 사람은 왜 안 떨어져?"
할머니는 만유인력을 이야기해 주자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만유인력이 도대체 왜 존재하느냐를 따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지구가 허공에 왜 떠 있느냐고도 물었다. 참 어려운 이야기였다. 지구에 대해 알기 위해서 당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만유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런 힘이 어째서 있느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할머니는 땅이 평평하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세상에는 만유인력처럼 잡아당기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음陰이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은 세상에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서로 끌어당겨서 모여 있는 것은 땅이다. 이는 땅이 있는 이유고, 그것은 주역에서 ☷으로 표현할 뿐이다. 땅은 음 덩어리다. 그리고 그것은 잡아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용어로는 물질이다. 물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음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음 따로 물질 따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주에 음이라는 힘이 없으면 별도 없고 지구도 없다. 여기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르면 이는 그것의 이름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음이라고 하면 이는 근원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땅이 음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의 성질이 땅을 만든 것이다.
이제는 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된다. 물질이 뭐냐, 땅이 뭐냐고 묻지 말고 음이 무엇이냐고 묻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심오한 원리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음은 ╺ ╸으로 표현되고, 양은 ―으로 표현된다.
사물은 기호로 표시하면 그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 세상엔 ⚊과 ╍ 이 존재할 뿐이고 그 외의 것은 결단코 없다.
우리는 잠깐동안에 세상의 근원을 알아버렸다. 이에 따라 즉각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음의 반대라는 양은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서로 반대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는 모든 것의 원리다.
과학자들은 만유인력을 발견하자 자연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반대의 힘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뉴턴도 만유인력, 즉 음을 발견했지만 양을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대자연의 기본 이치는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반대도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뉴턴은 그 생각까지는 못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이미 주역에서는 음과 양은 서로 반드시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원리를 말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이 원리를 진즉에 알았다면 만유인력의 반대현상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뒤늦게나마 이것을 찾아냈다. 사실 이것은 별게 아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법이다. 즉, 땅을 찾아낸 이후 양이 나타났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양은 음과 마찬가지로 그저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고 명명했다. 이 에너지는 하나의 분명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다. 만유인력과 정확히 반대다. 이 힘은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에 산산이 부서져서 덩어리를 이루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만유인력은 당기고 암흑에너지는 밀어낸다. 즉 음과 양이다.
양 에너지는 공간을 계속 팽창시키고 있다. 팽창은 양의 기본 성질이다. 음의 성질과는 반대인 것이다. 우리의 우주 공간에 양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은 계속 팽창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주가 현재 팽창한다는 것은 오래전에 이미 발견되었다(칼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내 책장안에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몰랐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역 원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역에는 태극이 있고, 이것이 음양을 낳았다(易有太極 是生兩儀)." 만유인력과 암흑에너지가 어디서 왔느냐고 굳이 묻는다면 태극에서 왔다고 대답할 수 있다. 태극이 무엇인지는 논하지 말자(나 역시 태극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씀'이 아닐까ㅋㅋ 이 지점은 정말 딱하게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빅뱅이 시간과 공간의 출발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빅뱅 이전의 상황은 누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양에 대해서만 집중하자. 주역에 태극이 있다는 것은 세상, 즉 음양이 태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절대 원소인 음양을 발견했다. 하지만 관찰하지 않았을 때에도 음양은 존재했다. 만유인력과 암흑에너지를 보고 음과 양의 개념을 세운 것이 아니다. 음양의 개념은 저 스스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야 음양의 개념에 따른 우주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원리가 있으면 실제도 있는 법이다. 원리가 먼저 있다. 실제는 원리에 의해 존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자연의 모든 것에 대해 음양을 활용하여 그 궁국을 파헤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우주에 대해 고찰해왔는데, 이는 음양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주역은 이미 그 원리를 1만 년 전부터 밝히고 있다. 자연과학이 발달할수록 주역의 위력은 점차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
만약 별들의 인력이 팽창력을 이긴다면 종내에는 모든 별이 한곳에 모여들 것이다. 소위 빅크런치(big crunch, 대붕괴 또는 대수축) 상태가 된다. 빅크런치는 빅뱅(대폭발)의 반대개념이다. 현재의 우주는 팽창력이 더 커서 빅크런치 상태가 되지않고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10만 년쯤 지나면 지구를 돌고 있는 달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멀어져 더 작게 보일 것이다.
우주는 팽창한다. 그리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한다. 팽창은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에서도 이루어진다. 시간의 팽창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까지 논할 필요가 없다. 공간과 시간이 함께 팽창하는 중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시공時空, time and space'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시간과 공간을 따로 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뉴턴이 살았던 당시만 해도 시간은 시간이고 공간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실체는 시공으로, 이를 둘로 떼어낼 수 없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시공이 팽창하고 있다."
이제 주역의 괘상으로 세상을 표현해 보자. 세상은
이다. 이는 천지부天地否라는 괘상인데, 하늘과 땅이 멀어지고 있다(관계가 끊어짐)는 뜻이다. 옛사람은 세상이 만들어진 것을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천지부라는 괘상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천지개벽이란 하늘과 땅 사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음양의 논리로 풀어보면 무한한 섭리가 들어 있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종교나 철학,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대상이 세상이란 무엇인가?다. 하지만 이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천지부로, 이 괘상 속에 세상의 뜻이 다 표현되어 있다. 이 괘상을 자세히 음미하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세상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점
우주가 탄생한 지 1초쯤 지났을 때 우주의 크기는 1센티미터 정도였다. 이 1센티미터에 오늘날 하늘에 있는 수천억 개의 은하, 그리고 은하 내 수천억 개의 별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터져 나와 하늘로 계속 퍼져 나갔다. 소위 빅뱅이라고 하는 것인데, 과학자들은 137억 년 전에 빅뱅이 시작된 것으로 추산한다. 그 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138억 년 전이란 과거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137억 년 전 과거만 존재한다.
빅뱅은 도대체 무엇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는 무無의 요동에 의해 생겨났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적용한 결과였다. 백뱅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별들이 눈덩이처럼 뭉쳐 있는 형상 같다. 하지만 별들은 한참 후에 생긴 것이다. 이는 팽창하는 곳곳이 또 팽창했다는 뜻이 된다. 지금도 우주는 각각의 장소에서 팽창하고 있다. 팽창의 원점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빅뱅을 주역의 괘상으로 표현하면 바로 지천태地天泰, ...다. 이 괘상은 시작의 힘이라는 뜻이 있다. 요즘 컴퓨터에 흔히 쓰이는 초기화initialization된 상태를 말한다. 즉 빅뱅 상태는 우주의 초기화다. 물론 그전 상태가 존재했기에 초기화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지만 빅뱅 이전은 잠시 덮어두자.
이 초기는 하나의 개념이다. 대자연의 모든 사물은 초기 상태가 있다. 시작점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인생도 시작점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태어나기 전에서 지금으로 초기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전생이다. 하지만 이런 껏까지 논의할 필요는 없다. 단지 만물은 시작점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시작점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 '태엽을 감았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우리 인생 역시 계속 늙어갈 뿐 태엽을 감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 각각의 사건은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그 무엇을 주역에서는 지천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천태 괘상의 모습을 살펴보자.
위에 음☷이 있고 아래에 양☰이 있다. 원래 양은 위에 있고 음은 아래에 있다. 그런데 지천태는 음양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존재한다. 양이 애써 내려와 있고, 음이 애써 올라가 있다. 이를 두고 태엽을 감았다거나 교차했다거나로 표현할 수는 있다.
그 상태가 바로 지천태인데, 이 괘상은 음양이 서로 교차(자리바꿈) 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힘이 비축되어 있다. 이 힘이 바로 시작의 힘이다. 온 세상의 모든 시작은 힘이 있어야 출발할 수 있는 법인데, 그것이 바로 지천태에 내장된 힘이다. 자본.연애.젊음.건강 등이다. 시작할 수 있는 힘은 그 무엇이든 간에 지천태 상태라고 말한다. 신선이 수련하는 것도 몸이 지천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초기화)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출발의 힘은 강해야 할 것이다. 지천태는 그 강함을 상징한다. 지천태가 갖는 내면의 섭리는 주역에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다. 음양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드시 '대충' 이해해야 한다. 주역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급히 달려들다 보면 논리의 바다에 표류할 수 있다. 주역의 괘상은 본시 '종합synthesis'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면을 먼저 살피지 않는 법이다.
사물의 뜻은 사물과 비교함으로써 분명해진다.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는 비교를 하면 저절로 밝혀지게 된다. 만일 자기 자신을 알았다 해도 다른 사물과 비교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클로드 새넌이 정보에 대하여 말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이른바 정보에 뜻이 없다는 말이다. 정보가 고유의 뜻을 가지려면 비교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지천태는 천지부에 비교되는 괘상이다. 지천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지부와 비교하여 뜻이 어째서 바뀌었는지를 음미해보면 된다 지천태, 즉 시작의 힘은 신성한 것이다. 우주 대자연의 현상은 모두 이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천태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수련이다.
영혼과 몸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흙이란 멀리서 크게 보면 별이고, 가까이 보면 땅이다.
땅, 이것은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땅을 물질matter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무게를 잴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물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뉴턴식으로 말하면 '서로 잡아당기는 존재'인데, 더 깊은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이 음이다. 음은 무게가 있고, 만질 수 있고, 부치가 있고, 서로 잡아당기고, 딱딱하고, 땅을 이루고 있는 존재다. 우리의 몸은 어떤가? 이것도 물질, 즉 음이다.
영혼은 무엇일까? 이것은 물질이 아니다. 즉 음이 아니다. 음이 아니면 무엇일까? 양이다. 음이 아니면 양이고, 양이 아니면 음이다. 세상은 복잡하지 않다.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기 때문에 각자 갈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이때 음인 몸은 땅이 잡아당겨 흙이 된다. 몸의 일부는 공기가 되는데, 공기도 우주전체에서 보면 땅이다. 우리의 몸은 아무리 깊게 말하고 돌려 말해도 물질이고, 땅이고, 흙이고, 음이다.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이는 무슨 뜻일까? 영혼은 물질이 아닌 양이다. 그래서 땅이 그것을 잡아끌 수가 없다. 영혼은 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양이란 원래 달아나는 존재다. 확산하는 성질이 있어 저 멀리 날아갈 수가 있다. 영혼은 멀리멀리 끝없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존재다. 그 종점은 어디인가? 이것은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저 하늘로 간다고 해두자. 하늘은 양이 무한히 모여 있다는 뜻이다. 양은 음과는 달리 멀리멀리 가버린다.
이를 주역의 괘상으로 표현하면 '천지부'
가 된다. 죽음이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면 삶이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 아니고 무엇이랴. 인생이 무엇이냐를 두고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으로 길게 논할 필요도 없다. 인생이란 삶이라는 것인데, 이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죽음은 천지부...로, 종말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종말에 가면 천지부 상태가 된다. 부부도 함께 살다가 헤어지면 천지부가 된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라 천지부 안에서 살고 있다고 이해해도 된다. 단순히 우주라고 말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뜻을 부여하여 천지부라고 말하면 우리는 삶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 수 있다. 종래에 가면 천지부가 되지만 그 동안은 천지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도. 사업도. '망했다'는 말은 천지부가 되었다는 것과 완전히 같은 뜻이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 정성이 없다든지 혼이 깃들어 있지 않다고하는 것은 바로 천지부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에 열정이 식은 상태가 바로 천지부이다. 군인의 사기, 젊음의 기상은 천지부가 아닌 상태를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음양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사람이 노래를 할 때나 박수를 칠 때도 영혼과 육체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재미가 없다. 죽음은 인생 어디에나 깔려 있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단단히 붙들어 매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모골이 송연히 일어선다).
삶과 죽음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돌아가는데, 하늘은 우주 저 끝보다 더 넓은 곳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는 무한대에 이를 수 있다. 몸의 경우는 음이고 흙이 본향이다. 땅으로 회귀한다. 이것이 죽음이다.
삶이란 영혼과 육체가 접속한 그 자체를 말한다. 주역의 괘상으로는 지천태地天泰라고 부른다. 주역의 괘상으로는
로 표현되는데, 이를 지천태라고 부른다.
삶인 지천태 괴상은 죽음인 천지부 괘상과 정확히 반대다.
먼저 죽음이란 것을 보면
로 되어 있는데, 이는 양인 ☰이 위에 있고 음인 ☷이 아래에 있다. 양은 무엇인가? 위로, 밖으로 멀리 달아나는 존재다. 확산이라고 해도 좋다. 천지부는 양이 위에 있어서 달아나기 쉽다. ☰ 이것 위에 막아서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양이란 본시 위로 향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몸이 가로막을 때만 정지한다. 인간이 죽으면 몸이 영혼을 잡을 기력이 없어진다. 그래서 영혼은 술술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괘상 천지부는 이것을 표현해주고 있다. 위로 향하려는 양이 위에 있으니 오죽 잘 도망가겠는가. 새가 옥상에 있는 격이다. 화가 난 남편이 문 입구에 가 있는 것과도 같다. 반면 천지부 괘상의 아래에 있는 ☷은 음으로서, 아래에 있으니 계속 밑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래서 천지부를 죽음으로 표현한다.
(어제23.3.9, 목요일. 청천동의 한 횟집에서 서ㅁ삼대리와 막걸리 두병반을 먹었다. 합5병. 오후에 시멘트 바르면서 불화가 발생되었고, 그로인하여 술한잔하자고 내가 권하였고 그가 다음에 하자고 하다가 받아들여주었다. 불화가 밸생하고 나서 나는 그 자리를 떴다. 그는 내가 하던 시멘트작업을 마무리했다. 즈음 나도 닥쳐온 퇴사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헤메다가 마음의 정처를 새로 하였다. 기전실에서 나와 현장에 가서 주차금지를 들고 뒷정리를 하려할 쯤에 정과장에게서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그리하여 영선창고에서 후두둑이는 비가 떨어지고 이런저런 위로를 정과장으로부터 들었다. 그 이야기의 말미에 내가 서대리에게 전화하겠다고 하니, 하지 마세요. 하던 정과장. 그러나 나는 전화하여 풀겠다고 했다. 그가 안받을 줄 알았는데 전화를 받았고, 나중에 차로 귀가하면서 그가 말했다. 서씨가 마음이 급해요. 난 뒤끝이 없어요. 그는 청천동에서 나에게 형님형님 하였고 16일만 일하고 그만둔 내 선임을 다음에는 불러서 같이 먹자고 말하였다. 묘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 16일 만에 그와 그토록이나 친해졌을까. 25년만에 퇴직한 이유는 처형의 암 때문이며 우리는 서로 와이프의 태를 모티터를 뒤져 자랑해댔다. 그의 부인은 정말 대단한 미인상이었다. 운천을 헤메다가, 내가 제대한 후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 땅의 불일치로 계속 철원과 운천을 헤메이는 것이었다. 88번 버스를 타고 귀로. 오늘 1동 1302호의 원터치 수전을 교체하여 주었는데, 맥주를 줬다. 홍삼액기스한컵에는 따스한 고마움이 스며 있다. 술할줄 아세요? 라고 물어서 젊은 날 데어서 막걸리로 바꿨다고 말하였다. 맥주를 줄려고 물었구나! 자치회장에게 맥주받은 예기 절대 하면 안되고, 이웃에게도 절대 우리가 해줬다는 예기 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손가락을 걸었다. 다 끝나고 샤워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던 잠시, 먼지가 끼어 막힌 것이었던 것. 씻어서 거꾸로 닦고 따뜻한 물을 만지며 인정의 따뜻함을 생각했다.)
(23.3.11, 토요일. 골목회 새 재회일. 1년 4회의 첫날. 영림처제 자궁적출 병문안 예정. 바깥은 스모그의 아침. 새벽 05:40분쯤 일어나서 이 자리에 앉아 집자를 시작..., 하려다가 '들어가기'에서 이런저런 첨사를 더 넣다가 한시간이 흐른다. 06:27에 눈이 곤해져서 30분을 세팅해놓고 다시 침대로. 그러고는 08:38 현재에 이르러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
반대로 삶을 보자. 괘상 '지천태
'는 영혼, 즉 양이 아래에 있는데 위에는 뚜껑이 있는 형상이다. 뚜껑이란 '몸'을 말한다. 삶의 모습인 지천태는 영혼이 몸에 깃들어 있고 몸(지, 땅)이 영혼(천, 하늘)의 힘에 의해 떠올라 있는 것을 의미한다. 병약한 노인이 "몸이 천근만근이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영혼의 일부가 몸을 떠나 있어서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 젊은 사람들이 몸이 가볍다고 말하는 것은 영혼이 몸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날아갈 것 같다' 는 표현도 같은 의미다.
우리의 우주는 현재 팽창하고 있는데, 이는 우주의 내면에 아직 양의 기운, 즉 ☰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 양의 기운이 다 달아나버리면 우주는 '천지부'의 상태가 된다.
우리는 현재 살아 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지천태의 상태라는 뜻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아직 온정이 남아 있으면 지천태의 상태이며 양의 기운을 잘 살려내면 재결합이 가능하다.
문제는 양이 위에 있느냐 아래에 있느냐다. 기운은 아래에 충만해야 좋은 것이다(배꼽 위보다 배꼽 아래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인생에 있어 허리 아래에 기운이 없어지면 이는 죽음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얼굴이 뜨거워지면 이는 죽음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도 젊은 사람이 많고 그들이 힘이 넘치면 이는 지천태로 표현된다. 즉 희망이 있는 사회다.
여기서는 양이 깊숙이 있고 음이 높게 가 있으면 삶이고, 음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양이 위로 날아가고 있으면 죽음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있다.
위대한 힘
영혼의 힘, 이는 분명 뇌의 힘은 아니다. 뇌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힘은 ☰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주 내면에 가득찬 힘과 완전히 같다. 우리의 영혼은 당초 우주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다. 비유하자면 영혼은 샘이고 우주의 근원에 있는 양의 힘이다.
몸은 스스로의 기능에 의해서도 유지될 수 있지만 영혼을 통한 우주의 원천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또한 영혼의 힘이 강해야만 뇌는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영혼의 힘이 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유난히 생명력이 있는 사람(이것은 매력이 아닌가!). 영혼의 힘은 겉으로는 생명력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영웅을 생각해보자. 보통 사람과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바로 영혼의 힘이다. 이 힘은 육체의 힘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항우, 장비, 여포는 천하장사이지만 이들이 공자보다 힘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계백장군이다 강감찬 장군, 연개소문, 징기스칸 등도 남다른 기상이 느껴진다. 이 기상이 바로 육체의 힘이 아닌 영혼의 힘이다. 영혼의 힘이 몸 밖으로 분출될 때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킨다. 흔히 정신력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영혼의 힘이다. 이러한 힘은 육체적 기술을 넘어서 위력을 발휘한다. 베토벤, 모차르트, 피카소 등도 그영혼의 위력이 대단하다.
옛 성인은 이 힘을 호연지기浩클호然之氣라고 말하며, 이 기운은 우주에 가득 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자연의 안에는 원래부터 양의 기운이 가득차 있었다. 이 기운은 어디서 온 것이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양의 기운에는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 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자연은 양이 있은 연후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자연에 가득 찬 양의 기운은 본시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존재다.
우리의 영혼은 이 기운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
하늘의 기운→ 영혼→ 뇌→육체→사회
우리의 영혼은 근원인 하늘의 기운(그냥 하늘)과 물질인 뇌를 매개하는 존재다. 따라서 영혼의 힘이 강하면 그 작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위대한 사람은 영혼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그토록 성취하는 것이 많았던 것이다. 영혼의 기운이 많으면 운마저 좋게 한다. 양의 기운으로 성취하지 못할 바가 없는 것이다(천공의 허여멀끔하고 단정한 얼굴과 치렁한 머리묶음이 생각나게 한다. ).
그렇다면 영혼의 힘은 주역에서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는 건위천(乾爲天,
으로 나타낸다. ☰의 기운이 극한으로 충만함을 나타낸다. 건위천의 기운은 우주 대자연을 유지하는 힘이거니와 우리의 영혼도 이 힘의 방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인생은 이 힘을 기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영혼의 힘은 육체가 살아 있을 때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로아 지금 갓 세살. 지금은 각종의 말을 하고, 아버지에게 "책이요, 책." 이라는 말까지도 한다. 그런데 더 간난아기였을 적에는 영혼이란 게 없었다. 그랬는데 말을 하면서부터 영혼이 깃들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자의 어느 날 뒤통수를 만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툭 튀어나와 손바닥으로 감쌀만큼 만져졌던 것이다. 뇌의 크기와 영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 영혼은 생사를 초월한 존재로, 그 힘은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더 깊게 들어가면 종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만 집중하자. 요점은 하늘의 기운이 인생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도인이든 생활인이든 영웅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하늘의 기운을 한없이 끼워가며 살아야 한다.
(우측 팔 알통아랫부분이 아파서 365한의원에서 주사를 두 번 맞았으나 차도가 없다. 아내가 통증의학과 가자고 한다. 23.3.11, 10:12, 집자 終)
(계산역4거리의 안경집. 그동안 사용했던 갈색 다초점은 테가 바뀌면서 우측이 촛점이 바뀌었고, 그로하여 나는 눈떨림이 발생했다고 믿는다. 1미터 짜리 안경 22만원. 색깔이 변하는 보호안경 17만원 합해서 37만원이 나왔다. 아내는 10만원만 입금해달라고 말했다. "안경사면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라고 인살 건넸다.
공자는 주역의 건위천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天行建, 君子以自强不息)."
인생이란 식물처럼 그저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하늘의 기운, 즉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영혼의 힘을 계속 키워 나가다보면 마침내 하늘과 관통하게 되는데(이것이 바로 그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때에 이르면 인생에 있어 그 성취하는 바도 끝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영혼의 기운을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양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양은 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일뿐이지 다른 원인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는 自强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양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저 힘을 내라. 이유 없이 명랑해야 하며, 무서워도 용기를 내야 한다. 무서운 밤길도 혼자 걸어보고, 귀신 나오는 무덤가에 누워도 봐야 한다. 부끄러워도 나서봐야 하고, 쉬고 싶어도 일부러 일어나야 하며, 귀찮아도 앞장서야 하고, 미운 놈도 사랑해줘야 한다. 양이란 先行하는 것이지 이유를 기다리지 않는 법이다. 스스로 애써 행하다 보면 영혼이 활발해지며 급기야는 우주의 근원과 관통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은 점점 양의 기운이 약해질 것이다. 누가 방해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스스로 못 일어나는가. 자기 자신이 원수일 뿐이다. 내 자신이 나를 막아서고 있으니 어찌 원수가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재미있는 것만 재미있어 하면 마침내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점점 우울해지며 영혼은 시들해진다. 이래서는 살아가는 보람이 없을 것이니 죽을힘을 다해 일어서라. 아니 그냥 일어서면 된다. 안 된다는 이유를 달지 말고 하면 다 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두 번째 방법을 살펴보자.
[地雷復복]
[地水師]
[뢰지예]
[수지비]
[重地坤]
괘상의 흐름을 보면 맨 아래에 있다가 위로 점점 올라가다가 곤에 이르러 양이 완전히 빠져나간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양이란 위로 빠져나가는 존재니 그것을 가둬놔야 한다는 것이다. 양의 기운을 아래쪽에 가둬놓는것, 이것이 바로 양의 기운을 기르는 것이다.
양의 기운은 가둬놓으면 스스로 성장한다. 진득한 사람은 기운이 쌓여나가고 촐랑대는 사람은 기운이 소진되는 법이다. 인내,겸손,침묵,평화,안정,용서,양보,절제,예의,긍정 등은 양의 기운을 가둬놓는 성질이 있다.
건위천 괘
초효에서는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물 속의 용은 때가 될 때까지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기운이란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힘이란 바로 하늘의 힘, 즉 영혼의 힘이다. 이것을 무엇에 쓸까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책에는 이곳에 화살표로 뽑아 四拾을 적어 놓고 있다. 안경값을 말함일 게다). 양이란 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존재니 열심히 영혼의 기운을 길러나가야 할 뿐이다. 온 우주에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결단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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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주역공부를 위한 기초
주역의 시작
문헌에 등장하는 내용을 간추려보면 주역은 5,000년 전쯤 만들어진 것 같다. 한편 『환단고기』에서는 주역이 9,000년 전 복희씨(伏羲氏)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복희씨는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로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인두사신)을 가 지고 있는데, 이 복희씨가 주역을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공자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문왕과 주공은 공자가 태어나기 1,000년 전 인물이다. 그 문왕이 구체적으로 주역을 연구한 기록이 있고, 그가 쓴 글도 내려온다. 주공도 마찬가지다.
주역 원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멀고 먼 옛날에는 글자가 없었는데, 후에 성인이 나와 주역의 괘상 택천쾌(澤天快,
)를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上古 結繩노끈승而治後世聖人 易之而書契 百官以治 萬民而察살필찰 蓋덮을개取諸모두제快)."
무슨 뜻일까? 간단한 이야기로, 주역의 괘상은 인류가 아직 글자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하기 전에 출현했다는 뜻이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괘상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주역 원전에 또 이런 말이 나온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동굴 속이나 벌판에서 살았는데 후에 성인이 나와 주역의 괘상 뇌천대장(雷天大壯,
을 보고 집을 만들었다(上古 穴居而野處 後世聖人 易之以宮室 上棟마룻대동下宇 以待風雨 蓋取諸大壯)."
이는 무슨 뜻인가? 주역의 괘상은 집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글도 없고 집도 없던 때는 언제인가? 오천년이나 1만 년 전이 아니다. 수십만 년 전이다.
주역의 괘상은 현대의 문명으로도 그 해석이 몹시 버겁기 때문에 석기시대 인류를 위해서 하늘이 내려보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좀 더 그럴듯한 해석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는 주역의 괘상이 도대체 무엇이냐이다. 괘상의 뜻을 알게 되면 그것이 어째서 먼 옛날 지상에 있게 되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괘상은 옛 성인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이 무엇인가를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인이 괘상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찾아야 한다.
음양은 어떻게 다른가?
삶이란 양이고 죽음은 음이다. 높은 것은 양이고 낮은 것은 음이다. 과거는 음이고 미래는 양이다. 세상이 어려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양 쪽으로 가면 계속 더 깊어지는 양이 있다. 그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음의 개념을 짧게 정의할 수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음이니 양이니 말하지 않고 기호 —과 ╺ ╸으로 표현한다.
양의 대표적인 성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활력이다. 무한히 살아 움직이는 것, 이것이 활력이다. 음은 활력을 가급적 억제하려는 힘이다. 음은 어째서 양을 방해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양이 있으니 음이 있을 뿐이다. 그래야 평등하기 때문이다.
보일러가 계속 뜨거워지기만 한다면? 신호등도 파란불만 있으면? 자동차도 엑셀만 있으면? 인간의 행동도 전진해야 할 때가 있고 자제해야 할 때가 있다. 전진과 자제는 서로 보완하면서정밀하게 목표에 이를 수있게 한다. 음양은 서로 반대이면서 서로 약점을 보완해준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칼날 위에도 설 수 있으나 중용에 능할 수는 없다(自刃칼날인可蹈밟을도也 中庸쓸용不可能也).
중용이란 바로 음양의 상호보완, 즉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양이 없으면 우주는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고 음이 없으면 창조된 우주는 정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자는 말했다.
"만물은 유에서 오고 유는 무에서 왔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御無).
여기서 무無는 무엇일까? 무는 그 무엇도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닌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그 무엇'이니 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유有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없었던 것에서 생겼을 뿐이다. 그래서 '무가 유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자식이 없었다가 이제 생겼다면 무가 유를 낳았다는 뜻이다. 이렇듯 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음보다 먼저 있었다.
無의 성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없음마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새롭다고 볼 수 없다. 없음에 또 없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라는 것은 있음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만들어 내는 힘, 이것은 바로 양陽이다. 화가는 여백에 그림을 만들어 낸다. 작곡가는 소리 없음에서 음악을 만들어 낸다. 우주도 애당초 없었던 것이 생겼다. 즉 무에서 온 것이다.
없음이란 것은 있음이란 것을 창조하기 위해 계속 기다린다. 양의 속성이 바로 이것이다. 없는 상태에서 있는 상태로 가려는 것. 이것은 모든 있는 것의 원동력이다. 사물은 있고 나면 변해가는데 이것도 변화 없음에서 변화 있음으로 가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무의 생동력을 실존實存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양에 다름 아니다. 양이란 가만있지 못하는 존재다. 반면 음이란 가만있는 존재다.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양이란 항상 여기에서 저기로 가고자 한다. 저기에 가서도 또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한다. 양이란 도달점이 없고 오로지 출발점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간으로, 시간은 가만있지 못하는 양의 성질 때문에 생긴다. 사물은 시공의 일부로, 그 속에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끌어안으며 충기로 화합한다."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양과 음은 고도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를 태극太極이라 말한다. 태극은 음양이 서로 화합하여 완벽한 균형을 이룬 것이지만 이는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다. 양은 죽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탈출을 시도한다. 우주는 대칭이 깨지면서 발생했다. 그 이후에는 다시 대칭성을 만들어가는데, 이는 음이 양을 잡아놓은 결과다. 대칭은 또다시 비대칭을 만들기 때문에 변화는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사물은 음의 '하지 말자' 는 견해와 양의 '하자'는 견해가 서로 절충하면서 임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해당된다. 만약 양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밖으로 날아가 온데간데 없이 될 것이다. 또한 음만 있다면 그것은 안으로 숨어들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양은 음을 살리고 음은 양을 죽인다. 그로써 조화를 이루고 작용은 끝없이 전개된다.사물의 작용은 끝 간 데 없이 계속되건만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일찌기 스티븐호킹 박사는 대자연에는 미래를 아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이는 양과 음의 성질 때문이다. 양이 음으로부터 탈출할지 음이 양을 잡아들일지 누가 알겠는가.
자연의 4가지 작용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개념은 딱 두 개밖에 없다. 바로 ╺ ╸과 ━이다. 이것이 서로 만나면 4가지가 된다. 즉
이는 4가지 정보 또는 개념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대자연 속에 있는 정보를 좀 더 세분할 수 있게 되었다. 4가지 개념, 즉
은 음과 양으로 다시 환원시킬 수 있지만 우리는 보다 세분화된 개념을 찾고 있는 중이다.
태음은 음끼리 만난 것이고 태양은 양끼리 만난 것이다. 소음은 음과 양이 만난 것인데, 음이 위에 있고 양이 아래에 있다. 사물의 만남은 위치에도 뜻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소양을 보자. 이는 위에 양이 있고 아래에 음이 있다. 위아래는 작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23.3.12, 일욜 흥규아우가 동리 리장이 됐다고 상근이가 알려줬는데, 제수씨는 머리싸매고 누웠다하네. 아우도 인생살면서 리장 한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힘들게 결정했을텐데 여자는 한사코 말리려고만 드니 마구니가 따로 없겠네. 형은 또 왜 나서서 말려대는지... 으이그 눈 앞의 이익에만 불을 켜대니 고작 그렇게 산다는 걸 왜 모를까. 리장하면서 얻는 이익은 왜 생각 안하나. 정말 갑갑하여 가슴이 터질거같구나!)
(23.3.13, 월요일 21:15
세상에는 음양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상이 따로 있고 음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냥 음양이다. 모든 것 아닌 것, 즉 무라고 하는 것도 양에 속한다. 우리는 음양을 빼놓고 아무것도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음양을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음양이 있다. 이들은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세세한 작용도 있고 거대한 작용도 있다. 하지만 그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그 작용을 살피면 간단히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사상이란 바로 음양의 작용을 의미한다.
여기 양이 있다. 아직 음을 만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양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만나는 것이 모두 양이고 또한 스스로도 양인 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양이란 밖으로 그 기운을 발산하고 있으며 그 기운을 스스로도 사용하고 있다. 밖에서 양을 만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작용하고 있으므로 양은 결국 중첩되는 것이다. 또한 양이 계속 존재하는 한 그것은 유지할 것이다.
이때 이것을 표현하면
이 된다. 양이 있고 다시 있다는 뜻이다. 또는 양이 양을 만났다는 뜻이다. 양은 양을 중복해서 말한 것 뿐이다. ─이 있으면 그것은 ═이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을 양의 최소한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주역에서 단위로 사용하기 위함일 뿐이다. 실제로 양은 얼마든지 더 작은 것이 있기 때문에 작게 보면 ─이고 조금 크게 보면 ═ 이 된다. 다만 ═ 은 양과 양이 스스로 작용하고 있을 때 표현하는 방식이다.
사상(4가지가 있어 사상이라고 일컫는다), 즉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은 상하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이들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상하라는 개념이 있다는 뜻이다. 상하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한 이야기다. 음이 많이 쌓여 있으면 그쪽은 아래가 되는 것이다. 즉 음기가 많은 것을 아래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낮은 곳, 과거 등을 주역에서는 아래라고 하고 높은 것, 미래 등은 위라고 하는데 이는 음의 기운이 있는 곳과 양의 기운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사상을 가지런히 놓고 바라보면 그것은 순환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사상 하나만 보지 않고 동시에 정렬시켜놓은 결과다. 주역을 공부함에 있어 괘상 자체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비교해야 한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순환이다.
사상은 주역의 시작이다. 음양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엔 그 작용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상이 아니면 주역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음양이 원소라면 사상은 그것들이 이루는 구조다. 구조는 또한 그 안에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사상은 주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개념으로, 만물의 뜻은 다 여기서 나온다.
사상의 다양한 유형들
첫째 유형은
'태양'의 성질을 가진 사람이다. 태양의 뜻은 무엇일까? 양이 두 개 모여서 상하로 작용하는 중이다. 그 사람 내면의 성질이 그렇다는 뜻이다. 태양은 양의 집합이기 때문에 격렬하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남성적이다. 다혈질이라고도 말한다. 또는 화끈한 성격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태양의 본 모습이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씩씩하고 힘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자기주장을 앞세워 남의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태양이라고 해서 무조건 앞설 필요는 없다.
두 번째 유형은
태음이다. 이는 음의 속성 그대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여자답고 남에게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남을 잘 따르고 차분해서 좋다. 다만 태음은 지나친 음이어서 극단으로 느껴진다. 최고의 성격이랄 순 없다.
세 번째 유형은
소양인데, 이는 이기적인 타입이다. 남에게 관심이 없고 함께하는 일을 잘 못한다.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고 돕지를 않는다. 잔인한 면도 있다. 내면이 정돈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최악의 성격이다.
네 번째 유형은
소음인데, 이 사람은 협조가 잘 되고 외교적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있고 예의도 바르다. 감정을 잘 다스리고 검소하다. 이런 사람은 단연 최고의 성격이다. 매사에 균형이 맞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에는 사상을 개인의 운명에 적용해보자.
첫 번째 유형은 소양인데, 점점 무너져가는 시기다. 친구가 하나둘씩 없어지고 가정도 원만하지가 않다. 나이는 이미 노령으로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전문적인 능력이 있어도 써먹을 데가 없고 일은 자주 꼬인다. 회복 속도가 느리고 만하는 것은 빠르게 진행된다. 운명이 병들어 있는 시기인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태양으로,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시기다. 결실이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의욕이 넘치는 운명이다. 효율을 좀 더 높이면 좋으련만, 태양의 운명은 힘이 넘쳐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태양은 양으로 실익이 많지 않다. 양이란 저 스스로는 결실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은 한마디로 헛김 새는 유형이므로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유형은 태음인데, 평온한 운명이다. 튼튼한 직장에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도 없고 퇴보도 없다. 안정적이라고도 볼 수는 있지만 평화란 원래 오래가지 못한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 시기를 발판으로 삼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추구해야 한다.
네 번째 유형은 소음인데, 이는 견실하고 잘 풀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력에 비해 결실도 많고 협조자도 많이 나타난다. 드문 운명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시기를 맞이하게 되어 있다. 잘 살려나가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윗사람을 잘 받들어야 한다. 운명의 시기에는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므로 실익을 챙기는 한편 널리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하던 일을 바꾸면 절대 안된다. 순탄하게 가고 있는데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매사에 조심하고 기다리면 행운이 오래 갈 것이다.
(삼성럭키A 5동 화단에는 청매가 청색으로 피어 코를 대면 향이 은은하다. 혹한을 이기느라 온 몸을 부대껴서 향은 차라리 맵다. 퇴근하면서 그 꽃의 자태를 폰에 모셔왔다.
세상에 좋은 향을 내는 꽃 종류가 오죽이나 많으랴만 삼월에 피는 매화향만큼 절제되고 기상이 넘치며 우아한 꽃은 단연코 없다. 이때쯤 봄산에 피는 동백꽃향은 생강내음을 풍기는데, 그 향 또한 매화향 만큼 맵고 향기도 만만찮다.
동춘역에서 우리 직장으로 가는 직로에는 대우.삼환A가 있다. 그쪽 화단 역시 매화가 듬성듬성 떨어져 피어 봄날의 기쁨을 탄성으로 자아낸다. 이렇게 매화 피는 봄날 어떤 이는 하늘나라로 가고, 어딘가에서는 갓난아이가 태어나고 있으리라~
2월8일 오전 11:18,
5동 화단,
문득 눈에 띈 매화꽃몽오리
그 몽오리가
이렇게 오늘은(3월 13일) 꽃을 피웠네요~
집 앞에 이르면 어느덧 서산에 별이 드러나는데, 한두달 전에는 달과 두개의 별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더니 지금은 꽤나 동서로 떨어져 있음을 본다. 달은 그렇다쳐도 저 별들의 거리는 좀체 다시 좁히긴 쉽지 않으리. 나는 하늘을 쳐다보는 천문가가 되려는가.
매일매일 놀 생각이나 하면서 하루하루가 똑같다면 나는 잘 못사는 걸 게다. 지금 주역공부를 하는 것은 아마도 인생의 마지막 흥미로운 독서가 될 듯해서이다. 점 쳐서 잘 되자는 것이 아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군자의 삶의 자세, 자강불식이 노년에도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주역이 존재자체인 인생의 뜻을 찿고자 함이려니... 23/3/13, 월요일 22:46 終)
(23년3월25일, 06:30 내일은 '묻관'예정. 쭈꾸미. 일주일 전쯤 다시 같은 책을 빌렸다. 이번엔 『주역인문학』 기초편도 같이 빌려왔다. 기초편을 읽다가,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을 접하였다. 효가 미래와 과거가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 그런데 새로 발생되어 생겨난 효는 아래에 위치하여 점차 상승하여 맨 위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첫댓글 23.3.4, 10:30
세상의 모든 특수문자를 찾아, 읽기 편한 위쪽으로 옮기다가
즐겨찾기 해 놓은 항목을 죄~~ 날려삐고 말았ㅡ,ㅡ;: 을 뿐만 아니라
즐겨찾기 추가 조차도 없어져 버렸넹
아, 이 아침 나는 왜 이러시는공??
별일 아닐 수도 있으니 좀 쉰 후에, 다시 보자~
21:30, 과연 앞의 내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
별일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즐겨찾기모임'의 안으로 숨겨져 있었던 것.
이로써 순간정전이었던 뇌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내일은 일욜, 새벽에 일어나 주역을 집자하고
새벽 산에 갔다 오면서 우주의 기운을 흠씬 받아 오자.
어제 오후부터는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아, 왜 그것을 그렇게 말했을까?
'결정' 이란 것, 입으로 내뱉는 순간 줏어 담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남자의 말이므로서.
그러면 그것을 반복하지 않을 묘수는 뭘까? 나는 어렵잖케 그 답을 찾았다.
굉장히 어려워서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일단 오늘은 무어라 단정짓기 어렵고, 내일 결정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도 그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 의결해주어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