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성제
1. 내가 그은 밑줄
정념(Mindfulness, 알아차림, 마음 챙김) 수행의 네 번째 경이로움은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나는 그대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그 때문에 그대를 위해 내가 지금 이곳에 온 것이오.” 이것은 말로 할 수도 있고 그저 그녀를 쳐다보는 눈길만으로도 전할 수 있다. 진실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즉 머리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고통을 덜어주는 경이로움은 실현될 수 없다. 어려운 시절에 진실로 함께 해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당한 주의를 통해 남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정념을 수행하면 나와 남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가 지금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대의 존재는 내게 너무 소중한 일이오.” 함께 있는 동안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죽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그저 통곡할 일 밖에 없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진실로 함께 행복을 누리는 법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누군가 막 죽으려 할 때 그 곁에 자리를 잡고 안정된 모습으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 그때 우리의 존재는 진언(眞言, mantra), 즉 고통을 바꾸는 효과를 가진 신성한 말과도 같다. 몸과 말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를 이루면 단 한마디를 입 밖에 내기 전이라도 진언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정념의 네 가지 경이로움은 선정의 첫 번째 측면, 즉 사마타(止) 그러니까 중지, 평정, 휴식 그리고 치유에 속하는 것이다. 일단 평정을 찾고 어지러운 마음을 멎게 하기만 하면, 마음은 절로 한 곳에 집중되어 깊숙이 내관(內觀)할 준비를 마치게 될 것이다.
-틱낫한, 진현종 옮김, <<아! 붓다-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반디미디어, 92-93쪽.
내가 처음으로 정식 제자로 삼은 이는 틱 낫 찌라는 비구였다. 틱 낫 찌는 찬 콩 비구니 그리고 나와 함께 중부 베트남의 홍수 피해자들을 구하는 일에 여러 차례 나섰는데, 내 부탁을 받아들인 그는 초라한 오두막에서 여러 개월을 보냈다. 사회봉사를 위한 청년 학교(the School of Youth for Social Service)를 세우고 있었던 우리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처한 실제 상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비폭력과 자비를 적용할 길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사회 개선 운동이었다. 마침내 우리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일꾼들이 10,000명에 달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불교 운동을 두고 친미성향을 가진 것이라고 했고, 대중 매체들은 우리 불교 승려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접수를 준비하고자 하는 변장한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매도했다. 우리는 교전 당사자인 어느 당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묵묵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뿐이었다. 1967년 어느 극우 단체가 낫 찌와 일곱 명의 사회 운동가들을 납치했는데, 그로부터 그에 관한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낫 찌가 사이공의 거리를 걷고 있는데, 군용 트럭 위에 서 있던 한 미군이 그의 머리에 침을 뱉었다. 낫 찌는 집에 돌아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젊은 그로서는 미군과 싸우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깊은 상처를 받은 그를 변화시키고자 30분 동안 그를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넌 총을 잡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란다. 넌 스님이 되려고 태어났지.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이해와 사랑의 힘이란다. 그 미군은 널 적으로 생각한 게 분명하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만으로 무장한 채 전선에 나가는 ‘군인’이란다.” 그는 계속해서 사회봉사를 위한 청년 학교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납치를 당했고 아마도 죽은 게 분명했다. 틱 낫 찌는 플럼 빌리지에 있는 비구와 비구니들의 대선배다. 그의 필적은 내 것이나 거의 다름없이 보였다. 그는 시골에서 소를 치는 소년들이 부를 법한 아름다운 노래를 여럿 지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종류의 불의를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모든 민족이 받고 있는 불공평한 처사를 바꿀 수 있을까? 캄보디아인, 보스니아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인, 티베트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불의와 편협함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서로 형제자매가 되는 대신 우리는 총을 겨누고 있다. 분노에 사로잡히면, 상대방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분노의 불길이 우리 안에서 계속 타오르는 한 그것은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계속해서 태워 죽이고 말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세계가 처한 상황이다.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면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낫 찌에게 말했다. “네가 만일 뉴 저지나 캘리포니아 해변에 사는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미군들이 읽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것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된다면, 너도 모든 불교 승려들이 공산주의라고 믿게 될 것이고, 그래서 승려의 머리에 침을 뱉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미군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여기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기 위해 베트남에 온 것이었다. 그들은 베트남 군인들과 민간인들과 마찬가지로 희생자다. 손에 총을 쥐고 우리를 쏘는 사람들, 그리고 너에게 침을 뱉은 사람, 그들은 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북경, 모스크바, 워싱턴의 편안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책이다. 나는 1966년 워싱턴에 가서 로버트 맥나마라를 만난 자리에서 전쟁의 진상을 알려 주었었다. 6개월 후 그는 국방 장관 자리를 사임했고, 최근에 쓴 책에서 베트남전은 끔찍한 실수였다고 털어놓았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이해의 씨앗을 약간이나마 심어준 듯 하다.
잘못된 생각에서 잘못된 정책이 비롯되었고, 그 정책 때문에 수만 명의 미군과 베트남군 그리고 수 백 만 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시골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죽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은 사회봉사를 위한 청년 학교의 교정에 있는 법당 옆의 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로켓탄이 법당에 날아들어 폭발했다. 나는 거의 죽을 뻔했다. 증오와 분노를 품는다면 스스로를 태워 죽이고 마는 법이다. 이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해하면 고통을 덜 겪게 될 것이고 불의의 뿌리에 이르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화살 한 대를 맞으면 아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자리에 화살 한 대를 더 맞으면 그 아픔이 백배에 달하게 될 것이다. 불의의 희생자가 화를 낸다면 그 아픔은 백배에 달하게 될 것이다. 몸의 어느 곳이 아프면 호흡을 하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해 보라. “그냥 몸이 아플 뿐이야” 그것이 암이라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고통은 백배에 달하게 될 것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증오는 고통을 심화시킨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구원자라고 하는 것이다. 사물을 그 이상이나 이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알게 되면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베트남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도우려 했다. 그러나 나는 베트남에 왔던 미국 청년들도 희생자로 본다. 적의 없이 그들을 바라보자 고통이 훨씬 덜해졌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겨낸 고통으로 그 가르침은 학문적인 연구가 아니라 그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용서, 사랑 그리고 이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과 낫 찌를 위해서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도 이렇게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하면 질병, 불의 또는 우리 몸의 소소한 아픔에서 비롯된 고통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해에 이르게 되고 이해는 반드시 사랑과 수용에 통하게 된다. 아기가 아프면 당연히 아기를 돌보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면역력을 갖추려면 아기는 여러 번 아파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항체를 길러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염려할 것 없다. ‘완벽한 건강’이란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무슨 병을 가지고 있건 간에 그것과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되 너무 고통스러워 할 것까지는 없다.
부처님도 생전에 고통을 겪으셨다. 부처님에게 대항하려 하거나 심지어 시해하려는 음모가 여러 번 있었다. 한번은 발에 상처를 입으셨을 때 사람들이 도우려 하자 부처님은 그저 작은 상처에 불과하다고 하시면서 아픔을 최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또 한번은 오 백 명의 비구가 새로운 승가를 세우려고 떠나버렸는데, 부처님은 그 상황을 손쉽게 헤쳐 나가셨다. 결국 곤경을 극복하신 것이었다.
부처님은 포용을 기르는 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자(慈 사랑) 비(悲 연민) 희(喜 기뻐함) 사(捨 평정) 즉 사무량심을 통하는 것이다. 이 사무량심을 닦으면 커다란 마음을 갖게 된다. 보살들은 커다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껴안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보살들은 커다란 이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이 세상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다란 선물이다.
-위의 책, 인욕바라밀, 258 - 262쪽.
파도는 바다를 따로 구할 필요가 없다. 파도는 이미 바다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일단 자신이 바다임을 알게 되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일단 우리 존재의 근거를 접하게 되면, 즉 일단 신이나 열반을 접하게 되면 우리도 두려움 없음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두려움 없음은 참된 행복의 토대다.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우리의 두려움 없음이다. 삶의 각 순간을 철저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층을 접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 수행이다. 반야바라밀은 깨달음, 즉 지혜를 통해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위의 책, 268쪽.
2. 괴로움의 바다
그저께다. 7교시 수업 중에 전화 연락이 왔다.
중1년인 우리반 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학생은 어릴 적 어머니와 헤어져 아버지,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작년 6학년 때 어머니를 만나고
얼마전에 어머니가 울면서 보고 싶다며 만나자고 하는 전화를 받고도
이혼하고 간 엄마가 밉다고
만나주질 않았다며 엄마가 내 때문에 죽었다고 가슴 아프게 울었다.
난 울먹이는 아이의 잔등을 보며 맘속으로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불렀다.
난 즉시 학생의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였다.
학생을 병원 빈소로 가게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선생님, 참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예, 할아버지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인데,
장례식에 참석을 못하면 아이가 지우지 못할 한을 가질텐데....
장례식장에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어른들의 일은 어른 들 일이고
아이에게는 어머니이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폭발 사고로 몸을 다쳤는데
병세가 자꾸 악화되어 최근엔 식물인간이 되어 있고,
할아버지는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이오 참전 장교로 연세가 여든이 훌쩍 넘었고 허리는 90도로 휘어져 있으며
부자가 모두 국가보훈자이다.
할머니도 간호 장교이지만 여든을 넘긴 연세에 얼마전 중풍을 앓았다.
얼마 전에 할머니가 전화를 하여 나를 찾았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시키고, 힘이 없는 노부부는 이제 7월부터 시행하는
노인 복지 요양 제도에 따라 요양원에 들어가는데
손자가 머물 기숙사 없는가 하고 물었다.
중등 교육 과정에 필수로 검도를 가르치던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할아버지의 배려로
제자는 검도를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고
우리 학교에도 검도부 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
동사무소 사회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하여 가정 형편을 다시 듣고
학생을 집 가까이에 있는 복지원에 우선 맡겨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서로 아이를 걱정하고 신경 써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겨우 누운 자식을 보살피고, 할아버지는 밭일을 조금씩 하며 거동을 하며,
손자인 제자는 어릴 적부터 잔심부름을 하며 그래도 밝게 자랐다.
이복 누나는 먼 곳에 취업하여 가고 없으며
가까운 친척들은 미국으로 이민 가고 없다.
지난 4월 경이다.
제자는 복도에서 옆반 학생에게 영문도 모르고 난데없이 시비를 당하고
얼굴을 할퀴어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출신 초등학교가 다르기에 학급 내에서도 서로 주먹 다짐 하기가 여사였다.
상호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 얼굴로 집에 오는 손자 모습을 보고 화가 난 할아버지가
봉사자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꼬부랑 허리를 하고 지팡이를 짚고 2층 교무실로 숨을 가쁘게 쉬며 올라 오셨다.
다른 반 학생의 어머니와 두 반 담임과 두 학생이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고 할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가해 학생도 울면서 사과의 말을 하였다.
가해 학생도 사실 순한 학생인데 주체할 수 없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무작위로 아무 학생이나 붙잡고 시비를 걸고 갑자기
얼굴을 할퀸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마음이 풀어지시고는
가해 학생에게 부드러운 말씨로 말씀했다.
"애야! 아가야! 넌 어머니가 있구나. 우리 누구는 엄마가 없다.
넌 정말 행복하구나. 이 할아버지도 어릴 때 엄마가 없이 자랐다."
중학 새 학년에 들어와 아직 서로 낯설기 때문인지,
학급 친구 간에도 장난을 걸면 받아주지 않고
상대의 목을 누르고 주먹을 휘두르기 예사였다.
아이들의 심성은 짐승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날마다 종래 때 아이들을 무작위로 두 줄로 서게 하고는
서로 껴안아주며 사랑해 하고 말하게 하는 연습을 시켰다.
시험 때는 서로 악수를 하며 공부하느라 수고한다고 말하게도 했다.
틱낫한 스님의 설법에서 힌트를 얻어 해 본 조치였다.
이 싸움이 있고 얼마 지나서
우리반 한 어머니가 남모르게 나에게 돈 백만원을 건네며
학급의 어려운 아이를 도우는데 써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돈을 들고 바닷가 골목길 끝 언덕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학생의 집을 음료수 한 통 사들고 가정 방문하였다.
자식의 담임 교사도 못 알아볼 정도로
거의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중풍을 앓은 할머니....
어려운 가정 환경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안됐는 지 모른다.
나와 할아버지는 그 돈을 가운데 놓고 말없이 손을 부여잡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손자가 불쌍하여 할애비로서 못보겠다고 하였다.
당신도 어릴 때 엄마가 없이 자랐다고 하였다.
조손간에 있는 동병상련의 지극한 사랑과 연민의 정을 사무치도록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문득, 삼국유사에 나오는 낙산사 농장지기 조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집 앞의 골목에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문구가
크게 새겨진 교회가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우울증이 있어서 날마다 약을 먹고 잠들 지경일 정도로 심신이
피폐하여 늙은 친정 어머니가 보살피고 있었다.
과년한 딸을 돌보다 외할머니도 얼마 전에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였고,
그 사이에 간밤에 어머니는 흑암의 태허, 밤바다로 걸어 들어가
빠져 죽은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통화를 끝내자 말자 전화벨이 바로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얼마전에 나에게 백만원을 건네 준 다른 학생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하기에 하교 시간을 물었다.
그러면서 아들아이가 1학기를 끝내고 대구로 전학가야 한다고 하였다.
수화기를 내리고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에
제자를 차에 태우고 5분 거리의 병원까지 가는 길이
제자와 나, 모두에겐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이었다.
제자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만나주질 못해 엄마가 죽었다고 울먹이며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삶의 괴로움이 주는 감당치 못할 공포에 온 몸을 떨었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외할머니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였다.
선생님, 무서워요, 함께 가줘요 하며 울먹이는 제자의 차가운 손을 부여잡고
주차장에서 빈소까지 함께 걸어가며
등을 두드려 주고, 괜찮다며 울지 말라며 다독여 주었지만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를 몰랐다.
빈소에는 이모, 이모부, 외삼촌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눈시울을 붉게 적시며,
바닥에 주절라 앉아서 제자를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하였다.
빈소에서 망자와 유족들에게 문상의 예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첫 문상객이었다.
권하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 이모부와 외삼촌이 따라주는 맥주와 소주를 받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일의 상황과 제자의 앞날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서는데, 허리가 구부러진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잡고 빈소에 들어오셨다.
다시 할아버지의 그 큰손을 잡고 몇 마디 인사만 나누었다.
젊은 날 전장 터에서 호령하던 그 늠름한 기상은 덧없이 사라지고
팔십이 훨씬 넘은 노인의 가슴은 그 순간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지옥 중생의 심정이었으리라.
앞으로 제자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의 죽음을 연이어 맞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 근거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 아이가 겪을 그 괴로움은 정말이지 바다인 것이다.
이 아이와 중생이 겪어야 할 이 괴로움의 바다를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아니면
어이 건널 수 있을 것인가.
인간 실존의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의 근본 스승,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다.
자비와 지혜의 대승의 보살님들의 명호를 간절히 부른다.
경주 남산 바위벽,
천년의 세월 동안 중생의 괴로움을 굽어보며 계시는
그 부처님의 손 모양,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님은 우리에게 공포를 없애 달라는 원을 들어 베풀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관세음보살님은 마하반야바라밀다, 그 지혜와 자비로
우리에게 '무유공포(無有恐怖)'라 하셨다.
제자의 여린 등에 걸린 검은 책 가방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서 학교로 돌아온 나는 마음이 어찌나 허전하고 안됐던지
언설로 그 마음을 형용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중생의 이런 괴로움을 건져내고
평화와 행복, 해탈을 얻을 수가 있을까?
가족 관계를 인간 존재의 근본으로 여기는 유교적인 윤리가 절실히 필요하고,
계(도덕), 정(마음의 평정), 혜(지혜) 삼학을 닦는
불교 수행이 인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리라.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 사무쳐 왔다.
"우리의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 그들을 낳은 요소들을 알게 된다.
우리의 문화, 경제,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도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저 아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자신과 사회를
바꾸는 법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아이들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중에 생계를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읽기, 쓰기, 산수, 과학 그리고 그 밖의
과목들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살아가는 법, 즉 분노를 다스리는 법, 분쟁을 해소하는 법,
숨쉬고 웃고 심행(心行-여러가지 부차적인 마음, 번뇌)을 바꾸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과목은
거의 없다.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만 한다.
읽고 쓰고 산수 문제를 푸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이들은 잘 해내고 있다.
숨쉬고 웃고 분노를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어렵지만,
나는 그 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잘 해내는 것을 보아왔다. 아이들이
12살 무렵이 될 때까지 적절하게 잘 가르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위의 책, 193-194쪽
마침 그 날이 교사불자회의 1학기 마지막 법회인지라
2학기 공부 교재로 내가 대표로 구입한 틱낫한 스님의 이 책 20권을
들고 절에 갔다.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참배를 올리고
관음전에서 천수경을 법우들과 같이 독송하는데,
그날따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지혜와 자비의 손길이 얼마나 절실하게 내 가슴에
다가오던지.
잠자리에 들때에는 작년에 어느 학생 어머니가 나에게 선물해 준 108 염주를 들고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염하고,
틱낫한 스님이 방한하여 대구지하철 참사로 죽은 영가와 대구 사람들을 위한
설법 중에 청중들에게 직접 들어 보이며
읽어 보길 권한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를 다시 찾아 읽고 싶었으나
책이 서가에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난승 스님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보살의 원력으로 운영하는 정애원에 계시는
강할아버지에게 선물하려다 자칫 어서 죽으라고 하는 메시지를 준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차마 선물하지 못한
달라이 라마 성하의 <<평화롭게 살다 평화롭게 떠나는 기쁨>>이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작년 여름 내가 티베트 순례 다녀온 뒤에
노인 요양원 정애원에 연꽃 보살님과 정광화 법우님과 함께 찾아갔다.
간 김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포항문학 새 책을 들고 갔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를 뵙지 못하였다.
한 달 전에 별세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날 밤, 나는 망자가 된 학생의 어머니와 학생과 그 가족을 위하여
아니 나 자신과 뭇 생명을 위하여
금강경을 독송하고 싶었다.
어제 낮이다. 학급의 어려운 친구를 위해 돈을 쓰달라며
백만원을 건네 주었던 학모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친정 모친이 편찮아서 병 바라지를 위해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가 있다가 내년 봄에 포항으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 동안 아이를 보살펴 주어 고맙다며
나에게 다시 백만원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네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에게 전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아이 말을 들으니 운동부 그 아이가 성격도 좋고 정말 착한데
며칠 전에 병원에 급히 갔다고 하던데
크게 다치지 않았느냐며 물어왔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이 스물, 성인이 될 때까지
제자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모두가 돌아가고
천애의 고아가 될 터인데, 아들 친구로 좋은 인연인데
앞으로도 이 학생을 친 어머니 대신 어머니가 되어 도와 달라고 하였다.
멘토가 되고 후견인이 되어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계속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쪽지에 제자의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적어 건넸다.
그 순간에 내 가슴은 군사부일체라고 하는 옛말 그대로
그야말로 부모의 심정에 젖었다.
어머니는 의사인 남편은 여전히 포항에 있고,
내년 봄에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선한 어머니이고 착한 아들아이이고 친구였다.
어쩌면 내 곁에 나투신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님인지도 모른다.
오늘 낮엔 시골 한 마을에서 발가벗고 같이 자란
국민학교 동기생들이 포항에서 모였다.
부산, 울산, 대구, 포항에 사는 친구들 열 한명이 모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학생의 집 가까이에 있는 횟집에서 만났다.
횟집에 갔다가 대낮부터 술 마시고 노래방에도 갔다.
국민학교 1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은 친구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실컷 놀림을 당하고 자리는 파안대소가 되었다.
연필심에 꽂아서 글씨가 연하게 쓰여지는데 특효라며
마늘을 필통에서 꺼집어 내어 나에게 준 여자애도 있었다.
어떤 애는 내 옆짝이 되었는데,
내 글씨가 예뻤다고 하며 나는 잊어버린 기억도 들려주었다.
또, 2학년 초겨울에 여자 선생님이 스스로의 화를 이기지 못하여
교실 난로 옆의 방화수 양동이를 들고 친구의 얼굴에 찬물 세례를 퍼붓고는
옷을 벗게 하고는 교실 뒤편 철조망에 널어 말린 일,
4학년 때 내 앞에 앉은 여자애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 앞 무허가 돌팔이 치과에 가서 덧니를 빼고 왔길래 아프지 않더냐고 물은 일을
40년 만에 떠올리기도 하였다.
양동이로 물을 끼 얹은 그 선생님의 애인이 되는 육학년 형반의 담당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무슨 일로 화가 난다고 교실 앞 문을 이단 옆차기 멋진 태권도
솜씨로 부수고 아침 조회에 들어간 전설적인 분이셨다.
비오는 날 음악 시간이었다.
노랫말 발음을 잘못한다고
육칠십명의 우리반 아이들 전원을 교실 밖으로 불러내어
처마 밑 자갈밭에 낙숫물을 맞으며 물구나무 서게 하고서는
음악공부 잘 하겠습니다를 큰 소리로 외치게 하던
육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의 열정으로 미술을
좋아하고 소질이 드러난 숙이는 시집을 가고 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혼자서 공부하여 오십이 되어서는 개인전을 열겠다고 하였고,
사업을 잘하여 트럭을 몰던 녀석은 최고급 검은 세단 차를 몰고 왔다.
포항 하늘 아래에서
이십년을 함께 살고서도 있는 줄을 몰랐던
친구는 얼마 전에 내가 사회복지사와 의논해
제자를 맡기려고 전화까지 하여 알아본 아동복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잠시 나왔다고 하였다.
제자의 집과 이 복지원과 제자가 졸업한 초등학교,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학생들을 데리고 특별활동 시간에
사물놀이를 배우러 오는 청소년수련관, 횟집은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어릴 때, 큰 대밭 아래 마을의
뒷집에 살았던 이 동무는 요새 같은 여름이면 아침마다
얼굴을 씻으러 집 앞을 흐르는 봇도랑에 나왔다가 서로가
두 눈을 부비며 만나곤 했다.
어느 날 아침엔 교회 목사님 따님이 나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친구는 아직도 시집도 안 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성경 책을 끼고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녔고 이제는 예수님과 결혼하여?
가난하고 어렵고 낮은 곳에 있는 어린 것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산다.
복지원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집에 가서 아이들을 어머니와 연결해
할머니의 정을 얻도록 해 준다고 하며
시골 사람들이 시집도 안 간 처자가 아를 낳아 데리고 왔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도 했다.
어머니를 잃은 우리반 아이 이야기를 하며 내가 칭찬을 해 주었다.
야야, 분이야! 니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그 수녀님보다
더 아름답고 장하데이!
부산에서 온 미모의 여자 동무가 커다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내다가 도로 넣는데 내 눈에 설핏 나도 받아보는 잡지,
<<불교와 문화>>인 것 같아서 아줌마의 가방 속을 외간 남자인 내가
뒤져 그 책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래서 나도 이 책 2월호에 포항의 불교 소식을 취재하여 기사를 쓴 일이
있고 그 인연으로 나도 이 책을 정기구독하고 있다고 하였다.
보름달이 잔잔한 파도에 달빛을 뿌리는 영일만 바다 굽이를 따라
바닷길을 달렸다. 이번 모임에 오지 못한 서울 사는 뻐스 표 팔던 집의
순희의 목소리도 전화로 들으며 운전을 하였다.
밤마다 섹스폰 연주를 하는 바닷가 공원 언덕 아래를 스쳐갔다.
이 곳 영일만에서는 며칠 있으면 화려한 국제 불꽃 축제를 하고
이삼십만의 사람들이 올해도 모일 것이다.
제자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교로 참전했던
한국전쟁 때다. 천년 고찰 천곡사를 불바다로 만들기도 하였던
영일만 선상의 미군 함포사격으로 이 언덕 아래 모랫벌로 인민군의
직사포 포탄을 피해 피난 왔던 흰옷을 입은 포항사람들이
순식간에 백여 명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 모랫벌에 무덤을 쓰고 흩어졌던 일이
생각났다. 그 처절한 전쟁의 와중에 폐허가 된 포항 땅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숱한 어린 것들을
마치 어머니처럼 보살폈던 한 선각자가 있었고, 그 분의 뜻과 헌신으로 세워진
복지원에 뒷집 분이도 어린 것들의 어머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터미널까지 불심 깊은 이 미모의 부산 아줌마를
차를 태워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서로 무슨 인연으로 불교를 그렇게 공부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미는 집안에 불자가 아무도 없는데, 스스로 좋아서 절에 다니고
불교대학에도 다녔다고 하였다.
태음인 체질의 성철 스님이 천식이나 감기 때문에 겨울이면 휴양하셨던
집에서 먼 바닷가의 절, 해월정사(海月精舍)에 다닌다고 하였다.
또 해인사 백련암은 물론이고 삼천 배, 일만 배 수행에도 동참하고 있다고 하였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는 아직은
낯선 남방불교인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서적도 읽다가 접어두고 있는데,
뭔가 불교가 확연히 다가오지 않는 점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최근에 읽어본 틱낫한 스님의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다.
또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예순 날을 홀로 단식하며
북녘의 동포들이 굶어죽고 현실을 알리며 생명의 밥을 도와줄 것을
엄혹한 세상에 호소하는 법륜 스님 이야기도 하였다.
풀씨는 겨우내 언땅을 뚫고 여린 새싹을 내밀고,
송사리는 폭포수를 차고 올라간다.
어린 제자는 생명력이 충일한 사람이니
험난한 세상의 파도를 무사히 헤쳐갈 것이다.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그 길로
제자는 검도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어제
학교로 돌아왔다. 여름 방학 종업식에서 목에 금메달을 걸고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들 앞에서 우승 깃발을 흔들었다.
대구로 전학 가는 제자는 학급 친구들에게
부꾸러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글썽였다.
전학 가서도 건강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쪽지를 새로 나온 포항문학 책 갈피에 넣어
선물로 전했다.
퇴근하려고 운동장에 세워둔 차에 다가가니
차문 손잡이에 연필 꼬부랑 연필 글씨로 선생님 안녕히 계셔요
하고 인사말을 남긴 종이 쪽지가 꽂혀 있었다.
교무실 복도에서
나는 제자에게 말했다.
“누구야! 우짜던동 밥 마이 묵고 힘내가
운동 열심히 하거래이!”
3. 우리의 근본 스승
2007년 겨울 전국 교사 불자 연합회 화엄사 수련회에서
경주 동국대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님의 중관사상,
보리수 선원의 붓다라키타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 계환 스님의 화엄사상 강의를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승한 선생님이 불교 이야기를 했다.
교사로 첫 부임한 학교에서 옆자리 선생님이
반야심경 사경을 하는 것을 보고 발심이 되어
거의 30년을 날마다 반야심경을 사경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반야심경의 불교사적 위치, 내용 구조, 의미 등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회 때 마다 불자들이 암송하는 반야심경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불자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찰에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2008년 이번 학기에 교사불자회 법회 때 몇 번에 걸쳐 반야심경을 같이 공부하기로 하였다.
첫 구절의 오온이 모두 공하다고 하는 말을 풀어내기 위해
라훌라 스님과 틱낫한 스님의 영문판 책에서 5온 부분을 번역하여 같이 읽었다.
처음에는 반야심경의 핵심 구절 중에 하나인
불생불멸 불구부증 부증불감을 용수보살의 <<중론>> 을 풀어놓은 김성철 교수의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을 통하여 이해하며
반야사상-사상적 중도-8부중도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틱낫한 스님의 영문판 이 책에서 5온을 번역하여 읽다가
이 책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가를 발견하게 되어
5온이 공하다는 심경의 첫 구절만을 행복하게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책이 왜 우리말로 번역되어
한국 불자들에게 읽히지 않는지 의아히 여겼다.
영문판을 반나마 읽을 즈음 관문 선생님이 진현종 거사가 옮긴
이 책의 우리말 판본을 소개한 글을 카페에서
읽었다.
부랴부랴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려 했으나
교보문고, 예스24 서점에서는 품절 상태였고
알라딘에서 겨우 구입할 수가 있었다.
책이 팔리지 않고 한국 불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짐작케 했다.
베트남은 반도국가로 우리 나라와 자연, 인문 환경과 역사가 많이 닳았다.
한 무제의 침공으로 고조선이 망하고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 낼 때까지
400년 동안 중국의 지배가 있었다면,
베트남은 그 때부터 당대까지 7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과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드는 나라로
한자, 유교, 불교, 율령을 공통 분모로 하고 있다.
근대에 프랑스의 침공으로 왕조가 멸망하고 식민지가 되었고,
다시 미국과 전쟁하고 남북으로 분단되고
가혹한 베트남 전쟁을 겪었다면
우리는 프랑스 침공 병인양요, 미국 침략 신미양요와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이후에
일본의 가혹한 식민 지배와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고 아직도 분단국가로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금강산에서 영문도 모르고 아주머니가 피격되고
연평도에서 해전을 하고도
개성에서 관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해괴한 우리 한반도가 아닌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황제는 살생의 죄책감에 몸서리를 치고
불상생의 자비의 종교인 불교에 귀의하여 가로수를 심고
동물 병원까지 만들었고 동서남북으로 전법사를 파견하였다.
하루도 전쟁의 말발굽 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 왕손들은 만파식적과 성덕대왕 신종이란 신기(神器)를
짓고 부처님의 일승원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어루만지고 건졌다.
원효와 의상 스님이 세계 제일의 학자가 되고 중생과 생노병사를
함께 한 보살이 된 역사는 틱낫한 스님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성덕대왕 신종 명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전쟁으로 한 번도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
......
성덕대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 이 땅,
저 햇살 따스하게 비추는 바닷가 마을에도
저 눈 쌓인 북녘의 봉우리에도
부처님의 음성이 종소리로 울린다. "
틱낫한 스님은 틱 쾅 죽 스님이 평화를 위해 분신한 베트남 전쟁의 한 가운데서
고위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베트남 선불교에 입문하였다.
공산당 월맹과 미국과 월남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빈민의 생활 수준 개선을 돕기 위한 비폭력, 자비를 적용하는 운동을 전개하여
그 봉사자들이 1만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물론 양쪽의 의심을 받고 핍박과 탄압을 받았다.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이었다.
스님은 그야말로 불구덩이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백련꽃이었다.
전쟁의 뿌리가 미국인의 탐욕에 있음을 간파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평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여 킹 목사가 2번이나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또 스님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였다.
지금은 프랑스에 망명하여 명상 수행 공동체 플럼빌리지,
미국 버몬트주에 단풍림 명상센터 등을 설립하고 지도하고 있다.
일년 중 거의 반은 전 세계를 순회하며 명상 수행을 지도하고 설법을 하신다.
달라이 라마 성하와 같이 우리시대의 살아있는 부처로 세계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지난여름 티베트 순례 다녀 나오며
보현보살 상주처로 근래에는 중국 선불교의 한 중심이 되었고
고려의 익재 이제현 선생이 원나라 황제의 봉향(奉香) 사신이 되어
정상인 금정(金頂)에
올라 시를 남기기도 한 아미산의 보국사 경내
불교용품점과 불서들을 파는 곳에서 나는 혜능 스님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구입하였다. 중국 정부가 앉힌
가짜 판첸라마의 얼굴도 사천성 불교공덕회에서 펴낸 소식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거기에서도
틱낫한 스님의 책, <<정념의 기적>>이란 제목의 책을 보았다.
스님의 <<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
2003년 3월에 제2차 한국 방문을 하였다.
억조창생의 보금자리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서,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죽어간 생명들을 위해서
또 동국대 등에서 스님은 명상을 지도하고 설법을 하셨다.
나도 류시화 시인이 스님의 여러 설법들을 추려서 번역한
<<얼굴에는 미소 마음에는 평화>>라는 책을 읽은 터였다.
스님의 설법을 경북대 대강당에서 직접 들은 일이 있다.
스님의 설법을 듣고 강당문을 나서니 어둠이 내렸고
코에는 싸아한 백목련 향기가 스쳐갔다.
땅 바닥에 낙화한 백목련 꽃잎 한 장을 주워 들었다.
들고 간 스님의 설법집 <얼굴에는 미소 마음에는 평화>>
책 갈피에 담아 왔다.
아직도 그 꽃잎은 책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스님의 책은 100권이 넘는데,
한글 번역본이 60권이 된다.
스님은 동화책도 펴내고,
시도 지었다.
이 책은 스님의 일생의 삶과 수행과 교학의 내공이 집약되어 있다.
세계 3대 불교 문화는 남방 상좌부 불교(위빠사나),
티베트 불교(공성-중론), 한국 불교(간화선)이다.
스님은 베트남 선불교, 곧 대승불교에 입문하셨지만
그 수행과 가르침의 핵심은 남방 상좌부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에서 말하는 정념(Mindfulness) 수행에 있다.
스님은 대승과 상좌부(소위 소승) 불교를 모두 포용하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공자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스님은 예수님과 부처님을 주제로 한 책도 펴냈다.
이 책에서 불교의 핵심 교리인 3법인, 4성제와 8정도를 풀어내고 그 밖의
이제, 삼보, 삼해탈문, 사무량심, 오온, 오력, 육바라밀, 칠각지, 12연기를
스님 일생의 수행과 교학의 내공으로 온전히 풀어내고 있다.
3법인, 4성제, 8정도는 물론이고
2제, 3보, 3신, 3해탈문, 5온, 6바라밀, 7각지, 12연기를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으며 그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하게 풀어낼 때는
정말 경이롭다.
스님의 설법을 들으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스님의 설법을 들으면 삶이 괴로움의 바다에서
온통 놀라운(wonderful) 기적과 기쁨과 자유와 평화로 변화하는
깨달음과 체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불교를 접하고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경전을 독송하고 한국 불교의 여러가지 신행을 하지만
이런 불교의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개념들을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로 이해하고
결국엔 불교 신자도 불교 신자 아닌 것도 아닌
이상한 불자가 되고 결국엔 실망하기까지 한다.
한국 불자는 99%가 불교의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에서 구원의 빛을 끝내 찾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인 것이다.
스님이 전하는 불교 수행의 핵심은 정념-알아차림-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인데,
이 개념-수행으로 이 책도 일관되게 풀어내고 있다.
스님의 모든 책과 수행은 이 책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우리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지평이 확연히 넓고 깊어질 것이다.
가히 불교의 살아있는 꽃이고 열매고 눈이라 할 만하다.
영문판으로 나온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이가 꼼꼼하게 완역하고,
연구자들을 위해 한역 경전에서 불교 용어들을 모두 찾아 놓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제목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으로 했으면
시공간적으로 여러가지 불교가 난만하여 혼란스럽기까지 한 한국 불자들에게
휠씬 더 다가서는, 눈에 잘 띄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물론이고 스님과 불교의 일관하고 있는 핵심 개념(수행)은
8정도 중 정념이고, 영어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고 하는 것으로
상좌부 불교에서 말하는 위빠사나-알아차림-마음챙김 수행을 의미한다.
그러나 옮긴이는 전념(專念)이라고 옮겼다.
자칫하면 다른 일에 몰두하고 전념하고 있는 상황을 독자에게 상정하게 하여
원의와는 정 반대로 읽힐 가능성이 짙다.
또한, 유부의 5위 75법, 유식학의 5위 100법, 51개의 심소(心所),
심행(心行), 정신적 형성(5온 중 行온)
등에서 한역 불전 용어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우리말 옮김이 없고,
정정(正定)에서 삼매의 여러 단계에 대한 좀 더 친절한 풀이도 있으면
좋겠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렵다.
연구자와 일반인, 학술서와 신행서, 수행과 교학, 이론과 실천,
개인과 사회(자연), 대승 불교와 상좌부 불교를
망라하며 적은 분량으로 간결하고 농축된 문체로 스님의 체험을 통하여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풀어내고 있다. 참으로 경이롭다.
2008년 2학기 동안은 교사불자회에서 이 책을 같이 읽기로 하였다.
학교 현장에서 날마다 제자들을 접하고
불교학생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불교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교사 불자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후원이 되고
고해에서 날마다 허덕이고 사는 중생들에게는 등대가 되고 있다.
이런 찬사는 우물 안 개구리인 나만의 도취이고 심취일까?
그렇다. 나는 분명 취해 있다.
봄밤의 백목련 향기보다 진한 스님의 설법 향기에 취하고,
부처님의 감로(甘露) 법문에 흠뻑 취해 있다.
4. 대조와 정정
이 책을 읽고 아래와 같은 점들을 영문판과 한글판 판본을 대조하며 나름대로 찾아보았다.
틱낫한, 진현종 옮김, <<아! 붓다>>(반디미디어)
한글-영문 판본 대조 및 오탈자 정정
1> 제목: 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 The Heart of the Buddha's Teaching
-Transforming Suffering into Peace, Joy, and Liberation-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괴로움을 평화, 기쁨, 해탈로 바꾸기-
2> 핵심 개념 :
*전념(專念)
-Mindfulness, 알아차림, 마음 챙김, 정념, 온전히 깨어있음, 사띠(Sati), 새김,
正念(Right Mindfulness)
*interbeing
이 단어는 우리가 쓰는 작은 영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불교의 연기(緣起-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의존해 일시적으로 존재함 interdependent)에 해당하는
말인데, 영어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존재(being)를 질료가 아니라 이데아에서 찾기 때문에
불교의 이런 개념이 원래 희박하거나 없었다. 그러기에 영어사전에는 이 단어가 등록되어 있지 않는
것이지만, 불교가 서구에 전파되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3> 대조와 정정: 쪽수-위에서(상)/아래에서(하) 줄수
10쪽 위에서 2째 줄(10-상2), 전념(專念, mindfulness)-알아차림(mindfulness)
19-하4, 써늘한 칼날-서늘한 칼날
25-하1, 생기-生起
29-상1, 나서여-나서야
59-하1, 빈손으로 시장에 들어가다-입전수수(入纏垂手)
61-하1, 8장-62쪽으로
78-상3, 장식-藏識(아뢰야식, 저장식, 제8식, store consciousness)
82-상1, 상즉성-相卽性(interbeing)
93-9, 내관-內觀
95-상1,
Discourse on the Four Establishments of Mindfulness(Satipatthana Sutta)
<전념의 네 가지 확립에 관한 말씀(念處經)>
-각묵 스님 옮김,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초기불전연구원,
-우 실라난다 사야도, 심준보 옮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보리수선원,
<알아차림의 확립에 대한 부처님의 위대한 경전>,
Buddha's Maha Satipatthana Sutta 大念處經
96-하2, 地, 水, 火, 風-흙(soil), 물(water), 열(heat), 공기(air)
98-하7, 멋진 순간-놀라운(wonderful) 순간
99-상12, 부파불교의 51가지의 심소법(心所法)-
*說一切有部(아비달마구사론)의 5位-75法:
①色法: 물질적인 모든 것(11)
②心(王)法: 심적 작용의 주체(1)
③心所(有)法: 심적 작용에 부수되는 여러 심리작용(46)
④心不相應行法: 비색비심의 세력(14)
⑤無爲法: 생멸하는 현상이 아닌 眞如(3)
*唯識의 5위 100법
①심법(8): 정신, 굶은 마음
②심소유법(51): 정신, 형성된 부차적인 여러 가지 마음들
③색법(11): 물질
④불상응행법(24):비물질 비정신 /이상은 현상계
⑤무위법(6): 본체계
101-상9, 정신의 형성(心行, chitta samskara)-5온 중 行, 심소법
101-하12, 작의(作意)-attention
101-하10, 욕(欲)-zeal열심/ 승해(勝解)-determination결단력
101-하5, 심(尋)-initial thinking, 사(伺)-developing thought
102-상4, 참(慚?부끄럼)-humility-겸손, 괴(愧?수줍음)- self-respect-自尊心, 自重
102-상5, 경안(輕安)-ease 몸과마음이 편안함, 행사(行捨)-equanimity마음의 평정
102-하13-8,
분(忿)-anger성냄/ 한(恨)-malice앙심, 원한/ 첨(諂거짓)-hypocrisy위선/
무참(無慚?)-malevolence적의/ 질(嫉)-jealousy질투/ 간(慳인색)-selfishness이기심/
광(誑)-deception속임/ 복(覆감춤)-guile교활/ 도거(掉擧)-unwholesome excitement불건전한 들뜸/
해(害)-the wish to harm해치려는 바람/무괴(無愧)-immodesty뻔뻔함/
교(憍)-arrogance거만/ 혼침(惛沈)-dullness 멍청함/ 뇌(惱고뇌?)-agitation동요/
불신(不信)- lack of faith믿지 못함/ 해태(懈怠)-indolence게으름/
방일(放逸)-careless되는 대로의/ 실념(失念)-forgetfulness알아차리지 못함
산란(散亂)-distraction주의 산만/부정지(不正知)-lack of attention주의 결핍
105-상1, 법의 구명(擇法)-investigation of dharmas/
7각지(覺支)-Seven Factors of Awakening
105-상3, 연기관(緣起觀)-observing interdependent arising
105-상4, 계분별관(界分別觀)-observing the different realms
134-하9, 사형제-師兄弟
142-하13, 겉모습, 표시-相(sign)
179-상12, 팔부중도(八不中道)-<<중론>>(용수보살)의 歸敬偈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出
能說是因緣 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
<<반야심경>>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192-하3, 그리로-그리고
195-하3, 무상-無相
197-하2, 행복지기-행복해지기
205-상11, 덜어 줄 수 능력-덜어줄 수 있는 능력
205-상15, 세 상-세상
215-하3, 네 부분-사부 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234-하8-7, 관음보살은 5온의 참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보시고 자아란 것이 없음을 아셨기에 고통에서
벗어나실 수 있었다(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272-하6, 무화과나무(ficus religiosa)-핍팔라(pippala) 나무(뽕나무과 상록수,‘보리수’)
286-하1, 세 광주리(三藏, tripitaka)-경, 율, 론 삼장-남전 빨리어 대장경
307-상2, 진실-진심(眞心)
334-하12, 소명하면-소멸하면
첫댓글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지요. 갓난 아이를 늑대가 데려가 기르면 늑대소년이 되는 것처럼, 무엇을 학습하고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인성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종교(宗敎)란 말 그대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인데, 오늘날의 제도화 된 종교들은 대부분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미망만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온갖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정보가 난무하는 시절에 입시위주의 지식교육만 강요하는 제도로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지요. 틱 낫한 스님 같은 선지식들의 가르침이 혼탁한 소음에 묻혀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괴로움의 바다>는 감동적인 수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