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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5: 2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 - 요 15: 5 사람이 열매를 맺나니
요 15: 2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 -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
예수는 이 비유에서 열매에 대해 강조하셨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열매에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쓸모가 없어 제거될 것이다. 주께서는 열매를 강조하신다.
1]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열매"(karpo;n 카르폰)은 요한복음에 10번 나오는데(요 4: 36, 요 12: 24) 본 장에서만 8번 나온다(2절: 3번, 4절: 2번, 5절, 8절, 16절). 그만큼 포도나무의 역할이 오직 열매를 맺는 데 있음을 말한다.
포도나무는 열매 이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나무이다. 목재나 약재로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열매를 위해서 존재하는 나무이다.
2]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들을 두 종류로 나누신다. 하나는 열매를 맺는 가지요, 다른 하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이다. 그것은 그가 곡식 비유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신 것과 같고, 또 가라지 비유에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신 것과도 같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농부가 잘라버리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자들을 제거해 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도록 잔가지를 치듯이 깨끗케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열매는 선한 인격과 행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선행과 서로 사랑하는 삶을 가리킨다.
3]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3:10에서 사용된(kaqarov 카다로스) "깨끗한, 정결한"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지만 여기서는(aujtov ... kaqaivrei 아우토 카다로이)로 사용되어 지시하는(aujtov 아우토)가 있어 나무나 가지를 깨끗하게 하고 있음을 말한다.
열매가 없거나 다른 가지에도 피해를 입힌다면 그 가지도 찍어 내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제거함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가지는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마 25: 29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요 15: 3 일러준 말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
주님의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깨끗하여졌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가능해 진 것이다.
지금까지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말하시는 것으로 히 4: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와 같다.
1]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여기 이른바 "내가 일러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예수님의 전도의 말씀, 곧, 복음이며, 오늘날은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어떠한 작용으로 그렇게 되는가? 예수님의 말씀이 신자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방편(方便)이라는 교리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바 성경에 기록된 말씀 곧, 복음과 율법을 의미한다. 성경이란 책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이 말씀은 언어, 혹은 문자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로 되었다는 것이, 그것의 하나님 말씀 자격과 효능(效能)을 상실시키지 않는다.
헬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사람의 말은, 그 사람과 그 말과의 시간적, 혹은 장소적 거리에 따라서 효력의 다소가 좌우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말씀과 함께 현림(現臨)하시어 계시다. 그는, 언제나 그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시고 그 말씀과 함께 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에게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나 성령에게서도 분리되지 않는다. 성경 전체가 성령으로 영감 되었고, 계속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관되며, 능력 있게 되는 것만큼, 거기서 섭취하여 전파되는 부분적 말씀도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Gereformeerde Dogmatiek . Kmpen, J. H. Koke 1911, pp. 502-503).
바빙크(Bavinck)는, 또한 하나님 말씀의 능력 있는 역사에 대하여, 성경이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곧,
(1) 복음은 구원에 이르는 능력이다.
* 롬 1: 16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고전 1: 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고전 2: 4-5 –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고전 15: 2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 엡 1: 13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2) 생명이 있고 영존하는 말씀이다.
* 벧전 1: 25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3)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 히 4: 12-13 –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4) 영이며 살리는 것이다.
* 요 6: 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5) 어두운데 비취는 빛이다.
* 벧후 1: 19 -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6) 마음에 심는 씨(생명 있는)이다.
* 마 13: 3 -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7) 좌우에 날 선 예리한 검이다.
* 히 4: 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8)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는 말씀이다. (Gereformeerde Dogmatiek. , pp. 501-504).
* 살전 2: 13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빙크(Bavinck)는, 성경 말씀의 능력과 생명의 역사에 대하여 비유하기를, 손이 일하지 않을 때에도 일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 말씀에 능력이 마술적으로 붙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말씀과 관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바빙크(Bavinck)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개혁자들은, 성경 말씀의 능력 있는 역사를 무인격한 마술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늘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와 연락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성령은 무인격한 능력이 아니며, 늘 말씀과 함께하시며, 말씀으로 활동하게 하시되 늘 같은 모양으로 역사하시지는 않으신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이 말씀(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역사하여 혹은 회개시키며, 혹은 강팍케 하시며, 혹은 일어나게 하시며, 또 혹은 넘어지게도 하신다. 그가 이 말씀으로 역사하시되,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하시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Gereformeerde Dogmatiek Kampen J.H Kok 1911, p. 503).
2]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우리가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깨끗케 하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사함을 받았다.
* 엡 5: 26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중생은 죄를 씻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딛 3: 5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속죄의 복음으로 죄를 씻음을 받아 새 생명이 시작될 때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되는 것이다.
요 15: 4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사랑과 그의 의(義)와 그의 생명 안에 거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1]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거한다"(mevnw 메노)는 복음서에서 40번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만 27번 나오고 본 장에서만 11번 기록된 단어로 요한의 핵심적인 신학사상을 반영한다. 이 말씀은 바울신학의 핵심을 이루게 되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롬 6: 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갈 3: 28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거한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 요 6: 54, 56 –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그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속한다’의 의미며
* 요 8: 31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사랑과 복종으로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 요 15: 9-10 –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 부분에 사용된 어귀 중, "거하라"는 말은 "머물라"는 뜻이니, 이미 있는 자리에 머물라는 뜻이다. 여기 "머물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택하여(16절) 은혜를 주신 그 자리에서 그들이 떠나지 않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밖에서 그를 믿으려고 자율적으로 찾아가는 자가 아니고 벌써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인도된 자니, 그는 거기 머물러 있으려고 순종의 걸음을 걸어야 하는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것은, 인간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요 6: 44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는데,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이다. 순종이란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그의 말씀을 지킴이다. 만일 누가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인 만큼 나는 순종 할 것 없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무생물 혹은 하등 동물로 취급하는 착오(錯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에게 순종함이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시므로 구속(救贖)의 큰 사업을 완성하셨다.
* 히 5: 8-9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연합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거듭날 때 이루어진다.
‘거하라’는 원어(메이나테 단순 과거 명령법)는 반복적, 계속적 행위보다 어떤 단순한 행위를 가리킨다. 성도의 중생(重生)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은 단번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한다.
2]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성도가 열매를 맺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어버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하면 죽은 가지에 불과하고 결코 거룩하고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래서 주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사함 받고 중생한 자들, 곧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만 거룩하고 선한 인격과 삶의 열매, 곧 거룩과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요 15: 5 사람이 열매를 맺나니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 같이(요 17: 21-22) 그리스도와 제자(우리)들이 하나인 일체성을 말하며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고 중생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2]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거하면"이란 말도 헬라 원어에서는 꼭 같이 "머물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나 주께서 “저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메논mevnwn)(현재분사)”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현재 주님과의 교제를 강조하신 것 같다.
성도가 열매를 맺으려면 과거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만족하지 말고 현재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힘써야 한다. 과거에 포도나무의 가지이었어도, 현재 끊어진 가지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3]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은 반대로 빌 4: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로 이해될 수 있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현재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성도가 거룩하고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현재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히 교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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