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년전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는 그 느낌이 어떤건지는 보내보지 않고는 모르는거 같다.
춘천102보를 보낼때 나는 아들 혼자 보냈다.
고향 버스 터미널에서
" 아들아! 내가 가봤자 돌아 설때 서로 너무 섭섭할거 같다. 그러니 혼자 가라."
" 알았어요.아부지.서울서 친구들이 5~6명 오기로 했어요.춘천까지 같이 갈거예요."
그러고 등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즉시 돌아서 집에왔다.
춘천102보 정문 앞에서 사진 한장이 전송되어 왔다. 줄줄이 부모님.친구들과 같이 손잡고 가는
아이들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장정들 집결해 있는 사진 1장이 전송되어 왔다.
그러고 난후에는 뚝 연락이 안됬다. 그때의 기분이란....
전화해도 연결이 안되었다.
며칠후에 옷가지가 왔다.
집사람은 눈자위가 붉어졌다. 나도 좀 마음이 안 좋았다. 섭섭했다.
" 거봐. 춘천 안가길 잘했지" 집사람에게 말했다.
아들이 어느 부대로 간지도 모르는 상태로 .....
그러고 며칠후에 문자 1통이 왔다.
하사 방OO로 부터 온 문자 1통 " 훈련병 아무개 소대장입니다. 잘 훈육하겠습니다."
헉~~
이기자 부대란다. 27사단......제1신병교육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전투 예비사단? 2사단 노도부대와 쌍벽을 이룬다는 그 악명? 높은 부대?
사실 지금 전투예비사단은 27사단과 2사단 뿐이다.
8사단 오뚜기 부대와 11사단 젓가락 부대는 기계화 사단이 되어서 순수한 전투 예비사단은
27사단과 2사단 뿐이다.
하필이면 ....ㅠㅠ
그후에 어째 어째 카페를 알게 되어 가입-등업- 이런걸 처음 해봤다.
카페가 뭐 할일 없는 사람들 노닥 거리는데냐....이런 정도였다.
그후에 5주 동안 1신에서 훈련 받는 사진을 찾아보며 지내는게 일과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수료를 하고 후반기3주교육을 받으러 제2신교대로 갔다. 거기가 79연대 제3대대 10중대인가?로 가서 후반기 3주를 받게 되었다.카페 분위기 부터 달랐다.
이름하여 "이기자 불사조 카페"였다.
여기에서 3주를 카페를 드나 들었다. 그러다 " 이기자 부대 명예홍보대사" 가 되었다.
여기서는 무척 활발하게 카페 활동을 했다. 위촉장 1장의 위력이 적지 않았다.
2신에서 기억에 남는것은 40km행군 응원 이었다.
행군도중 간간히 상황을 카페에 올려주는게 아주 인상적이였으며 부모님들은 환호했다.
-도마치재 정상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생들은 아주 씩씩하게 행군하고 있으며 간식 시간이 되겠습니다."-
-대대장입니다. 지금 행군을 마치고 부대 앞에 도착했습니다."-(이 부분에서는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정말 뜨거운 카페 분위기였다.
" 아! 대한민국 육군 정말 좋네~" 절로 함성이 우러 나왔다.
그런데 2신 카페에 찬바람이 불어왔다.이상한 정훈장교 땜에,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들께도 그 원인이 다소 있었던거 같다. 너무 과열된 분위기였다.
그래도 2신 카페는 활기가 찼다. 너는 그래라 우리는 고~~다.
응원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러구러.....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갔다.
중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 응? 여긴 아들이 신병교육 받은 곳인데 ..." 흑표 11중대 조교가 된것이다.
흑표11중대에서 훈련 받고 거기가 자대가 된것이다. "음~ 조교라...." 착잡했다.
77연대 3대대에 신병 1명이 갔는데 바로 우리 아들이었다.
여기 저기서 신병 구경꾼?들이 몰려 왔더란다 ^ ^
주눅이 바짝 들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대대장.연대장. 사단장까지 개인 면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일 무서운게 선임들이었다고 한다.
키가 보통 1m87이고 격투기 선수에 레스링 선수 , 야구 선수....덩치는 장난 아니고...
신병이 얼마나 쫄았겠는가?
집에 전화 오다가도 뒤로 지나가는 선임들에게 인사 하느라 여러번 전화가 중단되었다.ㅎㅎ
옛날 그대로의 조교 포스가 넘치는 애들로만 선임들이 우글 거렸다고 한다.그러나 지금은 보통 아들들로 조교 자원이 충원되고 있는거 같다.키가 작은 애들도 있는거 같다.곱상한 애들도 있고...
" 내가 선임이 되면 이런 분위기는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번 말한 적이 있었다.
첫 면박을 갔을때 펜션에서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었다.
" 아들아! 지금이나 잘 해라!" 지금 똥 오줌도 못 가리는데 무슨 먼 훗날의일을 얘기하느냐....
조교 중대도 중대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한다. 따라서 중대에 따라 신병 훈육의 강도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걸 모른다. 다 같은 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중대는 어떻다는 얘길 할 수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대에 처음 가니 12-3기와 12-4기가 훈련중이었다.
그때는 보조만 했었는거 같다.12-7기 부터 본격 조교 활동을 했다. 신교대 사진첩에 자주 아들의 모습이 올라왔다.
그건 지금도 조교 부모들에겐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마치 신병훈련시에 사진 찾는거 처럼.
부모들은 보물 찾기라고 한다.
또 하나의 보물 찾기....무척 좋았다.
12-7기때부터는 조교의 폼이 잡혀갔다. 12-7기 12-10기. 12-13기.12-16기.12-19기.13-1기.13-4기.13-8기.13-12기.
13-16기때 전역을 했다.
지금도 사단자원 중에는 정말 무서웠던 훈육 분대장이라고 아들을 기억하는 많은 현역병 들이 있다.(신병때 무서운 선임들 한테 교육 받은데로 훈련병 한테 안하면 내무반에 들어와서 혼나는게 일쑤 였다고 함)
가지 않을거 같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벌써 12-8기가 전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은 민간인이 되어있는 좀더 성장된 아들을 보며 " 녀석 ! 고생했다."
대견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들이 하는 말
" 아부지! 102보 갈때 혼자 가서 정말 서운했어요.친구들이 같이 갔지만..."
" 뭣이라고? "
첫댓글 ㅎㅎ~~ 제가 입영시에는 지금의102보충대가
당시에는 103보충대 였답니다.
진주역에서 군용열차타고 새벽에 춘천역에 도착후~
또다시 군용트럭으로 갈아타고 103보충대엘 갔었답니다.
당시엔 무섭기도 했었는데...지금은 추억의 한페이지~~~ㅎㅎㅎ
102보 갔다 와도 똑 같습니다.
뭔가 잃어버리고 그냥 돌아오는 느낌?
기분이 영~~좋지를 않았습니다.
새해 좋은일 많으시기를 바랍니다.
근석아부지 글읽보니까
2신교대에서 순수하게 모든아들들을
응원했던 시간들이 참행복했던거 같아요
지금은 그때분위기가 많이없어진거같아
전역을13일 앞둔 어미로써 많이아쉽네요
성호는 막내라서 왠지짠해서~
102보충대까지 갔었는데
서울오는동안~계속 울었어요
아들친구 아버지께서 카페를등업해 주셔서
그후카페에서 허전한마음 달래면서
시간은흘러 지금까지 왔네요
참좋은 인연과~참좋은 추억으로~
전역을하게되서 많은분들께 감사하구요
가끔 신교대소식~또는102보소식~
따끈~따끈하게 올려주신 근석아부지 잊지못할겁니다~늘~~건강하시구요
근석군 훌륭한 남자로 성장해나가길 바랍니다
네식구가 춘천을갔지요 점심먹으러 춘천닭갈비집을갔지요 긴장한아들이 못먹더군요 늦은나이에 들여보내고나니오는내내 한마디못하고네시간을왔답니다 이제는옛얘기가되었지만군대생활이 그렇게 울아들하고 맞지는않은듯하더군요 국방의 의무라 하고나온거죠 엄마만 신나고즐겁게지냈지요 카페에서 2신이 너무재미있었잖아요 ㅎㅎ 다음편기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예전 입영열차에 비하면...그래도~~
과거를 회상하면 짠 할때가 많죠...ㅎ
102보충대의 입소는 어느집이나 아련한추억같이 마음이 짠한것같아요.
또한 수료식에가면서 굽이굽이 광덕고개를
넘을때는 이런곳에 아들이있구나라는생각에
얼마나 눈물을삼켰는지......
아버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아이는 최종자대가 27사가 아닌데도 아직 여기에 터박고 지내는 것을 보면 이기자란 참 매력적인 곳입니다..
덕분에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1군지사 자대 카페도 운영하곤 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사랑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네요.. 아들 덕에 화천은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가봤습니다..
아이는 뒤돌아 보기도 싫겠지만 저는 괜히 그곳이 당기더군요.... 아무튼 울 사랑방 카페가 잘 되어나가 후임
가족들에게 오롯이 넘겨 드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근석아버님~~~
102보에선 정말 아들을 두고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안떨어지더라구요..오는 길에 내내 눈물로 왔어요 ~~
아들들 쭈욱 줄세워놓으니 머리들은 다들 짧게 깎았지.. 어느순간부턴 내아들을 찾을수가없더라구요 ㅋ 그때심정은 정말 잃어버린듯한 느낌 들었답니다 ㅎㅎ
그리고 27사단신교대로 가서 맨처음으로 깃발아래 치이즈하듯 웃는 얼굴로 올라온아들사진... 그웃는모습이 왜그리슬퍼보였던지 제가 그사진을 보며 한참을 울었어요 ㅋ 지금도 그사진보면 눈물이 납니다 ㅋ
지금은 흑표11중대조교로 맡은임무 잘해내고있는 아들이 자랑스랍고 대견합니다.. 건강하고 무탈하게 이겨울 잘 이겨내고 견뎌내길 날마다 기원합니다. 이기잣
동진군은 잘 해낼겁니다 ^ ^
몇번 칭찬 하더군요.
@★12-1 박근석 부(흑표11) 네...근석아버님....
울동진이도 전화와서는 걱정 절대말라고 합니다...ㅋ
그래도 그게 순간순간이 힘들다는 소릴 들어서요...ㅋ
여러가지로 힘들꺼라 생각은 하지만요...자랑스런 아들을 믿어보고 이기자를 믿어봅니다...ㅎㅎ
진짜 그저 무탈하기만을 빌고또 빌고 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