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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조선 통신사 흔적,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망상에 빠져 일으킨 임진왜란은 동양 삼국을 흔들어 놓은 대참사였다.
명나라는 만주벌에서 힘을 키우던 만주족을 견제하지 못해 결국 청나라에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고,
조선은 임란(壬亂)의 참상에서 회복하기도 전에 침입한 만주족에게 패해 오랑캐라 하여 멸시하던 청나라에
항복,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당하고 신하의 나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실패한 전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양쪽으로 갈라서서 전 국토가 전쟁의 소용돌이
에 휘말리게 되었으며, 전쟁을 일으킨 히데요시의 자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패해 천하의
패권을 내주고 집안이 몰락하였다.
일본을 평정한 德川家康은 조선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조일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을 평가한 조선이 이에 응해 조선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德川家康의 대 조선 화해정책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임진왜란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우월 의식에 사로잡힌 일본 사람들은 조선을 아주 낮게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
했을 것이다. 귀나 코를 베어 가던 조선인데,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찾으며 깍듯한 귀빈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적 선진국 조선이라는 의식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조선 통신사가 지나가는 길에 속한 번들은 정성을 다해 통신사를 접대했고 혹 소홀함이 발생하면 목이 떨어지는
벌도 받아야 했다. 조선 통신사의 행차는 일본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접대하는 번들은 경제적 부담을 힘겨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후쿠젠지는 AD950 년 경에 창건 되었다고 한다. 조선 통신사가 이곳 영빈관 격인 다이초로에 묵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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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빈관 격인 다이초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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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이 조선 통신사가 머물렀다는 객사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조선 통신사는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해 에도까지 긴 여정을 거쳐서 막부에 국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거의 5백 명에 달하는 통신사 일행은 에도에 이르기까지 깍듯한 대접을 번주로 부터 받았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통신사 일행으로부터 글씨를 써서 받거나, 유학과 관련된 지식을 얻으려고 통신사 일행이
머무는 객사를 찾아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통신사 일행은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서 대접을 받았는데, 후쿠야마 번에서는 후쿠젠지(福禪寺)에
다이초로(対潮楼) 라는 영빈관이 있어 조선 통신사는 이곳에 묵었다. 현재는 소화 30년에 매립하여 만든
히로시마 현의 지방도로가 다이초로 바로 밑을 통과하지만, 예전에는 파도가 부딪치는 해안이었다니
지금보다 더 절경이었으리라,
(1711년 이곳에 머물던 조선 통신사의 종사관인 이 방언이 이곳의 경관을 보고 -일본 제일의 경승지- 라는
휘호를 남겼고, 이 글은 현판으로 지금도 다이초로에 걸려 있다.)
* 1711년 이곳을 찾은 종사관 이 방언이 쓴 현판 바로 아래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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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다도해와 비슷한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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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젠지 입구에는 입장료가 200엔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수금원은 보이지 않았다.
통신사가 머물렀다는 다이초로는 다다미가 정갈하게 깔린 방이고 바다를 향해 전망이 확 트여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조선 통신사가 바라보던 풍경을 같은 장소에 앉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후손으로서
보람있는 경험이 아니겠는가, 많은 한국 관광객이 찾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사와 관련된 자료와 통신사 일행을 그린 그림이 전시된 방을 돌아보고 현판이 걸려 있는
쪽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일동제일형승- 이라는 현판이 걸린 아래로 전망이 확 트여 커다란 액자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같이 전경이 눈에 안겨 왔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다다미방에 앉아 절경에 넋을 읽고 있었다.
우리도 감탄했지만, 일본인과는 또 다른 감회가 일었다. 조선 통신사도 느꼈을 감회를 같이 느껴보는 감회,
-과연 절경이다.-
* 작고 아담한 토모 항이다. 이곳 선착장에서부터 다이초로 까지 붉은 천과 왕대를 엮은 끈을 드리우고 연등을 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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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통신사가 도착하면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작거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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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바다와 후쿠젠지 사이에 국도가 있지만 옛날에는 바로 바다에 잇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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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더웠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높아서 더욱 덥게 느껴졌다.
후쿠젠지를 나와 좁은 골목을 걸어 토도 항의 작은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일본의 어디를 가나 청결함은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 작은 포구를 바라보며 조선 통신사를 맞느라 북적거리는 토도 항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조선 통신사 일행은 다섯 척의 배에 오백 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하고, 이를 안내하는
대마도 번의 길잡이가 오백 명, 후쿠야마 번에서 요리사 급사 등이 천 명을 동원하였다고 하고,
선착장에서 숙소까지 연등을 밝혀 통신사 일행을 환영했다고 하니 토도 항 일대는 잔치 분위기였으리라,
이런 통신사의 일본 방문은 12차례나 이어져 환영하는 번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축제의 현장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정갈한 골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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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복장을 한 축제 행렬을 만났다. 자세히 살펴보면 흔히 마주칠 그런 평범한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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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치는 않지만 집집을 돌며 뭔가를 빌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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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축제의 나라라고 한다.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들어선 골목길 양쪽으로 축제를 알리는 장식이 골목에 가득했다.
요란한 축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무슨 축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답이 요란할 터이고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떡거릴
딱한 내 모습을 상상하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터덜터덜 걸어 버스 승강장에 도착하니 막 버스는 떠났다고 했다.
"기다리지 말고 택시 불러서 타고 가자," 여행도 며칠 지나면 여독이 쌓이는 법,
얼른 쉬고 싶다는 생각에 돈 아까운 것은 잠시 잊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 렌터카 하루 더 쓰는 건데,-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먼 길을 걸어 에도까지 걸어야 하는 통신사 일행은 갈 길이 막막했을 터,
지금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조금 걷고도 힘들다고 엄살들이니...
* 조선 통신사 전체를 그린 액자 그림을 소개합니다. 일본인이 그린 조선 통신사, 저는 흥미 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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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조선 통신사 자료실에 이 사진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칼을 찬 사무라이들의 표정이 살벌하고 촌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