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사는 것에 익숙해질까. 얼마만큼 더 살아야 여기저기서 훅훅 치고 들어오는 다양한 문제에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이가 많아질수록 문제와 고민들이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 누가 나이 서른을 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이립(而立)이라 했던가. 또 누가 마흔을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이라 했던가. 점점 더 분명해지는 건 '잘 모르겠다' 뿐인 것을.
그래도 모두들 더 좋아지리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선 무엇보다 깔끔한 끝이 필요한 법이다. 새해가 소중한 이유다. 1년 365일, 매일 해는 뜨고 지고 하지만 다행히도 매년 똑같은 날짜의 새로운 날들이 태어난다. 덕분에 사람들은 한해의 말일이 되면 해넘이를 하며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의 첫해를 맞이하며 새 희망을 꿈꾼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원효대사의 깨달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일까. 그때보다 세상살이 각박해졌기 때문일까. 끝과 시작을 찾아 먼 길을 떠나려다보니 사족이 길어졌다. 지난해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의 새 마음을 정하기 위해 해남 땅끝으로 향했다.
땅끝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한반도 땅의 끝이자 시작
전남 해남 땅끝마을. 정식 지명은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다. 갈수리(渴水里)라는 이름이 물이 귀한 바닷가에 좋지 않다고 갈두리로 바뀌었다. 이름 그대로 한반도 뭍의 최남단에 자리한다. 서울에서 천리를 달려야 닿는 먼 길이다. 덕분에 물에 안긴 섬보다도 더 섬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생김새만 보자면 다른 바닷가마을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땅의 끝'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한해의 끝자락과 새해의 시작이 닿는 이맘때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갈두산 사자봉에 자리한 땅끝전망대
지난해 보다 더 나은 새해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그만큼 더 많다는 뜻이리라. 땅의 끝, 그곳에 가면 지난일을 완전 리셋(reset)하고 깨끗한 도화지 위에 새해의 새날들을 그려갈 수 있을까.
땅끝 해넘이, 해맞이축제 <사진제공·해남군청>
기대감에 걸맞게 땅끝으로 가는 길은 길고 또 길고 멀고 또 멀다. 남도에서 가장 남쪽으로 툭 튀어나온 해남에서도 최남단에 자리했으니 당연한 이유다. 해남IC에서 빠져나와 13번 국도를 타고 땅끝으로 향하는 길 먼저 닿는 미황사부터 들러보는 것도 괜찮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을 병풍삼아 자리한 미황사는 보는 순간 절로 탄성이 난다. 어디 앞모습만 고울까. 대웅전(보물 947호) 지척의 응진당(보물 1183호) 마당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광도 일품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이곳을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지금도 해남의 일몰 포인트로 꼽힌다.
땅끝 해넘이, 해맞이축제 <사진제공·해남군청>
드디어 땅끝, 해넘이 해맞이는 어디서?
땅끝마을에 도착하면 먼저 관광안내소에서 안내책자를 챙기자. 땅끝마을 전체 지도가 있어 동선을 짜는데 도움이 된다. 관광안내소는 보길·노화도행 배가 오고가는 선착장 부근, 땅끝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음식점과 숙박업소, 편의점 등이 모여 있고 광주와 목포 등을 잇는 고속버스가 이곳에서 들고 난다.
땅끝전망대와 땅끝탑부터 둘러보자. 여기에 완도 방면으로 자리한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과 사구미 해변, 해남읍 가는 길에 닿는 송호 해변과 송호리 오토캠핑리조트도 더하면 알찬 여행이 된다. 땅끝마을을 돌아보려면 선착장 부근 주차장이나 모노레일 사무소 옆에 주차하는 편이 낫다. 땅끝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모노레일 사무소 옆으로 해안 산책로가 펼쳐진다. 땅끝전망대와 땅끝탑은 물론 송호리 오토캠핑리조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땅끝마을의 진짜 땅끝 땅끝탑은 일몰 포인트
땅끝의 진짜 땅끝, 땅끝탑으로 이어진 길은 남녀노소 모두 무리없이 걸을 수 있다. 보너스로 기가 막힌 다도해 풍광이 따라 붙는다. 넉넉하게 20분이면 닿는다. 이에 비해 땅끝전망대로 향한 길은 약간 가파른 편이다. 갈림길마다 땅끝전망대·오토캠핑장 등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땅끝탑을 마주한 채 바다로 스며드는 태양은 땅끝을 찾은 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해넘이를 선사한다. 땅끝탑이 일몰 포인트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착장 앞의 맴섬은 일출 포인트로 유명하다
좀더 여유가 있다면 땅끝탑에서 송호리 오토캠핑리조트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일출 포인트로 꼽히는 선착장의 맴섬을 마주하고 산책로 초입이 있다. 선착장~모노레일 사무소~땅끝전망대~땅끝탑~송호리 오토캠핑리조트까지 이어진 산책로는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단연 인기다.
땅끝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땅끝전망대(입장료 1000원)에 오르면 푸른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땅끝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안내판에 있는 흑일도며 백일도 등 섬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땅끝전망대 내부
가능하면 땅끝탑에서의 일몰은 챙겨보자. 한반도 끝에서 바라보는 한해의 마지막 해넘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새해의 첫해 감상은 선착장 옆의 맴섬에서 하면 어떨까. 한쌍의 매미를 닮았다고 이름 붙은 맴섬은 땅끝의 유명한 일출 포인트. 선착장 바로 앞 바다에 있는 평범한 자태에 조금 실망할 수도. 그동안 보아온 땅끝 일출사진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건 2월(13~18일)과 10월(23일~28일), 1년에 약 10여일 뿐. 아쉽지만 양력 새해의 첫해는 맴섬 사이에서 보기 어렵다.
대죽리에서 바라본 일몰 <사진제공·해남군청>
지는 해에 좋지 않던 것은 모두 보내고 새해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켜보자. 이곳은 서울에서 천리나 떨어진 가장 먼 육지, 하지만 분명 서울까지 이어지는 길의 끝이자 시작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