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선을 100번 넘게 보고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한 나이 많은 여성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왜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까? 그러니까 그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남자를 만났을 때는 멋 모르고 만나서, 얼떨결에 아닌 것 같아서, 자기 좋다는 것 외면했답니다.
두 번 째는 지금 보다 더 좋은 놈 있을 것 같아서 차 버렸고, 세 번째는 두 번째 본 놈 보다 못해서 싫었고, 네 번째는 다음에는 좋은 놈이 나타날 것 같아서 싫었고, 그러다가 보니까 선을 100번을 넘게 봤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첫 번째 본 놈이 제일 좋았는데~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이 좋은 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어지면 그제서야 그 사람이 소중하고 중요하고 좋은 것을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혼자 여러 가지 공상을 하기를 좋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인데 저는 제 나름 대로 절대 가치를 가질려고, 나름대로 어떤 가정을 잘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 여자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런데 그 여자가 어느 날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그 여자를 나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를 합니다. 만약에 내가 어떤 중요한 모임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동참을 해야 하는데,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엉망인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모 지상주의인 시대에서 못 생겨도 욕먹는데, 이해를 못합니다. 그 여자를 손가락질 하면서 놀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하게 생긴 얼굴을 계속 보면서 그것을 초월할 수 있을까?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쉬운 일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어제 장례식을 갔다 오면서 한 자매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의 스킨쉽 문제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그 부분에 굉장히 민감했었습니다.
자기는 손잡는 것만 이해를 한다고 했습니다. 남자가 어깨에 손을 얹는 것도 너무 너무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니 싫어할 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어느 정도 스킨쉽을 요구할 텐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매가 하는 말이 만약에 좋아하는 남자가 어깨에 손을 얹거나 스킨쉽을 요구하면 자기는 당장에 헤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오직 플라토닉 러브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 얼굴은 심지호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얼굴은 심지호를 닮은 사람과 플라토닉 러브~ 저는 심지호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좀 어렵지 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정말로 친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 형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식 할 때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결혼 할 때 형이 먼 곳에 있었는데, 찾아 왔습니다. 여러 가지로 저에게는 참 고마운 형입니다.
그런데 그 형이 결혼 식 때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입니다. 형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여자가 모든 관절이 굳어가는 병이 걸린 여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꼼짝 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항상 누워만 있는 여자랑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 형이 그것을 알고 결혼을 했습니다. 형이 뭐가 하나 모자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 고등학교까지 대구 대륜 고등학교 축구 선수 였습니다.
대구 대륜 고등학교 축구부 전국에서 유명합니다. 그런데 형이 키가 좀 작습니다. 그래서 자기 판단컨대 축구 선수로서 대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학교에서는 축구부니까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전학을 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부해서 제가 나온 대학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아주 성실하고 본받을 만한 형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 형이 그런 결혼을 했는지 제가 물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동정심에서 였는지 아니면 정말 그 여자를 사랑해서였는지 모릅니다. 암튼 그런 상황이었으면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절대적인 가치의 사랑~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없애도 남아 있는 사랑~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암튼 혼자 여러 가지 가정을 많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중에 이런 가정도 했습니다. 내 혼자 무인도에 혼자 있으면 내가 살 수 있을까? 그런 가정도 한번 씩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인도에 혼자 있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났습니다. 너무 너무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먹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날 것 같습니다. 영화 같은 곳에 보면 무인도에 정박해서 물고기를 잡아 먹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아서 나무에 꼽아서 불에 구워 먹습니다.
사실 불피우는 것도 나무 끼리 마찰을 일으켜서 불 피우고, 또 고기도 쑥 뜯어 먹으면 뼈만 남고 아주 맛있게 먹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순 거짓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고기 내장 있습니다. 꿉으면 사실 내장도 있는데 어떻게 쑥 뼈만 먹습니까?
그리고 비늘이 얼마나 딱딱한데~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암튼 혼자 생각을 하면서 아주 아주 불편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스레인지에 내장을 발라낸 간이 맛게 절여진 고등어를 굽어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 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같이 있을 때는 그것이 내게 얼마나 유익한 지 모르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면 그것이 없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깨닫게 되어집니다. 전에 한 집에 심방을 갔었는데 그런 이야기 합니다.
아주 고층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신데 온 가족이 대피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뭐 놔두고 온 것이 있어서 집에 가지러 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죠?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때 금요일 기도회하는 날인데 왔다가 집에 못가서 우리 집에서 몇몇 유리하는 청년들이 노숙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 있었던 청년들은 정전인지 뚜렷이 기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균 형제의 주장으로 월남뽕 게임을 했는데, 지는 사람은 컴컴한 계단 밑에까지 내려가서 뭘 가져오는 벌칙을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정전인 줄 압니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에 사시는 이 분이 자기 아파트에 뭘 놔두고 와서 가지러 갔는데, 정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에레베이트가 고장이 난 것입니다. 집이 26층입니다. 그래서 바람불고 컴컴한데 26층까지 한 20분 이상 걸어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엘리베이트의 고마움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같이 있고 그것을 사용할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사용하거나 없어지고 나면 얼마나 불편한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용하고 있을 때 항상 소중한 것을 알고, 같이 있을 때 귀중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엘리 제사장 가문에 일어난 일 중에 제일 마지막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책을 다 읽어도 다 읽고 나면 뭔가 남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나중에 남는 여운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제일 마지막에 일어난 일을 보면서 제 마음속 을 깊숙이 찌르는 비수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 줄 압니까?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여러분 엘리 제사장~ 제사장 가문입니다. 제사장 그 당시 최고의 가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누가 제사장 하고 싶다고 제사장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레위 지파에서 태어나지 못하면 제사장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선택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결격사유가 없이 순탄하게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 제사장의 가문의 마지막을 보니까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픈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 제사장의 가문~ 과거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 가문의 지금까지의 삶이 성경에 별 기록이 없을 정도로 평탄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엘리 가문을 보십시오~ 어떠합니까?
정말 처참한 상황이 엘리 가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또 제사장 엘리 자신의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의자에서 자빠져서 목이 뿌러져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죽은 상황에서 비스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가봇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 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저주 받은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런 일들이 엘리의 가문에서 일어났습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이 엘리의 가문은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 엘리의 두 아들을 보세요~ 하나님께 드릴 제물에 이 엘리의 두 아들이 먼저 손을 대었습니다.
또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자들과 이 엘리의 두 아들이 몹쓸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사장인 엘리는 이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엘리의 가문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아주 소홀이 여기는 행동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린 것입니다. 제사장이 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높여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높여할 것이 임무인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면 누가 하나님을 높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 엘리의 두 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는 행동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해서 의식이 없고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엘리의 가문은 하나님이 그동안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무디는 사랑스런 딸과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얘야, 길이 너무 미끄러우니 아빠가 너를 붙잡아 주마.” 그러나 딸은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습니다. “싫어요. 나도 걸을 수 있어요. 이것 보세요.” 싫다고 하는 딸의 의견을 존중하여 옆에서 걸어가면서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서 딸은 눈길 위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그것 보렴. 아빠가 붙잡아준다고 하지 않았니?” 딸은 그제야 “아빠가 손가락 하나만 잡아줘도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고 무디는 손가락 하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눈길 위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보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이제는 꼭 잡아주세요.” 딸의 손을 꽉 붙잡은 아빠의 손은 딸이 넘어지려는 순간마다 바르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함께 할 때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던 사람이 하나님이 떠날 때 그 모습이 얼마나 비참해 지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 사울 보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다가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악신이 걸려서 정말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을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안에서 태어난 나실인 삼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을 때에는 그는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천하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버렸을 때에 그는 적군에게 붙잡혀서 노예가 되어서 두눈까지 다 뽑히는 아주 비참한 인생을 살 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참 멍청합니다. 그래서 있을 때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실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함께 하심의 소중함을 헌신짝 처럼 저버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제발 제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 오늘 이 엘리 가문의 몰락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고 그것을 무시하는 대서 오는 저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아무도 여러분을 자기 마음대로 건들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니까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떠나면 우리는 정말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제일 걱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떠나실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제발 하나님이 떠나시지 말 것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을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중요한 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한 이후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했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 가문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가문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돼지는 진주를 줘도 소중한 줄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것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르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언젠가는 떠나실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돈이 많아도 공허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놓은 지위에 있어도 맘이 항상 불안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이쁜 아내를 두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마귀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정말 큰 축복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알고 싶은데 안믿는 사람들 있습니까?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안다는 것입니다.
나우웬이 죽던 날 간행된 비교적 짧은 책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The Inner Voice of Lover)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신뢰라는 말이 65번 나온다고 합니다. 몇 군데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매순간 당신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모태에서 너를 조직했다’(시 139:13)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방황을 멈추라. 대신 집에 돌아와 하나님이 당신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신뢰하라.”
“지금까지 당신은 남을 기쁘게 하는 자였고 남에게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스스로 만들어 낸 모든 버팀목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으로 족함을 신뢰해야 한다.”
“근본적 선택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며 당신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항상 신뢰하는 것이다.”
나우웬의 이전 책들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빈번히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작품에 믿음은 1번, 신뢰는 65번 나온다. 여러분~ 이것은 성숙을 향한 그리스도인 삶의 길목 어디선가, 믿음은 소망과 합해져 신뢰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어떤 확신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처음 시작하신 일을 지속하고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우웬이 자신의 죽음을 복된 경험이라 보았을 정도로 그의 삶에서 이 신뢰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함께 하심의 신뢰의 길에서 충실하면 우리도 욥과 같이 고백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신뢰)하리니”(욥 13:15).
이번 한주 새벽에 다른 때보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때 마다 느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 하심~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고~ 가장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것 때문에 견디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읽어버리면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막막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안타까운 것~ 다른 것은 소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떻게 될까요?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거졌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시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이 엘리 가문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것은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곧 군에 가는 친구가 기도 제목 내라니까 그런 말 했습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첫댓글 무플방지 위원회 1등,아멘
끄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