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1장
비봉 산 등반은 어중간 할 때 취하는 루틴이 돼버렸습니다. 요셉 장을 묵상하면서
‘야곱의 험악한 세월’이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고 ‘고난’의 유익을
넘어 ‘자유의지’에 맡겨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에 경의를 표합니다.
드디어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되었습니다(창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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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사람에게 픽업 되어 나가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저 같은 범인은 감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면접 보러 나가는 그 기분이 아니겠습니까? 저 같으면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콩 딱 콩 딱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기 위해 거울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부르자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요셉이 수염을 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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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갔습니다(14). “ 평소 수염을 길렀던 아시아계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수염을 자르는 것이 이집트인들의 관습이었다니 요셉이
수염을 깎고 새 옷을 입고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바로 앞에 선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불려와 꿈 해석을 요구 받았습니다. 관계란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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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든 사업이든 상대에게 신뢰를 받으면 골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께 믿음을 주면 나는 구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사업에서 고객
에게 신뢰를 받으면 돈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만약, 바로라는 권력자에게 신뢰를
주기만 한다면 내 퍼포먼스만큼 일이 맡겨질 것입니다. 채색 옷에서 노예의 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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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총무의 옷에서 죄수의 옷을 입었던 요셉은, 이제 바로가 하사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옷이 입혀질 것입니다. 기회란 누구에게나 오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에 늘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에공 알겠니?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기회가 왔을 때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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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왕의 꿈을 통해 애급을 향한 당신의 뜻을 계시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일
강의 풍부한 수자원으로 번영을 누리던 애급이라도 7년의 기근이면 저주의 땅이 되고
말 것이고, 두 번이나 꿈을 꾸게 하신 것은 꿈의 주인, 진정한 통치자, 꿈의 집행자께서
그 뜻을 반드시 실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에고 무시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바로 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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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요셉이 대안을 제시합니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인재의 등용, 행정제도의 정비,
풍년 때 흉년을 대비하는 경제정책을 펼치랍니다. “아니 이런 예쁜 놈이, 요셉 네가 하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은 소설가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비우고 버리고 포기하고 부정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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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는 분은 세상에 하나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약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고
모자라도 걱정할 것 없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17세에 집을 나온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됩니다. 채색 옷을 입고 나왔는데 기어이 대 애급의 총리 복을 입은 것입니다.
저는 43살에 1억 오천 들고 집을 나왔는데 51세에 아미랜드에서 점방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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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옷은 못 입었어도 꿈은 있었건만 소명도 비전도 다 잊고 한심하게 살고 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해몽을 듣고 이 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요셉은 그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요셉만이 이 꿈이 가리키는 애급의 현실을 타계할 수 있는 인물
이라고 판단하고 요셉을 애급에서 자신 다음가는 권력의 자리에 앉힙니다. 그동안 추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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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을 반복하던 요셉은 결국 하나님이 계획하신 치리자의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형제들의 시기심, 보디발 아내의 빗나간 욕정, 술 맡은 관원 장의 망각마저 협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애급의 녹을 먹으며 애급 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완전한 애급 사람이 되었지요. 애급의 이익을 위해 바로를 주인으로 삼아 자기가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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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충성을 했습니다. 실제 애급에는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들었으며, 요셉은 애급 온 땅 사람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곤경을 해결해줌으로써 복의
근원으로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참된 정체성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 자리에 앉게 하신 것을 기억했으며, 가나안에 있는 자신의 가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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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는 두 아들의 이름을 짓는 데서
드러납니다. “므낫세(잊는다), 에브라임(두 배의 과일)” 17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총리에
오를 때까지 13년 동안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시면서 친히 이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시간은 화살 같습니다. 이제 제가 57살 9월을 살고 있네요. 하나님을 떠나 객으로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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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얼추 13년 쯤 될 것입니다. 원조 산전수전에 이혼까지 했으니 말해뭐합니까?
‘므낫세(잊는다)’라고 이름 짓는 본문을 읽는데 눈물이 나옵니다. 돈, 꿈, 가정, 다
깨졌지만 이제는 정말로 다 버릴 수 있고, 모든 슬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아픔의 시발점인 티-칭과 관련된 과거를 정말 다 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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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에서 총리로, 애급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 지면을 살리는 자로
세우신 요셉의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 주님,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실과 지혜로 맡은 일들을 감당하게 하소서.
주님, 꿈은 소명이며, 꿈에 대답하는 자가 성도인 것을 압니다.
제 모든 경험이 의미 있게 사용될 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겠습니다.
2020.9.6.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