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고달사지>를 걷다
1. 현재 단기거주하고 있는 양평의 ‘양동’은 여주와 아주 가깝다. 양평에서 양동으로 올 때 중간 도로가 여주로 바뀔 정도로 서로 중첩되어 있다. 양동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여주의 <고달사지>를 방문했다. 과거 폐사와 불상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왔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때에는 무척이나 넓고 독특한 느낌과 인상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탐사객들과 방문할 때와는 다르게 혼자 방문하니 같은 지역도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훨씬 더 큰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2. 고달사지는 우수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10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오로지 시간의 깊이가 쌓여가는 돌의 위엄을 지닌 미술품들이 자연 속에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과거의 위용을 지닌 고달사지의 옆길로 들어서면 보물로 지정된 원광대사의 탑과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승탑이 나타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탑 모두 비슷한 형태의 모양과 탑에 새겨진 동물의 형상적 아름다움에서는 유사했지만,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승답의 문양과 새김이 좀 더 입체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강렬함에서 차이를 보인다 할까? 어쩌면 이러한 판단도 결과를 알고 보는 것에서 나오는 편견일지는 몰라도, 승탑의 형세와 무늬가 더 뛰어난 화려함과 중후함을 지닌 세련미를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3. 그밖에도 고달사지 주변에는 고려시대 석실묘의 자취도 볼 수 있으며 고달사지 중심에는 원광대사의 탑비(보물)와 불상이 사라진 석조대좌(보물)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고달사지 위쪽에서 사라진 절의 모양을 바라보니 신라부터 고려시대까지 국가의 중심 사찰로 인정되었던 웅장한 흔적이 상상 속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양주의 ‘회암사지’만큼 넓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규모의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주춧돌들은 한 시대의 영광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렇게 시간의 소멸 속에서도 영원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돌들의 흔적은 유한한 인간의 사라짐과 대비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었다.
첫댓글 - 아무도 없던 고달사지 주차장에서 깊게 맛본 낮잠, 산들바람 한줄기, 떠가는 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