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를 나서자마자 시야를 가득 매운건 , 밤배경을 장식하고있는 거리의 네온사인들.
약간 쌀쌀하게 부는 밤의 바람과 어두움속에 섞여 휘황찬란하게 빛내는 네온사인들을 바라보던
나는 말없이 살짝 , 뒤에서 걸어나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잠깐 거리의 황홀한 불빛속에 넋을 놓았던 나였을까? 정신을 차려서 상황을 인식해보니 , 어느세
소녀는 나를 앞질러 빠른걸음으로 걸어가고있었다.
이순간 내마음속에는 어떤 느낌이였을까? 기분이 더럽긴했지만 뭐.. 나를 앞질러간 저 붉은색 머리의 소녀를
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오해를 풀어야하니까.
나는 무작정 소녀가 걸어간 길을 따라 빠른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걷자 , 소녀와 내 사이가
눈에띌 정도로 좁아져있었다..
" 이봐 "
그럴의도가 없었음에도 , 나는 거칠게 손목을 잡고 잔뜩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을 거칠게 돌려 나를 노려보는 붉은색 머리의 소녀.
" 너말이야. 정말 기본개념부터가 모자라는 아이구나? 도대체 말야.. "
말을 이으려다가 소녀가 잡힌 손목을 홱 -뿌리 쳤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눈빛이였기에. 나는 소녀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소녀는 입술을 조금 씰룩
거렸을뿐 , 그뒤로는 나를 노려보고만있다.
경멸과 증오에 찬 눈빛.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나역시 할말이 없어졌다.. 몇분간 나와 소녀 사이에 차가운 냉적의 기운이 감돈다.
아무래도 이 분위기를 깨야하는데... 솔직한 감정에 말하자면 사과를 하고싶었다.
경찰서안에서 내 뺨을 후려갈기며 소리치던 소녀의 그 눈빛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한맺힌 목소리로 절규하던
그 눈빛이였기에.. 아무래도 그 눈빛을 다시 보면 안될것같았기에 나는 소녀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 미안....하다 "
" ....? "
" 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
[ 짝 ]
얼굴을 미묘하게 일그러트린 소녀가 나에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 또다시 내 뺨을 후려갈겼다.
크윽.. 아프군. 이거이거... 정말 얼얼할 정도로... 눈물이 나올정도로 아팠다.
" ....뭘 잘못했는데? "
" ...하아? "
" 네가 뭘 잘못했는데? "
" 그...그게... "
소녀의 추궁에 나는 또다시 할말을 잃어버렸다. 죄다 뇌세포들을 떄리고 족쳐서 머리를 굴려봐도
한심한 생각밖에 떠오르지않는다..
" ......역시 다 똑같을뿐이야.. "
그리고 차갑게 내뱉은 소녀의 한마디가 다시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하는거지? 갑자기 화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 그래서 뭔데!? 너같은 꼬맹이한테 내가 맞아야할 이유나좀 들어보자!? "
" 그것도 모르면서 어른이야!? 완전 헛인생을 살았지? 당신!! 남의 상처조차도 이해못하는 인간따윈 최악이야!! "
" 뭐..뭐어?! 이 꼬맹이가? 네까짓게 어디서 반말에 설교질이야? 그리고 , 너 뭔가 착각하고있는것같은데? "
하지만 내 말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소녀는 더욱 열을 돋구며 소리를 내질렀다.
" 다똑같아...!!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긴 커녕 , 더 상처를 주려고하고 ,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
" 애들이건 어른이건 , 남자건 여자건 다 똑같아! 사랑따위는 존재하지도않고 사랑은 슬픔만 가져올뿐이라구! "
그러니까 나같은건 죽어버려야해!!
" 너...너는 그렇게 너 자신에게 자신이없어?"
그말을 하자마자 소녀의 눈빛이 쓸쓸해진다.. 희미하게.. 씁쓸한 미소를 짓는 소녀. 소오류 아스카 랑그레이.
" 그..그렇게 죽어버리고싶다는 이유나좀 들어보자 , 어디 뭐, 누가 널 떄렸어? 아니면 누가 널 스토킹이라도해? "
일단 질문이라도 해야 내 체면이 살것같았다. 더듬거리며 입을 여는 나.
" 알고싶어...? "
그 질문에 소녀의 말투가 싸늘해진다.... 섬짓 했지만 나는 물러서지않으려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알고싶어 "
어이 당당하라구 이카리 신지! 눈을 똑바로 뜨고 ,가슴을 펴고 , 상대를 기를 쓰고 노려봐!
왜 자꾸 밀리는거야? 겨우 여자라는 존재에게~~!?
" 우리엄마가 나를 기다려.. "
" ......하아? "
" ...........그게 내가 빨리죽어야하는이유야....... "
소녀는 말을 마치고는 또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 급기야 무릎을 감싸쥐고 얼굴을 파묻고 소리내어 운다..
" 어..어이 이봐... 우..울지마.. "
" 나쁜놈!! 나쁜놈!! 우아아앙....훌쩍훌쩍....... "
이거이거 참... 골치아파졌다.. 거리 한가운데서 이게 뭐하는짓이야..
그칠줄 모를것같이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 아스팔트가 눈물바다를 이뤄 철철 넘칠듯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호주머니에서 빨간 손수건을 꺼냈다.. 소중하게 4면으로 접힌 손수건.
" 닦아. "
살짝 , 소녀의 얼굴에 닿게 내민다.
" 훌쩍..훌쩍...훌쩍훌쩍... "
내 손수건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 온통 눈물범벅으로 뒤덮힌 얼굴을 닦기시작한다.
" 킹!!! "
.......코까지 풀으라는말은 않했는데..
" 어머, 저 남자가 저 소녀를 울렸나봐 "
" 나쁜놈 , 저런놈은 좀 맞아야해. 여자를 울리다니~~ "
" 생긴건 멀쩡하게 생겨서 여자나 울리고다니고, 못되먹은놈이네? "
.......... 아무래도 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할것같다.
하지만 이 소녀를 놓고갈수도 없고.. 놓고간다면 아마 구경하는 여자들의 하이힐에 맞아 요단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 우아아앙....아아아앙...훌쩍...어마....엄마.........엄마아..... "
" 아..아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제 동생이에요. 5살떄 헤어졌던 남편과 재회한지 얼마안되서 말이죠.
그냥 놔두세요. 먹으면 독에 감염됩니다. 심한 독이에요~ "
" 우아아앙....아아앙......훌쩍훌쩍...훌쩍훌쩍.. "
" 아하하~ 애야~ 우리 밥이나 먹으러갈까? 방금 배속에서 꼬르륵..이라는 반가운 소리가.. "
아...안돼 주위에서 구경꾼들이 더 몰려들고있어... 어이 거기너!! 카메라같은걸로 찍지마!!
" 꼬마야 , 네 애인이 널울린거야? 우리가 때려줄까? "
" 언니가 저런 남자따위 하이힐로 날려줄게~! 기다리라구! "
" 저놈 도망가지못하게 잡아! 어이 켄이치 , 너는 퇴각로를 막도록해! "
이미 결정은 났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소녀의 두 다리를 들고 한손으로는 둔부(..)를 지나 허리를 안았다.
" 아..........!? "
그리고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마르기도 채 전에 , 나는 한줄기... 빛이 되었다.
" 여자를 울린 파렴치한놈 " 이라는 오명의 굴래를 벗어나기위해 , 꼭..꼬옥 두손에 힘을 쥔채...
●
" 네~ 주문받겠습니다. 귀여운 여자분부터 주문하시겠어요? "
" 초콜릿 파르페 3개 , 바나나 아이스크림 2개 , 모카얼음쉐이크1개 , 치즈케이크 조각 3개 ,
아 거기에다가 헤이즐넛 초콜렛. "
" ................남자분은 어떤걸 주문하시겠어요? "
" 아아? ..난 카페오레 줘요 "
"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
기가 차다는듯, 소오류 아스카를 한번 흘끗 보던 여자점원이 이읔고 주방으로 사라진다.
아늑한 공간아래 ,
은은한 클레식 음악이 흐르는 빙수가게는 저녁무렵의 연인들로 가득차 꽤나 이질적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벽에 커다랗게 박힌 분홍색 줄무늬 스웨터들이 꽤나 생기발랄한 느낌을 주면서 창밖이 훤히 보이는 2층 가게는 꽤나 센티멘탈한 느낌이였다.
뭐 거의 이곳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연인들 같긴하지만 , 우리는 연인이 아닌 특수한 관계상
이곳에 온거니까..
나는 힐끗 , 눈앞의 소녀를 쳐다보았다.
빤~ 히.........................
그..그렇게 쳐다보지마아! 왜 자꾸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나는 재빨리 그 시선을 외면하고 옆에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커플에게 시선을 돌렸다.
" 어머 자기~ 정말 고마워. 휴대폰 너무 이쁘다~ "
" 하하, 우리 미즈네를 위해서라면 휴대폰따위가 아니라 저 하늘의 별도 따서 줄수있어~ "
.......징그러운 자식. 같은 남자 무안하게 만들고있어.
나는 빨대에 이쑤시개 하나를 집어 넣은뒤, 느끼한 대사를 주룩주룩 내뱉는 녀석을 향해 심판의 독침을 선사했다.
[ 휙! ]
" 꺄..꺄아아! 자기!? 이..이마에 이쑤시개가... "
" 어..어라? 우아아악!! 피..피가!! "
킥킥 , 쌤통이다. 네깟녀석은 영안실에서 시체랑 일년을 생활해봐야 정신을 차릴거야.
웃!?
빤~~~~~~히~~~~
" 어이, 이봐요 아가씨. 도대체 왜 자꾸 쳐다보는거야? "
" .............. "
" 아 , 글쎄 어쩔수없었다고 말했잖아. 내가 그렇게라도 하지않았으면 너랑 나는 아마 러시아워에 파묻혀서
납골당에 갈지도 모를 상황이였어~ "
" ............나 안무거웠어? "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를 더욱 기가막히게 만들었다.
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나오는구나. 역시 여자들이란..
" 알면 묻지마 "
" 나....나!!! 안무거워!! "
" 크..크악?! 누..누가 뭐래!? 그..그렇게 소리지르지마!! "
어느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 이바보 울보자식 또 우는거야?
" 어..어이 우..울지마아!! "
나는 필사적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소녀를 달랬다.
" 나..나....나는 전혀 안무거워..... "
" 아..알았어요! 당신은 너무 가벼워서 나풀나풀 나는 나비도 때려죽일만큼 여윈 날개와 깃털을 가지고있어요~ "
크윽.. 겨우 진정시켰다. 도대체 마음에 안들기만하면 울어버리니.. 다루기가 정말 힘든 아이다.
부모도 여간하겠구나... 게다가 울보주제 생긴건 뭐가 그렇게 예쁘게 생긴거야? 시너지 효과가 생겨서 모든 남자들을
무기로 삼아버리기까지 해버리니... 정말 예쁜것도 그리 좋은건 아닌듯싶다.
" ....나 무거웠지? "
" 알면 됐어 "
" ...........훌쩍훌쩍....으...으아...."
" 아..아냐아냐! 정말 가벼웠어! 너무 가벼워서 내가 마치 슈퍼맨이 된것같은 착각에 빠졌지. 날아다녔으니까~ "
그렇게 되지도 않은 실랑이가 끝이 났을때는 주문한 빙수와 파르페, 헤이즐넛 초콜렛 , 카페오레가 도착했을무렵이였다.
" ..아저씨 "
" 아..에....응? "
" .........아저씨 "
" 예..옛썰!? "
" ........아저씨 몇살? "
큭.. 그렇게 파르페를 입에 넣으면서 말하지마. 뭐... 인정하긴 싫지만 귀엽긴하다.
" 스...스물.. "
" 에? 그렇게 젊어보이지는않은데 "
" 스물 아홉이다 이 빌어먹을 꼬맹아 "
" 훌쩍훌쩍...우아아앙... "
" 아..아냐아냐 농담이야~! 난 사실 너무 팍삭아서 , 태어나자마자 주점에가서 디스코를 췄던 일화가 있어~ 정말 대단했지 "
" 흐응... 그렇구나 "
어느세 파르페 한그릇을 뚝딱 - 해치우고 바나나 빙수와 헤이즐넛 초콜렛 두개를 동시에 먹는 얄미운 녀석.
나는 이제야 카페오레를 두번 홀짝 거렸을뿐인데 , 대단하군 당신..
크윽 , 오늘 저녁을 이런 빙수같은걸로 떄워야하다니. 지갑사정도 넉넉치못한데..
" 파르페 맛있다 "
" 그..그러냐? 파르페를 좋아하나봐? "
" 응 , 일주일에 한 50번은 먹을껄? "
순간 나는 기가막힌다.
50번?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 살이 안찌는거야? 툭치면 날아가버릴것같이 가볍게 생긴녀석이?
" 난 살이 안쪄 "
" 에..에헤? 그래? "
" 응. 엄마가 돌아가신뒤로는 뭘 먹어도 배가 부르지도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살이 찌지도않았고. "
호오 그렇군~ 꽤나 심오한 말이야.
이읔고 , 빙수와 파르페 , 헤이즐넛 초콜렛 , 모카쉐이크까지 깨끗히 비운 소녀는 치즈케이크를 뒤적거린다.
" 아저씨는 뭐하는사람이야? "
" 나? 사ㅊ..ㅐ..아니, 사업을 하지! "
" 무슨사업을 하는데~? "
" 아아~ 대출회사에서 일하고있어~ 작은 회사지. 내가 사장이긴하지만..하하 "
차마 사채업을 한다는말을 못한다.
그래도 어린애를 상대로 사채업을 한다는말을 하다가는 정신상 안좋을수도 있다~
특히 나같은 미남이 사채업자 사장이라는건 누가 봐도 도저히 안어울리는 직업이니까~
그래. 정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 자제해야할 말이야. 암암,
" 그거.. 사채업자같은거지? "
[ 푸웃! ]
케..케켁... 마지막으로 머금은 카페오레를 상위에 다 쏟아엎고말았다.
" 후훗. 맞구나? "
" 아..아와와와... 그..그게아니라, 그런일이랑은 달라..다르니까.. "
소녀가 살짝 미소를 지은 입술 사이의 하얀 이빨이 눈부시게 빛나보인다.
그러고보니 잔뜩 찡그리고있던 얼굴만 지금까지 봐온탓인지 , 소오류의 웃는 얼굴이 왠지 모르게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 흐~응 아저씨도 100만원 빌려주면 500만원으로 받지? 못갚으면 손가락하나당 100만원씩 쳐서 담보로 내세우고? "
" 켁..케켁..그...그런건아냐...그냥 대출해주고 이자조금 받는 일뿐이야. 그..그러니까 "
나는 그 웃는얼굴에 최대한 반대의사를 담아 손을 내저었다.
" 아저씨도 문신같은거 있어? "
[ 푸부우웃! ]
마지막까지 머금었던 카페오레를 나는 또다시 소파에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더이상 할말이 없다. 항복. 항복입니다. 할복을 하겠소. 내 죽음을 알리지 말아주시오. 제군들이여.
" 하하.. 그래그래, 사채업자지 뭐. "
피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는 나를 바라보던 소오류는 다시 한번 무뚝뚝한 얼굴에서 미소가 돋은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 하하..웃으니까, 더 예쁘다 "
조금 넋놓고 있던 내가 솔직한 감정을 통해 고백하자 , 나도 , 소오류도 무안할정도로 굳어져버린다.
하지만 소오류는 그 분위기를 먼저 깨면서 다시 한번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 엄마가 돌아가신이후로... 처음으로 웃어보는거니까.. "
" 아아..그래? "
" 우리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분이였거든 "
" 헤...에 "
또 엄마 이야기구나. 흐음 돌아가신지 꽤 오랜시간이 흘른듯하지만 아직도 잊지못한걸 보면 정말 인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인듯하다.
그러고보니 , 처음 이녀석의 집에 들어갔을때 안방에서 보았던 가족사진이 얼핏기억난다.
붉은색 꼬마소녀를 품에안고 눈부시게 웃고있는 한 미인이 사진속에 있었지? 기억나는듯해.
"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
조금 숙연했던 분위기가 다시 소오류에 의해 깨진다.
아 그러고보니.. 우린 아직 통성명도 안했구나.
나는 가능한한 밝은 미소를 머금으며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 신지. 이카리 신지야. 그냥 신지라고 불러 "
" 싫어. 아저씨라고 부를거야 "
" 어이.. 그럼 이름은 왜물어본거야? "
" 아하하하, 그런가? 나도 몰랏. "
.......... 잠시동안 이 소녀를 다르게 생각했던 내자신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던 순간이였다.
" 나는 소오류야. 소오류 아스카 랑그레이. 그냥 아스카라고 불러도돼 "
" 아아, 그래.. "
" 아저씨 왠지 기분이 나빠보인다? "
" 아..아닙니다! 그럴리가요.. 하하하 소오류 아스카씨~ 잘부탁드려요 "
" 응, 아저씨. 나도 잘부탁해 "
시원스러운 미소를 살짝 내보이며 애교가 조금 담긴 목소리로 소오류는 자신을 소개했다.
왠지 부끄럽다.. 나답지않게 긴장이나 하고..
" 아아, 이거 내 명함이야. 아까 줬지만 한장더 받도록해 "
" 헤~ 응 알았어~ 집에 가자마자 문자날려줄게 "
살짝 머금은 미소를 잃지않으며 내 명함을 다시 낚아채는 소녀.
" 아저씨는 휴대폰없어? "
자신의 휴대폰을 흔들어대며 궁금하다는듯 묻는 소녀.
하하 , 휴대폰이 왜없겠냐. 사업차 필수품인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 헤~ RG 꺼네? 난 SAMSONG껀데~ RG꺼는 모양은 예쁜데 기능이 너무 후졌어 차라리 모양도 이쁘고
기능도 우수한 SAMSONG 것이 훨씬 좋아~ "
" 그...그런거야? 헤에 "
그런거 상관않하고 사업차 아무거나 구입한거라..
뭐 저 아이 나이정도 아이들은 보통 그런거에 신경쓰는편이지?
어떤 핸드폰이 더 우수하고 더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좋고 ,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뭐 이런정도?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이리저리 , 뒤져보던 붉은 머리의 소녀가 뭔가를 찾아낸듯 반색한다.
" 와~ 사진기능은 이게 그래두 쪼~금 좋다~ 나 사진찍어도되는거지~?! 나 사진좀 찍을게~! "
반색하던 소오류가 갑자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시작한다.
V자 기본 포즈에 , 조그마한 두 주먹을 볼에 붙인 고양이 포즈 , 혀를 살짝 내문 금붕어 표정 ,
별별 고난이도 포즈가 다나온다. 나는 살며시 웃을수밖에 없었다.
뭐 사진 찍는다고 허락받았다기보다는 , 거의 일방적으로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한거니까
" 아 , 그러고보니... 왜그랬어? "
한가지 , 잊고있던것이 생각났기에 나는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약간은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핸드폰을 바라보던 소녀가 살짝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 에... 어쨰서 나한테 연락한거야? 그런짓을 저질러놓고.. "
" .....아 그거? "
괜히 질문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뱉은말, 확실하게 답을 들어주자.
약간은 머뭇거리던 소오류는 이읔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짖궂게 대답했다.
" 내 주위에는 다 무식한사람만 있어서 말이지~ 그나마 아저씨가 쫌 똑.똑.해 보였어 "
얼빠져버린 나는 기가차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주위에서 제일 똑똑해? 하아~
내가 무슨 니 아이템이라두돼냐? 어휴. 나는 쓴 웃음을 지어버렸다
" 저기말야~ "
" 응 응? "
눈을 동그랗게 뜬 소오류가 나에게 바짝 다가온다.. 으윽, 귀..귀엽잖아! 그렇게 바짝 다가오지마.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소오류의 눈을 바라보며 짖궂게 말했다.
" 쉽게 죽고싶다면~ 언제라도 연락해. 바로 실행에 옮겨줄테니까 "
" 헤에... 응! 알았어 "
왜 갑자기 이런말을 했는지.. 하지만 그저 형식상 내던진 말은 아니였다.
죽고싶다는데... 너무 기뻐하는거아냐? 내 명함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시키는 소오류.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말없이 빈 카페오레 잔을 바라보았다.
" 수군수군..수군수군 "
어느세 우리는 빙수가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부러운듯 쳐다보는 남자들 , 의혹의 눈초리로 수군수군 거리는 여자들...
[ ♬ ♬~ ]
휴대폰 벨이 울린다. 내것을 살폈지만 내 휴대폰에서 울린 벨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면을 바라보자 어느세 소오류가 작은 핸드백에서 꺼낸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전화안받아? "
벨이 울렸음에도 빤히 휴대폰만 바라보고있는 소오류의 행동이 궁금해진 내가 묻는다.
[ 툭 ]
대답대신 밧데리를 휴대폰으로부터 세차게 분리시켜버리는 소오류. 그리고 두개로 분리된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 야..야아아? 그걸 왜 버려!? "
무심코 나는 쓰레기통을 향해 다가갔지만 어느세 휴대폰과 밧데리는 빙수국물과 과일에 둘러쌓여 엉망이 되어있었다.
크..크윽 꽤나 비싸보이는 휴대폰이던데. 부자집 딸이지만 너무 막나가는거아냐?
" 내 휴대폰번호를 또 어떻게 알아낸거야... 짜증나 아빠인척은 그만좀하지.. "
미소를 짓던 얼굴이 어느세 일그러지며 잔뜩 골이 난듯한 표정이였다.
" 어..어이 , 그래도 휴대폰인데 이런걸.. "
" 됐어. 아저씨 가지고싶으면 가져 "
크윽...날 거지취급하는구만...
몇분동안 소오류는 말없이 창밖만을 바라본채 , 넋이 약간 나간듯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러고보니 , 핏기있고 생기있던 얼굴이 어느세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있다.
내 기분탓인가? 하지만 눈도 풀려있고..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빈혈환자같다..
보다못한 나는 말없이 빈 카페오레잔을 수저로 젓다가 이읔고 소오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 늦었으니까 , 바래다줄게. 그정도는 괜찮지? "
" 에? "
내가 발음을 또박또박 , 목소리를 진지하게 냈기에 소오류는 시선을 나에게 맞춘다.
" 이제 집에가야하잖아. 아버님이 걱정하시겠는걸? "
"에...흥~! 됐어. "
불만이 잔뜩 쌓인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갑자기 소오류는 벌떡 - 모았던 다리를 풀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노란 원피스가 조금 흔들린다.
" 어..어이 뭐..뭐야? 갑자기 ? "
정말 이 아이는 사람을 잘 놀래키는구나..라고 생각이 든 나.
푸른색 눈동자가 아래를 향해서 멈춘다. 빤히 나를 바라보던 소오류는..
" ..아저씨 내일 시간있어? "
" 에? 응? 시..시간요? 시간이야 뭐.. 자..잠깐만 "
나는 재빨리 수첩을 꺼내 스케줄을 확인한다. 17..17....17일..젠장 왜이렇게 안넘어가는거야!
곧 , 17일 일정 스케줄을 발견한 나는 17일 스케줄란에 아무것도 안쓰여있는것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시간은 있는데, 왜? 무슨일이라.. "
" 내일 데이트야 "
" 켁....무..무슨!? "
" 데이트 장소는 너구리 놀이동산에 간뒤 , 노래방 , 레스토랑까지 총 3코스. 알겠지? "
할말을 잃어버린 나는 멍하니 소오류의 미소띈 입가만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거절할수도 , 동의할수도 없는 이상황. 긴 붉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흘러내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마녀가
개목줄을 건 한 남자를 끌고 놀이동산을 미친듯이 휘저으며 깔깔 웃고다니는 장면이 내 머리속을 스쳤다.
" 내일 , 아침 10시까지 기다릴게. "
" 어..어디서!?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이녀석 진짜다. 진짜야...
말려야해.. 에..저어 아가씨 , 그러니깐요. 놀이동산이라는곳은 어릴때의 희미한 추억을 위해서나..
" 내일 아침 10시까지. 너구리 놀이동산 입구에서 10분 먼저 나와서 기다릴것~! "
" 이..이봐! 그렇게 멋대로 정해버리지마! 나도 사정이있다니까 "
" 에에에~ 한말 가지고 두말로 바꾸지말기~! 나 먼저 갈게~! "
노란원피스가 나풀거리며 내 앞을 스친다.
빨간 구두를 신은 소오류가 앙증맞게 혀를 내밀고 출구를 향해 뛰어나가 모습을 나는 멍하게 바라보는수밖에 없었다.
뭐야..? 멋대로 약속을 정해버리고, 혼자 나가버리고..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
시간을 확인한뒤 , 방금전까지 예쁜 미소를 짓고있던 소녀가 앉은 자리를 바라본다.
빈 파르페병 , 바나나빙수병 만이 정적을 지키고있다.
....짧은시간이였지만 꽤나 즐거웠던것같다.
나도 오랜만에 웃어본것같고 휴우 , 뭐 내일 시달릴일만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겠지만..
어쨋든, 정말 대단하군. 소오류 아스카 랑그레이.
노란 원피스를 휘날리며 살짝 미소를 남기고 나가는 그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리며 나는 계산서를
가지고 카운터를 향해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 이카리 신지씨... "
아스카는 명함에 적힌 이름을 되뇌였다.
침대가 이렇게 푹신하다고 느껴진적은 정말 오랜만이야..라고 생각하며 , 침대로부터 편안함을 느낀다.
새벽의 도래를 알리는 종소리..
몇십분동안 명함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스카는 이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빛만이 오가는것같은 밤의 거리와 동네. 저런세상에서 혼자살게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스카는 이읔고 손을 뻗어 마지막 남은 불빛이였던 스탠드등을 끈다.
" 후후훗... "
저녁 무렵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 광경이 저절로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엉뚱한 사람...
재밌는 사람...
그리고 은근히 다정하기도하고 , 멍~해보이기도 하고..
상냥한 면도있어보였다. 학교에서 흔히 보이는 어중이 떠중이들도 아니고,
연애한번 해보자고 진심같지도 않은 가식으로 칭찬하는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
" 정말 재밌는 사람이야... "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킥킥.. 거리는 아스카.
여러 이유가있겠지만 , 아스카 자신을 미소짓게 만들어줬다는거 하나만으로 호감이 간다.
엉뚱하지만 의외로 진지함도 엿보였고..
하얀 피부에 촘촘히 박힌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 약간 굳고 경직되보였지만 웃을때마다 아름다웠던 표정.
외모는 둘째치고 , 느낌이 그녀랑 많이 닮은것같아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처음에는 그저 다른 어른들과 별 다를바없다고 생각했지만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아스카다.
자꾸만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신지의 웃음.
그 웃음을 생각할떄마다 아스카는 자신도 모르게 화끈, 볼이 빨게지는걸 느끼자 이불을 위에까지 걷어올려버렸다.
" 빨리...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
아스카는 살짝 빨게진 볼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
.
.
" 어멍~ 우리 귀여운 강아지 , 뭘 그리 열심히 썼다가 숨기는거양~? "
" 아..아무것도아냐!! 그..그나저나 미사토 누님, 목욕은 다 끝난거야? "
" 물론이징~ 우리 귀여운 강아지가 왠지 기분이 좋아보이길래 빨리끝냈엉~~ 내일 무슨 데이트라도있나보징~? "
" 무..무슨 데이트입니까!? 말도안돼는.. "
하지만 미사토누님의 눈치는 백단을 넘어 천단에 이른 달인중 달인이였다.
" 오홍~ 근데 달력 내일 날짜에 빨~갛게 동그라미가 쳐져있는걸? "
" 그..그건 내일 중요한 거래가 있어서.. "
나는 재빨리 달력을 숨겼다.
하지만 증거인멸 실패. 어느세 다른 증거물들이 속속 미사토탐정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 어멍~ 이건 너구리 놀이동산 입장권이잖니? 그것도 두장이나~ 어머 설마 이누님과 함께갈생각이였엉?"
" 아..아니 , 사실 이건 불우한 동네 바른생활 식구들을 위해서.. "
" 꺄앗~ 핸드폰 배경이 처음보는 여자애로 바뀌었넹!? 누구야~? 누구~? 낮에말했던 그애!? 우리 강아지 능력있넹!
이런 미인을 꼬시고!? 어디까지갔어~? 포옹 ? 키스 ? 아니면 단숨에? "
" 나..나가! 이 정신머리없는 여자같으니라구. 속옷만 입고 뭐하는짓이야? 품위없게! "
나는 품행제로를 문제삼아 crazy women 을 겨우 방문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 아이이잉~~ 우리 강아지 너무해.. 요즘 그이도 출장떄문에 바쁜데 , 심심하단말야~~"
하나뿐인 남동생집에 얹혀사는주제 좀 얌전히좀 있을것이지.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책상에 앉아 하던일에 집중했다.
자 , 모든 일정이랑 계획은 다 짜 놓았다.
나름대로 생각도 많이하고 , 다른 일정이랑 차질이없도록 1시간이나 공들여 세운 계획이다.
내일 아침 일찍일어나서 오이맛사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 바디 크림을 최고급으로 준비해놨으니 샤워할때 기분이
정말 좋아지겠군 흐흥~
그리고 아침 9시에 먼저나가서 10분정도 일찍 기다려주면 되겠지 뭐.
한 오후 4시정도까지 놀이동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4시 30분쯤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
노래방을 마지막 코스로 가면 되겠지? ..흐음 뭐 일단 계획을 보자면 완벽해.
레스토랑 무료 식사권을 마침 저번에 대출자로부터 대출금대신 받은(..)게 있고.
노래방도 그다지 큰 자금을 소비하지는않으니까~ 자 안심하고 오늘하루의 피로를 반신욕으로 풀어주는일만 남았어~
" 있잖아~ 신지이~ "
" ..뭐야? "
어느틈엔가 , 방문을 살짝 열고 짖궂게 얼굴만 들이민 나의 하나뿐인 누나 미사토.
" 바쁘니까 용건만 예기하고 빨리 나가 "
" 아잉~ 우리 강아지 , 언제나 냉정한게 매력포인트이긴 한데 , 하나뿐인 누님한테까지 냉정할 필요는없잖아앙~~ "
" 쓸대없는말만 않하면 충분히 부드럽게 해줄게 "
" 우웅~ 히히 알았어.. 사실 ~ 내일 데이트에 관해서 꼭 해주고싶은말이있어서~ "
" ....데이트가 아니라니까 "
정말 못말리겠다.
..데이트가 아예 아니라는건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이잖아? 솔직히 내 체면도 생각해달라구. 나는 29살이야. 겨우 고등학생이랑 하루 놀아주는걸 가지고
데이트라고 치기엔 내 자존심이 허용을 않한다니까?
지..진짜야~!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 갑자기 미사토누나의 눈빛이 심상치않다.
그 눈빛은 평소에 볼수없었던 야릇한 진지함. 그리고 그 진지함이 가끔 묻어나올떄마다 나는 긴장을 하곤한다.
" 뭐..뭐야!? 갑자기 그런 진지한 눈빛을 하곤.. 빨리 말하라니까? "
" 그~게... 음~ 내일 데이트할때말이지~ "
이읔고 , 큰 두눈을 깜빡이더니 , 미사토 누나는 악마같은 웃음을 띄고는 살며시 중얼거렸다.
" 콘돔은 꼭 사용하도록하렴~ "
" 정신나간 소리하지마! "
" 오호호호홋~ 농담이야 농담~ 데이트 잘보내렴~! 우리 강아지 화이팅! "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에 다리한쪽이 책상에 부딪히고말았다.
에쿠 아프다.. 아직도 얼얼해.. 도대체 저여자는...
저런 위험한 단어를 스스럼없이 내뱉는 깡은 나도없는데 , 누구한테 배운거지 ?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쓴웃음을 짓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짧은 만남이였지만 나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의 눈물. 소녀의 슬픈 눈동자와 슬픔이 가득했던 목소리.
슬픔이 가득했던 와중에도 하나 희망의 미소가 발했던 그 얼굴.
미소속에 감춰진 또다른 슬픔.
앵두빛 입술에서 , 푸른색 보석같은 눈동자에서 , 깊은호수처럼 맑은 그 두눈동자속에서 ,
슬픔과 희망이 교차했던 그 짧았던 오후에서 저녁무렵까지의 만남.
..그녀의 제안을 받아줬던것이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또다시 소녀의 울고있는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나보다 어리고 , 나보다 인생경험도 부족한 아이였지만 , 나처럼 남자가 아닌 아픔을 간직한 한명의 연약한 소녀이다.
... 잠깐잠깐 동안 내빛춰주었던 그 눈부신 미소를 잃고싶지가 않았고,
다시 보고싶었다.
단지 그뿐이였다.
●
황홀하도록 눈부신 태양빛이 내리쬐는 아침의 따스한 기운아래 , 너구리 놀이동산의 주말이 도래했다.
나는 북적거리며 혼란스러운 정면을향해 걷고 있다. 아직 이르지만 점점 도래할것을 예고하는듯한
가을의 은은한 기운도 함께 느끼며 , 100% 쾌조의 컨디션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침이 맑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었던가? 뭐 어렸을적, 초등학교 조회시간때 지겨운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듣는둥 마는둥하면서 봄의 쌀쌀하지만 맑은공기가 정말 좋게느껴졌던 기억이 전부다.
" 엄마아~ 나 저거 타고싶어~~ 저거~~ "
" 안돼! 저건 위험해! 대신 우리 솜사탕이나 먹으러갈까~? "
" 솜사탕!? 웅웅! 사줘사줘! "
어머니인듯한 여자가 보채는 아이를 끌고 솜사탕 파는곳으로 데려간다.
흐음, 역시 어머니란 존재는 위대하구나. 아이가 원하는걸 단숨에 바꿔버리면서 불평을 없애버리다니.
그녀석의 어머니도 저런 존재였을까?
생각해보면 , 난 어렸을떄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기떄문에 어머니에대한 기억이 거의 나지않는다.
뭐 , 굳이 기억나는걸 꼽자면 병상에 누워서도 나에게 젖을먹여주시던 모습정도?
하지만 그아이라면... 한창 사랑을받고 자랄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면 그 충격이 상당하겠지.
" 자자자~ 너구리 놀이동산에 오신여러분들을 위해 악대행진이 곧 있을예정입니다~! "
얼굴에 하얀 분칠을하고 볼에 빨간 물감을 찍은 광대가 피리를 불어대며 사람들에게 홍보한다.
신기하다는듯 , 광대를 향해 몰려드는 아이들. 천진난만한 모습들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마침내 약속장소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 자아.. 어디보자 , 시간은 9시 49분 10초. 정확히 10분 50초 빨리왔어. "
최상의 컨디션과 몸상태덕분에 외출준비를 꽤나 수월하게 할수있었다.
어젯밤 , 모처럼 꺼내놓은 깨끗한 흰색 정장스타일 와이셔츠에 동여맨 까만 넥타이. 그리고 캐쥬얼 검정색 정장바지.
목욕을 하면서 황토팩을 사용하였고, 머리스타일도 무스를 살짝 발라 꾹꾹 눌러주고.. 미사토누님이 아끼는 사향수 까지
뿌리고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무장을 한셈.
" 선크림을 안바른게 조금 아깝긴하지만.. "
약간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나는 살짝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정도면 완벽하다.
자 이제... 주인공만 오면 되는데...
너구리 놀이동산의 입구에서 , 나는 주인공이 올떄까지 긴장 해소를 위한 심호흡을 하기로 결정하고
숨을 깊이 들이쉬며 주위 풍경을 감상하였다.
1년전쯤 , 세워진 최신식 기구들로 가득한 너구리 놀이동산. 신세대와 구세대를 겨낭한 다양한 놀이기구와 이벤트 덕분에
주말에는 당연하고 , 평일에 조차 사람들이 끓임없이 북적거리는... 세계에도 꽤나 알려진 곳이다.
뭐 나야 사업상 몇번 이곳을 지나다니긴 했지만 오늘같이 노는것을 목적으로 이렇게 방문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하.. 뭐부터 해야할까? 이거 긴장되는걸?
더디게 가는것같던 시간이 점점 갈수록 이상하게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뭐..뭐야!? 이런 중요한 순간에... 설마 내가 감기가 걸린것도 아니고... 정신차리자 정신.
오늘뿐이야. 딱 오늘뿐이라니까~! 겨우 고등학생 꼬마 계집애랑 놀아주는건데 , 냉정한 내가 이럴리는없어~!
나는 마음을 추스리기위해 곰인형을 뒤집어쓴 인간(..)을 둘러싸고 재밌다는듯 만지는 어린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 우오오오오오오 .. "
갑자기 한쪽이 시끄럽다...
뭐지? 남자들의 놀라워하는 소리가 자꾸 귀에 들려왔기에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 엄마~~ 저언니 너무 예뻐... 나도 저렇게 되고싶어 "
" 호호, 우리 미즈키도 반드시 그렇게 될거란다. "
" 저..저렇게 예쁜사람이 있었나? 이..도시에? "
" 도..동화속 여신을 보는것같아..... 믿기지가않아! "
나는 웅성거리는 곳을 향해 눈을 떼지못한채 , 입을 다물고있었다.
윤기가 찰랑거리고 ,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붉은색 머릿결. 그위에 다소곳이 평행으로 자리잡은 빨간 슈트리본.
어제보다 한층더 깊어보이는 푸른색 보석 눈동자와 촉촉해서 금방이라도 녹아버릴것같은 앵두빛 입술.
예쁜 물방울 무늬와 , 공기방울 무늬들이 아름답게 새겨진 시원해보이는 하늘색 원피스.
시원스럽게 드러난 목과 어깨와 팔을 색칠한 하얀피부가 햇살에 빚춰져 반짝인다.
한손에 작은 빨간무늬 가방을 들고.. 여신같은 모습의 소오류 아스카 랑그레이는...
살짝 하얀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은채 , 나를 향해 다가왔다..
" .......................... "
" .......................... "
" .........................? "
" ......................... "
무슨말을 해야할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않는다. 아..가슴의 고동이 5분전 기다렸을때보다 수천배는 더 빨라진것같다.
아..아무래도 감기인가? 틀림없이 감기일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내가 흥분할리가..
" .....뭐야 아저씨? "
" ...하아? "
" ...... 왜그렇게 빤히쳐다봐? "
빨간무늬 가방 끈을 풀어 어깨로 동여맨 소오류가 미소를 지으며 내 숨결이 닿는곳까지 다가온다.
그..그렇게 다가오지마! 더이상 다가오면 난 열기로 인해 폭팔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소오류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 흐~응 시간은 엄수했으니~ 일단 1차적으로 합격이구~ "
" ..뭐....뭐....뭐입..니까? "
짖궂게 덧니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 소오류..나는 그런 그녀의 악마같은 모습에 저항하지도 못한채 ,
의미없는 신음소리만 낼뿐이다.
" 좋아~ 좋아~ 양치질은 한것같고.. "
내 턱밑 10cm 까지 코를 가져가 냄세를 맡은 소오류가 만족하다는듯이 말했다.
" 흐~응 아저씨.. 꽤나 패션센스있네? 헤어스타일도 나름 괜찮아. 흥흥~ 적어도 이 소오류 님이
좋은평가를 해줬을정도라면 아저씨 꽤나 잘난사람인걸? "
" 그...그..그렇습..니까? 아하..그렇지요? "
" 어머? 아저씨 , 땀흘려..괜찮아? "
" 괘..괜찮습니다~ 전 이래뵈도 한겨울에도 히말라야 눈덮힌 언덕을 하루에 10번은 왕복하는놈이니깐요! "
긴장한 이유는 소오류말고도 다른곳에 있었다.
너구리 놀이동산 입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관심&질투&시기&부러움&음흉함 등등 다양한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소오류 본인은 그런 시선을 느끼지못하는것 같았지만..
" 저자식... 저런 엄청난 미인을 데리고 데이트를 하려고하다니, 용서못해! "
" 어머... 여자가 너무 예뻐..남자도 꽤 잘생겼지만 저렇게 예쁜 여자를 본적이없어~ "
" 엄마엄마~! 저누나랑 결혼할래~!! "
" 내나이 70에 모든 한을 이제야 다 풀겠구먼..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수이.. 할멈.. "
" 여우여 여우! 저 엉덩이 살랑살랑 흔드는걸봐! 할아범! 눈에 뭔가씌였어!! 응!? 내눈은 안틀리다니까!
어이구! 나이도 어린것이 벌써부터 어깨살 훤~히 드러난 옷이나 입고다니구!! 여우중에서도 큰 여우여! 구미호라니까! "
....아무래도 빨리 이곳을 피해야할것같다.
시선 집중받는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 세상에는 이놈저놈 다양한 인간이 있으니 조심해도 나쁠건없지.
" 저...저저저기 있잖아! "
" ...아? "
휘둥그래진 소오류가 눈을 깜빡이며 ( 아 이모습도 귀엽다...) 나를 바라본다.
하얗고 점하나 없는 깨끗한 어꺠에 내 시선이 멈춰있다는걸 깨닫고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는 나.
" ..아저씨? 뭐야? "
" ....아..아니 그게아니라 , 오늘 옷차림도 그렇고 꽤나 근사해보여서 "
' 깨물어주고싶어 미치겠어 ' 라고 차마 말할수없었던 나였다.
솔직한게 좋긴하지만 왠지 내가 이상한 놈같잖아?
그리고 소오류 성격에 아마 사람들 보는앞에서 날 살해할지도 몰라.
이녀석 , 이래뵈도 얼굴은 반반하지만... 어제 관찰한 결과 성격은 좀 아니거든.
" .....정말이야? "
" ...에? "
의외로 고분고분한 소오류의 태도에 나는 또다시 할말을 잃는다. 약간 얼굴을 붉힌 그녀는
내 눈을 의심반 , 기대반 심리가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 ..정말 괜찮아? "
" 아..응 그렇다니까 , 너무 잘어울려서 기절할정도로 예뻐. "
....안믿겨지면 주위를 둘러봐라 이 꼬맹아..넌 지금 수천명의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있으니까.
" 그...... "
소오류가 할말을 잃어버리며 두뺨을 더욱 붉힌다. 뭐야? 칭찬 처음듣는사람 처럼..
너정도 외모면 어렸을떄부터 예쁘다. 귀엽다 . 사랑스럽다 등등 온갖 낯간지러운 단어를 수백 수천 수만번씩은
듣고자랐을거아냐?
" 다행이다. 3시간동안이나 고른옷이였는데, 아저씨 고마워. 칭찬해줘서.. "
" 아...? 그..그래, 뭐 솔직하게 말한거니깐 뭐 "
나는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눈부시게 미소를 짓는 소녀에게 지지않으려 노력했다.
휴우~ 역시 여자란 동물은 알기 힘든존재구나~
미사토씨도 그렇고 이녀석도 그렇고~ 말한마디가 모든걸 좌우해.
" 자 , 아저씨!! 그럼 오늘하루 코스를 안내해줘! "
소오류가 갑작스럽게 내 팔을 잡았기에 잡념에 사로잡혔던 나는 금세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미소가 더욱 빛을 내며 , 여름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 어..어이 잠깐! 아직 입장권도 안냈다구.. "
" 히힛, 아저씨만 믿을게~! 나 어제 완전 기대많이했다구~!! "
" 이..이봐! 그렇게 몸 바짝 붙이지마아~! "
....사실 좋았지만
팔에 자꾸 닿는 뭔가..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 에? 아저씨.. 표정이 이상해.. "
" 아..아아무것도 생각않했습니다!! "
" 키득키득 , 귀엽다 아저씨.. "
으흑..나는 완전 인형이야... 점점 범죄자로 전락해버릴것같은 느낌이야.
나는 한숨을 푹쉬고, 소오류의 팔에 이끌려 매표소를 향해 걸어간다.
" 우잉.. 사람들이 너무많아 , 근데 자꾸 날쳐다보는것같네? 아저씨 , 내 얼굴에 뭐 묻었어? "
....니가 너무 이뻐서 그래.
이쁘기가 여간이뻐야지. 신은 공정하다는말은 다 엉터리라니까.
뭐 이따위로 인간을 이렇게 완벽하게 만든거야?
여전히 우리를 부러움&질투&음흉함&관심 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뚫고
겨우 소오류와 함께 매표소를 통과할수있었다.
●
" 아저씨~! 나 바나나 아이스크림 사줘~! "
" 아저씨~! 팝콘! "
" 아저씨~! 후르츠 파르페 먹고가자~! 응? "
" ...저어 소오류씨 , 너무 많이먹는게 아닙니까? 이러다간.. "
" 응~! 죽어버리면 되는거지뭐~ 죽기전에 많이~ 많이 먹을테야 배고파하는 내 모습을 엄마가 본다면 가슴아파할테니까 "
..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온다.
이래서 얼굴 반반한 인종들은 문제라니까..
내팔을 잡은 손을 놓지않으며 , 한손으로는 단것을 끓임없이 먹는 소오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눈에띄게 가벼워진 지갑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놀이동산에 먹으러온건지 놀러온건지,
그래 , 뭘 처먹던 내가 알바는 아냐. 근데 왜 니먹는걸 내가 내야해?..
너 부자집 딸이잖아! 난 가난한 대출업자라구~! 자꾸 나한테 삥뜯으면 너..
" 아저씨~! 솜사탕먹자! "
" 네에... "
" 응? 아저씨 솜사탕싫어해? 그럼 우리 초코후르츠먹을까? 3만원밖에.. "
" 아..아닙니다! 당장 솜사탕 사오겠습니다! 기다리세요! "
......나의 무모한 저항은 이렇게 끝이나버렸다.
어느덧 놀이동산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간단한 놀이기구를 이용하다보니 어느세 3시간이나 지나갔다.
너구리 놀이동산은 역시 거대한 곳이다. 탈수있는 놀이기구만 100가지가 되다니.
하지만 의외로 아스카가 스릴만점의 놀이기구 타는것을 싫어했기에 나는 조금 실망하긴했지만.. <-유원지매니아
손목시계의 큰 바늘이 1자를 조금 넘기고있는 이순간이지만 의외로 즐겁다.
" 수근수근...수근수근.. "
" 저 여자애..정말 죽이는데? 한번꼬셔볼까? "
" 냅둬라 냅둬 , 너같은걸 쳐다보기나 하겠냐. 옆에 놈팽이 하나붙어있잖아 "
" 당신 지금 어딜 쳐다보고있는거얏! "
" 할아범! 주제를 좀 아쇼... 저런 처자가 어디 할아범따윌 거들떠본답디까? "
뭐 , 어딜가든 이녀석떄문에 주위의 시선을 독차지하곤한다.
음료수가게에서도 ,
자동차 게임 오락놀이기구에서도 ,
스티커 사진찍는 곳에서도 ,
우리.. 아니 , 소오류 아스카 랑그레이는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초코파르페를 먹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소오류를 곁눈으로 살며시 바라보았다.
흐음.. 솔직히 뭐 정말 미인이긴해. 시내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애는 본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둔한건지 , 바보인건지 본인은 정작 그런시선들을 모르는것같지만..
" 헤~ 아저씨, 저걸 봐봐. 미키마우스 인형들이 행진을 하고있네? "
" 아아? 그..그렇군 "
미키마우스 쥐인형을 뒤집어쓴 아르바이트생인듯한 인형(?) 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반갑게 악수를 한다.
" 귀엽다~ "
소오류가 눈을 반짝이며 ,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소오류 뿐만아니라 , 미키마우스가 지나다니는 근처 모든 여성&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있었지만..
흐음 , 뭐 귀엽다기보다는.. 컨셉이 좋은거지 컨셉이. 흠 돈 꽤나 주나보군. 정말 열심히 악수를 청하고있어.
백날 그래봤자 월급쟁...
" 꺄앗? "
" 우왁!? "
" 에헤헤헤 ..이러지마아.. 꺄아 귀여워... "
어느틈사이엔가 , 다가온 커다란 분홍빛 옷의 미키마우스 인형이 소오류에게 다가온것이다.
그리고 그 인형은 악수로 욕구를 채우지못했는지 , 커다란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
두손으로 소오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는게 아닌가!?
" 에헤헤 , 간지러워... 이러지마아~ "
커다란 손이 소오류의 등 , 그리고 치마근처까지 쓰다듬기 시작한다.
[ 빠직.. ]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소오류의 뺨에 미키마우스가 그 커다란 코로 입을 맞추는순간,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것이다.
나도 왜그랬는지 후에도 전에도 알수가 없었다.
[ 빠악! ]
" 꺄앗!? "
" 우왁! " <- 미키마우스의 비명소리.
[ 뻐억! 푸학~ 퍼어어억~! ]
" ..아..아저씨 왜그래? "
" 아 , 이녀석들 이안에만 있으면 더울테니까 , 좀 몸좀 풀리라고 샌드백 역활좀 시키는중이야 "
[ 퍽퍽퍽 푸억 , 뿌억 빠악! 우지끈 빡! ]
" ...그치만 그건 너무 심한거같은데.. "
[ 빠악 퍼억! 쨍그랑(?) 우드드드득! ]
" ..아저씨, 미키마우스가 기절한것같은데? "
" 암암 , 미키마우스도 조금 쉬어야지. 더이상 순진한 사람을 만지지못하게말야 "
나는 손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뒤로 찾아올 무서운 후폭풍(?)을 예견하지못한채.
[ 찌릿 찌릿 찌릿! ]
" ................. "
" ...바보 "
소오류의 한마디가 너무 무섭게 들렸을 그무렵 , 나를 둘러싼 수십명의 미키마우스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동료를 잃은 한이라는 이유와 함께... 그렇게 30여분동안 , 나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것같다. 미키마우스들과.
참고로 말하자면 , 30분후 수십명의 미키마우스들이 단체로 시체놀이를 하게되었다는 전설이...
.
.
.
저녁 노을이 차차 짙어지기 시작한다.
뜨겁던 기운도 점차 사라지고 , 북적거리고 왁자지껄 떠들던 인파도 점점 줄어갔다.
맑은 물이 치솟는 분수. 그리고 저 멀리 커다랗게 자리잡은 푸른산과 노란 주황색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하늘빛.
아름다운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 늦은 오후시간의 무료함을 달래주고있었다.
" 하나 , 둘 , 셋 , 넷 , 다섯 , 여섯 .. "
" .... "
" 일곱! 쨘! 아저씨.. 또 움직였지~? "
" 크..크윽, 빌어먹을... "
짖궂은 미소를 지은 소오류의 모습을 하루종일 볼수있었다는게 너무 기쁘다.
한동안 무료하고 , 고독했던 나의 모든 기분을 씻어주었던 짧은 오늘 하루.
이 소녀와 만난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않았건만, 도대체 내 마음속에 일고있는 작은 파도는 무엇일까?
" 아저씨~ 이제 아저씨 차례야. "
" 아? 응.. 그래 "
" ..아저씨 또 다른생각했지? 바보.. 분위기 꺠는 남자는 별로야~! "
" 하하하.. "
새침했다가 , 토래졌다가 , 입이 삐쭉나왔다가 , 그러면서도 간간히 나오는 눈부신 미소.
자애로운 여신이 웃는것처럼 , 보는이에게 황홀함과 위안을 주는 그런 아름다운 웃음이였다.
이 아이가 내옆에 앞으로 계속 있어줬으면..
" ...... 저어 , 소오류? "
" ..응? 아저씨 왜? "
" 잠깐 앉을까? "
" 헤~ 아저씨 술래하기 싫은거지? 피~ 알았어.. 내가 오늘만큼은 인심써줄게 "
슬쩍 , 소오류의 미소에 지지않을정도의 미소를 보내주곤 휴식터에 마련된 흰색 의자에 걸터앉았다.
옆에서 소오류가 앉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우리는 잠깐동안 아무말없이 점점 다가오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미세하지만 피부에 닿아 녹을것같은 바람... 그렇게 나와 소오류는 아무말없이 지는 태양에 눈을 떼지못했다.
" ..아저씨 "
" 왜? "
무뚝뚝하게 대답한것을 후회하곤 다시 가능한 밝은 목소리로 다시 대답헀다.
" 왜그래? 단것을 좋아하는 소오류 아가씨. "
" ..아스카라고 불러도돼 "
살며시 미소를 짓는 아스카는 이읔고 , 내눈을 바라보았다.
" ...아 그래.. 아스카 "
가능한한 다정한 목소리로 아스카의 목소리를 불러준다. 미소를 잃지않으며 노을 빛아래 반사된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우리들의 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볼정도의 거리만큼 줄어든건가?
단지 이틀동안 만났을뿐인데...
어쨰서... 나보다 한참 어린 소녀에게 끌리는걸까..
은은한 바람이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것같다..
" 오늘 , 재밌었어? "
왠지 모르게 미묘한 분위기를 꺤것은 나였다.
" 응, 아저씨 덕분에 맛있는것도 많이많이 먹었구.. 정말 즐거웠어 "
" 헤에.. 덕분에 내 지갑이 울고있어. 어떻게 할꺼야? "
" 헤헤헤, 나중에 내가 아저씨한테 멋~있는 집하나 선물해주면 되지 뭐 "
..집? 네깟녀석이 무슨 능력이있다고?
아..하긴 이녀석 , 부자집 딸이였군..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람의..
" 하하 .. 나는 빌게이츠네 집도 마음에 안들어하는 사람이야 역마살까지 껴서 파리 에펠탑 꼭대기에서
이불자리 깔고자다가 걸려서 하루만에 프랑스 화제의 인물 BEST 10 위안에 들어간 사람이지 "
" 피이 , 아저씨, 내가 예전에 살았던 집에가면 깜~짝놀랄걸? "
작은 입술에서 혀를 삐쭉 내민 아스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뒤 , 내게 보여준다.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것은 한장의 사진. 조금 높은 섬 절벽이 있고 그 아래로 바다가 햋빛을 받아 눈부시고있었다.
푸르른 구름이 넘실넘실 거리는 하늘아래 , 둥그란 동산 한가운데 우뚝 , 서있는 멋있는 집.
" 멋있지? "
나의 솔직한 감상을 기대하고있는듯한 아스카가 말했다.
" 흐음.. 그게말야... 에.. "
솔직히 멋있다. 아니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우리나라 섬중에서 이런곳이있던가?
천연지리중 최상의 배경과 조건을 가진곳이다. 그런곳에 집까지.. 이런곳에 산다면 정말 남부럽지않을듯하다.
" 에... 아저씨 , 별로인거야? "
" 아..아뇨! 멋있습니다! 정말 멋있어요.. "
" 피이.. 진작그렇게 말하지. 아저씨한테만 보여주는거란 말야~ 아빠한테도 , 그 누구한테도 보여준적이없는걸 "
" 하하..그거 고마운걸? 영광으로 생각해야겠군.. "
불만이 조금 섞인 말투로 나를 바라보는 아스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미소를 보내주는 나.
" 아스카가 살았던 곳인가봐? "
" 아니, 우리 엄마가 태어난곳.. 나도 어렸을때 잠깐 살았는걸? 이곳에서 아빠를 만났데.. "
" 헤... 그렇구나... 어머니의 어린시절은 정말 남부럽지않고 행복했겠군.. "
나는 사진에 눈을 떼지않은채 질문했다.
" 응, 아빠만 만나지않았다면 우리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어서 가장 행복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을거야 "
" ...... "
어쩐지 시무룩한 아스카의 얼굴이 안타깝다.
오늘 하루내내 즐겁고 행복해 보였는데... 왠지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내 자신이 조금은 미웠다.
" 반드시.. 행복했을거라고 믿어.. "
나는 시무룩한 아스카에게 가능한한 멋지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말에 조금은 위로를 받았는지, 아스카가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어준다.. <-미소를 볼떄마다 자꾸 두근거렸다.
" 나말이야. 죽기전에 꼭 한번 여기를 가볼거야. 엄마가 묻힌곳도 이곳이니까.. 가면 엄마도 만날수있고.."
" 하하.. 그래그래.. 자아 오늘하루 즐거웠다. "
분위기 반전을 위해 두팔을 하늘높이 벌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
미소를 잃지않은 아스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 이대로 돌아가긴 아깝잖아~ 아저씨..아니 이오빠가~ 한턱낼게~ 기다리고있어 "
" ..아저씨 다녀와~ "
" 이..이자식, 난 아직 20대란말야! 마음대로 아저씨라고 지껄이지마~~! "
" 헤헤헤~ "
크..크윽 저 미소를 보면 뭐라고 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 항복항복.
" 잠깐만 기다리고있어~ 금방 다녀올게! "
" 다녀와~! 나는 초콜렛 무스 섞어주는건 필수야~!! "
....짜식이 얻어먹는주제 주인 행세하기는..
한마디 해주려고 고개를 뒤로 돌렸지만 눈부신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어주는 아스카.
항복 항복. 정말 무서운 여자다. 식칼과 붕대를 한꺼번에 사용하다니..
나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가능한한 빠른 걸음으로 아이스크림집을 향해 걸어갔다.
●
"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안녕히가십시오 "
" 예 , 수고하세요 "
기품있는 점원의 미소가 담긴 배웅을 받으며 나는 자동문을 통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왔다.
이미 짙은 황혼이 지배하고 있는 하늘. 푸르른 구름과 맑고 따뜻한 햇살들을 지우고 다른 배경으로 꾸민 하늘이 짖궂게 느껴진다.
" 뭔놈의 초콜렛무스가 이렇게 비싸? 내 아이스크림 가격의 3배잖아... "
이럴줄 알았으면 아이스크림 먹자고하지말걸.
한츰 더 가벼워진 지갑이 울고불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 데이트 한번 더하면 아마 집문서까지 위조해야할지도 모르겠군.. "
투덜거리면서도 들뜬기분과 행복한 감정이 사라지지않는다. 여전히 나는 빠른걸음으로 걸어가고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간 놀이동산. 몇몇 연인들과 중년 부부들만이 이곳저곳을 구경하거나 ,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허무함이 섞인 발걸음을 하고있다.
이읔고 ,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곳에 거의 다왔음을 느낀다.
가슴속에 끓임없이 요동치는 고동. 달아 오르는 두뺨과 이마.
아이스크림을 쥐고있는 두손이 매우 차가웠지만 개의치않았다.. 몸은 차갑지만 마음은 뜨겁다.
나는 가능한한 밝고 멋있는 미소를 짓고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 .......... "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 없었다.
대신 덩그러니 남아있는 두개의 흰 의자.
쓸쓸한 바람과 황혼의 알수없는 미소가 담긴 하늘만이 나를 맞이했다.
금방이라도 웃어주며 나를 환영할것같았던 소녀는 없었다.
설마 먼저 가버린건가? 아냐 그럴리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뭔가가 떨어졌음을 발견하곤 그것을 줍는다.
내 손에 쥐어진것은 하나의 사진. 수줍게 미소지으며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섬과 집이 담긴 사진.
" 뭐지..? "
중얼거림과 동시에 안쪽에서 휴대용전화기의 진동소리가 느껴진다.
불길한 예감에 재빨리 안쪽 주머니를 뒤져 휴대용전화기를 꺼낸다.
" 이건.. "
눈에 익은 전화번호가 깜빡이는 휴대용 전화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것을 느낀채 , 나는 전화기를 열어
귀에 가져갔다..
" 아 , 드디어 받았군. 정말 목소리듣기가 왜이렇게 힘든가?젊은 사장? "
... 왠지 좋지않은 느낌. 이자가 이시간에 전화를 했다는건..
아냐 , 그럴리가없어. 나는 부정하며 대답했다.
" 당신이 왠일이지? 우리사이에 해결할 일이라면 당신애들이 알아서 해결해줄텐데 "
" 이거이거 , 항상 우리애들이 실례를 범해서 미안하네. 하지만 애들을 풀었어도 신출귀몰한 자네를 잡기가
너무 힘드니 , 내가 직접 나설수밖에, 안그런가? 분수모르고 내돈을 몽땅 자네 계좌로 인출한 이카리 신지사장님을말야. "
" ......그래서 뭐......설마 ...너... "
아냐 그럴리가...그럴리가 없어.
절대 그럴리가..
" 와하하하! 슬슬 느낌이오지? 정말 대단한 미인이군! 피부가 아기피부처럼 뽀송뽀송해.
내가 잘가는 가게 업주가 정말 좋아하겠는걸! 잘만하면 억단위 돈도 받을수있겠어 "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 아아~ 안심해. 그녀에게 손을 대거나 , 다치게 한 일은 없었으니 , 하지만 우리애들이 워낙 혈기왕성해서말이지..
이런 미인을 눈앞에 잠재워두고 그냥 앉아있기에는 우리애들 회포가 너무커 그리고 이런 미인정도면 나에게 꽤나
큰돈을 쥐어줄수도 있고. "
" 아스카에게 무슨일이 생긴다면 넌 아마 나랑같이 영안실로 가게될거다 "
" 그래그래 , 역시 냉정한 이카리 사장다워 , 이런 미인을 데리고 다닐만하군. "
" .. 돈을 가지고 그곳으로 가겠다. 위치가 어디야? "
나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기속의 상대에게 분노를 전달했다.
다 내잘못이다... 어쨰서 나는...
하루 내내 눈부신 미소를 짓고있었던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오른다.
" 돈? 돈따위는 필요없어. 이젠 나랑 자네와의 모든 관계가 청산되었네. 이 꼬마아가씨 하나로 말이야~ "
" 어디야, 당장 예기해. 지금간다 "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 하마터면 휴대폰을 집어 던져버릴뻔했다.
절대...절대 가만두지않을거야. 아스카에게 손을 댄다면... 너희들은...
나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꺠물었다.
" 어허~ 젊은 사장, 난 이제 자네한테 볼일이 없다네. 킥킥킥. 자네가 나한테 빚진 모든 돈을 다 없었던걸로
헤주겠다는 말이야~ "
" 미친소리하지마 이 정신나간 대머리 자식아! 당장 말해! 아스카는 어딨어!? "
" 아~ 그건 자네가 알아서 찾게나. 오늘 나는 꽤나 바쁠것같아서 말이야. 자네 푸정을 들어줄 시간이없어 "
" 야이 개자식아! 너 어디냐고! "
[ 뚜 - 뚜 - 뚜 - ]
숨이 차다. 소리를 질렀던 탓인지, 목도 아팠다.
정신을 다시 집중하고 휴대폰 버튼중 " 통화 " 버튼을 누른다.
" 받아..받아..받으란말야...제발 받으란말이야..이미친자식아.."
[ -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않아..... ]
[ 탁! ]
거칠게 휴대폰을 집어넣은 나는 곧바로 달렸다.
미친듯이 , 미친듯이 달렸다. 놀이공원 입구를 향해. 그리고 폐가 터질것같은 , 두근거리는 심장이 부풀어올라
터질것같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달렸다.
제발 무사해줘. 제발 부탁이다. 소오류 아스카.
제발... 기다리고 있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석양도 차차 어두움에 가려져 빛을 잃어가고있었다.
내가 서있던 자리에는.. 두개의 사이좋은 아이스크림이 떨어져 무심하게 녹아있었다.
< 진심을 그대에게 2부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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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소설。
▷에바.소설
진심을 그대에게 - <2부>
-엘레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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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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