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논설위원
# 얼마 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돈키호테’는 2시간40여 분의 대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돈키호테 역에 한명구와 더블 캐스팅된 올해 75세인 이순재의 연기는 연기 이상의 켜켜이 쌓인 삶의 연륜이 빚어낸 그 뭔가였다. 어쩌면 그라는 한 인간이 지금껏 살아온 이유가 돈키호테를 지금 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순재의 돈키호테 배역은 한 인간의 실존적 차원에서 최고의 저지름이요 캐스팅이었다.
#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창조해 낸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동시대의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죽었다. 1616년 4월 23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창조해 낸 인물의 성격은 판이했다. 특히 돈키호테와 햄릿이 그렇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1860년 ‘햄릿과 돈키호테’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고민만 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햄릿형 인간’과 엉뚱하지만 고집스럽게 목표를 추구하며 저지르는 ‘돈키호테형 인간’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물론 투르게네프는 쉼 없이 저지르는 돈키호테의 손을 번쩍 들어줬다.
# 하지만 우리는 저지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니 그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기 저지르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시대인이 있다. 바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다. 한때 세계여자테니스계의 챔피언이자 ‘철녀’로 불리던 그녀다. 얼마 전 외신은 그녀가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던 중 폐에 물이 차오는 고지성 폐부종 증상을 일으켜 하산 후 곧장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다. 물론 그녀는 정상 정복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것이 종국적 실패인지는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다시 또 시도하고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나브라틸로바의 피에는 저지르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녀는 저지름의 화려한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1956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그녀는 73년 프로에 데뷔했고, 2년 뒤 공산체제의 조국 체코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저지름이었다. 그후 그녀는 윔블던 9회 우승 등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통산 20여 회의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 여자테니스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전성기 때는 무려 331주 연속으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 그녀의 두 번째 저지름은 은퇴 후 7년 만에 테니스 코트로 복귀한 사실에 있다. 94년 말 은퇴했던 나브라틸로바가 2000년에 다시 코트로의 복귀를 선언하자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시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실패”라며 그런 비아냥을 일축했다. 복귀 후 처음 몇 해 동안 그녀는 세간의 예상처럼 죽을 쒔다. 하지만 드디어 2003년 나브라틸로바는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을 거머쥠과 동시에 이 대회 최고령 우승기록(46세)도 세웠다. 그리고 2006년에는 전미(US) 오픈 혼합복식에서 또 우승하며 저지름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 그녀의 세 번째 저지름은 지난 2월 유방암 진단이 내려진 뒤 10개월 만에 여전히 투병 중인 몸으로 킬리만자로에 오른 것이다. 나브라틸로바는 언젠가 미국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유방암 진단이 내려지던 날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그날이 개인적으로는 9·11 테러를 당한 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킬리만자로에 올랐다. 물론 저지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고로 세상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 저지름 없이 세상은 바뀌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며 나아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저지르는 것이 새로움을 낳고 미래를 열며 위대함을 만든다. 저지름은 단지 몸부림이 아니라 생존에의 사투다. 그러니 저지르자. 훗날 자기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식의 비문일랑 남기지 않도록!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