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뉴월 무더위라 한다. 그 오뉴월 시작이 오늘이다. 음력으로 오늘이 5월 초하루다. 오뉴월에 접어들었다 하니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참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고향 시골에 내려와 있다. 부산 다대포와 경남 삼천포를 왔다갔다 하며 살고 있다. 내 맘 내키는 대로. ㅎ
촌에 와 있으면 할 줄 아는 게 별 없어 심심할 때도 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고작 할 수 있는 게 걷는 것과 책읽기다.
내게 성한 다리가 있고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부터 책을 보고 있으면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했다. 그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옛날 서당에서 처럼 천자문 외는 것도 아닌데 목 아프게 소리내어 읽어라고 하니 말이다. 쇠꼴 베어오니라고 숙제할 시간도 없는데 속상하기도 했다.
어쩌다 밖에서 신문지라도 얻어오면 신문 기사를 읽어보라고도 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고... 지나간 일인데 뭐할라고 읽어라고 하냐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땐, "할머니 어머니는 들어도 모르는 겁니다" 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내가 못나도못나도 참 못났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그때의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제는 낭낭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크게 읽어드릴 수 있는데 계시지 않다.
아들이 손자가 보는 책 속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그 속도 모르고 짜증을 낸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지금 나는 시원한 그늘에서 책도 보고 스마트폰으로 글도 쓰곤 하는데, 그 때 우리 할머니 어머니는 이 무더운 여름에 어떻게 시간 보냈을까?
한여름 콩밭에서 풀을 매며 시간도 보내고 글모르는 설움을 달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소리내어 읽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한다.
할머니 어머니께서는 그 내용은 몰라도 손자가 아들이 읽어주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흐뭇했을 거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참 모잘랐다.
마당 빈땅에, 대문 옆 텃밭에 채소 심지 말고 꽃심어 꽃보며 살고 싶다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
지금 고향 마당과 텃밭에 여러 꽃들이 한창이다. 가깝고 물 주기 쉬운 이 좋은 땅에 채소 안 심고 꽃 심는다고 말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냥 빙그레 웃는다.
해살이 무디지는 해질녘엔 지금은 남의 땅이지만 이 한 여름 땡볕에 우리 할머니 어머니 잡초 매던 그곳으로 걸어가볼까 한다. 자갈밭이었는데 메주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땐 참 멀었다.
아직은 쓸만한 두 다리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능력에 고맙다는 생각을 하다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