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저기 아치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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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아침 7시 30분 대회장은 축제분위기가 감돌며 밤을 세운 스텝들이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마라톤을 좋아해 퇴근 후 모여 순수한 봉사정신으로 수고해온 이들 스텝들이 없다면 서울마라톤대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10회 대회의 남다른 감회와 의미를 되새기며 더욱 빛나는 대회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많은 참가자와 함께 뛰고 싶었으며, 자랑스러운 부부완주를 축하하려고 서울마라톤이 최초로 마련한 “부부 완주상”도 받을 겸 아내와 함께 풀코스를 신청했으나, 스텝들과 고생을 함께 분담하지 못하고 뛴다는 것이 몹시 미안하게 느껴진다. F그룹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순간 지나온 그림들이 동영상으로 스쳐가며 타 대회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가슴 벅찬 감격이 메아리친다. 98년 3월... 마라톤 동호인이 최초로 개최한 풀코스 대회! 이를 서울마라톤이라 이름 한 것은 당시 서울에는 마라톤대회가 없었기에 보스톤, 뉴욕, 런던마라톤대회처럼 서울에 서울마라톤대회를 육성하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마라톤대회 급수대에 최초로 바나나 등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한 것은 제1회 서울마라톤대회였으며 메이저대회는 물외에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 물마저도 후미주자에게는 부족했으니... 한국 마라톤대회 사상 당시 최대 규모였던 2회 대회의 뿌듯함..., MBC-TV가 헬리곱터까지 동원하여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마스터즈 마라톤 감동의 드라마가 된 4회 대회..., 100년 만에 내린 3월의 대설, 주로의 눈을 말끔히 치우느라 힘겨웠던 7회 대회, 참가비 없이 개최한 1회 대회를 제외하고는 매년 대회 협찬사를 구하기에 동분서주했던 험한 가시발길,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지난 일들... 어떻게 해서 10회까지 이어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이 도와준 기적으로만 느껴진다. 앰프를 통해 들려오는 딸의 영어 방송, “그래 아빠대신 열심히 봉사해주기를...” 당부해본다. 후미에 묻혀 출발선을 통과하면서 아내에게 천천히 뛸 것을 권했으나, 주로 상황을 살피는 사이에 아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보스턴에서 나보다 먼저 골인하더니 그 그림을 재연해보려는 것일까? 반포대교를 지나니 비가 제법 내리며 맞바람까지 불어 주자들에게 공연히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앞만 보고 묵묵히 105리 길을 달리는 주자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면서 달리고 있을까? 영동대교에 이르니 벌써 선두가 돌아온다. “함연식 선수 파이팅!” 박수를 보내니 이어 7~800m 뒤에 연달아 달려오는 주자들에게 “후쿠오카 마라톤!”을 외치며 손을 흔들어 준다. 2시간 40분 이내 완주자가 많아지면 서울마라톤의 비용부담이 커지기는 하나 한명이라도 더 나와 작년처럼 한국 마스터즈의 위상을 떨쳐주기를 바라고 응원을 보낸다. 화살이 날아가듯 얼마나 빠른지... 고달픈 직장생활을 하면서 언제 연습을 하지?... 감독과 코치 밑에서 달리기에만 전념한다면 한국 기록도 세우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도 있는 주자들이 아닐까? 대단한 사람들이다. 중간에서 기권하고 두세명씩 짝지어 걸어오는 주자들에게 선두 주자들을 위해 주로를 열어줄 것을 부탁해 본다. 빠른 선수들이 내가 달리는 것을 보면 저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라 해도 할 말은 없으나 달리기를 즐기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다. 천호대교 부근에서 차량진입을 통제하고 있는 4명의 경찰관에게 모자를 벗어 정중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니 박수를 치며 열렬한 응원을 해주어 대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반환지점이 다가온다. 돌아오는 일본 주자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화이토! 간바레!”를 외쳐주니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2회 대회부터 매년 200명 내외의 일본 시민러너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그 중 80%이상이 2번~9번을 바다 건너 참가하는 선수들이다. 국제친선이 따로 없다. 광진교를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니 저 앞에 반환점 아치를 향해 달려가는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잡힌다. 눈이 번쩍 뜨이며 잃어버린 짝을 찾은 반가움이 신나는 미소를 짓게 한다. 6~7km 이상은 안 뛰던 아내는 6회 대회 이후 풀코스를 9회, 37km 산악마라톤을 3회 완주 했으며, 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달리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아내를 향해 “강성진 선수 화이팅!” 한강이 터져나가라 큰 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외쳐보기는 처음이다. 70이 되어가는 여인의 유연성, 지구력, 강한 투지의 대견함이 새삼 흐뭇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광진교 급수대에 서 있는 아내에게 괜찮으냐? 물었더니,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기에 한참을 주무르고 맛사지를 해주고 서는 급수대 메뉴를 살펴본다. 지난 2월 동경마라톤에서 4시간이후 주자들에게는 먹거리가 동이나 그 흔한 바나나 토막도 구경할 수 없어 물만 마시고 뛰었더니 저혈당 증세로 혼이 났었는데..., 계란 프라이 2개, 주먹김밥 5개, 된장국 2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힘이 솟아나는 듯 든든하다. 잘 뛰는 선수들은 물만 마셔도 문제가 없으나 85%이상의 주자들에게는 먹거리가 소중하다. 다시 아내와 함께 여의도를 향해 달리니 1km도 못가 다리에 쥐가 난다고 야단이다. 아내는 천천히 갈 터이니 먼저 가란다. “기록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갈 수는 없지! 인생의 마지막 문턱을 넘을 때야 함께 갈 수는 없다 해도 마라톤 골인 라인은 함께 넘어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면 되지...” 몇 발자국 앞서 유도한다. 열심히 살아온 아내를 호강은 시켜주지 못할망정 105리 길을 뛰자고 꼬셔 이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한심도 하지... 젊은 부부 한 쌍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힘겹게 달리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80의 언덕이 코앞에 다가오니 인생이 무엇이며, 삶이 어떤 것인지 알듯하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 아내의 속 모습이 곱게만 느껴지니, 이제부터 한 30년...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지! 인생은 80부터다!.... 라고 외친다면 남들이 정신 나간 사람이라 비웃을까? 우리가 이 순간 힘겨운 마라톤을 무엇을 위해 뛰고 있지? 정신 나간 사람이 안 되려고, 노망 든 처참한 모습이 안 되려, 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을 지탱하려고, 그리고 “인생은 80부터...” 라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삶을 이어가려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게 있어 마라톤은 자기관리이며 생명의 재충전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비를 맞으면서 오랜 시간 주로유도와 급수대 봉사를 하며 “힘내세요!” 응원까지 해주는 스텝들과 봉사요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거북이 페이스로 달려가는데, 어느덧 잠수교를 넘어 63빌딩이 시야에 들어오니 “63빌딩이 보인다! 힘내요!...”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의 눈빛이 반짝이며 한결 가벼워 보인다. 인생의 마지막 언덕도 환희와 밝은 눈빛으로 맞아드릴 수 있어야겠지...., 최선을 다한 삶의 최후는 아름다움이며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부질없는 사념에 잠겨 힘든 것도 잊은 채 여의도로 돌아간다. “여보! 저기 아치가 보인다! 다 왔소! 우비도 장갑도 벗어던지고 멋진 폼으로 골인해야지!“ 아내의 손을 굳게 잡고 골인하여 또 한번의 완주의 감동과 환희를 이루어 냈다. 지금 거실에는 채성만 회장님이 보낸 화분의 은은한 향기가 감돌며 “부부 완주상”의 금빛이 반짝이고 있다. 오래오래 감상하며 더욱 밝게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서울마라톤 박영석 |
서울마라톤클럽 박영석회장님의 글입니다
칠십이 훨 넘은나이에 나는 과연 주로에서 이렇게 달릴 수 있을까?
멋있게 나이드는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하는 글이라서 옮겨보았습니다
황혼이 아름답습니다....
첫댓글 서울마라톤 박영석 전 회장님의 감동적인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마라톤으로 건강한 삶을 사시는 멋진 분이십니다.우리도 꾸준한 마라톤 생활로 회장님과 같이 건강을 유지합시다.힘!!!!
박영석 회장님의 아내 사랑,마라톤 사랑이 지극합니다. 감동적입니다.
78세에 그렇게 마라톤을 달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모든 마라토너들이 꿈꾸는 자화상이 아닐런지요.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대부이신 서울마라톤의 박영석 회장님~~ 100세까지 마라톤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