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산은 금원산에 딸린 부속산으로 거무성, 또는 거무시로 불려온 산이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한 ‘감’의 한문표기로 검을 ‘현’(玄)이 되어 현성산으로 되었다. 곧 ‘감뫼-검산-검무성-거무시’로 되어 ‘검다’의 한문식 이름 현성산(玄城山 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원산, 기백산을 일군 능선과 같은 맥에 솟아있는 봉우리로서 기백산에서 금원산을 거쳐 북동으로 방향을 돌린 능선은 970봉, 686봉을 솟구치고 위천면에 들어서서 들판으로 사그러드는데 현성산은 위에 말한 970봉에서 남으로 휴양림(금원산 자연휴양림)관리사무소 쪽으로 뻗어 내린 암릉상의 최고봉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가섭사지 마애석불이 있는 암릉상의 최고봉이 현성산이다. 이 산은 기백산과 금원산에서 못다 푼 흥을 현성산에서 다 풀어버리려는 듯 단애를, 슬랩을, 기암을, 폭포를, 암릉을 그 기슭과 산사 면에 한껏 빚어놓았다. 현성산은 1,300m대인 기백산이나 금원산보다 훨씬 낮으나 바위로 산전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가는 길의 봉우리에는 바위와 암릉이 조금 있지만 금원산은 거의 육산이나 다름없는 산이다. 그러다가 금원산에서 지재미 골로 내려오면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성산과 마주 보는 하산길 지능선의 치마바위는 거대하다. 지재미골에 내려서면 문바위가 마치 큰 함선처럼 골짜기 한 가운데 버티고 있고 가섭사위로 보이는 암릉은 위압적이다. 현성산 부근에 와야 비로소 바위잔치가 벌어지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검은 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하였다. 이 산은 금원암을 비롯하여 일암(一岩), 일봉(一峰), 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그를 바위 속에 가두었다 하며, 그 바위는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는 바위, 비 내림을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와 얽혀 이름한 금달암(金達岩), 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 하는 마슬암(磨膝岩), 중국의 5대 복성중 하나로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입향한 서문씨(西門氏)의 전설이 얽힌 서문가(西門家) 바위,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는 선녀담(仙女潭)들이 널려 있다.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 짜기가 있다.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경관이 빼어난다. 지재미골 초입에는 문바위와 차문화을 꽃피웠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 있다.
서문가 바위 이 바위봉에 얽힌 전설이 많다. 지재미골에서 보면 형상이 연꽃잎을 닮아 연화봉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한 여인이 서씨와 문씨성을 가진 남자와 피난을 왔다가 아이를 낳았다. 여인은 누구의 아이인지 몰라 두 남자의 성을 모두 따 ‘서문’이라 불렀고 이후 서문가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거창군지 향지에는 옛날 원나라에서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온 이정공 서문기가 감음현 식봉(食封)자격을 얻어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이 이 일대에서 공부를 하게 돼 아버지 서문기의 이름을 따 그렇게 불렀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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