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당한 목포의 눈물
조 흥 제
금강산에서 다시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면.
나는 트롯 노래를 좋아한다. 트롯 풍의 노래는 한국의 전통가요라고 원로 가수인 이미자씨가 말했다.
우리가 자랄 때는 트롯 노래를 유행가라고 불렀다.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나라 없는 서러움을, 한국 전쟁 중에는 이산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군사 독재시절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발전기인 70~80년대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왔다. 요즘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내용이 많다. 그러니 트롯 풍의 노래는 유행가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지금 한국 가요계를 휩쓰는 노래는 트롯 풍이다. 트롯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1910년대 초에 미국에서 시작한 사교 춤 곡. 2분의 2박자, 또는 4분의 4박자의 비교적 빠른 템포의 곡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나에게는 흘러간 노래책이 있다. 알토란 같은 221곡이 들어 있다. 1925년에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에서부터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까지 다양하다. 거기에는 내가 청소년 때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거의 있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아파트 종이 버리는 곳에서 주워 온 것이다. 겉장이 너덜너덜한 것을 ‘흘러간 노래’라는 책 제목을 보고 가져 와 철사로 두 군데를 꿰맸다.
그 노래책 중에 ‘목포의 눈물’도 있다. 목포의 눈물을 낳게 한 목포는 어떤 곳인가? 청소년기에 가 보고 싶어 하다가 가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둔 90년대 초에 목포의 눈물 탄생 배경을 보러 갔었다. 서울역에서 밤 11시50분에 출발하여 목포에 5시경에 도착했다. 역 앞에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택시로 유달산(228m)에 갔다. 툭 튀어 나온 바위에 머리를 땅 부딪으면서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에 서니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 많은 섬섬섬……. 신안앞바다에 그렇게 섬이 많은 줄 몰랐다. 내려오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 앞에서 이난영의 고운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목포항에 와도 삼학도는 보이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삼학도는 메꿔서 육지가 되었다고 하여 아쉬웠다.
2007년 7순을 맞아 아이들이 금강산을 갔다 오란다. 일행이 없어 망설였지만 평소 등산을 좋아하던 터여서 승낙했다. 3박4일 일정이다. 숙소는 외금강 김정숙 호텔이다. 12층에 여장을 풀고 밖에 나갔더니 2층 노천에 포장마차가 있다. 가 보니 젊은 남자와 처녀 둘이 술을 판다. 평양소주 한 병을 시켰더니 아가씨가 술을 따라 준다. 고마워서 만 원권 한 장을 팁이라고 주었더니 옆에 있던 아가씨가 ‘팁’이 뭐냐고 동료에게 묻는 눈치다. 그녀는 눈치로 대답해 주고 나에게는 ‘여비에 보태 쓰시라’고 하면서 받지 않았다. 순진한 북한 아가씨들이다.
지하에서 북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 들어가 보았다. 막간에 한국 관광객들에게 노래 부르는 시간을 주었다. 거기에 나온 사람은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신청하고 애창곡인 ‘목포의 눈물’을 눈을 지그시 감고 정성을 다 해서 불렀다. 노래방에서라면 100점은 맞았을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 주위 사람들을 보니 박수 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누가 말은 안 했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팔랑팔랑 도는 템포 빠른 노래를 부르는 중에 느려 터진 목포의 눈물은 격에 안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을. 이게 무슨 망신인가.
지난 연말에 가요무대에서 100위권에 든 곡들을 몇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순위가 다가올수록 흘러간 노래들이 많았다. 1위 곡은 ‘찔레꽃’이었다. 찔레꽃은 1940년대 백난아가 부른 노래다. 그런 케케 묵은 노래가 1위곡이라니 적지아니 놀랐다.
요즘 TV 조선에서 목요일 밤 10시에 진행하는 미스트롯을 빼놓지 않고 본다. 밤 늦게 2시간 이상 진행하는 프로를 끝까지 보는 내 끈기에 나도 놀랐다. 나는 재미있는 프로와 재미없는 프로의 구분을 보다가 졸리고 안 졸린 걸로 구분한다. 미스트롯은 끝가지 다 보았으니 재미있게 느꼈던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나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점수 먹이는 사람들도 정성껏 평해 시청률도 높아는 평이다.
그 프로를 보면서 젊은 사람들이 왜 노인 세대들이 좋아하던 노래를 좋아하느냐는 점이다. 미스 트롯에 나온 신청자들은 20대의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 중에는 팝이니, 랩이니, 발라드니 하는 분야에 적을 둔 중견가수들도 있다. 등단 20년차도 있고, 10년 이상 된 가수들은 많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트롯 가수로 전향하려고 신청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부르던 팔랑팔랑 뛰면서 무슨 가사인지도 모르게 주절대는 노래의 미래는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금강산에 가는 길이 다시 열린다면, 내가 투숙했던 호텔에서 목포의 눈물을 다시 한 번 불러보고 싶다. 그때 청중의 반응은 어떠려나.
첫댓글 목포의 눈물을 다시 부르실 기회가 빨리 오기 바랍니다.
전에 망신당한 애기를 먼저 하시고 노래를 부르시면, 만장의 박수를 받으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