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
군부의 논리 중 가장 역겨운 논리이다.
일단 이 말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자. 한국 군대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철저히 희생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 회사가 ‘개인은 회사를 위해 일한다. 회사는 개인을 위해 월급을 준다’ 이런 식의 상호협조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군대는 ‘개인은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한다. 하지만 국가는 개인에게 아무 것도 안 해준다’ 이런 일방적 희생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당연 개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느낌이 들테고, 그것을 보상해주기 위해 군부가 어거지로 가져다 붙인 논리가 바로 저것이다. 물질적 보상이 불가능하다면 정신적으로 추켜세워주겠다는 거다. 그런데 저 논리의 문제는 군복무자를 추켜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비복무자를 깔아뭉개고 있다.
국방일보에 보면 저 논리를 옹호하는 사설이 한달에도 몇 개씩이나 실리는데, 만약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저런 얘기 했다가는 병신 취급 받거나 파시스트로 오해 받을 것이다.
저 논리 대로라면...
군제대자 = 사람
비복무자(여성, 또는 면제자) = 사람 이하(일단 이 사람들은 애초에 군대라는 시험을 안 봤으니까)
복무부적응자(입대는 했으나 적응을 못하는 사람) = 쓰레기(이 사람들은 군대라는 시험을 봤는데 거기서 떨어졌으니까)
...뭐, 대략 이런 의미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람’이란 물론 생물학적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 즉 ‘인격자’를 의미한다.
군대는 중학교, 고등학교의 조직적 집단생활에 이어 대학 생활로 나태해진 젊은이들을 ‘사회가 원하는 인간’ 으로 재탄생 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군생활 2년 해본 사람은 알고 안 해본 사람도 대충 알겠지만 군대란 그야말로 비합리적인 집단이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다. 회사라면 수백번 사표를 집어던졌을 일도 제대의 그날이 올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해야한다.
온갖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2년 동안 참고 견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군대가 가르치는 것은 조직 생활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 포병대는 대포를 쏠 때 발사 준비를 하고, 뒤로 물러나 발사를 하고, 30초 정도 대기하다가 다시 돌아가 발사 준비를 한다.
어떤 사람이 보니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왜 발사 후 30초 정도 대기를 하는 걸까? 그 때문에 열 번 쏠 걸 여섯, 일곱번 밖에 못 쓰는데. 엄청 비효율적인데.
궁금해서 지휘관에게 물어보니 지휘관이 말하길 ‘이제까지 이렇게 해왔어. 규정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 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왜 계속 이렇게 해왔는지 궁금해서 문헌을 찾아봤더니 그 역사가 남북전쟁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 시대에 포병은 말을 끌고 다녔다. 포를 쏘면 그 소리에 놀란 말이 발광을 해서 아군이 다치기 일수였다. 그래서 포를 쏜 후에는 뒤로 물러나 말고삐를 잡고 놀란 말을 달래준 다음 다시 포를 쏘는 것이다.
이 때 만들어진 규정이 말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고, 군인들은 그 규정에 따라 계속 움직인 것이다.(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군대에는 이런 규정이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면 한국군에는 ‘부대 내에 잡지 반입 금지’ 라는 항목이 있다. 대대장의 허가에 따라 일반 잡지류는 반입을 하는 곳도 있는데, 1사단 신교대 같은 경우는 정말 모든 잡지류가 반입 금지였다. 게이머즈, 뉴타입, 패션 잡지 등등. 그런데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지. 취미생활은 장려를 하면서 취미생활과 가장 근접해있는 잡지류가 무조건 반입금지라니?
나의 추측에 의하면 잡지에 정부 또는 군부의 비판이 실렸거나, 유신독재를 부정하고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글들이 실려있던 때에... 즉, 잡지=불온서적 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던 때에 ‘모든 잡지 반입 금지’ 라는 항목이 만들어졌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즉, 어쨌든 논리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이다. 아아~ 이 얼마나 편한 논리인가?)
만약 이때 갓들어온 이등병 하나가 이 점을 지적했다치자. 그 이등병은 고참들에게 ‘니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이 개새끼야!’ 라고 개욕 먹었을 것이다.(미군은 몰라도 한국군은 그런다)
‘이제까지 해오던 것’ 이야말로 조직이 선호하는 것이다.
군 시스템이 비합리적이라지만 어느 조직이든 비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다만 군대는 그것이 극대화되어있을 뿐이다.
행정보급관 연말정산해주고, 중대장 집 이사하면 도배해주러 가는 것처럼 회사 역시 상사 차 세차해주고 상사 집들이하면 발벗고 나서 돕는다.
이처럼 군대와 회사는 닮은 점이 있다.
조직생활이란 개인이 조직에 맞추는 일이다. 자신이 보기에 조직이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더라도 그에 맞춰 따르는 것. 그것이 조직원이 해야할 일이다.
2년 군생활을 했다는 것은 곧 어느 조직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군대 2년 갔다오면 ‘까라면 까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 조직이 원하는 형태의 인간을 양산해 내는 것. 그게 군부가 말하는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사회가 원하는 인간이 만들어진다)’ 라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논리가 9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통용이 됐다. 사회는 하나의 조직이자 곧 거대한 공장이다. 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면 수만명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해서 국가가 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니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명령에 따라 수만명이 움직이는 거대 기업보다 차고에서 십여명이 아이디어 짜낸 기업의 시가 총액이 높은 시대가 되었다.
구글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보다 높다. 하지만 삼성전자 직원은 수만명인데 비해 구글 직원은 고작 수백명이다. 이 수백명이 각자 아이디어를 짜내 구글을 만들어가고 있다. 설마 구글 직원들이 까라면 까서 구글을 키워왔겠는가?
1사단에서 누군가가 자살을 했다.
그러자 1사단 신교대 탄약반장 차원사가 저녁 점호시간에 말하길...
“그런 놈은 어차피 사회 나가봐야 도움이 안 돼. 그냥 죽어버리는 게 사회를 위해 나아.”
농담이 아니라 난 이 말을 듣고 거의 전율이라 할만큼의 역겨움을 느꼈다.
이 말이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악은 제거 되어야 한다’ 라는 히틀러의 말과 ‘인류 전체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열악한 유전자를 지닌 존재들은 제거 되어야 한다’ 라는 루돌프 대제(은하영웅전설)의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군대에서 적응 못하면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인가?
사회에 도움이 안 되면 그냥 죽어야 하는 건가?
중요한 것은 이 논리 역시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 라는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이 논리는 인간을 평등하고 개성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 기준에 의해 우성집단과 열성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럼 정말로 군대에서 적응 못하는 인간은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일본 애니계에 한 획을 그은 천재감독 안노 히데야키.
그가 만든 에반게리온은 수 조원을 벌어들였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에바를 능가할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고, 오죽하면 극장판으로 리메이크되 다시 수 백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안노 히데야키... 성질 더럽기로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제풀에 못 이겨 울면서 주먹으로 벽을 때린다고 한다.
이 사람이 만약 군대에 왔으면 적응 못하고 자살하거나 정신이상으로 의가사전역 했을 것이다.
군대만이 아니다. 애초에 이 사람은 일반적 회사 조직 시스템에 적응할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 일본에서 일반 회사 들어갔어도 쫓겨났을 것이다. 애초에 자기 성질 못 이기는 사람이 무슨 사회 생활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일본 애니계를 부흥시킨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안노가 정말 성격 좋고 착한 사람이었으면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이 나왔겠는가?)
군대에서 적응 못하는 사람이 군대에 적응한 수만명이 한 일보다 나은 일을 해냈다. 이게 현실이다.
인간은 사회에 도움이 되든 못 되든 인간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군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군대 갔으면 잘도 적응했겠다.
정신이상자가 그린 그림이 수백년 동안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군부가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 라고 지껄인다는 것부터가 군대를 갔다오는 것과 사람이 되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는 증거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이런 파시즘적 논리를 내세우겠냐?
출처:http://psungho.egloos.com/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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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가분이 판타지소설작가(아이리스작가)분이신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이라 블로그 즐겨찾기 한다음에
가끔씩 놀러가서 글읽고는 하는데
저역시 읽고 군대라는곳이 이런곳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첫댓글 미국 일본처럼.. 월급받고 가길원하는사람만 가도록바꼇으면좋겠어요..
차원사? 휴...
뭣보다 군대라고 해봤자 20대 초반의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가는곳이죠. 유치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제대로 드러나야 자연스럽게 친화될수있기에. 일반적인 마초성향을 지니지 않은 남성은 힘들수밖에 없습니다.
저 작자 역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자가당착 환자네요
포쏘는 시간에 간격을 두는 이유는.. 포신이 녹기때문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