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장이 좋다는 걸 어디서 흘려 듣고, 인터넷에서 남창장을 검색해 보았어요.
근데 남창이란 이름은 좀 그렇지 않나? 이 동네 사람들은 동네 이름 바꿀 생각도
안하나 하면서..동해 남부 지방에는 낯뜨거운 이름이 많아요. 남창, 정관, 정자,
굴화(구라) 등등이요.
굴화는 땅굴할 때 굴이랑 불화자를 쓰는데 울산에서 경주가는 초입에 있어요.
옛날에 삼국시대이전에 신라가 나라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철기로 된 무기를
만들던 지역이래요. 그 동네엔 장검마을도 있어요. 아마 긴 칼만들던 지역
인가봐요. 길이름이 쇠정로도 있구요. 여기 고속도로 만든다고 땅 팠는데
유물이 엄청 나와서 오래 걸렸어요.
이 지역에 고등학교 이름을 굴화고라고 했는데 애들이 구라고라고 하고
다녀서 이름을 무거고로 바꿨어요. 또 무거고는 어떠냐고요? 무거는 없을
무에 갈 거자를 써요. 갈데가 없단 뜻이에요. 이건 신라 마지막 왕 경순
왕이 다운동(다운동 근처 사시던 분 있으시던데) 근처 삼호에 왔다가
조그만 동자 승을 발견해요. 직감적으로 저 동자승이 신라의 운명이
라고 생각하고 동자승을 쫓았대요. 동자승이 문수산 아래로 경순왕을
이끌었는데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찾을 수가 없고, 경순왕은 막다른
산밑에 있더래요. 그래서 갈곳이 없다고 하며 신라가 망할 것을 알았다고
해요. 그리고 그 지역이 현재 무거동이에요.
다시 남창으로 돌아가서 남창은 왜 남창인가? 알아봤더니 남쪽에 있는
창고란 뜻이래요. 서창도 있어요. 남창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곳이었대요.
남창장은 남창역 앞에 서는데 원래 다른 곳에 장이 섰는데 이곳을 옮겨
왔다고 해요. 언양장은 원래 장이 있고 그 주변에 골목골목으로 장날이면
장꾼들이 들어서서 장이 선형적인데 비해 남창장은 장이 서도록 넓은
지역에 새로 만든 곳이라 평면적이에요. 언양장은 꼬불꼬불 골목길을
다니고 이 골목으로 들어가 저 골목으로 나오는 재미가 있는데 남창장에
가니 장이 그냥 훤하게 펼쳐져 있어서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밑에 시멘트를 깔고 위에 투명한 지붕을 올려서 만든 중심부와 중심부로
접근하는 큰 길이 몇개 있었어요. 차를 세워두고 큰 길을 통해 남창 장
으로 갔어요. 남창은 바다도 가깝고 논도 가까워서 물자가 풍부하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해산물은 해산물대로 농산물은 농산물대로 있고
한우 농협이 또 다른 건물로 있어요.
나는 햅쌀이랑 속청(속이 파란 검은 콩)이랑 호박 몇개를 살 예정이어서
햅쌀을 찾아 나섰어요. 남창장 바닥에는 노란 금이 쳐져 있는데 여기는
부락별로 자리를 정해 놓았대요. 노란 금 안에 한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놀멘놀멘 장날을 보내고 있더라고요.
누런 호박이 쌓여 있는 곳, 해산물이 주로 있는 곳, 쌀이랑 곡식이 있는 곳,
모종이랑 식물 파는 곳, 박상이라고 부르는 뻥튀기 파는 아저씨(이 아저씨는
남창장에서 유명하대요.). 박상 맛있게 튀겨 드립니다라고 골판지에 써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박상은 뻥튀기의 경상도 말이에요. 뻥튀기 기계를
두개 놓고 계속 튀겨내요. 뻥 하기 전에는 호루라기를 불어서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하는 놀라운 배려심을 가졌어요.
역시 경상도에서 처음 먹어 본 호박부침(늙은 호박을 채로 길게 썰어서 밀가루를
아주 조금 넣고 부친 부침갠데 달착지근해서 맛있어요. 어느 정자 바닷가 회집에서
아주머니가 이걸 아주 맛있게 부쳐 주셨길래 이거 어떻게 부치냐고 물었더니
이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당신은 못 부친다'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던 슬픈 전설이 있는..)을 만드는데 필요한 호박채를 계속 긁어대는 할머니
옆에는 그날 긁어낸 호박 껍데기가 쌓여 있는데 호박 하나가 거짓말 안하고
지름이 50센티는 될거에요.
평면적인 장을 어떻게 돌아다니며 샅샅이 구경할까 고심하며 돌아다니는데
그날 사려고 했던 햅쌀을 파는 곳을 발견했어요. 고 노란 금 안에는 곡물만
파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어요. 거기서 햅쌀을 사고(한 되에 6천원-
작년 쌀은 4천원-인데 한 되를 수북히 담고, 두번째 되가 조금 모자라니까
다 털어 주고 만원 받으셨어요). 그 옆집에서 속청사고, 집에가서 된장찌개나
끓여 먹으리라 생각하고 호박 두개 천원 주고 사고, 마지막 남은 손두부 한 모
(나는 왜 떨이를 보면 꼭 사는 버릇이 있는지)를 천삼백원에 사고나니 장바구니가
꽉차서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선지국밥집은 3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나래비로 서 있고, 나는 아들도
같이 안 가주고, 딸도 같이 안 가주고, 남편은 일요일 아침부터 어디로 날랐는지
코빼기도 안보여 줘서 혼자 간 몸이라 혼자서 줄서서 먹을 생각을 하니 좀 거시기
해서 선지국이 어떻게 생겼나 슬쩍 구경만하고 다음 장엔 꼭 와서 먹으리라 다짐했어요.
갑자기 내 코앞에 꽃이 지나갔어요. 누군가 호접란을 안고 지나간거였어요.
시골장에 호접란이 좀 안어울린다 싶어 모종이랑 씨랑 꽃 파는델 갔더니
여러가지 호접란과 비슷한 종류의 난과 꽃들을 팔더라고요.. 길을 가다 보면
빈 화분이 잘 없어요.작년에 본 가장 감동적인 화분은 화분 세개에 거짓말
보태 한 아름 되는 배추를 하나씩 심어 놓은 것인데 그 화분들은 대문 지붕에
있었어요. 화분 하나, 한뼘 땅 그냥 놀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집엔
빈 화분이 몇개 인가.. 반성
올 봄에 목포에 갔다가 목포 옛날 동네를 돌아다녔어요(목포 여행예정인 분은
한겨레 esc 세션에 각 도시 옛날 동네 탐방 시리즈를 참고하세요). 옛 도심이
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쓰러져 가는 동네에 땅 한뼘 놀리지 않고 꽃을 심고 야채를
심은 것을 보면서 삶의 dignity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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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너무 길어요. 나중에 더 쓸께요. 이만 줄입니다.
첫댓글 장 순례기를 써도 잘 쓰겠네. 남창은 남쪽으로 낸 창도 있는데 왜 꼭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할까?
놀고 있는 카메라에 풍경도 담아 주시면 금상첨화일 테지요.
카메라 고장났습니다ㅠㅠ
사진이 없는 남창장 구경 환하게 했습니다. ^^ 다음 편이 기다려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