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지난일들 저는 초등 3학년때 뜨개질을 배웠어요 바쁜 엄마를 졸라서 목도리를 뜬다고 저위로 7살 많은 언니가 뜨고남은 실을 갖고 떴다풀었다를 수십번 그래서 그런대로 봐줄만한건 2년후에나 목도리 짜서 하고다녔던 기억 중학교 가정시간에 앞치마에 수를 놓는걸로 실기점수를 받았는데 제가 1등했던 기억 그후로도 뜨개질은 매년 했던것 같아요 그런데 본격적인 뜨개질은 1980년12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도 없는때라 심심해 하고 있었는데 옆방 2층 아주머니들이 부산나게 뭔가를 들고 오락가락하십니다 뭐냐고 했더니 옆집에서 수출품 뜨개질 한다고 새댁도 해보라고 심심치 않고 수입도 짭잘하다고 부추기는겁니다 그래서 결혼한지 한달된 수줍은 새댁이 옆집에 가서 저도 할수있냐니까 잘왔다고 아줌니들이 칭찬해주더군요
뜨개실은 그당시 학사나 무명실이라고들 했는데 미국으로 수출하는거라고 어마무지 큰 앞판만 짜는겁니다 제기억으론 길이가 가로 67센티 세로105센티 였던것같아요 한장짜는데 종일걸리는데 그때당시 돈으로 2~300원 정도? 그런데도 노는이 짠답시고 방안가득 모여서 웃고 떠들고 별의별소리하며 ㅋㅋ 시댁 흉도보는사람 남편흉도 보는사람 노래도 부르고...
긴걸 짜야하니 대바늘이 문제였어요 거의 7~80센티되는 바늘로 뜨자니 옆엣사람 찌르기 일쑤고 그래서 가까이 앉질 못했고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중 병원 의사남편을 둔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닝거줄을 가져와서 대바늘을 반으로 잘라서 꽂고 이렇게 하면 좋지않겠냐고 하십니다 우리모두 환영의 박수를 치고 그날부터 병원에가서 사정사정해서 링거줄을 가져다 만들어 쓰기시작했답니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그걸 특허냈더라면 돈방석에 앉았을수도?ㅋㅋ 저는 이대바늘의 시작은 광주시 화정동 어느 뜨개방에서 시작되었다고 감히 말할수 있습니다 어디에도 이런건 없었으니까요 아침에 보니 며칠째 된서리가 내려서 다른일은 못하겠고 뜨개질하며 추억소환을 했답니다 오늘도 행복한날 되셔요
80년도 그 시대에 저도 뜨게질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때 이미 저렇게 연결된 뜨게질 바늘이 시판 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땐 모두가 어렵게 살던 때라 대나무 깍아 연 만들듯이 뜨게질 바늘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지요. 하동농장님은 지금까지도 끊임 없이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고 계시네요. 전 농사 시작하면서 뜨게질은 아예 손도 못대고 살고 있어요. ㅎㅎ
첫댓글 옜날에는 여성들이 직장이 없어서 여유가 많았지요 심심풀이 뜨게질도 한창 이였습니다
벙어리장갑ㆍ모자ㆍ 스웨터ㆍ쪼끼등 요
맞습니다
그땐 그랬었죠
오늘도 행복한날 되셔요
와 여러모로 재주가 좋으십니다
저는 외모로보면 아무것도못할꺼다 로보는데 처음 아파트살때 사람들이 우리집에와보면 살짝 손재주도있네
면레이스로 덮게 티비 렌지 소품을 다 혼자서 응용해서 뜨서 해두고 겨울털실로는 목도리 귀마개 기본적인 건
ㅎㅎ
책보고는 못뜨고 혼자서 주먹구구식 책보고정식으로는못뜨고 응용하다기 한해 가지고다니다가 그이듬해풀어서 다른모양으로 제멋데로는 하지요
바자마같은거 만들려고 천은 한박스준비해두었어요
재주랄건 없구요
제주변분들은 제가짠 조끼 모자 장갑 목도리 안해본분들 안계실겁니다
이것또한 즐거운일이네요
@하동농장(광주) 맞아요
작년에 쑤세미 몇십개떠서 친척들 주었어요
그런 소소한건하는데 제데로된건못해요
손재주 꽝인 전 상상도 못하네요
솜씨가 너무 좋으셔요
이젠 수세미라도 뜨자니 것도 손가락이 아파 못하네요
수세미도 수없이 떠서ㅈ나눔했죠
일이 많잖유
직장생활에 고추 양파농사까징
80년도 그 시대에
저도 뜨게질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때 이미 저렇게 연결된
뜨게질 바늘이
시판 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땐 모두가
어렵게 살던 때라
대나무 깍아 연 만들듯이
뜨게질 바늘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지요.
하동농장님은
지금까지도 끊임 없이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고 계시네요.
전 농사 시작하면서
뜨게질은 아예 손도 못대고 살고 있어요. ㅎㅎ
조개 은근 재밌거든요
하찮은 거지만
나눔 할때의 행복은 말할수 없이 큰거라서 멈출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좋은날 이어가세요
70년대 제 누나가
면소재지에 방을 얻어놓고
주위 젊은 여성분들께 도급 형태로
아기옷을 뜨게해서 수출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로
연두색 털실로 뜬것 같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가능할것 깉아요.
그 여유가 부럽습니다.
그쵸
그땐 정말 뜨개옷과 가발이 수출품의 한축이었을수도 있어요
관심 감사합니다 좋은날 이어가세요
저는 밭일
비닐벗기시작
힘들어서
밭에서
잠시 쉬며
일시작이네요
저도 홍매 옮기느라 힘을빼서 아직도 방에 있네요 쉬엄쉬엄 하세요
@하동농장(광주) 오늘은첫날
조금 하려구요
어렸을때 4째 외숙모가 뜨게질로 엄청 큰 쉐타 한 개씩 짜서 수출품이라고 했던거 같아요 하동농장님도 하셨었군요 ㅎ
네네 ㅎㅎ 편한밤 되셔요
부지런도 하셔요.
필요에 의해서 발명은 되는거죠~^^
저는 초등 때 장갑 목도리 짜고는 끝이네요.
아 글쿤요
그대신 다른 멋진 취미가 있으시잖유
편한밤 되셔요
뜨게질옷이 주는 정감과 포근함이 그립군요.
좋은 솜씨 가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한밤 되셔요 ㅎㅎ
대바늘을 사야한다는것도 모르던 우리 어린시절엔
망가진 우산살로 바늘도 만들고 연살도 만들고 그랬었죠.
작은집 언니가 편물기계로 털실옷짜면 자투리실이 많이 나와
줏어다 이어서 덧신도뜨고 장갑도 뜨고 모자도 뜨고 했어요.
예전엔 그랬었죠
지금은 모든게 편리해졌어요
편한밤 되셔요 ㅎㅎ
옛추억이 생각나네요.
저두 뜨게질 좋아해 옛날엔 엉킨 실보따리 할머니가 한푸대 사오면 그거 가려서 매듭배워 커다랗게 동글동글
매듭투성이에
떳다풀렀다를 반복
주전자 꼭지에 실걸어 수증기에 곱슬이펴고 타레만들어 빨랫줄에ᆢ꽁꽁얼었다녹았다를ᆢㅎㅎ
어머나 같은일을 ?
저도 그런거해봤어요
반갑네요 ㅎ
@하동농장(광주) 뜨게질 쉐타뜨고 .모티브떠 수출한다는
우리땐 그게 코스였나봐요
ㅎㅎ울딸들 옷떠서 입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