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에서 천일식당을 모르면 식도락가 축에 끼지 못한다. 일제시대인 1924년부터 80여년째 한자리에서 맛깔스럽고 푸짐한 음식맛을 묵묵히 지켜온 한정식집. 식당은 옛모습 그대로 허름하지만 ‘땅끝’ 해남을 찾아가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 집이다. 유홍준 교수는 ‘조선 백반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정식집 중의 하나로 맛이 화려하고 푸짐하며 환상적’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박성순 할머니(1973년 작고)에게서 시작된 해남 천일식당 맛의 비결은 3대째 며느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박씨의 며느리인 이정례 할머니(1990년 작고)에 이어 이씨의 며느리인 오현화씨(44)가 물려받았다. 이 집의 찬모들도 대부분 20~30년씩 주방을 지키고 있다. 주 메뉴는 30여가지의 맛깔스런 반찬이 곁들여지는 한정식(1인분 1만1천원)과 떡갈비 정식(1인분 1만6천원). 사람이 많을 때는 줄을 서서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천일식당 떡갈비는 너무 유명해 일본에까지 알려져 있다. 오씨에 따르면 떡갈비는 2대 주인인 이정례 할머니가 개발한 음식이라고 한다. 갈비뼈에 붙어 있는 살점을 발라내 떡처럼 둥글게 다진 뒤 배즙, 참기름, 마늘·생강·파 다짐 등 20여가지의 양념을 넣고 한나절쯤 재워 숯불에 굽는 떡갈비는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연하고 부드럽다. 떡갈비를 만드는 손이 부족해 추가 주문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
낡은 칸막이로 나뉜 10여개의 방 중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종업원 두 사람이 교자상을 마주잡고 들어온다. 한상 가득 놓여진 정갈한 음식들 중에는 갈치창젓, 토하젓, 돔배젓, 어리굴젓 등 남도 특유의 젓갈이 식욕을 자극한다. 세발낙지와 게장, 조기 등의 해물도 푸짐하다. 한복판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떡갈비가 놓인다.
이밖에 홍어애(속) 맛이 아리하게 배어나는 보릿국과 시래기국, 된장국, 감자국 등 철에 따라 다른 국이 번갈아가며 상에 오른다. 박속나물, 묵은 김치, 새 김치, 오이나물, 병어회, 청어구이, 초친 우무 등 20여가지의 토속·계절 반찬도 따라나온다. 반찬 한번씩만 집어먹어도 밥 한그릇을 거뜬히 비울 수 있는 진수성찬이다. 해남읍 중앙극장 옆에 있다. (061)536-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