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5 영조 41년, 유학위백규생원삼등제오십구인입격자>
敎旨
幼學魏伯珪生員三等第五十
九人入格者
乾隆三十年閏二月八日[印]
●내용 및 특징
1765년(영조41) 윤 2월 8일에 英祖가 생원시(生員試) 3等 59人으로 입격(入格)한 魏伯珪에게 발급한 증서(證書)이다.
-원소장처 : 위준환(안항공 12대 종손)
-현소장처 : 방촌유물전시관
※ 존재공(諱 伯珪 26세, 1727~ 1798) : 자(字) 자화(子華), 호(號) 존재(存齋)‧계항(桂巷)이다. 영이재공(諱 文德)과 평해吳氏 사이에서 五子중, 장자(長子)로 태어났다. 천문(天文)·지리·율력(律曆)·복서(卜筮)·산수 등에 통달하고 특히 역(易)에 정통하였다. 정조(正祖)때 공(公)이 68세 되던 해 호남 위유사(慰諭使)로 내려온 서영보(徐榮輔, 달성人, 1759~ 1816)의 천거로 사용(司勇)에 제수된 후 선공감부봉사(繕工監副奉事)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명(命)이 거듭되어 입궐하여 정조께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리고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제수 받아 1년4개월 재임하였다. 그 후 장원서별제(掌苑署別堤)와 경기전령(慶基殿令) 등에 임명되었으나, 노병(老病)으로 취임하지 못하고 72세로 종(終)하였다. 配는 의인(宜人) 김해金氏이다. 묘소(墓所)는 관산읍 방촌리 다산嶝 합조(合兆)이다. 1806년 죽천사(竹川祠), 1902년 設 茶山壇 하고, 1929년 합천군 옥계서원(玉溪書院), 1965년 곡성군 옥과면 영귀서원(詠歸書院), 1984년 다산사(茶山祠, 主壁)에 각각 배향(配享)되었다. 문집에 존재집(存齋集), 저서에 지제지(支提誌), 환영지(寰瀛誌), 정현신보(政弦新譜), 예설(禮說), 경서조대(經書條對), 경서차록(經書箚錄), 고금(古琴) 시소전기서설(詩疏傳記序說) 등 총 90여권의 저서(著書)를 남겼다.
☞ 옥계서원(玉溪書院) : 경남 합천군 봉산면 술곡리에 위치 한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되었다. 1725년(영조 1) 율곡 이이(李珥)의 도덕과 학행을 추모하고 유물인《擊蒙要訣》과 《海東淵源錄》등을 소장하기 위하여 유림(儒林)들이 건립하였다. 원래는 이곳에서 4㎞ 정도 떨어진 향옥동에 건립하여 위패를 모셨는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867년(고종 4)에 마을의 동쪽 약 200m 지점에 서원 및 소원사가 재건되었고, 합천댐 수몰지역에 편입되어 1986년 12월 15일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일반적인 교지의 종이와는 다르게 세로로 길게 써져 있군요...^^
연말 바쁜 공무에도 장문의 글을 게재해주었네요. 많이 배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드디어 존재공께서 등장하셨군요. 26세라 다소 늦은 감이 있네요. 존재공(存齋公)께서 옥계서원(玉溪書院)과 영귀서원(詠歸書院)에 추배되게 하는데 공헌하신 선조인 의재공과 오헌공, 이 사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門中을 위해서 노력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後代가 조명하고 고증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2016년을 우리 문중 최고학자의 교지로 마무리를~~,
그래서 2016년 한해는 의미깊은 해였습니다.
2017년 정유년도 새로운 교지에 잔뜩 기대가 됩니다. 힘내셔요. 힘내~~,
조상님의 옛발취와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