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변함없이 공이 바위에 부딪혀 물에 빠지기도 하고 도랑을 넘기는 듯하다 바위에 튕겨 후퇴하기도 했다. 더 이상 공을 잃지 않기 위해 물을 건너간 후 쳤다. 답보 상태가 지속되니 의욕 저하로 집중력이 떨어졌다. 에라 타이 말이나 배우자. “가랑잎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는“ 처녀처럼 3일 동행한 나의 캐디는 나를 보고 계속 웃었다. 타이어를 익히려고 그녀를 따라하고 되풀이하다 보니 어느새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내가 뒤땅, 허탕칠 때 어김없이 웃었다. 첫 날 배운 ‘좋아’의 단어 ‘리’를 오늘 배운 ‘웃음’의 ‘님’을 붙여 캐디 얼굴을 가리키며 “님 리(웃음 좋아)”하고 우리는 깔깔댔다. 명사 2개로 소통의 즐거움을 만끽하니 공치기에 도움이 되었다. 어쩌다 제대로 맞으면 껭창러~이(나이스 샷)을 힘껏 외쳐주었다. 그 어조 자체가 웃음의 파장을 일으켜 모두들 너른 하늘아래서 크게 웃었다.
캐디들 대부분은 영어는 모르고 우리말을 좀 알아들었다. 자꾸 잊어버려 메모장에 적었다. 공 방향 왼쪽(싸이), 오른쪽(꽈~)을 시작으로 골프장 단어들을 물었다. 가까이(닛너이), 멀리(여), 똑바로(똥똥), 땡그랑(론롬), 더워(론~), 같은 발음인 바람과 우산(롬), 고마워요(여자는 코품카~, 남자는 코품캅), 안녕하세요(싸바디카, 싸바디캅), 이뻐요(스와디). 잘 생겼다(로 막마), 알았어요(카우짜이카). 잠간만요(러싸쿠카), 맛있어(앗러이). 몰라요(마이로~), 괜찮아요(마이벨라이), 안돼요(마이라이카), 좋아요(리), 좋지 않아요(마이 리)등을 익혔다. 타이어는 단음절이 많고 부정사 마이는 형용사 앞에, 부사 막마는 동사 뒤에 붙였다. 우리말과 다른 어순이었다. 타이문법의 문외한으로서 찾아낸 언어학적 분석이 흐뭇했다. 3살배기처럼 단어조합을 시도하는 재미도 솔솔했다. 그렇지만 고사리 순 모양의 글자 간판은 있어서 괴로웠다. 인도에서도 그렇고 낫놓고 기역 모르는 문맹의 비애를 절감할 뿐이었다.
토요일 오전. 공치기가 작년 수준으로 퇴보된 듯, 오른쪽으로 나가 튕겨 물에 빠지고, 헛 스윙이 되고 도시 협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익숙해진 나라이힐 골프장을 떠나는 아쉬움 때문일까 평판이 덜 좋은 새로운 골프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착잡했다.
체념한 오후에는 여유있게 9홀을 돈 후 짐을 꾸리고 마지막 뷔페 저녁을 먹고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힐사이드로 떠났다. 밤 10시 경 도착했다. 3면이 뚫린 천정 높은 현관의 계단을 오르니 더 높은 공간의 로비 좌편에 골프채가 일렬로 죽 빼곡이 서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진시황 무덤의 보초병 군단를 본 듯 무척 인상적이었다. 160개라 했다. 이렇게 많은 골퍼들이 있다니, 상상 밖이었다. 웬 채가 이렇게 많으냐고 물으니 안내인이 가성비가 좋아 그렇다고 답했다. 은퇴자들이 골프치러 친구들과 한 달씩 동남아에 간다는 말이 와닿았다. 더 이상 부자의 운동이 아닌 장년의 운동으로 어느새 골프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나 보다.
일요일. 7시 반에 골프장에 나갔다. 기다리는 카트가 대여섯은 족히 되었다. 이곳은 9홀짜리 코스가 2개 뿐이라 3개 있는 나라이힐보다 나쁜 여건인데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로비에서 보이는 10번 홀을 보고 1번 홀에 갔으나 더 긴 줄이라 다시 10번 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앞뒤로 조이는 한국 골프장과 다르게 여기서는 적어도 쫓기지는 않을 거라고 조카가 위로하며 세상에서 제일 느린 팀이 앞팀이고 제일 빠른 팀이 뒤팀이라는 농담을 전해주었다. 30분 쯤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다. 우리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조카 부부가 우리 뒤팀이 되었다. 나라이힐과는 달리 이곳은 페어웨이가 좁았다. 공이 쉽게 경계선 밖 오비(out of bounds)에 떨어졌다. 쌓여있는 낙엽이나 기다란 풀속에 빠져 있는 공은 폭 잠겨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더 큰 복병은 홀마다 있는 도랑과 호수였다. 높고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홀, 깃대가 보이지 않도록 꺾여진 홀들이라서 재미있는 코스라 하지만 초행 초보에겐 괴로운 골프장이었다. 공을 찾아 다니던 캐디가 다른 공을 주어왔으나 우리가 잃은 공은 15개였다. 32도 더위 속에서 나라이힐처럼 오후도 9홀 돌았으나 엄청 소침해진 첫날이었다.
월요일. 힐사이드도 나리이힐처럼 태국인 소유의 골프장을 한인이 임차해서 한인대상으로 숙소와 세끼를 제공하는 운영체제였다. 정해진 2시간 사이에 조식 중식 석식을 해야하고 오전은 18홀이 기본이고 오후는 자유였다. 나라이힐보다 훨씬 큰 식당은 2층에 있었다. 사오십대 여성이나 남성들만의 집단도 있었으나 육칠십대 부부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끼리끼리 수다가 한창이고 부지런히 뷔페식탁을 왕래했다. 대부분 골프복 차림이었다. 간혹 복부비만에다 작은 키에다 짧은 치마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당당한 중년이 있었다. 알맞은 차림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생긴대로 만족하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부러웠다.
뜨거운 태양아래서는 온 몸을 가리면서도 몸에 붙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소재의 옷이 최고였다. 가져간 옷을 입어본 결과 인도에서 산 얇은 아사 종류의 널널한 몸매 바지와 모친의 유물인 한 칫수 큰 촘촘한 줄무니 미소니 셔츠가 제일 시원했다. 다음 올 땐 아라비아 로렌스의 목덜미를 덮는 모자를 필히 구매하리라.
나라이힐과 비슷한 식단은 감소된 식욕 때문인지 매력이 없었다. 땀과 더위에 시달린 후 섬찟하도록 시원한 식당에 들어가면 수분 당분 염분 부족의 몸은 얼음냉수, 맥주, 과일을 먼저 요구했다. 수박, 파인애플, 용과, 망고 등으로 갈증이 해소된 뒤에 간간한 반찬으로 식욕을 돋우었다.
화요일 아침. 골프장 줄에 서자 폭우 징조가 있어 본부 그늘집으로 피신했다. 카트를 모는 캐디가 나가기 전 등록하는 창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규모가 클 뿐 우리나라 정자 개념의 구조라 하겠다. 벽 없는 기둥 사이로 바람이 사통팔달 잘 통하고 시야가 뻥 뚫린 널찍한 홀이 야간엔 바(bar)일 것 같았다.
굵은 빗줄기가 줄기차게 떨어지는 처마 밑 탁자 의자에 앉아 2월에 여름 장마 빗소리를 들으니 참 이상했다. 별세계가 이해되지 않았다. 비로 더 짙어진 노란 칸나 화단에 자그만 코끼리 돌조각이 가려져 있었다. 바로 옆에는 쥐잡는 고양이 조각이 따로 있었다. 코끼리는 귀엽고 고양이는 근엄했다. 참 훌륭한 솜씨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가 맞는 말이지만 작가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사실이 애석했다.
30여 분 동안 내리던 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빗방울 흔적이 전혀 없는 말끔한 세상이 경이로웠다. 언제 비왔었어 해가 물으면 기억력이 자신 없는 나는 아니 라고 할 것 같았다.
어제 그제와는 달리 금방 34, 5도로 오른 오전 무더위에 공치기가 힘들었다.
지루한 오후가 두려워서일까 길러질 실력을 기대해서일까 짧은 오수 후 또 방을 나섰다. 새 공으론 감당되지 않아 로비에서 헌 공을 샀다. 나라이힐에서도 그늘집에서 산 적이 있었다. 골퍼들이 물에 빠트리고 잃어버린 공들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태국인들이 주워 모아 되판 공들인 셈이다. 흰 공봉지는 주홍 연두색 봉지보다 갯수가 둘 많았다. 하도 엉뚱한 곳에 떨어지니 쉽게 띄이도록 색깔 공을 샀다. 여전히 공을 잃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아까운 마음 때문일까 불만족스런 수준미달 때문일까. 가난한 태국인을 돕는다는 생각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첫댓글 공 잃어 버리는거 아까워서 어디 골프 치겠어? ㅎㅎㅎ
그런데.. 참 열심이야.. 골프가 맘에 드는가봐..
나는 태국이나 다른 나라로 골프 치러 가는 사람들이 잘 쳐서 나가는줄 알았는데..
다른 골프 장에서 치면서 골프를 더 잘 치게 되고 그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골프를 시작한다고 채도 사 놓고는 나랑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 했었지
아 ~ 한곳에 죽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어 ? ~~
우리 아는 어떤 부부는 매년 겨울이면 태국 골프 리조트에 두달씩 가있드라구.
골프 치면서 생활비도 많이 절약된대.
껭창 러~이 와 ~ 발음이 어렵네 ㅎㅎㅎ
예전에 시카고지역 태국 영사부인을
우연히 알게되 그곳 점심도 대접받으며
배웠던 몇단어; 지금은 까맣게 잊고살았는데
경위글을보니 몇개 가물가물 기억이나네만
말도어렵고
같은단어라도 여자 와 남자의 발음이 다르다해
엄청 어렵더니 ;
사진의 경치도 좋고 실내장식도 좀 양상이 다르네
골프장 투어 상품이 꽤 많던데.. 코스마다 경치도 다르고 난이도도 다르고 등등 그런가 봐. 가성비로 태국이 인기 있는 것 같어.
맞어 껭창러~이 수십 번 교정 받았는데 정확지 않나 보더라고.. ㅎㅎ
방콕 비행장에 가니 정말 백인들 많더라. 세숙아 관광하러 가 ~ 봐 ~~
우리도 언제 관광하러 가야되는데...
경위 글은 언제나 '리!'
한국어, 영어, 불어에 이어 태국어까지?
경위는 독어, 일어도 좀 되잖아.
언어도 global 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