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아름답다
김명규
부부라는 인연은 참 오묘한 관계인 것 같다. 혈육이 아닌 남녀가 만나서 일생을 동고동락 하는 것이 부부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짝을 잘 만나 평생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일생을 불행하게 마치는 부부도 있다.
늙어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남편을 보면 늘 설렜다는 친구가 있다. 그 남편 역시 부인을 여왕처럼 모시고 산 멋진 신사였다. 그의 남편은 널리 알려진 작가였는데 암 투병을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간병인을 두지 않고, 친구 스스로 1인 병실에서 남편을 간호하였다. 얼마 남지 않았을 둘만의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남편의 고통을 없게 해 주시라고 끊임없는 기도를 드렸다. 살면서 남편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모든 것에 보호받고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였던 사람이다.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었던 친구에게 나는 아버지 같은 남편이었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감을 모르기에 남편은 자신에게 있어 예수님이라고 하였다. 놀라웠다. 어쩌면 남편이란 존재를 예수님으로 모시고 살았다니. 남편과 둘이 살던 넓은 집에 그는 홀로 살고 있다. 남편이 떠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듯 끼니마다 식사를 지어 차려놓는다. 남편의 식탁 앞에서 영혼을 위해 기도드린 뒤 차려놓아둔 식은 밥을 먹는다. 뿐만 아니라 밤마다 꿈속에서 현실처럼 남편과 만나고 있다고 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와 유령이 된 캐서린이 밤마다 달빛 속에서 만나 하얀 눈길을 걷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좀 섬뜩했지만 무섭지 않느냐고 묻지 못하였다. 내가 무서워질 것 같아서였다.
그 친구를 만날 적이면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는 늘 소설 같은 얘기를 한다. 그와 헤어질 때면 나는 감동적인 영화 속에서 빠져 나온 듯하다. 아직도 죽은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밤마다 꿈속에서 생생하게 만나고 살아생전의 일상처럼 얘기를 나눈다 하니, 그 영혼은 아내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 친구도 나이가 들었지만 미모와 지성미가 매력적인 여자다. 저런 여자를 남편은 얼마나 사랑했을까. 남편은 오직 아내가 제일이었고, 친구에겐 남편이 최고의 인격자였다고 한다.
육중한 남자가 부린 몸을 씻기고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을 사랑의 힘이 아니면 해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것을 던지고 남편의 간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어떤 티브이 장면에서 출연한 농촌의 할머니가 남편의 다른 호칭을 뭐라고 하느냐고 묻자 “웬수, 평생에 웬수”라고 말했던 할머니의 생애를 나는 그려보았다. 날마다 술독에 빠져서 행패를 부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행여 폭행을 당하면서도 자식들 때문에 숨죽이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부부가 친구네처럼 살다가 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울까.
오래전 시골에 살 때 이웃에 궁핍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남자는 역 근처에서 짐을 들어주는 잡역부로 일을 하고 부인은 남의 집 가사를 돕고 얻은 품삯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밤마다 아내를 폭행하였다. 길에서 만난 여자의 얼굴이나 팔은 시퍼런 멍 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옆집에 살았기에 맞으면서 악을 쓰는 여자의 소리가 한밤에 단잠을 깨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부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길에서 만난 부부는 다정해보였다.
세상 부부들 중에는, 남편이 마냥 어린애처럼 부인을 의지하고 사는 경우도 있고 친구네처럼 오직 아내만을 위해 사는 남편도 있으며 마지못해 사는 부부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평생을 함께 살다보면 서로가 의지할 사람은 부부뿐이다. 젊었을 때 남편이 속을 썩이며 살았던 부부도 늙어서는 대개가 아내에게 숙이고 돌아온다.
오늘도 친구는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했다. 얘기를 듣다 보면 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분이라는 걸 나는 순간 잊어버린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친구의 손등에 잔주름이 밀려있다. 사랑했던 흔적이다. 남편은 떠났지만 흘러간 사랑 이야기로도 행복감이 충만하다.
그런 그녀가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