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마저 즐거운 클래식‘검보점보’
-‘2003 예술축제 FAM’메인공연-
클래식음악 현악기 주자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대사를 읊조리며 연극도 한다. 영국 클래식음악 앙상블 고그마곡스의 뮤직퍼포먼스 ‘검보점보’다. ‘2003 예술축제 FAM’의 메인공연으로 20~22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르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오는 이들은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출연하는 연주자는 7명.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컴컴한 무대에 한 줄기 조명이 들어오면 인조잔디로 덮인 무대 한가운데 세워진 첼로 보관함이 저절로 흔들린다. 관객들은 놀란다. 혼자 움직이다니. 그러나 보관함 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여성 연주자가 귀신에 홀린 듯 무대로 나오면 관객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무대 전체가 밝아지면서 무대 주위에 서있던 6명의 연주자들이 서서히 ‘일’을 낸다. 관객들은 어둠속에서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등장한 연주자들의 모습에 긴장을 풀고 웃음을 터뜨린다. 무대에는 연주회의 필수품인 보면대가 없다. 연주자 전원이 음악을 외워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춤추며 뛰고, 걸으며 연주하다 바닥에 나뒹구는 등 한시도 관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도록 깜짝 놀랄 만한 동작을 이어가니 보면대가 무슨 필요있겠는가. 출연자들은 대사에 연기까지 거침없다. 수술침대에 누워있던 남자환자를 여성 보호자가 희롱하니 환자의 성기부분을 덮고 있던 이불이 불룩해진다. 객석은 폭소의 도가니. 한술 더떠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서로 껴안고 애무한다. 배경음악으로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다시 장면이 바뀌면서 풀밭에서 한 사람의 첼리스트가 들토끼 복장을 한 채 괴기스런 모습으로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의사 가운을 입고 토끼 모자를 쓴 6명의 연주자들이 즉석연주와 함께 일렬로 원을 그리며 춤추고 무대를 뛰어다닌다. 오페라처럼 노래를 주고 받기도 하고 연극처럼 ‘재밌게 즐기세요’ ‘잘있니?’ ‘기다려’ 등 대사와 비명을 지르며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한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 커플은 ‘사랑한다’고 서로를 거칠게 움켜쥐고 씨름하며 대답한다. 이는 에로틱한 러브신인 동시에 멋진 격투 장면이다. 그들은 복잡한 음악을 연주하는 동시에 뛰고, 웅크리고 키스하고 구른다.
4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 연주자들로 구성된 ‘고그마곡스’의 작품은 ‘클래식음악의 경계를 없앤 공연’이라는 격찬을 받으며 세계무대에 클래식음악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1995년 7명의 현악연주자들과 연출가 루시 베일리가 모여 창단했는데, 리더인 베일리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영국 국립극장과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오페라와 연극작업을 했던 만큼 고그마곡스의 공연을 다분히 연극적이고 무용적인 형태로 제작해왔다.
‘고그마곡스’는 런던을 수호하는 한쌍의 거인 조각상이 설치됐던 언덕 이름. 이번에 선보이는 ‘검보점보’의 ‘검보’는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다양한 재료로 만든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뜻하며, ‘점보(거대한)’란 뜻과 만나 굉장히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임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2003 예술축제 FAM’은 14~22일 국립극장 5개 공연장에서 계속되는데, ‘검보점보’를 비롯해 엔리케 쿠티니 오케스트라의 ‘탱고이모션’, 개막공연 ‘Fam Fam-소리미로’, 한국전통음악 프로젝트그룹 퓨처 무브먼트 타이거의 ‘에너지’, 음악놀이터와 마술, 컬러팝밴드와 마술사, 한국화가 전량기씨의 ‘징 울음소리에 하늘 문 열리고…’전 등 20여종의 예술행사가 계속된다. (02)3469-1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