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함혜자 | 날짜 : 09-01-21 10:49 조회 : 2196 |
| | | 낼 모레면 설이다. 설을 앞둔 심정은 철없을 때나 지금이나 분주하고 설레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어릴 적 세밑의 정경이 빛이 바랠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그 추억은 차라리 방금 인화한 칼라사진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세밑이면 연례행사로 하시는 어머니의 일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두 가지다. 차례를 지낼 제기인 놋그릇을 가마니 위에다 놓고 짚수세미로 재를 묻혀 윤을 내시는 일과 이불 호청을 삶아 풀을 먹여 꿰매시던 일이었다. 이불을 꿰매시다 바늘 끝이 잘 들어가지 않기라도 하면 머릿결에 대고 서너 번씩 쓰윽 문지르고 하시던 모습은 신비 그 자체였다. 지금이야 세밑이라고 놋그릇 닦을 일이야 없지만 나는 호청을 삶고 풀을 해서 꿰매는 일을 25년째 거르지 않고 하고있다. 어머니가 혼수로 해 주신 이불은 이미 다 편리한 이부자리로 개조를 해서 쓰고 있지만 내겐 내 생명이 마치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풀하고 꿰맬 이불 한 채가 있다. 오늘도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이불호청을 삶아 풀을 먹여 꿰매다 잊고 지냈던 회상 하나에 바느질을 멈췄다. 결혼날짜를 받아놓고 몸져누운 어머니를 대신해 혼수를 봐주기로 한 외숙모 댁을 찾았을 때 일이다. 서두르는 내게 외숙모는 누가 오기로 했다며 기다리라고 하셨다. 잠시 후 눈보라를 맞으며 꽃망울을 틔운 설중매처럼 다소곳한 모습의 할머니 한분이 오셨다. 외숙모는 곧 “형님, 얘가 화봉이 막내딸이에요” 하시며 나를 소개 하셨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금호동 약국 외숙모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철이 들도록 어머니는 금호동 약국 외숙모 자랑을 어머니의 무용담인양 신이 나서 하시곤 했다. 때 꺼리가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셨다는, 청계천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해서 세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 내셨다는 내가 듣기에도 전설같은 그 외숙모셨다. 그 분이 오시고서야 외숙모는 시장 길을 재촉하셨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참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왜 그 외숙모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시장 길을 따라 나서려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동대문 시장 이불가게에 들어섰다. 그 가게는 그 외숙모께서 잘 아시는 분인 듯 망설임 없이 가장 좋은 이불 한 채를 내 놓아 보라는 주문을 하시는 그 외숙모의 음성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주인은 사람이 밟지 않아 빛을 발하는 눈처럼 하얀 호청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 이불을 내 놓았다. 날개 선은 진초록이고 무채색의 학들이 드믄 드문 나는 문양의 이불이었다. 내가 첫 선을 보고 결혼을 하듯 이불 역시 내 첫 눈에 들어왔다. 두툼하지만 가벼워 꽤 많은 이불 값을 지불하신 걸로 기억이 된다. 외숙모는 점심을 먹으면서 시집가서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내게 혼수 이불을 사준 연유를 설명하셨다. “내가 젊은 시절 때 아이들은 조롱조롱하지 돈 벌러 간 아이들 아부지는 소식이 없지, 때 꺼리가 없어서 아이들과 굶고 들어 앉아있을 때였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느이 아부지가 쌀 댓 말과 보리쌀 댓 말, 아이들 먹거리라며 감자, 고구마, 곶감 등을 머슴 지게에 태산같이 지워 보내서 내가 그걸 받아놓고 얼마나 울었던지 ~” 하시면서 물기 촉촉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 후 서울로 와서 청계천에서 고구마를 구워 팔던 일하며 안 본 일없이 자식들 공부 가르치던 이야기를 하시느라 설렁탕이 싸늘히 식어가는 줄 모르시고 옛날 회상에 젖어 들었다. 살만하게 됐을 때는 늬 아버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신 후였고, 어쩌다 어쩌다보니 막내만 남았더라는 말씀, 그리고 죽기 전에 진 빚을 내려놓고 싶었다는 말씀을 듣고서야 동행하게 된, 그리고 이불을 사 안겨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울 아버지와 내가 함께 산 햇수는 딱 6년 3개월이었다. 내 여섯 살에 돌아가셨으니 기억나는 것이 뭐 그리 많겠냐 하겠지만 내겐 실로 많은 기억이 있다. 나를 업고 가서 고무신을 사주시던 일, 아버지 친구 분이 하시던 찐빵가게에서 찐빵을 얻어 먹이던 일, 목마를 태워 이웃을 다니시던 일, 그리고 앓으시면서 무릎을 밟아 달라고 하시던 일, 약을 드시면서 입가심을 하던 사과 반쪽을 남겨 내 입에 넣어 주시던 일, 그리고 한쪽 면엔 치부책, 한쪽 면엔 일기를 쓰신 6권을 남기셨으니 60년을 함께 산 것이나 뭣이 다르랴싶다. 당신이 죽은 후에 남겨질 아내에 대한 연민, 아버지 없이 자랄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푸른 만년필로 꼭꼭 쓰신 그 심정을 보노라면 남을 배려하셨을 아버지의 그 정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결혼을 목전에 두고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던 차에 뜻하지 않게 받았던 혼수 이불 한 채에 아버지의 자식을 키우지 못한 안타까움과 사랑이 깊게 배어 있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가 베풀었던 은혜로 받아든 이불을 저승에서 보내신 아버지의 혼수라고 생각한다. 마침 남편도 그 이불에 애착을 갖을 만큼 질 또한 우수하다고 좋아하여 겨울 한 철은 저승에서 보낸 아버지의 혼수이불로 보내곤 한다.
요즘 살림들이 어렵다고 서민들의 아우성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에도 우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이럴 때일수록 아버지가 생전에 베풀었던 나눔의 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도 종일 세밑이니만큼 주위에 불우한 이웃은 없는지 살펴보자고 당부한다. 오늘 밤 사그락 사그락소리가 나는 풀 먹인 아버지의 혼수 이불을 덮고 자다 꿈속에서 필시 아버지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덕담을 내게 주시지 않을까 싶다. 살아도 살아도 정답이 없는 삶, 연습이 주어지지 않는 삶에 뼈아픈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는 법을 일러 주실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도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도 해드리고 싶다. |
| 임병식 | 09-01-21 16:57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쌓은 공덕으로 인하여 혼수이불이 돌아왔군요. 새삼 인연의 순환을 보게 됩니다. '...방금 인화한 칼라사진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같은 표현은 독창적이면서도 신선 합니다. 자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
| | 함혜자 | 09-01-23 09:17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진리를 선생님은 몸소 실천하시네요. 선생님의 칭찬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 |
| | 이진화 | 09-01-22 01:19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함혜자 선생님, 설을 앞두고 저도 이불장 정리를 했습니다. 아이들 이불 두 개는 솜틀집에 맡기고 물빨래가 가능한 차렵이불들은 세탁을 했지요. 이불장 맨 아래 초록과 빨강 비단으로 지어진 이불 한 채가 있더군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하얀 호청을 입힌 이불입니다. 어머니께서 좋은 목화솜을 사다가 외숙모들과 함께 이불 만드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이불의 나이가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이불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즐거운 설날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 함혜자 | 09-01-23 09:18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혼수 이불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다들 버리지 못하고 끼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설날 건강히 잘 보내세요. | |
| | 박영자 | 09-01-22 11:05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함혜자선생님, 그 아버지에 그 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기나 메모를 남기신 아버지의 심성을 닮아서 선생님도 글을 쓰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베풀며 사신 그 공덕이 자식대에 내림받는 다는게 참 감동적이군요. 저도 시집올 때 해온 솜이불이 베란다창고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면 차마 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괜찮으니 안 쓸 것이면 버리라고 하시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 |
| | 함혜자 | 09-01-23 09:19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저도 아마 아버지의 일기를 보며 저도 그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란 것 같습니다. 부모의 모범이 곧 자녀교육인 듯 싶습니다. 선생님 설날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
| | 박원명화 | 09-01-22 20:4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함혜자선생님 글을 대하니 반갑네요. 설 명절 앞두고 정리하면서 지난간 추억의 사진첩을 들추어 내듯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눈물겹습니다. 어쩌면 함혜자선생님이야말로 부친을 빼닮은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3주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랐거든요.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분을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함혜자 | 09-01-23 09:21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 채찍이 당근보다 더 좋을 수도 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채찍도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설날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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