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무비 / 남정인
우물에 머리를 숙여 노래를 부르면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도우미 언니하고 단둘이 집에 남으면 우물에다 대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래도 심심해서 ‘악악’ 소리를 지르면 수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대여섯 살 때 내 십팔번이었다. 도우미 언니가 부지깽이로 가마솥을 두드리며 가르쳐 준 곡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언니가 어느 날부터 〈앵두나무 처녀〉를 못 부르게 했다. 금지곡이 된 것이다. 입버릇이 돼 흥얼거리다가도 언니 눈치가 보여 뚝 그쳤다. 나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엄마와 큰언니는 도우미 언니가 우리 집에 신문배달 오는 아저씨하고 바람이 났다고 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집 우물가에도 앵두나무가 있었다.
도우미 언니는 내 손을 잡고 늘 대문가에서 신문을 기다렸다. 신문을 반갑게 받아들던 언니는 미소 지었지만 아저씨는 늘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언니가 신문 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얼굴이 하얗고 호리호리했던 아저씨는 눈이 사시여서 언니와 눈을 맞춰도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출근할 때마다 내게 당부했다. 언니와 집을 잘 지키라고. 혼자서 커다란 집과 언니까지 지켜야 하는 내 처지가 고달팠다. 언니가 무슨 일을 한들 내가 막을 방도도 없는데 엄마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침만 되면 우울했다. 과중한 임무와 적적함이 또 시작되는구나 싶어서였다. 날마다 반복되는 무료함과 쓸쓸함이 유행가 맛을 알게 한 걸까. 어린 심정에도 나는 동요보다 왠지 〈앵두나무 처녀〉가 훨씬 부르기 좋았다. 명랑한 곡인데도 기분에 따라 청승맞게 부르기도 했다.
나의 외출은 겨우 아랫집 영순네 집까지였다. 책임감 있다는 칭찬에 갔다가도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바로 집에 왔는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언니를 찾으려고 사방을 살피는데 아주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울림이 불현듯 귀신 소리라는 생각이 들자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금이 오그라들어 그대로 마당 한가운데 꽂혀버렸다. 해가 내쏘는 빛은 가시처럼 따가웠고 아무도 없는 집은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정인아, 나 우물 속에 있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자 누군가가 괜찮다고 우물 속에서 나를 달랬다. 도우미 언니 목소리였다. 들여다보니 깊은 곳에 언니가 보였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로 아주 작게 보였다. 언니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몰려왔다.
“언니, 죽지 마. 죽지 마.”
엉엉 울면서 옆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들에 나갔던 창덕이 아저씨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와 있었다. 언니가 우물에 빠졌다고 하는데도 이해를 못 하는 눈초리였다. 나는 아저씨를 무조건 잡아끌었다.
다시 우물을 들여다보는 게 겁이 나 좀 떨어져 있는데 언니가 우물에서 나와 걸어오고 있었다. 젖은 긴치마가 몸에 휘감겨 제대로 걷질 못했다. 포플린 블라우스는 몸에 붙여 놓은 듯했다. 감격하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언니와 창덕이 아저씨는 서로 민망해 했다. 처녀, 총각이어서 그랬을까. 나로선 묘한 기류였다.
그런데 어쩌다 빠진 걸까. 누가 물어도 언니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우스갯거리였지만 그 현장을 본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나는 우물에 대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언니가 우물 속에 있는 것 같아서였다. 젖은 머리, 젖은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한쪽 발을 모서리에 올리고 있던 언니의 모습이 너무 선명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깊은 곳에서 올려다보던 그 어두운 표정까지도.
말이 없어진 언니는 내게 냉정했다. 엄마에게도 대들었다. 엄마는 남자를 알더니 뵈는 것이 없느냐고 꾸짖었다. 언니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신문배달 아저씨를 따라갔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제일 먼저 집에 돌아와서 집을 지켜야 하는 내 임무는 여전했다. 언니가 없는 집은 더 쓸쓸했다. 새로 온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때 내 노래를 들어주는 상대는 우물밖에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팝송 “오~ 새드 무비 올웨이스 메이크 미 크라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대강 얼버무려 따라 불렀다. 앵두나무 노랫말은 의미가 뭔지 모르고 불렀어도 우리말이었다. 〈새드 무비〉는 생판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더 목청껏 불렀다. 그 팝송을 부르면 가족 반응이 달랐다. 음절 수가 많아서 바쁘게 혀를 굴려도 음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그러면 가족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앵두나무 처녀〉도 〈새드 무비〉도 관심 끌기엔 탁월한 선곡이었다.
우물은 기억할까. 내가 〈앵두나무 처녀〉를 얼마나 낭창하게 잘 불렀는지. ‘바람났다’라는 소절에서 그 언니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또 〈새드 무비〉 가사 발음은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세월이 가도 내겐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실수로 빠졌다고 하기엔 부딪친 상처가 전혀 없었는데…. 사람들은 언니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작은 키에 통통해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언젠가 문득 그 아저씨와 맺어지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래저래 너무 힘들어서 나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막상 몸을 던지고 보니 우물이 너무 얕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니 언니의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끔 혼잣말처럼 자기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컸다고 말하곤 했다.
햇살이 내리꽂듯 강렬했던 그날. 깊은 함정 어둠에 갇혀버린 한 마리 짐승처럼 떨고 있던 언니, 하얀 원피스에 얼굴을 묻고 겁에 질려 울던 나. 그 장면에서 언니와의 추억은 정지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내가 어른이 된 뒤에도 문득문득 그 언니가 생각나면 아릿하다. 〈새드 무비〉 같은 언니의 아픈 실연이 무성영화처럼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