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산업을 상징하는 단어로 굳어져버린 '충무로'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스크린 독과점 현상'에 대한 토론회가 벌어졌다. 30일, 서울 충무로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관객 쏠림 현상과 독과점 규제론을 주제로 한 '<괴물>과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영화계 안팎의 관심과 고민이 집중된 주제인만큼 참석자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그 내용을 요약했다.
토론회 참석자 | 송형국(경향신문 기자), 양성희(중앙일보 기자), 어수웅(조선일보 기자), 조창호(감독), 강한섭(서울예술대학 교수), 정재형(동국대학교 교수), 오동진(영화평론가), 최광희(FILM2.0 온라인 편집장), 원승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목수정(민주노동당 문화정책연구원), 김은형(한겨레 기자), 조성규(스폰지 대표)
① 지금의 한국 극장가, 과연 스크린 독과점인가?
송형국 | 한국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흥행결과는 작품 내외부의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스크린 수가 흥행성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 6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괴물>이 올해 개봉작 중 흥행 1위이며, 언론은 물론 대중에게조차 혹평을 얻은 <한반도> 역시 전국 52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흥행 6위에 랭크됐다. 반면, 전국 155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가족의 탄생>의 경우는 개봉 3주차에 9개 스크린으로 급락했는데, 그나마 걸려 있는 스크린에서도 다른 작품과 교차상영함으로써 관객의 관람 기회를 박탈했다. 또한 경쟁사의 영화를 의도적으로 차별하는 시간 배치, 상영관 배치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멀티플렉스들의 이익 극대화 전략이 자본의 단기적인 논리로 귀결됨에 따라 작품별 흥행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으며, 이것이 중간급 배급사, 중간 규모의 영화들을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한국 영화 산업은 갈수록 취약한 구조로 내몰릴 것이다.
어수웅 | 스크린 수의 변화 추이를 보면 <왕의 남자>에는 격려를, <괴물>에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왕의 남자>의 경우는 개봉 초기 272개, 최정점인 6주차에도 364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반면 <괴물>은 역삼각형 형식을 보여주며 전체 스크린의 38%, 좌석수로 따지면 68%를 확보하고 있다. 관객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스크린 수라면 독과점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없겠지만 <괴물>의 경우는 결과가 압도적이다. 장점을 많이 가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생성해낸 담론은 영화 외의 영역에서 온 것들이 많다. 수치만으로 규제하는 것이 긍정적인가 하는 부문에는 의문이 들지만 독과 점 현상에 대한 우려에는 동의한다. 또 하나, 요즘 작은 영화마저도 속도와 규모에 전념하는 상업영화 시장의 마케팅을 은연중에 흉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사족이지만, 그동안 독과점 상황에 편승했던 일부 충무로 상업영화 제작자나 관련 영화인들이 이번 논란을 통해 '독과점 반대'를 외치는 건 뭔가 좀 우스꽝스러운 구석이 있다.
조창호 | <괴물>이 결과적으로 독과점의 형태로 유통됐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독과점이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관객 취향이 반영된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할 수밖에 없고, 영화를 선택하고자 하는 요소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또한 극장주들의 운영의 묘로 봐줄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한반도>의 경우는 다른 영화들이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괴물>의 경우, 스크린 독과점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졌다. 다른 영화들이 알아서 개봉 시기를 피한 것도 요인이 됐다.
강한섭 | 조창호 감독의 반응이 의외다. <피터팬의 공식>의 경우 흥행에서 실패한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 스크린 독과점에 피해받은 경우가 아닐까?
정재형 | 개인적으로 <피터팬의 공식>이 <괴물>보다 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이 영화에 20~30억 원의 마케팅 비용과 스크린 몰아주기가 있었다면, 각종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줬다면 그래도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을까? 1천 만까지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관객 동원은 가능했으리라 본다.
조창호 | <피터팬의 공식>은 5억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20만 명 정도가 봐줘야 하고 그래야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고, 다음 작품을 추진할 의욕조차 가지기 어려운 상태다. 차기작은 일부러 일정을 유예시키며 상황을 보고 있다.
강한섭 | 기대할 만한 감독들이 이같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 다. 봉준호 감독 역시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독과점의 전략에 편승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본다.
양성희 | <괴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 독과점 논의가 <괴물>의 영화적 성취를 깎아내리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시장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가자는 것도 문화적인 모양새는 아니다. 영화 산업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독과점 방식이 지원을 받은 측면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유통 부분에 공공성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지 않을까. 관객이 다양한 상품을 볼 수 있는 소비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근거를 통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보기도 학습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멀티 플렉스 안에서의 대안상영관 확보도 중요하다. 또한 모든 미디어가 <괴물> 이야기만 함으로써 사회적인 압박을 만들어내고 상업 논리, 대박 논리로 접근한 것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② 한국영화산업, 어떻게 볼 것인가?
강한섭 | 한국영화산 업에 흐르는 자본의 크기와 순환 속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영화는 '신규투자→블록버스터 제작→대박 마케팅→미디어 하이프(언론의 띄워주기)→스크린 독과점→극장요금 덤핑→대박 흥행→사회적 신드롬→신규투자'로 이어지는 붐의 순환 과정을 거쳐왔다. 1999년 정부와 제 2금융권의 투자로 만들어진 돈이 영화산업에 들어와 만들어진 흥행작이 <쉬리><엽기적인 그녀><조폭 마누라> 등이다. 또한 2차 붐에는 극장과 이동통신사, 신용카드사의 자본이 들어와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했고 3차 붐에는 미디어업계 인수합병과 코스닥 우회상장 자본이 들어와 <왕의 남자>와 <괴물>을 만들었다. 마케팅 비용도 그 동안 급상승했고 미디어의 집중이 이뤄지면서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심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초유의 흥행작은 극장이나 관객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독과점 자본이 자기 이익 확보를 위해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영화 시장은 커지지 않았는데 사회적 신드롬이 만들어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극장 수익률은 성장세지만 제작 수익률은 감소세를 보이며 2004년, 한국영화 편당 5.5억원의 손실을 입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해외 시장(한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스크린 독과점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지금 한국영화는 산업 시스템의 악순환을 야기한 '시스템의 위기'와 스크린 쿼터 축소 발표로 현실화된 '정책의 위기',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테크놀로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재형 | 부가판권 시장의 몰락도 위기 상황이다. 검토해주길 바란다.(웃음) 한국영화산업은 독과점 규제를 통한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 노동력의 보존 및 강화, 부가판권 및 영화 외적 시장 확대라는 세 가지 문제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전에 몇 가지 개념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공자의 말 중에 '경이원지(敬而遠之)'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산업을 여기에 비유해보자면, 중소형 영화는 예술영화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예술영화 상영관 등으로 귀향보내고, 블 록버스터만 득을 보며 돈을 벌겠다는 태도다. 시장에 내놓은 영화는 모두 상업영화로 봐야 한다. 만약에 <괴물>이 개봉 방식을 달리 했다면 예술영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괴물>의 흥행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항상 할리우드 영화와의 충돌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크린 독과점 규제는 대기업 규제 정책과 동일하게 봐야 한다. 법적으로 부당하다면 고발조치를 통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억제하고 공정거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영상산업을 핵심 사업으로 키웠지만 영화 산업 질서가 무너지면 '바다 이야기' 못지 않은 사회적 파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오동진 | 문제가 되고 있는 CJ, 롯데, 쇼박스 등 거대 배급사들은 대기업의 시장 논리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통해 극장 수익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부가판권이 사라진 상태에서 극장수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한다면 대기업이 손익 논리에 따라 영화자본에서 빠져 나갈 위험이 있다. 공공 자본과 공공성을 인식한 제작자가 영화계를 이끌어 나간다면 좋겠지만 자본이 빠 져나가면 심각한 공황 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85%의 독과점을 줄이면 나머지 15%가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의문이 든다. 85%에 대해서는 간섭도 하지 않되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접근하고 15%를 키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다운로드 시장 양성화 등을 통해 15%를 키워나간다면 대기업이 극장 수익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 부율 문제도 걸려 있다. 즉 산업 구조의 시스템을 바꾼다는데 초첨을 두고 비극장 구조를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최광희 | 그동안 동반자 의식이 강했던 충무로는 지금 여러 이해 관계의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산업 주체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정서와 상관없이 영화 산업이 자본의 메카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배급사들은 대기업의 속성에 따라 독점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과점 문제는 어떤 선택이나 행동의 차원이 아니라 환경적 차원이다. 독과점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폐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 결국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나는 한번 팽창된 시장이 어떤 자극에 의해 쉽게 축소되지는 않 는다고 본다. 이통사 할인 서비스의 중지가 관객 축소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는 것은 할리우드식 와이드 릴리즈 전략을 답습한 현재 개봉 방식에 대한 효용성 있는 대안일 수 있으며, 이는 스크린 쿼터 축소 상황에 대해서도 긍정적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독점 규제는 결국 시장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③ 스크린 독과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원승환 | <괴물>의 자리에 할리우드 영화를 대입해 본다면 모두가 일심동체로 독과점 현상을 우려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영화계에서 산업적 지원에 대한 논의는 있어 왔지만 문화다양성과 공공성 확대에 대한 논의나 지원은 없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발의한 문화진흥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몇몇 정책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법론들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프린트 벌 수 제한이나 전용관 확대, 스크린 점유율 제한 등은 그 실효성에 회의적이다. 오 히려 멀티플렉스를 대상으로 상영해야 하는 영화의 편수를 할당하는 '상영 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극장마다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또한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다양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관점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종다양성'이 아닌 시장 내에서 상이하고 차별화된 것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차원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목수정 | 스크린 독과점 규제는 자의적으로 굴러 가던 영화산업의 시스템 논리를 깨버린 멀티플렉스를 규제함으로써 다시 정상적인 흐름을 만들고자 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 천영세 의원이 제시한 개정법 내용은 '1) 멀티플렉스를 정의하고 2)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의 스크린 수를 30%로 제한하며 3)멀티플렉스 내 대안 상영관을 의무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관객들의 영화 보는 성향과 습관, 그리고 극장 입장에서의 수용 효율성을 최대한 고려한 규제 방법이다. 이 외에도 수직계열화 방지법과 부율 문제 조정에 관한 내용이 논의 중이다.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여지가 적은 부분이 있더라도 영화진흥법 안에서는 소화가 가능하다.
김은형 | 취향의 개발을 위한 문화적 관점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자본논리에 따른 제작, 배급, 마케팅 방식에 따라 관객들 역시 몇몇 큰 영화에만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교정이나 개혁 못지않게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성규 | 영화 수입, 배급 일을 10년간 하면서 6월 말까지 29편을 개봉했다. 그러나 관객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의 경우 무대인사 때만 100명 관객이 들었을 뿐이고 <거칠마루>는 거의 관객이 들지 않았다. <메종 드 히미코>처럼 성공한 영화는 희귀한 현상이다. 이렇게 관객이 없는데 상영관 쿼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스크린 독과점 규제는 작은 영화 수입, 배급사에는 영향력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수직계열화 외에는 생존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스폰지의 경우 극장의 마케팅 효과, 영진위에서 발행하는 무가지 넥스트 플러스 등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관객을 개발해 왔다. 결국 문제는 관객 개발이다.
최광희 | 관객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관객이 없을까. 오히려 관객이 다양한 영화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과 5-6년전에 는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불가능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영진위를 위시한 정부의 영화 산업 정책 기조가 메이저와 마이너로 시장을 가르고 메이저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예술영화는 마이너 시장으로 고립화시키는 자족적 지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관객을 없애는 요인이다. 너희들은 뒷방에나 가서 놀라는 거다. 그러면서 3만 명 들면 잘 들었다, 식의 뒷방 논리가 생겨났다. 메이저 리그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관객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독과점 규제 밖에 없다.
정재형 | 영화 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될 영화, 안 될 영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인식과 몇 개 영화만을 보고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 산업의 장벽을 낮춰서 다양한 영화를 시장에 진입시키는 정책, 독과점 규 제와 공정거래에 대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토론의 목적은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줄 담론을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나 아직 독과점에 대한 명확한 해답도, 상업, 비상업 영화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영화계 내부의 합의가 없으면 추상적인 논의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과 같은 논의 역시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송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