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까지 솟구치는 수은주, 쨍쨍하게 내려 쪼이는 햇볕, 후끈 올라오는 지표열, 그러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쏟아지는 소나기…. 여름 골프는 자연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매몰차도 골프를 그만둘 수는 없다. 시원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해야할 듯. 이제 골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모아 '여름골프 즐기는 10가지 노하우'를 제시한다. 테마별로 새겨둘 여름 라운드 십계명.
1. 자외선과의 승부, 知彼知己 = 적을 알고서 전략을 짠다. 여름 골프의 최대 난적은 땡볕. 이에 맞서는 장비는 양산과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제(선 블럭) 그리고 비타민C. 우선 양산과 선글라스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강남 골프 연습장의 한 여성 골퍼는 이들 장비도 개인차가 있다고 말한다. "양산을 쓰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오른쪽 어깨 힘이 저절로 들어가요. 차라리 챙 있는 모자를 착용해야지요." 아무리 그래도 선 블럭은 꼭 발라야 한다. 아무리 양산과 선글라스, 모자를 썼다 하더라도 벽이나 땅에서 반사되는 자외선이 있기 때문이다.(선 블럭 관련 기사는 본지 6월호 42, 43쪽) 또한 비타민C를 섭취하는 것도 자외선 방어력을 높여준다. 자외선을 받아 증가하는 '멜라닌'은 인체에서 생성되는 천연 자외선 차단제다.
2. 변덕 기후용 장비, 有備無患 = 옷은 땀을 잘 흡수하는 면직류에 햇볕을 반사하는 흰색 계통을 입는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쳤다는 박우공(25) 씨는 "장갑도 여름이면 양피보다 합성피로 된 제품을 사용해야 통풍 기능과 촉감이 좋다"고 말한다. 또 손목 헤어 밴드를 준비해 땀을 막는다.
그늘집에서는 비치된 찬 수건을 빠짐없이 애용한다. 아예 얼린 수건과 아이스 팩을 챙겨오는 골퍼도 있다. 얼음팩 제조업체 관계자는 “4시간 냉매 지속 효과가 있는 얼음조끼와 최근에는 얼음 머플러까지 출시돼 잘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소나기가 왔다가 잠깐 햇살이 나는 경우 벙커뿐 아니라 페어웨이에도 해충이 들끓기 때문에 벌레에 물렸을 때를 대비해 비상약을 준비해두는 것도 좋다.
3. 기화열로 온도 낮추기, 一擧兩得 = 골프숍을 운영하는 남성골퍼 C씨는 여름이면 면도용 쉐이브 로션을 애용한다. 티삿 전에 겨드랑이나 땀 나는 곳에 바르면 상쾌하면서도 시원하다고. "알코올기가 있어 걸을 때마다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생기는 기화열 온도차로 서늘함을 느낍니다." 이밖에 베이비 파우더와 그것보다 더 강한 향이 있는 쾰른(cologne) 파우더 Mongleya 등은 시원하고 상쾌한 2중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인터넷 골프 카페에서, 한 골퍼는 "더운 곳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이 착용하는 드라이아이스 팩이 부착된 조끼를 입고 치면 어떨까"하는 의견을 냈다.
4. 연습장에서 실력 강화, 臥薪嘗膽 = 인터넷 포털 다음의 골프 동호회를 운영하는 김주형 씨는 클럽을 잡은 지 1년만에 싱글에 오른 실력파. 그는 여름 골프를 시원하게 보내려면 "일단 연습장에서 죽자 사자 지내고 실력을 기른 다음 라운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필드에서 더위에 지치고 샷에 짜증내느니 그 기간을 철저한 하계훈련 기간으로 활용하라는 얘기다.
구력 3년 반인 주부 골퍼 김유선(35) 씨 역시 "여름엔 집에서 목표를 정하고 퍼팅 연습을 하거나 연습장에서 정해놓은 공 박스만큼 다 칠 때까지 충분히 연습하고 선선할 때 필드로 나간다"고 말했다.
5. 꾸준한 수분 섭취, 生命藥水 = 라운드 중의 약수는 생명수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8km 이상 걷는 여름 골프를 버티는 힘은 한 모금의 물. 18홀 라운드에는 성인의 하루 섭취 수분량(1.5~2.5리터)의 2배인 4리터의 수분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3,4홀마다 흘린 땀의 20% 가량을 마셔야 한다. 물이나 소량의 염분과 당분을 포함하고 몸에 흡수가 잘 되는 스포츠 드링크도 널리 이용된다. 하지만 과다하게 마시거나 소금을 직접 섭취하는 것은 혈액순환이나 심장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물중에서도 골프장 별로 준비하고 있는 천연 암반수라면 금상첨화. 현명한 골퍼들은 약숫물을 제공하는 골프장을 일부러 찾기도 한다. 자유CC는 지하 270m에서 솟아 나오는 천연 암반수를 마실 수 있다. 시그너스, 골드, 레이크사이드, 오크밸리, 신원CC, 오크밸리 등의 약수도 인기다.
6. 여름철 음식 챙기기, 氣虛補陽 = 여름철엔 기가 허해지므로 보양식이 필요하다. <동의보감>에는 여름에 심장의 기가 약해지므로 쓴맛이 나는 음식을 보충하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초여름에는 쓴맛 나는 과일, 채소, 커피 등을 먹어둔다. 하지만 7월 중순 삼복기에 접어들면 위장에 냉기가 서리면서 밥맛이 없어지므로 반대로 단맛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과일로는 수박과 참외를, 그리고 육류는 개고기와 닭고기를 꼽는다. 그래서 수박과 홍시, 미숫가루 등은 여름 그늘집 메뉴로 인기다.
주말 골퍼인 박경석한의원의 박경석 원장은 계절보다는 체질에 따른 보양식을 더 중시한다. "소음인은 인삼이나 홍삼을 먹는 것이 좋고, 태음인은 매실과 수박, 소양인은 녹차, 알로에를 먹어야 효과를 봅니다."
7. 새벽과 한낮의 시간차, 虛虛實實 =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대를 피해 새벽 라운드나 오후 3시 이후의 늦은 라운드를 찾는 건 일반적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야간 라운드까지 등장했다. 퍼블릭 야간 골프장을 애용한다는 주부 골퍼 김순애(가명)씨는 “전등 아래서 이따금 풀벌레 소리도 들으면서 라운드 하면 골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한낮의 골프가 오히려 낫다는 역발상을 하는 이도 있다. 3년 구력의 허진석(31) 씨는 "한낮의 땡볕 골프가 여름에 진정으로 골프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시간대는 태양이 가장 뜨거워 티업 간격이나 진행이 자연히 느슨해진다. 필드가 한가하고 비어 있는 이때가 가장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기는 알짜 노하우다. 허씨는 “힘들게 부킹하면서 쫓기듯 치는 골프보다 통상 30분 정도는 더 여유를 가지고 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더운 날씨를 버텨낼 체력이 우선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8. 등골 오싹한 내기, 死生決斷 = 실력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여름날 더위에는 꽤 익숙해진다. 구력 밝히길 꺼리는 실력자 박재윤 씨는 '동반자와 어떤 내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냉온이 천지 차이'라고 밝혔다. "여름철에 가장 시원할 때는 자기를 가르치던(자신의 돈을 따먹던) 사람을 잡았을 때죠. 시원한 정도를 넘어 통쾌하기까지 합니다"라고 말한다. 내기도 각 홀마다 상품을 걸어 긴장감을 더 높이는 것도 방법. 사업상 접대 골프보다는 친교 골프에서 그 재미는 배가된단다. 인터넷 상의 한 여성골퍼는 “돈이 오가는 형태보다는 그늘집에서 음료수 내기나 골프백 들어주기, 운전 대신해 주기 등을 하면 돈 잃고 열받을 일 없어 좋지 않겠느냐”며 여름용 품앗이 내기를 제안해 왔다.
9. 여름답게 땀 흘리기, 以熱治熱 = 아마추어 골퍼를 위한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영호(60) 씨는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쳐야 제 맛"이라고 말한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른바 '무대포' 전략인 셈. "이열치열 아닙니까. 전 아예 긴팔 옷을 입고 필드에 나섭니다." 라운드에서 흘린 땀이 진할수록 그늘집에서 먹는 수박 맛은 기막히다. 클럽하우스에서 샤워하는 기분 역시 말할 것 없다.
피부가 약해 외부에서는 항상 긴 소매를 입는다는 최미애(가명․36) 씨는 여름 골프로 다이어트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고 털어놓는다. “여름엔 잔디가 좋아 페어웨이도 티잉 그라운드처럼 느껴져 스코어 세이빙은 여름에 이뤄져요.” 여름골프로 살과 스코어 모두 뺀 경우다.
10. 현명한 체력 소모, 實事求是 = 코스내에서도 사소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그의 자서전 <내가 골프하는 법>에서 힘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다음 샷 지점으로 이동할 때 천천히 걸어간다고 했다. 괜히 동반자의 공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혹시 거리를 줄이지 않는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만 한다는 것이었다.
구력 10년을 넘긴 이혜숙(52) 씨는 '현명하게 라운드해야 덜 덥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벙커에 빠지면 오르락내리락 해야잖아요. 볼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구요. 그 땐 아예 클럽 서너 개를 챙기죠. 그리곤 원샷 탈출." 구력이 제법된다는 박선이(가명)씨도 주어진 환경을 잘 이용한다. “엉덩이가 무겁다고들 하는데요. 여름에는 쉬 피로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신경 안쓰고 내 샷, 퍼팅만 마치면 카트로 들어와요. 카트가 제일 시원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