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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2021. 2. 20) 반기련(반기독교 시민운동 연합) 홈피를 모니터링하려던 필자는 반기련 홈피가 접속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른 안티기독교 사이트를 찾아 확인하니 그곳에서도 반기련이 접속되지 않고 있다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한창 때인 2005-2010년 경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의 게시물과 수백건의 댓글이 게시되고 수천명의 방문자 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한창때는 거의 매달 오프활동(반기련의 역전도 홍보활동)이나 친목모임 등을 갖던 반기련의 공개활동이
2010년 이후에는 점차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10년대 말부터는 오프 활동은 중지되고 부정기적으로 친목활동만이 이루어지다가 최근에는 공개적인 활동이 거의 중지되었다.
또 게시물이 게시되는 빈도나 방문자도 급감하여 어떤 때는 며칠간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댓글이 달리는 경우도 급감했다.
문전성시를 이룰 때는 수십명의 상주회원들이 게시물을 올리고 수백 수천명의 저변층 회원들이 게시물과 댓글을 올리는 등 활성화된 홈피였으나 2010년대 말부터는 게시물수가 격감되고 게시물을 올리는 회원들도 열손가락에도 못미치는 등 동지는 가고 깃발만 남은 상태였다.
반기련은 존재는 하되 활동은 없는 휴면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2021년 1월-2월 중 어느날에 조용히 문을 닫고 시민운동으로서 반기독교 활동을 접고 역사 속으로 퇴장을 하였다.
물론 반기련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반기독교 활동 - 안티기독교 활동이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다.
새천년 초기처럼 활발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클럽 안티기독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비평 등 다음에 개설되어 있는 안티기독교 카페들과 네이버에 개설되어 있는 안티기독교 카페들, 개인이 운영하는 반기독교 성향의 블로그와 종갤이나 일베 오유 등의 사이트와 반기독교 성향의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카페 등이 계속 존속을 하고 있다.
또한 교회나 교계 지도자가 지탄을 받거나 비판을 받을 행동을 하여 언론에 보도될 경우 엄청난 비판이 기사 밑에 달리는 댓글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은 교회를 향한 비판적인 정서나 반기독교 성향의 정서가 저변에 그대로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기독교에 대해 비우호적이고 비판적인 정서가 온존하여 있는 데도 왜 반기독교 활동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던 단체인 반기련이 활동을 중지하고 문을 닫게 되었을까?
이것은 종교학이나 사회학 기독교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사회학이나 종교학 등 전문적인 배경이 없는 필자의 분석은 전문성이 결여된 단편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20년이 넘게 안티기독교를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반기련의 폐쇄를 개괄하여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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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PC통신이 활성화되면서 게시판 문화가 생겨났고 이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종교문제도 토론의 주제가 되었는 데 게시판을 통하여 반기독교 성향의 게시물이 게재되고 소수의 강성 안티들이 지속적으로 기독교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자료를 게재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고 활성화되면서 PC통신의 토론 기능이 인터넷으로 옮겨오게 된다.
각 언론사의 게시판들이나 포털의 게시판 정부나 지자체의 게시판 각종 단체의 게시판 등이 네티즌들이 의견을 올리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제공되었다.
이곳을 반기독교 성향의 네티즌(안티기독교)들이 활동의 장으로 장악을 하였다.
당시 한겨레 신문의 토론방인 한토마, 포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 디시인사이드의 종교갤럴리(종갤) 등은 안티들이 상주하며 활동을 하던 곳이었다.
그밖에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 국회의원 정당 사회단체 등 홈피의 게시판들과 동호회의 카페 등이 안티기독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안티기독교 사이트들이 개설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중 2003년 반기련이라는 시민운동을 표방한 안티기독교 단체가 출범하게 되었다.
반기련(반기독교 시민운동 연합의 약칭)은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폭력은 거부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2003년 반기련이 출범하면서 반기독교 시민운동 연합(반기련)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온라인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2003년 10월 3일 한강 둔치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과 전시회를 하며 책자를 발간 판매하는 등 오프라인에서 대중적 활동도 병행하였다.
반기련은 온라인에서 세력을 키우며 반기독교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오프라인에서 길거리 판넬전시 및 설명회 도서발간 친목활동 등을 통하여 회원수를 늘리고 대중조직을 갖추며 반기독교 활동을 확산시켜 간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먼저 온라인을 통한 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반기련의 회원수가 삽시간에 1만명을 돌파하였고 수많은 자발적 동조자들이 등장하였으며 수십개의 활성화된 안티기독교 사이트와 카페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반기련 뿐 아니라 다음 아고라 네띠앙 등 포털과 한겨레 신문 경향 신문 등의 토론방에서 기독교인 네티즌을 제압하고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민노총 인권운동 사랑방 서프라이즈 토론방 등 진보단체의 게시판도 안티들에게 장악되어 언론사나 포털 진보단체의 게시판은 안티들의 활동의 장으로 변화하였다.
욱일승천하는 안티기독교의 기세는 2007년 7월에 발생한 아프칸에서 탈레반에 의해 샘물교회 단기 선교봉사팀이 피랍된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디시인사이드 종교갤럴리 다음 아고라 토론방 서프라이즈 토론방 등은 온통 아프칸 단기팀을 비방하는 자료와 신상털기 개신교회에 대한 비판과 비방으로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게시물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100:1 - 50:1에 이를 정도로 안티들이 우위를 점하였다.
필자는 미생물 배양실험을 한 적이 있다.
미생물을 배양하면 처음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미생물 수가 증가하지만 어느 한계에 이르면 미생물의 증식이 억제되다가 군락이 쇠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먹이의 부족, 공간의 부족 등의 원인이 있지만 미생물이 생활하며 배출하는 배설물의 독성이 그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안티들은 주로 온라인을 통한 반기독교 활동을 하며 단순히 사실에 근거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자료와 허위자료를 사실(팩트)라고 주장하며 게시하였다.
기독교의 절대성과 핵심교리를 부정하는 자료라면 진위를 따지지 않고 사실이라고 우기며 게시하였다.
심지어는 허위자료를 올리기도 하고 조작을 하기도 하였다.
또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과 욕설 악담 등은 이성이 있는 안티들에게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초기에는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기독교인들과 활발한 토론을 벌리기도 하고 다양한 배경과 주장을 가진 안티들이 토론을 벌리기도 하며 역동성이 있었으나 점차 강성안티들이 대세를 장악하면서 안티기독교 사이트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오직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도를 넘는 폭력적 언어의 사용 악담과 저주와 허위 자료의 게시물이 주류가 되었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분열을 잘하듯 강성 안티들도 조그만 의견 차이로 분열을 하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애는 의견차로 서로를 비난하며 욕설을 주고받았다.
뜻이 맞지 않는 안티들은 다투다가 이탈하여 나가기도 하였다.
활동 초기 시민단체를 표방하였으나 강성안티들이 주도하며 쏟아내는 폭력적 언어와 허위 조작 자료의 유포 황당한 주장 동지들간의 다툼인 내분은 시민단체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반기련을 동호회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독이 되고 말았다.
반기련의 활동은 2007년을 정점으로 2010년 이후에는 뚜렷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2010년대 말에는 각 언론사나 사회단체 포털의 게시판과 토론방 문화가 퇴조하고 개인이 개설한 블로그 활동이나 동호회나 동질집단 등의 카페 활동이 위축되고 페이스북과 트윗 인스타그램 카톡 단톡방 밴드 등 다양한 SNS 매체가 등장하는 사이버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며 게시판이나 토론방을 통한 활동은 퇴조하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 가면 반기련은 더 이상 오프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활동이 위축되게 된다.
필자가 분석하는 또 하나의 시민운동으로서 반기독교 활동이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은 전문성이 결여된 아마츄어리즘의 한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인 기반의 결여다.
2005년 반기련의 사무실이 개설되고 상근자가 서버 관리 등을 맡게 되었으나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내부 분규 때문에 상근자가 그만두게 되고 몇몇 핵심 안티가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때 상근 안티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다수의 안티기독들은 재정이 투입되는 상근제도를 반대하였다.
안티들이 가장 비판하는 것이 교회의 헌금제도다.
개신교회는 신도들의 헌금을 통해 상근 목회자를 초빙할 수 있고 조직을 운영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목회자를 양성하고 배출할 수 있는 신학교육기관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개신교회는 어학과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기초 교양교육과 성경과 신학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신학자와 목회자가 계속 배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티기독들은 자발적인 소액의 회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서버관리나 최소한의 행정비용외에는 지출할 재정이 없게 된다.
상근자의 채용은 불가능하고 전문적 안티의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도 없게 된다.
새천년 초기 안티기독교 활동이 활성화될 때 이드를 비롯한 역량이 있는 여러명의 안티들이 칼럼도 집필하고 책자도 만들고 전문적인 자료를 올리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이들의 전문적인 활동을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 다수는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밑천이 다하자 활동을 중단하거나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기독교 이론을 공부할 수가 없어 곧 한계에 도달하게 되어 활동이 위축되었다.
만약 생활을 보장받는 소수의 전문 안티만 있었다 해도 초기에 욱일승천하는 성장과 확산을 하다가 몇년 못가 소강상태에 이르고 위축기를 거쳐 마침내 활동을 중지하는 사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민운동이 의욕과 거창한 목표만 가지고 전개되고 성취되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전문성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활동가에게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단체의 운영과 활동에 재정이 투입되어야 지속적인 시민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반기련은 초기에 기독교 박멸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출범하였지만 상근자를 두지 못하고 자원봉사 형식의 핵심멤버들의 활동은 전문성이 결여된 아마츄어리즘의 한계에 부딛치고 말았다.
극소수의 역량이 있는 안티들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가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자비량 활동을 하다보니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것과 지속적인 활동이 곤란하게 되어 활동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새로운 능력이 있는 안티들이 양성되고 충원되지 않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헌금을 비판하는 것이 개신교회 공격의 명분이 되다 보니 회비를 강조하지 못하고 재정적인 한계에 부딛쳐 온라인에서 손가락 투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오프라인을 통한 시민운동으로 발전하여 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제한 요인들이 겹쳐 시민운동을 표방한 반기련의 반기독교 활동은 반기련이 문을 닫으며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가상세계와 소통수단이 태동하는 초기부터 이들 새로운 매체를 통한 반기독교 활동이 전개되었으나 태생적인 한계점과 외부환경의 변화 전문성이 결여된 아마츄어리즘적인 활동, 재정의 확보를 하지 못한 데서 오는 활동의 한계와 상근인력과 지속적인 인재양성을 지원하지 못하는 시스템 때문에 시민운동을 통한 반기독교 운동을 표방한 반기련은 20년 가까운 활동에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이다.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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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샬롬~ 낭객님께서 오랜만에 글을 등록해주셨네요. ^^
반기독교세력이 활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주장에 제대로 반박하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저도 경험하였습니다. 아무튼, 우리들은 언제든지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