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리(大川里)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 있는 리(里).
서쪽으로 마성산과 용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동쪽으로 내가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대골(대야), 송산(솔미), 응천(물방앗거리) 등이 있다. 대골은 송산 서남쪽에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송산은 산형이 솥처럼 생긴 솟봉산 아래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응천은 앞에 응천천이 흐르는 마을로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불방앗거리라고도 한다. 문화유적으로 옥천읍 신라계 성 마성산성지가 있다.
대천리(大川里)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 있는 이(里).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뒤로는 골짜기가 있다. 두룡천과 웅천천이 만나는 곳에 있다. 한내가 있으므로 한내 또는 대천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장터, 향교말, 화정 등이 있다. 구장터는 대천리의 중심되는 마을로 1928년까지 웅천면 사무소가 있었고 시장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58년에 웅천면사무소가 대창리로 옮겨 감에 따라 시장도 옮겼다 한다. 향교말은 옛날에 마을에 향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정은 마을 뒤에 화락산이 있고 앞에 한내가 있다.
대천리(大川里)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 있는 리(里).
대천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장벌, 사당골, 옥골, 잣골, 송장골마을 등이 있다. 구장벌마을은 전에 시장이 있다가 새 장터로 옮겨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당골마을은 사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옥골마을은 옛 덕산현의 옥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잣골마을은 대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 덕산현이 있던 곳이다. 송장골마을은 옥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덕대가 많던 곳이라 한다.
대천리(大川里)
충청남도 홍성군 은하면에 있는 리(里).
은하면의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행정 및 관공서등 가구 및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를 중심으로 경관좋은 산 아래에 가구들이 모여 있으며 농업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야곡(大也谷), 합천(合川), 잠방골, 월실(月實), 독실 등이 있다.대야곡은 대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마을이 될 것이라 해서 대야곡, 대야실(大也實) 또는 대실이라고 부른다. 합천은 마을에서 두 내가 합친다 해서, 합천 또는 흠내라고 부른다. 잠방골은 결성현의 잠방(蠶房)에서 쓰는 뽕나무밭이 있었던 자리에 마을이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월실은 곧은 선비가 글을 읽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고 이 마을에 살다가 죽었는데, 풍류를 달에 비유하고 대나무를 절개에 비유하였으며, 비치는 그림자를 그의 행실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애대로 선비들이 글을 깨우칠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독실은 옛날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붙은 이름이다. 대천(大川)이라는 명칭은, 대야곡과 합천의 이름을 따서 생겼다.
대천리(大川里)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에 있는 리(里).
압해도에 위치하며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광입, 들목, 반월, 한벌 등이 있다. 광입은 대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부근에 너른갓(말림갓)이 있었다 하여 넉갓이라고도 한다. 들목은 조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장에 드나드는 목이 되었다 하여 들목, 야목이라 하였다. 반월은 들목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반월’형국이라 하여 반월이라 하였으며 옛 마장 너머가 된다 하여 넘장이라고도 하였다. 한벌은 큰 벌판이 된다 하여 한벌, 큰장안이라 하였다. 대천리 지석묘가 있다.
대천리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에 있는 리(里).
화학산과 가지산 사이의 구릉성 평야지역에 자리한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각수바웃골, 각자바웃골, 대밭골, 삼거리, 취실마을 등이 있다. 각수바웃골마을은 쉬뿔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각자바웃골마을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대밭골마을은 대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거리 마을은 앞에 세 갈래의 길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취실마을은 취(나물)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천리(大川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리(里).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며 남쪽으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굴목이, 까마꾸등이, 뒷골, 석정, 산밑, 장밭마을 등이 있다. 굴목이마을은 대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까마꾸등이마을은 굴목이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고, 뒷골마을은 까마꾸등이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석정마을은 전에 정자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산밑마을은 간치산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장밭마을은 까마꾸등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긴 밭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천리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에 있는 리(里) .
영해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북쪽에는 옥산이라는 산이 있고, 동남쪽에는 한내라는 천이 있다. 골짜기도 많지만 들도 상당하여 논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고드랫골, 문양, 선댕이, 장숫골, 한내, 황곡 등이 있다. 고드랫골은 지형이 반월 모양이고 달맞이나 소원 성취를 이 자리에서 빌었다고 한다. 고월은 고드랫골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선댕이는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간 곳이라고 하여 선당이라고 칭하며 문양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대천리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에 있는 리(里).
운룡산(雲龍山) 깊은 산속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천리는 마을 이름인 대거(大巨)와 천곡(泉谷)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자연마을로는 구레두들(늑구:勒邱), 댓거리, 붉은 바우, 산막골(山幕一), 샘실, 아랫샘실, 싸리번지, 앞막두들, 운룡산(雲龍山) 등이 있다. 구레두들(늑구:勒邱)은 뒷산이 천마가 굴레를 벗어 놓은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늑구라 칭하게 되었다. 댓거리는 신사리의 사래 및 금학, 샘실 등으로 통화는 세 갈래 길의 중심지로서 대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금학과 대천 양 계곡의 물이 합수하여 큰 개 울을 만들었다 하여 댓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대천리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있는 리(里).
보현산에서 시작한 산맥들이 서남쪽으로 힘차게 뻗어있다. 그 중 작은 산맥들이 끝이 나는 곳에 넓은 언덕이 있다. 흐르는 시냇물은 마을 앞을 감돌아 굽이쳐 흐른다. 서북쪽은 들을 지나서 멀리 높은 절벽에 연결되어 있다. 그 아래의 강에는 낮에도 어둠침침한 소가 있다. 이곳이 양각소이다. 대천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리의 대자와 생천의 천을 따서 대천리이라 칭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강당, 대리(待里), 생천, 백학서당 등이 있다. 생천은 앞내의 물이 맑고 차가웠기에 생천이라 칭하였다.
대천리 大泉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리(里).
운문댐 건설로 인해 거대한 운문호가 생기고 그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20번 도로가 지난다. 자연마을에는 골목각단, 평지마, 원마, 창마가 있다. 골목각단은 두 산의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골마 또는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섰다 하여 골목각단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평지마는 골목각단에 비하여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평지마라 부르게 되었다. 원마는 가장 비옥하고 높은 들인 원들에 접한 마을이므로 원마란 이름이 붙여졌고 창마는 과거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리 大川里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깨구리등 산이 있고 대천 서쪽으로도 방갓산과 배암등의 산이 있다. 북쪽으로 의령천과 칠곡천이 흐르며 대천 앞에는 한내들이 펼쳐져 있다. 한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냇가가 되므로 한내 또는 대천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어은동이 있다. 어은동은 큰 냇가가 흘러 물고기들이 잘 숨는다 하여 어은동이라 하였다. 문화재로는 대천리(大川里) 고분이 있다.
대천리(大泉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리(里).
덕천강 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태, 삼점골, 사방, 대천, 점촌, 금동 등이 있다. 삼점골은 옛날 마을 입구에 옹기 그릇을 구웠던 점터(가마)가 세 곳 있었다고 하여 삼점골이라 불린다. 사방(士芳)은 사방에 서재를 지어 후학을 가르치던 이영국(李榮國)이 사방(士芳)이라 하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대천(大泉)은 맑고 차가운 큰 샘이 있는 마을로 샘을 따서 한새미 또는 대천이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점촌(店村)은 금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옹기 그릇을 구웠던 점터(가마)가 있었다고 해서 점촌이라 불린다. 금동(琴洞)은 옛날 마을이 있기 전에 현재 금동 뒷산에서 거문고가 자주 울렸다는 전설에서 고금동(고금동)이라 불렀는데 그 후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천리(大川里)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있는 리(里).
남쪽으로 산지가 있으며 북쪽으로 대산천이 흐른다.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골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오동, 심신 등이 있다. 오동(烏洞)은 대천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에 오리가 많이 왔다고 하여 오동이라 불린다. 심신(深新:깊은 한골)은 대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골짝 안의 끝 마을이라 하여 심신이라 한다. 성지골에는 성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
대천리(大川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있는 리(里).
법화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창촌, 판문, 대포대 마을 등이 있다. 창촌 마을은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판문 마을은 옛날 도둑을 막으려고 큰 문을 만들어 달았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대포대 마을은 덕바대라고도 불리며 창촌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천리(大泉里)
평양직할시 상원군의 중부에 있는 리.
북쪽은 대동리(大同里), 동쪽은 명당노동자구, 남쪽은 흑우리(黑隅里)와 금성리(金城里), 서쪽은 중화군 용산리(룡산리)와 접한다.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장전리·대정리·구거비리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합쳐져 신설한 평안남도 상원군 대천리가 되었다. 1963년 5월 군과 함께 평양특별시에 편입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구릉성 평야를 이루고 북쪽 경계에 대동뫼(200m)가 있다. 남쪽에서 흘러들어온 상원강이 중부를 지나 북쪽으로 흐른다. 리 면적에서 산림이 약 60%를 차지한다.
경작지에서 논이 24%, 밭이 63%, 과수원이 8%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옥수수이고 이밖에 콩·기장·팥 등 여러 가지 잡곡과 사과·배·포도·자두 등의 과일이 생산된다. 특히 대추나무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다. 교통은 평양~원산 간 도로가 지나며 상원읍까지는 약 5㎞, 평양까지는 40㎞이다.
대천리(大泉里)
평안북도 영변군(녕변군) 중부에 있는 리.
북쪽은 서산리(西山里)·동남리(東南里), 동쪽은 서화리(西花里)·동남리, 남쪽은 용화리(룡화리, 龍花里)·연화리(延花里), 서쪽은 서위리(西位里)·남등리(南燈里)와 접한다. 영변군 연산면 대성동·신천동이 1949년 10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성동은 대성리와 매야리로, 신청동은 신천리로 개편되었으며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대성리와 신천리가 합쳐져 대천리가 되었다. 1989년 3월 일부 지역이 다른 리에 편입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평야와 구릉지이다. 리 가운데로는 구룡강이 흐르며 그 연안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산림은 리 면적의 15.3%를 차지하며 경작지에서 논이 38%를 차지한다. 군에서 논과 뽕밭이 많은 리에 속한다. 주요 기관으로는 인민학교와 병원이 있다. 군소재지인 영변읍까지는 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