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산의 울림] 한국 생활 20년 동안 풀지 못한 의문 김태산 필진페이지 +2024-01-12 06:31:20
나는 평양에서 20년을 넘게 내 집이라는 것을 갖고 살았다. 서울에서도 정부가 준 집에서 20년을 살아 본 사람이다. 물론 남과 북 가정집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참기 힘들었던 문제 몇 가지를 써 본다. 그렇다고 해서 집의 평수나 집의 구조를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의 내 집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신성불가침 구역이다. 한국에서는 범죄자의 집이라도 법적인 영장이 없으면 수색은 물론 집안에 일절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평양의 내 집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주인인 수령의 집이었다. 나에게 집에 관한 권리는 전혀 없었다. 나는 오직 그 집에서 잠만 잘 수 있는 수령의 하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김씨 가문은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야밤에 트럭을 들이대고 잠자는 사람들을 짐짝처럼 트럭에 실어서 정치범수용소나 심심산골로 추방하기를 마음대로 한다.
또 그래서 집집마다 집주인인 김씨 가문의 초상화를 무조건 모셔야 한다. 그러고는 초상화를 청소하는 걸레만 보관하는 ‘정성함’을 잘 만들어 놓고 매일 아침 초상화 청소를 해야 한다. 인민반장과 동사무소에서 수시로 초상화 검열을 한다. 먼지가 조금만 있어도 충성심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 잘못 걸리면 해마다 진행되는 지방 추방 1호 대상이 된다.
신문을 보는 집은 신문 보관함을 고급지게 만들어 놓고 김일성 가문의 초상화가 실린 신문은 그 함에 정중히 보관해야 한다.
도로 옆에 있는 집들에서는 김씨 가문이 지나가는 1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집 열쇠를 인민반장에게 무조건 바치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외딴곳으로 피난 가야 한다. 인민반장과 보위원은 집집마다 스나이퍼라도 숨었는가를 확인하고 창문을 걸어 잠근다.
가정에 불행하게도 장애인이 있으면 수령님 권위를 손상한다며 지방으로 쫓아낸다. 정신이 이상한 장애인은 영원히 다시 찾지 않겠다는 문서에 부모가 사인하게 하고 어떤 실험실로 데려간다.
명절 때나 평소에도 심야에 경찰이 들이닥쳐서 집집마다 숙박 검열을 한다. 잠자던 사람들을 깨워서 등록된 가족의 명단과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고 옷장과 베란다까지 수색한다. 지방에서 가족이나 친척이 왔는데 분주소에 숙박 신고를 하지 않으면 참 시끄러운 일이 생긴다.
수령의 사상을 지킨다며 집집마다 도서검열대가 불시에 들이닥치곤 한다. 명색은 숙청된 반동들의 사진이나 이름을 검열한다지만 사실은 다른 나라의 출판물이나 불온서적에 대한 상시 검열이다. 잘못 걸리면 평양살이는 끝장이다.
▲ 김태산(왼쪽)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가 2020년 7월 제1기 남북함께아카데미에서 ‘북한의 간부 양성 과정과 의사결정구조’ 특강을 마친 뒤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 김태산(오른쪽)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가 집을 찾아 온 지인들과 다과를 즐기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또 TV나 라디오는 오직 평양채널만 보고 듣도록 채널조절기를 납땜으로 몽땅 고정시켜 놓는다. 혹시 고정했던 채널 조절기를 뜯었는지에 대한 검열도 심심하면 들이닥쳐서 하는데, 어디서 온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남의 재산을 마구 뜯어 보고 안하무인이다. 기분이 더럽지만 참아야 한다. 불만을 토로하면 지방 추방이 따른다.
승용차와 손님이 자주 오고 술자리가 잦은 집, 간부들의 집과 외국에 출장 다니는 집은 보위부와 안전부의 스파이들이 집중 감시를 하며 전화는 무조건 도청한다.
평양시 도로는 인민반별로 담당 구간이 있다. 명절과 행사 때마다 도로의 경계석들을 물걸레로 깨끗이 닦곤 하는데 고역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밤새껏 수령님이 다니실 도로의 눈을 치우고 다져진 눈도 모두 파내야 한다. 도로의 눈을 치우던 주민이 차에 치여 죽는 일도 가끔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건 꿈도 못 꾼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파트 뒷마당을 청소하고 눈이 오면 눈을 치워야 한다. 아파트 쓰레기장 치우는 사업도 국가가 못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모은 돈과 술·담배로 트럭과 인력을 구해 치워야 한다.
특히 인민군대 지원·철도 지원·백두산 건설 지원·발전소 건설 지원 등 국가가 해야 할 사업을 모두 가정집에 부담시킨다. 그 명목으로 돈·쌀·담배·칫솔·치약·수건·장갑·청소용 걸레까지 걷어 간다. 한국 같으면 그까짓 거 몇 푼 하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그 자체가 모두 부족한 데다 끊이지 않고 계속 내라고 하니 죽을 맛이다.
학생이 있는 집은 학교에서 가져오라고 하는 고철·파지·땔감·돈·토끼 가죽·각종 청소도구 등이 부모들의 등골을 뺀다.
이 지구상에 북한만큼 개인 가정집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다. 또 북한만큼 국가가 가정 집에 부당하고 과도한 세금 외의 부담을 안기는 나라도 없다. 그래서 우리 탈북인들은 북한을 21세기의 최고 노예국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일부 사람들이 어째서 북한을 동경하고 독재자를 받들어 모시는 건지 나의 한국살이 20년 동안 이것이 늘 풀 수 없는 의문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