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명기 |
1.Antonio de Torres (1817-1885) 토레스 [스페인] 토레스는 몇 년간, 그라나다의 호세·페르나스 Jose Pernas의 아래에서 기타 제작을 배워, 1850년에는 세비랴에 주거지를 지었습니다.악기 제작으로 생계를 세우지 못하고, 고향의 아르메리아로 완전히 다른 직업에 붙은 후, 만년의 1892년부터 다시 기타 제작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형(오빠) 호세·라미레스 일세(1857-1923)부터 기타 만들기의 기술을 습득해, 그 후 안토니오·토레스)의 영향을 받는다. 토레스의 사후, 기타레이로의 왕자로서 만명이 인정하는 곳(중)이 되었다. 세고비아가 초기의 무렵, 이용하고 있던 것은 유명하다. 3. Santos Hernandez (1873-1942) 산토스·엘난데스 [스페인] 마누엘·라미레스의 문하생의 한 명.라미레스의 사후, 기타 제작법으로 개량을 거듭해 오늘 그 기타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400~500만엔이라고 하는 고가의 값이 결정될 수 있어서라고 있다.고명한 기타리스트, 데·라·마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4. Domingo Esteso (1881-1937) 일요일·에스테소 [스페인] 마누엘·라미레스의 문하생의 한 명.산토스에 뒤잇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5. Jose Ramirez2 (1885-1952) 호세·라미레스Ⅱ세 [스페인] 호세·라미레스 2세는, 4 형제의 장남으로, 기타의 일에 흥미를 가진 것은 그 혼자서 있다.어릴 적부터 아버지 1세의 아래에서 제자 엔리케·갈시아(1868- 1922)나 숙부 마누엘·라미레스들과 함께 살아, 기타 제작을 습득하며 갔다.2세는 뛰어난 기타 연주자이기도 했으므로, 1904년, 20세 때 연주 그룹의 일원으로서 남미를 연주해 주위, 마지막에는 프에노스·아이레스로 결혼했으므로, 영주 하는 것을 결의했다.라미레스 3세는, 1922년에 브에노스·아이레스로 태어났지만, 1923년, 라미레스 1세가 죽었다고 소식이 들어와, 라미레스 2세는, 1925년, 마드리드에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19년이나 기타 제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공방을 계승하게 되었다.가게를 계승해 수년후, 세비리야의 박람회에서 최고상을 얻고, 그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6. Marcelo Barbero (1904-1956) 말세로·바르베로 [스페인] 호세·라미레스Ⅱ세(1885-1957)의 원으로 수행을 쌓는다.원래는 축구 선수였지만, 다리의 고장에 의해, 기타 제작가에 전향 했다.악기 제작은 천재적으로 기타 제작에 종사한 기간은 짧고.상태의 좋은 악기는 거의 현존 하고 있지 않다.플라맹고 기타도 제작했다.산토스의 사후에 그 미망인의 곳에서 일을 해, 산토스의 기타가 많은 특색을 몸에 익힌다. 7. Arcangel Fernandez (1931- ) 알칸 헬·페르난데스 [스페인] 말세로·바르베로아래에서 기타 제작의 수행을 한다.바르베로의 사후, 자신의 가게를 가져 탁월한 기타의 제작을 시작한다.스페인의 정당한 전통을 계승한 알칸 헬의 작품은 스페인다운 누락의 좋은, 그래서 있어 심이 있는 밝은 음색을 가지고 있어 기타리스트를 매료하고 있다.현재는 가게는 바르베로의 아들(바르베로·이호)이 실질, 계승해, 이따금 밖에 제작하고 있지 않다.악기의 평가는 높고, 시가 300~4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다.스페인의 미인 기타리스트, 마리아·에스테르가 사용하고 있다. ![]() ![]() 한편, 바르베로·이호는 착실하게 실력을 붙여 오고 있어 아버지, 말세로·바르베로나 알칸 헬에는 아직도 미치지 않기는 하지만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다.그 소리는 역시, 스페인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특히 일본에서의 평가는 높다.일본에서는 200~250만엔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8. Jose Ramirez3 (1922-1952) 호세·라미레스Ⅲ세 [스페인] 호세·라미레스 3세는, 1922년에 태어나고, 1925년, 3세 때에 아버지와 함께 프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 마드리드로 돌아왔다.1940년, 18세 때에 라미레스 이에시로들의 공방에 아버지의 요청으로 들어가, 종래의 기타를 연구, 해명해, 소리의 개량에 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 , 3세에 있어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거장 세고비아가 27년간 애용한 숙부 마누엘·라미레스의 기타를 쉬게 해 1937년부터는 독일의 헬만·하우자 제작의 기타를 기꺼이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세고비아가 마음에 들어 연주해 주는 기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1960년, 라미레스 3세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타의 한 개가 세고비아에 의해서 선택되어 그 후, 세고비아의 애용하는 악기가 되었다. 라미레스 3세의 기타 개선을 획기적으로 성공시킨 포인트를 크게 나누면, 현장, 구조, 도료, 도장의 4개이다.기타의 현장 에 관하여는 많은 제작가가 과거에 연구를이라고, 현재는 650 mm전후의 기타가 일반적이 되었다.토레스는 650 mm였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보고, 문헌이 손에 들어 오는 시대도 아니고, 그 시대에 650 mm현장을 설정했던 것이다로부터, 훌륭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던 제작가라고 할 수 있다.마누엘·라미레스는 655 mm, 산토스·엘난데스는 659 mm를 많이 채용, 일요일·에스테소는 655 mm, 헬만·하우자는 650 mm와 640 mm, 주로 650 mm 를 채용하고 있었다. 라미레스 3세는 보디의 내부 구조, 향공, 말의 위치등에서 보고, 664 mm의 현장이 소리에 있어서 이상적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다.그러나, 연주하기 쉬움을 생각하면, 650 mm가 유리하고, 요즈음은 650 mm가 흐름이 되어서 선호되고 있다.1963년에 현장에 이어 개량한 포인트는, 보디내의 공기 진동을 바꾸기 위해서, 동판의 안쪽에 시프레스재의 판을 개중에 붙인 것이다.이 개중동판에 의해서, 음질은 현격히 뛰어난 것이 되었다.1963년에는, 기타의 표면판으로서 새로운 재료, 레드·세다(THUJAPLICATA)가 사용되었다.현악기의 표면 판재료는,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송, 유럽·스프르스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으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어느 제작가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는 없을까.뒤, 동판은 자단, 마호가니, 메이플 등, 각종의 재료가 시도되었지만, 표면판은 소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향판이며, 송 이외의 재료에 생각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미국의 레드·세다를 발견한 라미레스 3세는, 그 재료에 의한 시작을 시작하고 음질이 다른, 음량 풍부 기타의 제작에 성공했다.날시소·이에페스는, 이 새로운 기타를 가지고 가 일본에 연주 유행하러 왔다.이, 레드·세데이를 사용한 기타는, 기타리스트, 제작가에 큰 영향을 주어 1, 2년 후에는 세계의, 많은 유명한 제작가가 레드·세데이재의 채용을 단행했던 것이다. 라미레스 3세의 레드·세다재에 의한 기타의 등장은 대단한 충격이었다.당시의 3세의 송재에 의한 기타의 소리와는 크게 달라, 박력이 있는 풍부한 음량, 부드럽고 단 음색으로, 윤기가 있는 말씨가 좋은 소리는, 지금까지의 송재의 기타를 압도했던 것이다.레드·세다재와 비교하고, 송재 기타는, 음질은 쿨하고 잡음이 없는 투명한,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훌륭한 소리라고 말해졌지만, 레드·세다재는, 음색의 변화, 표현 등, 송재와 비교하고 소리를 만들기 쉬우면 잘 말해졌다. 1963년에 레드·세다 표면판으로 시작된 4개의 기타는, 최초로 세고비아의 손에게 건네졌다.세고비아는 그 중의 1개를 선택해, 그것까지 사용하고 있던 1962년작의 기타는 새로운 라미레스와 교환되었다.1965년 이후는 라미레스의 새로운 기타가 몇개나 세고비아에 의해서 테스트되면서 콘서트에서 사용되어 왔다.1967년작의 기타는 약 3년간, 세고비아의 콘서트에서 사용되어 그 후, 몇개나 세고비아의 집을 왕래하고 있었던 것이다.1974년, 1975년에는, 후레타의 기타가 콘서트에서 사용된 일이 있지만, 미국의 어려운 각지의 건조하게 견디지 못하고, 기타의 각처에 분열을 일으켜 사용 불능이 되어, 다시 라미레스 3세의 기타로 돌아와, 그것 이후, 세고비아는 돌아가실 때까지 라미레스 기타를 애용했던 것이다. 오늘로 라미레스가 얻은 수상은 다 셀수 없지만, 아래와 같이는 주요했던 상이다. 1962년 시카고 기타 협회 금화 1962년 마드리드 상공회의소 동화 1968년 로마 기타 문화 센터 명예 회원 1972년 마드리드 제작가 협회 금상 1983년 산티아고콘보스테라 명예 회원 1986년 마드리드 전통 예술가상 1987년 마드리드 상공회의소 센츄리엠프레사데이프로마 1987년 파리 교육 문화성 데이아파손오드르상 근대 기타는 토레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말해지지만, 그 토레스와 대등해 칭해져도 괜찮은 현대 기타의 명공은, 호세·라미레스 3세는 아닌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치고, 세계적으로 기타가 융성 해, 라미레스 기타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3세는 제자의 수를 늘려, 4층건물 지하 1층의 공조 설비의 완비한 근대적인 공장에 이전했다.재료는 자연 건조, 강제 건조하게 따르고 이상을 일으키지 않게 되어, 여름이라도 겨울이라도 50%의 습도의 실내에서 제작된 기타는, 다른 기후 조건 중(안)에서도 이상의 적은 기타가 되어, 세계에서는 가장 튼튼하고 이상의 적은 기타라고 말해진다. 제자들 13명이 제작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제작된 기타에는, 안쪽에 제작자의 이름의 이니셜이 스탬프 되고 있었다.이상한 일로, 제자련이 만든 기타에는 미묘한 소리의 차이가 있어도, 분별해 들어 나누기를 할 수 없는 같은 기타가 제작되고 있었다.3세의 제작 의도가 그대로 계승해져 제자들이 그 지도에 충실히 따라서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 방문한다. 세계의 주요했던 기타 연주가가 라미레스 기타로 연주회를 열어, 그 기타의 제작자 스탬프를 애호가가 보고, 그것과 같은 스탬프 된 기타에 수요가 모이게 되어, 제작, 판매의 조정이 곤란에 되었기 때문에, 기타 안쪽의 스탬프를 중지했다. 아래와 같이는 라미레스 3세의 제자들이다. MANUELALONSO, CAYETANOALVAREZ, JOSELUISALVAREZ, PAULINOBERNABE, CARLOSBLANCO, ENRIQUEBORREGUERO, MANUELCACERES, ALFONSOCONTRERAS, PEDROCONTRERAS, JOSEFLORES, JUANGARCIA, MANUELGONZALES, JUANMIGUEL, PEDROGIMENEZ, JOSELOPEZ, CARMELOLLOERONA, MANUELMALO, FELIXMANZANELO, PEDROMANZANUELO, IGNACIOROZAS, ANTONIOMARTINEZ, JULIANRODRIGUEZ, RAMONSOLER, TEODORPEREZ MANUELRODRIGUEZ, JOSEGARRIDO, ARTUROSANZANO MARIANOTEZANOS, 문장: 아라이 시로 (주) 아라이 무역 대표이사 (하모니 1995.8~9월호부터) 9. Ignacio Fleta (1897-1977) 후레타Ⅰ세 [스페인] 1897년, 세계의 기타 명공의 한 명으로 꼽히는 이그나시오·후레타는 스페인, 테르엘현 웨사·델·콤으로 가구 직공의 아이로서 태어났다.14세 때 바르셀로나에서 제작가의 베니트·하우메에 사사 하고 있는 형(오빠)들에 참가해 함께 일하게 된다.원래는 첼로, 바이올린의 제작가였지만, 세고비아를 만나, 기타 제작에 전념한다. 1957해에 세고비아를 위해서 3대의 기타를 제작했다.결국 세고비아는 후레타를 별로 콘서트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후, J·윌리암스, L블로우 웰, E·비텟테이등 , 온 세상에서 수많은 기타리스트에 의해서 사용되어 부동의 명성을 얻게 된다. 후년, 2명의 아들도 기타 제작에 종사해, 공동 작품의 Ignacio Fleta e hijos라고 하는 라벨로 발매되었다.그 작품도 또 매우 훌륭하고 귀중한 작품이 되었다. 이그나시오의 사후, 아들들만의 작품(후레타 2세)도 또한, 현재, 세계 톱 레벨의 명기로서 유명하다. 후레타의 기타의 소리는 심이 있는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가져, 평가도 높지만, 현존 하는 상태의 좋은 악기는 적다.시가로는 350~4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다.그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일본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이나가키 미노루의 「SONATINA 」의 CD를 추천합니다.명수 이나가키씨의 탁월한 연주에 가세해 지나친 아름다운 소리에 깊은 감동을 느끼겠지요. ![]() ![]() 10. Fleta2 Ignacio Fleta e hijos (1925/29-) 후레타Ⅱ세 [스페인] 아버지, 이그나시오에 제작을 배운 아들 두 명(가브리엘&프란시스코)은 지금도 현역으로 제작을 행하고 있다.그들의 작품은 현재의 세계적인 명기로서 널리 알려지고 있어 많은 프로 기타리스트들이 그들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이미 주문은 수십년에 걸쳐 가득하고 신작을 입수하는 것은 곤란하다. 호세·라미레스 3세의 영향에 의해 사용재는 삼, 자단이 많아, 소리는 심이 있어, 파워풀하고 한편 감미롭고 아름답지만 그 포텐셜을 충분히 내려면 기타리스트의 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현역의 제작가면서 그들의 악기는 세계 3대명기안에 들어와, 그 소유는 기타리스트의 동경이 되고 있다.중고라도 시가로 해 300~4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다. ![]() ![]() Ignacio/Francisco/Gabliel 11. Elnandez (1895-1975) y Aguado (1897-1982) 엘난데스·이·아그아드 [스페인] 제작은, 엘난데스가 기타 본체의 제작을 맡아, 아그아드가 니스 발라, 헤드의 장식이나 세공을 베풀고, 전체의 점검을 실시한다고 하는 공동 작업으로 행해졌습니다. 1950해에 기타 전문 공방으로서 스타트했을 때의 1개째를 No.100으로서 1974년 마지막 작품 No.454까지 연속해 355개 제작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피아노 직공이었지만, 세고비아와의 만남에 의해, 기타에 전념한 것 같습니다. 1924해의 제작 번호 No.1의 기타로부터 시작되어, 몇개 제작했는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전부 400개 이상 제작한 것은 확실히같습니다. 덧붙여서, 최초의 일련 번호 No.1으로 마지막 No.454의 기타가, 이바라키현 야사토마치의 기타 문화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그아드는 신체가 부자유스러웠었기 때문에, 만년의 1970년경부터 실제의 제작에는 종사하지 않고, 엘난데스는, 사위인 헤스스·베레서르·갈시아 (Jesus Belezar Garcia 1920-1986)와 함께 제작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기타의 전통을 계승해, 이거야, 고귀한 스페인 기타라고 하는 느낌입니다.후레타와는 달라, 섬세하면서 한편 심이 있는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명기로서 기타리스트나 컬렉터가 동경을 하고 있습니다.시가 400~5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 ![]() 12. Paulino Bernabe 파우리노·벨 남비 [스페인] 라미레스 공방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후에 독립.그의 제작한 라미레스에게는 PB마크가 붙어 있어 빈티지급의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입니다.독립 후도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어 세계적인 정평이 있습니다.일찌기, 이에페스가 벨 남비의 10현기타를 애용하고 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200~450만엔까지의 폭넓은 클래스의 기타를 만들고 있습니다.안심해 사용할 수 있는 콘서트 기타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역시 호세·라미레스의 PB브랜드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 ![]() 13. Hermann Hauser1 (1931- ) 하우자Ⅰ세 [독일] 토레스가 기타의 형태를 확립한 이래, 스페인 이외로 최초의 명공이 된 독일의 하우자 1세.그가 토레스 모델을 연구해, 한층 더 마누엘 모델을 참고로 해 출생한 것이 하우자 1세기타입니다.안드레스·세코비아로부터 「이것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기타다.더 이상의 것은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와)과까지 칭찬을 받은 명기입니다. 마누엘 라미레스로부터 하우자 1세의 기타로 바꾼 세고비아는 콘서트나 레코드 녹음에도 다용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녹음시의 사고에 의해, 하우자가 망가져 버렸다고 합니다.하우자에 수리를 의뢰했습니다만, 완전하게는 고쳐지지 않고, 하우자를 단념하고, 호세 라미레스로 가져 바꾸었다고 하는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브림이 하우자 1세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우자 1세의 소리는 브림이나 기타리스트 타베이 타츠오씨의 CD로 (들)물을 수 있습니다.물론, 세고비아도 1930년부터 1970년까지 사용하고 있었다고 해서 세고비아의 CD로 (들)물을 수도 있습니다. 14. Hermann Hauser2 (1931- ) 하우자Ⅱ세 [독일] 하우자 1세의 뒤를 이은 2세는 매우 훌륭한 작품을 남겼습니다.세계 3대명기의 하나가 되고 있어 그 소유는 많은 기타리스트나 컬렉터의 꿈이 되고 있습니다.하우자만이 가능한 클리어로 아름다운 고음은 스페인 기타와는 다른 음색으로, 많은 기타리스트를 매료해, 기타리스트나 애호가가 일생에 한 번 가지고 싶은 동경의 악기입니다. 소리를 듣고 싶은 분은 일본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후쿠다 신이치가 연주하고 있는 CD가 있습니다.또, 와타나베 카즈미와 후쿠다 신이치가 연주하고 있는 DVD도 있어, 하우자의 훌륭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추천입니다.게다가 녹음은 낡습니다만, 쥬리안·브림이 하우자 2세의 1957년작의 작품으로 「The Art of Julian Bream」라고 하는 앨범으로 1960년에 알 베니스, 스카르랏티, 로드리고, 후레스코바르디, 라벨의 악곡을 녹음하고 있습니다. 시가 300~500만엔이라고 하는 고액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15. Robert Bouchet (1931- ) 로베르·브시 [프랑스] 프랑스로 화가로서 활약하는 한편, 48세부터 기타 제작을 시작한다.토레스 시스템으로부터 독자적인 제작 기법으로 연구를 거듭해 생애 154개의 기타를 제작한다.뭐라고 말할 수 없는 달고 우아한 음색은, 정말로 예술이라고 부르기에 어울린다.세계적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의 초명기. 옛날, 프레스티&라고야라고 하는 듀엣이 브시로 연주하고 있었습니다.그 연주 기술, 소리의 아름다움은 녹음이 아날로그인 것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느낍니다. 소리를 듣고 싶은 분은 이나가키 미노루씨의 「Fantasia」인가 젊은 세대의 오하기 코우이치씨의 CD를 추천합니다.그 소리의 아름다움은 명기인 향기를 가져, 그 아름다운 소리와 연주에 넑을 잃겠지요. 덧붙여서, 시가는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보다 우선, 손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아마, 거래되었다고 해도 500~8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오하기씨의 브시는 고급차 2대분이라고 합니다. 16. Daniel Friedrich (1932- ) 다니엘·후레드릿슈 [프랑스] 파리로 태어나 1955년에 처음으로 기타를 제작했다.그 당시, 그는 기타를 배우고 있었지만, 좋은 기타를 갖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으니까이다.거기서, Flancisco Simplicio(스페인의 명기)를 카피한 기타를 제작했다.그 후, 15개의 기타를 제작해, 그 중의 1개를 브시에 보여, 제작법 등 어드바이스를 받았다.1960년에 파리에 공방을 열어, 1967년에 제작 콘테스트에서 입상했다.당시의 심사 위원에게는 브시와 후레타가 있었다.1973년부터 음량을 늘리기 위해서 구조를 바꾸었다. 콘테스트에 입상한 이래, 많은 프로 기타리스트에게 사용되었다.주된 기타리스트는 E·페르난데스, 로베르토·아우셀, 로스앤젤레스·기타 쿼텟의 스콧·세입자등이 있다.일본의 기타리스트에게도 애용자가 많다. 1973년 이후는 표면판은 삼을 기꺼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 형태, 로젯타의 디자인 이라고 하여, 아름다움에 흘러넘치고 있습니다.이 정도, 아름다운 악기는 없을 것입니다.현재의 중고로의 거래 가격은 350만엔 전후라고 생각합니다. ![]() ![]() ![]() 17. Jose Luis Romanillos (1932-) 호세·루이스·로마니로스 [영국, 스페인]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19 56년에 영국으로 옮겨, 5년간 이주했습니다.그 사이, 기초적인 기타 제작의 가이드 북을 참고로 하고, 스스로 기타를 제작했습니다.1964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와, 3년간, 기타를 몇개나 제작했습니다.60년대는 그의 본업은 목수로서 일해, 빈 시간에 기타를 제작하고 있었습니다.1970에 쥬리안브림과의 만남으로부터 기타 제작을 본직 하게 되었습니다.브림은 그의 작품에 인상지울 수 있어 브림의 근처에 공방을 주어 거기서 만든 4개의 기타는 브림이 콘서트나 녹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1981년부터 그의 아들의 Laim가 공방에서 제작을 도와, 1991년부터 Laim는 한 사람 분의 직공으로서 인정되어 이 이후의 기타의 라벨에는"Jose Luis Romanillos and Son"라고 하는 새로운 라벨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토레스 연구가로서도 유명합니다.그의 라이프워크라고도 말해야 할, 토레스 연구의 책을 1987년에 발행했습니다.지금은, 그 책은 토레스 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드리드 교외로 옮겨 살아, 기타 제작의 학교를 개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악기 제작에서는 거의 은퇴해, 그 혼자서 제작된 새로운 악기를 구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특별히 마음에 든 기타리스트에게는 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CM에 잘 나오는 미인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는 현재, 1972년작의 로마니로스의 기타를 애용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로마니로스가 그녀를 위해서 특별히 제작했다고 합니다.그 기타는토레스에도 채용된 트르보나스로 불리는 공명을 위한 원통이 짜넣어지고 있는 특별한 기타입니다.(토레스의 시대에는 자주(잘) 채용되었다고 합니다만) 로마니로스를 동경하는 기타리스트나 애호가는 대부분, 그 소리의 아름다움은 섬세하고 절품입니다.브림의 어드바이스가 활용되고 있는 탓인지, 가볍게 울리는 것만으로 가볍게 소리가 날아서 갑니다.현재의 거래 가격은 300~400만엔입니다. ![]() ![]() 18. David Jose Rubio (1934-2000) 호세·르비오 [영국] 르비오는 런던에서 태어나 플라맹고 기타리스트를 목표로 하고, 스페인으로 이주했습니다.3년간, 마드리드에서 일요일·에스테소의 공방에서 일했습니다.그 후, 계속해, 기타 제작을 배우기 위해, 뉴욕에 이주했습니다.1963년에 기타와 류트의 공방을 스스로 열어, 뉴욕에서 세계적명 기타리스트, 쥬리안·브림을 만나, 그것을 계기로서 1967년에 브림이 사는,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브림의 어드바이스에 의해, 기타는 훌륭한 것이 되어, 브림이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후년, 르비오는, 비올라, 류트, 바로크 기타, 하프시코드등의 고대 음악기 제작도 행하게 되어, 또 첼로나 바이올린도 제작한 것 같습니다.만년, 르비오 제작한 것 첼로가 평가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타에서는, 만년기에는 기타리스트, 폴·칼 브레이스와의 협력하에서 8현기타를 제작해, 그 악기가 높게 평가된 것으로부터 켐브리지 대학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합니다. 르비오의 기타는 어느 쪽일까하고 하면 초기의 무렵은 큰으로, 후년, 좀 작게 되었습니다만, 소리는 훌륭하고, 심이 있는 깊은 곳이 있는 선명한 고음으로 기타리스트에게 연주하는 만족을 줄 만큼 훌륭한 것이었지만, 후년, 기타 제작은 제자 폴·피셔에 맡기고 나서 인기가 없어졌습니다.르비오의 라벨이 붙여지고 있어도, 폴·피셔가 제작한 것이 다수, 나돌게 되었습니다.르비오 자신이 제작한 것(60~70년대)는 지금도 고액(200~3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한 번, 악기가게에서 70년대의 르비오가 제작한 것을 연주하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소리는 절품이었습니다.그러나, 지판이 넓고, 일본인 방향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도, 그 훌륭한 소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19. Manuel Velazqez (1917-) 마누엘·베라스케스 [미국] 1917년 푸에르토르코 태생.최초 가구 직공으로부터 스타트했습니다.바이올린이나 기타의 수리를 거쳐 후에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미국의 기타 제작 학교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이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몇 번이나 개인적 사정등에 의해 푸에르토르코와 왕래하고 있습니다.1960년대의 조금 좀 작은 타입은 하우자에 음질이 잘 비슷해 현재에도 높은 평가입니다.1970년대부터 1980년대는 미국인의 체격에 맞추어 대형이 되어서 갑니다.요즘의 악기는 하우자에 영향을 받고 있어 60년대의 자취가 보여지는 악기입니다만, 그것보다 파워에 턴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1980년대정도로부터 다시 1960년대와 같은 사이즈가 증가한 것 같습니다.이 악기는 1960년대와 같이 작은 흔들림이 된 악기입니다.후렛트도 포크 기타와 같이 조금 만곡해 넥도 조금 좁게 넥의 두께도 약관 얇아진 것 같고 연주하기 쉬워지고 있습니다.음질은 대모습의 것보다 품위있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현재는 상당한 고령이기 때문에 제작편수가 적게 입수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1980년대의 작품은 일본에 많이 있습니다.코스트 퍼포먼스가 매우 높다고 하는 것으로,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입수했습니다.그러나, 유감스럽지만, 60년대의 것에는 결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1980~90년대는 대개 140~200만엔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과 소리, 기술을 생각하면 역시, 매우 알뜰구매인 작품이었습니다.현재는 신작은 300만엔 정도입니다만, 고령 때문에, 아들이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역시, 왕년의 60년의 소리에는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덧붙여서, 80년대의 중고는 200만엔 전후로 거래되고 있습니다.70년대의 것은 100만엔대로부터 있습니다만, 악평이므로, 피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나의 한시기, 애기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훌륭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유감스럽지만 수리, 도장의 칠인 인장 오리지날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만, 그 소리의 훌륭함에 위대한 베라스케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0. Greg Smallman () 그랙·스몰 맨 [오스트레일리아] 그랙·스몰 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타 제작가로 세계적 기타리스트, 존·윌리암스의 애용하고 있는 기타로서 유명합니다.기타의 표면판의 구조는 독특하고, 격자모양의 힘목과 카본·섬유를 채용해, 소재로서는 삼을 이용해 전통적인 기타의 표면판의 두께를 꽤 얇게 하고 있습니다.이것에 의해, 밸런스가 좋은, 음량이 있는 소리를 실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만큼, 기타의 이면은 약간, 바이올린과 같이 둥글림을 띠어 전체적으로의 기타의 중량이 전통적인 기타보다 무거워지고 있습니다.현재는, 온 세상이 많은 프로 기타리스트에게 채용되고 있습니다.현재는, 아들과 작성한 것 같고 라벨에"and Son"라고 쓰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존·윌리암스가 채용하고 나서 이 악기의 인기는 급격한 상승으로 중고라도 300~400만엔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주문수도 많기 때문에, 신작을 만나는 것은 우선 곤란합니다. 21. Jose Ramirez4 (1953-) 호세·라미레스Ⅳ세 [스페인] 라미레스 4세는 1953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 후, 18세 때에 3세의 공방에 들어가, 기타 제작을 공부했다.1977년, 1979년에 만든 4세의 기타는 세고비아에 의해서 채용되어 세고비아 애용하는 기타 조림 더해졌다.일본의 콘서트에서는 4세의 기타로 연주해져 훌륭한, 윤기가 있는 말씨가 좋은 매력있는 음색으로 청중을 감동시켰다.세고비아는 후일, 4세에 편지를 보내, 기타를 칭찬한 참아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타의 지식, 제작 기술은 3세로부터 모두를 배워, 제자 세 명과 함께 이상적인 기타의 제작을 해, 기타리스트의 요망에 따라 유리어·니스와 함께, 전통적인 세락크·니스도 사용해, 렛드세다, 송재 사용에 의한 소리의 차이가 작아진 것처럼 생각된다.그 시대, 시대마다의 소리에 대한 감각도 변해갈지도 모르다. 현재, 매우 코스트 퍼포먼스가 뛰어난 기타로서 유명합니다.전통 있는 역사를 가지면서, 프로페쇼나르모델로 신품에서도 120만엔~로 중고라면 50만엔 정도로부터 있습니다.덧붙여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의 기타리스트 야마시타 와니씨는 세고비아와 같이, 한 라미레스 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최근의 야마시타 와니씨의 녹음은 라미레스 4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나도 한시기, 발표회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세락크 도장의 스페셜 모델이었습니다. 22. Hermann Hauser3 (1958-) 하우자Ⅲ세 [독일] 1974년, 15세 때에 아버지인 하우자 2세아래에서 기타 제작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현재는 세계적인 제작가로서 인정되어 하우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1, 2세와 비교해 평가는 뒤떨어집니다만, 현존 하는 제작가로서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제작가인 것은 틀림없습니다.그러므로, 1, 2세를 동경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하는 하우자판에 인기가 있습니다.가격은 250~350만엔이라고 하는 시세입니다. ![]() 23. Antonio Marin Montelo (1933-) 안토니오·마린·몬테로 [스페인] 안토니오·마린·몬테로는 스페인의 그라나다 태생으로 원래는 우수한 가구 직공이었습니다.26세 때, 기타 제작가에 전향 하는 것을 결심해, 에도알도·훼렐아래에서 기타 제작을 배웠습니다.그 후, 자신의 공방을 가져, 뛰어난 기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만족하지 않고, 1981년, 파리의 로베르토·브시를 방문해 토레스의 기법을 다시 배웠습니다.브시의 공방에서 함께 기타를 완성시켜, 브시의 기법을 계승했습니다. 그 후, 우수한 제작가를 기르기 위해서, 그라나다에 기타 제작 학교를 설립해, 후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타는 세계적으로도 저명하고, 지금은 많은 기타리스트가 그의 악기를 채용하고 있습니다.가격적으로도 적당해서, 아마츄어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가격은 150~200만엔이라고 한 곳입니다.매우 코스트 퍼포먼스가 좋은 악기로서 추천입니다. 24. Robert Ruck (1945-) 로버트·락 [미국] 로버트·락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마누엘·바르에코에 의해서 채용되어 그 이후로, 인기가 있는 브랜드가 되고 있습니다.바르에코의 연주에 매료된 기타리스트들이 로버트·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리는 매우 피아노에 가까운 소리로 매우 선명한 소리가 납니다.한편 밸런스가 좋은 것도 특징적입니다.전통적인 스페인 기타와는 음색이 상당히, 다릅니다.바르에코가 사용한 모델은 삼, 하카란다(이면, 측판)로 이 모델이 제일,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락은 토레스 모델 등 전통적인 모델이나 후레타모델을 시작해 많은 모델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인기가 있으므로 주문이 많아, 신작을 손에 넣는 것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릅니다.중고의 가격은 150~200만엔이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바르에코는 콘서트에는 독일의 제작가, 마치스·데만을 사용해(레코딩에는 여전히 로버트·락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는, 유명한 기타리스트, 로버트·러셀이 윌리엄·길버트(미국)의 악기로부터 데만으로 바꾼 적도 있어, 데만의 기타의 가격이 큰폭으로 올라, 지금은 데만은 300만엔 정도로 팔리고 있습니다.덧붙여서, 길버트도 데만도 전통적인 스페인 기타와는 계통이 다릅니다.어느 쪽인가 하면, 음량 중시입니다.물론, 매우 클리어로 아름다운 소리입니다만, 이른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기타에 비해 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의견도 있습니다. ![]() 나도 한시기 약간, 삼, 하카란다모델을 사용했습니다만, 밸런스가 좋고, 선명한 소리입니다만, 역시 전통적인 소리에 비해 곧바로 싫증이 와 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5. Paull Jacobson () 폴·제이 코브 손 [미국] 그는 1972년에 처음으로 클래식 기타를 제작했습니다.기타 제작가 Macario Briseno아래에서 견습으로서 수행해, 그 후, 1984년에 독립했습니다.1986년에 열린 기타 페스티벌에 몇 개를 출품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현재는 로스앤젤레스·기타 쿼텟의 멤버인, 윌리엄·카넨가이자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음량이 있기 위해, 많은 기타리스트에게 채용되어 있는 시기, 촌치카오리도 사용해, 레코딩으로 이용했습니다.가격은 150만엔 전후라고 생각합니다. 26. Paull Fisher (1941-) 폴·피셔 [영국] 폴·피셔는 영국에서 태어나 1956~61년, 하프시코드 제작을 배웠습니다.옥스포드의 공과대학으로 배워, 그 후, 르비오의 공방의 주임 제작가가 되었습니다.1973년에 독립해 현재는, 세계적인 제작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한시기, 영국의 여성 기타리스트, 니코라·홀이 콘서트, CD녹음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일본에서도 CD가 발매되고 있습니다.(그 악기는 일본의 악기가게에서 팔려 지금,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그 후, 그녀는 후레타 2세에 교체했다.일본에서 발매되고 있는 CD에서는 그랙·스몰 맨과 후레타 2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브랜드로 비교적은 100~200만엔 정도로 구입할 수 있으므로 아마츄어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로제트(사운드 홀 주위의 장식)도 멋부리고 있으므로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