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791
대전시 서구 월평동 누리 아파트 107돈13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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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캍
묵혀 두었던 시집을 넘기다
문득 손을 베었다.
집안일 십여 년 굳어진 살갗을
날래게 스치고 간 시 한 구절
내 허영의 화티(불씨를 보관하는 작은 아궁이) 한구석에 꽂힐 때
칼 하나 오롯이 품었구나.
눈길 멀어 보얗게 잊혀지며
칼날 세우고 있었구나
바람 잘 지나는 침대에 누워
남의 시 거저 읽으려다
쇠리쇠리 벼린 풀잎에 영혼을 베인 저녁
핏방울 꽃 선연히 벙글어
노을같이 취기같이
하얀 머리속에 번지다
내 두터운 시안詩眼의 각막 저몄음인가
안 보였던 별이 보이는 것은
초사흘 눈썹달이 저리 눈부신 것은
달빛 곰국
아덜 손지 메누리 모다 와서 절간 같던 집 혼 빼놓디만
아들들은 까치 추석 동창회 가삐고 손자들은 달도 못 보
고 잠에 빠져뿟네 집안 가득 니끼한 지름 냄새 잠이 고마
달아빼서 휘영청 달빛 아래 무새솥 내걸었제 장수오메
보내온 암소 엉치빼 잘 꼬아 한 그륵썩 믹이 보낼라꼬
달빛 국물 보얗게 일나고 수숫대 살살 실어주던 달님
도 중천인데 아들이 어째 너무 늦네 메누리는 뺏국 삼탕
이 고작이라재 일삼아 불마 때마 다섯 번도 진국인데 아
적 묵직한 저 잉걸불도 아깝고 대낮겉이 환한 달빛 고마
버서 다시 한 번 물을 부서보네 달과 나라이 가는 저 별
은 떨어질 중도 모리고 의도 참 좋네 오순도순 가다 보마
밤길도 금방이겠제 아슴아슴 자불고 있는 잉걸불 위에
마른 깻단 언지고 장작 몇개비 들개주네
장작도 외로바서 혼자는 못 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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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타자의 삭막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서사가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가
서정으로 승화하여 따뜻하게 껴안는 모습이 감동적인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로지 미화 하는 것도, 또 정감 화 하기만하는 것도 서정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현실성 없는 미학성은 울림이 없기에.
다 올리지 못한 그녀의 다른 시들은 고통 받는 이들을 포용하는
가슴 따뜻한 영혼의 울림이라 참신하게 다가왔다.
한 편 한 편 모두 뽑아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2편만 뽑아야 했다.
날이 밝자말자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의 다른 시집도 읽고 싶었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녀의 시집은 첫 시집이라 하기에 너무 완숙하였다.
나는 이제 그녀의 시를 따라 갈 것이며
간절하게 다음 시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