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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마침 강의가 없을 때여서 직원들과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나에게 교육을 받은 수강생 한 분이 찾아왔다. 그런데 얼굴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큰일을 하나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경매 물건 하나를 낙찰 받았는데 대금을 납부하고 보니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건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북부지방법원 경매3-2계에서 진행된 2007타경8○○호였다. 나는 곧 옥션114닷컴 법원경매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그 사건번호를 검색하고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아니 선순위 세입자가 확정일자와 배당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 물건을 이렇게 비싸게 낙찰 받으셨어요?”
답답한 마음에 내가 물었다.
“소장님이 교육한 내용과 비슷해서 위장세입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잘 모르겠고, 또 최초 대출해준 근저당권자가 은행이라 당연히 위장세입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미리 조사도 안 해보고 그냥 낙찰을 받았다는 겁니까?”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아팠다.
“이 빌라 시세는 얼마 가던가요? 그건 조사해봤겠죠?”
“네, 동네 부동산에 알아본 가격은 9천만 원에서 9천 5백만 원 정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사 잘못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이 돈도 작은 돈은 아니지만 더 크다면 정말 어렵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래서 소장님을 찾아왔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제가 세입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죠.”
수강생은 그제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기다리시고요,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시 세입자의 전화번호는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있어요.”
나는 수강생이 알려준 번호로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세입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에 몇 번씩 며칠을 전화해도 끝내 통화할 수 없었다.
수강생과 만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수강생도 궁금했던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간의 경위를 들려주고 아직 세입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고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수강생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문자를 남겼다. 소유자라고 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려고 하니 연락을 달라고 문자를 남긴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세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낙찰을 받은 사람이라고 내 소개를 하고는 집으로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세입자는 일이 저녁 늦게 끝나기 때문에 전화로 대화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전에는 여자가 찾아와서 낙찰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한 번 만났는데 지금 통화하는 사람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의 친동생이라고 둘러대고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세입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시간이 없다면서 만나는 날 돈을 주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날 바로 돈을 해줄 수는 없다며 몇 가지 확인하고 이사를 가는 날에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세입자는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세입자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실전경험을 토대로 보면 보통 정당한 임차인은 당당하게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보증금에 대한 부분만 강조한다. 또 배당요구종기일을 몰라서 신고를 못 하는 경우와 바빠서 못 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세를 살던 집이 경매를 당하면 보증금이 잘못될까봐 거의 대부분은 법원에 배당신청을 하여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뭔가 숨기는 사람은 낙찰자를 만나기를 꺼린다. 또한 꼭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행동하고 말하며 집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까지 전화가 없자 나는 집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습관처럼 밤늦게 그 집을 찾아갔다. 나는 낙찰을 받던 사전조사를 가던 항상 밤늦게 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한 번을 가더라도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보통 낮 시간에 찾아가면 대부분은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밤늦게 가면 사람이 있다는 걸 밖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또 먼저 법원경매를 입찰 들어가기 전에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소유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보니 소유자와 채무자가 점유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소유자와 채무자의 나이를 먼저 알아보면 나이가 많을 경우 보통 낮에도 있을 가능성도 많다. 그러나 40대 중후반이라면 저녁에 가는 게 좋다.
그 집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집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를 밖에서 살펴보니 창문에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전부 소등이 되어 있었다. 이 시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나는 일단 차 안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기다림에 지쳐 시간을 보니 벌써 2시간이 흘러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반드시 만나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창문에 불이 잠깐 켜지는가 싶더니 금방 꺼지는 것이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안에 사람이 왔다는 증거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3층 낙찰 받은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문을 잠그고 나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 ○○○씨 되세요?”
“누구신데요……?”
“301호를 낙찰 받은 사람입니다. 9시부터 기다렸습니다.”
세입자는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었다.
“잠깐 들어가서 대화 좀 나눌 수 있나요?”
“제가 지금 나가봐야 됩니다, 나중에 오시죠.”
“그럼 일단 왔으니 밖에서 집안 상태만 좀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내 말에 눈치를 살피던 세입자는 조금 짜증을 내며 화까지 내는 것이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뭐 하자는 겁니까? 나중에 다시 오던가요!”
나도 조금은 화가 났다. 이 시간까지 기다려서 만났는데 집을 볼 수도 없고 대화도 할 수 없다는 세입자의 말에 화가 치민 것이다. 그러나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럼 전화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세입자는 전화번호는 순순히 불러주었다. 번호를 받은 나는 내일 전화하겠다고 하고는 보증금에 대해 전 소유자에게 건넸다는 계약서 말고 입금확인증이나 은행 송금 영수증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게 없으면 보증금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세입자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차로 돌아온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세입자가 가는 쪽으로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런데 세입자가 약속이 있다며 향한 곳은 버스 정류장이 아닌 근처 빌라였다. 그 시간에 빌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날이 밝으면 바로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탐정의 기질을 발휘하라
다음 날 나는 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민사집행과 경매계로 가서 기록열람신청과 등사신청을 하고 기록을 열람했다. 기록을 보니 상당히 두꺼웠다. 그 기록을 전부 보는 데만 40분이나 걸렸다.
기록의 내용은 이러했다. 2003년도에 근해안강망 수산협동조합에서 임의경매를 넣고 다시 취하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2007년도에는 낙찰자가 낙찰 받고 포기하고 또 낙찰 받고 불허가나고 이런 일들이 4번이나 있었다.
★민사집행법 제121조(매각허가에 대한 이의신청사유)
매각허가에 관한 이의는 다음 각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이유가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1. 강제집행을 허가할 수 없거나 집행을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때
2. 최고가매수신고인이 부동산을 매수할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때
3. 부동산을 매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최고가매수신고인을 내세워 매수신고를 한 때
4. 최고가매수신고인, 그 대리인 또는 최고가매수신고인을 내세워 매수신고를 한 사람이 제108조 각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때
5. 최저매각가격의 결정, 일괄매각의 결정 또는 매각물건명세서의 작성에 중대한 흠이 있는 때
6. 천재지변, 그밖에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부동산이 현저하게 훼손된 사실 또는 부동산에 관한 중대한 권리관계가 변동된 사실이 경매절차의 진행 중에 밝혀진 때
7. 경매절차에 그밖에 중대한 잘못이 있는 때
2007년도에 경매를 처음 낙찰 받은 사람은 낙찰 받고 불허가신청을 냈다. 그 이유는 기록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민사집행법에선 불허가 사유가 되는 몇 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집행법원은 그 이의신청 사유에 해당하면 최고가 매수신고인의 낙찰허가 결정을 허가하지 않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보면 이렇다. 최초 최고가 매수신고인이 매각이 되어 세입자의 대항력 있는 지위가 매각 시 부동산 현황조사서 기록에 누락되었다는 이유로 매각불허가 신청을 내어 불허가 허가를 받고 다시 경매가 진행되어 또 다시 매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매각불허가 신청을 내어 불허가 결정이 났다. 이유는 매각하기 전과 매각하고 나서의 권리변동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매각하기 전에 인수권리가 없었는데 매각 이후에 인수권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인수권리는 세입자의 유치권신고가 매각 후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낙찰자는 매각 전 없던 인수권리가 매각 후 발생하여 추가적 비용이 발생된다.
그렇게 다시 매각이 안 되고 몇 달이 지나 다시 매각을 실시하여 매각이 되었지만 그 낙찰자도 매각허가결정기일 전에 매각불허가 신청을 하되었지만 그 낙찰자도 매각허가결정기일 전에 매각불허가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기각되었고, 결국 매각에 대한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 신청을 하여 매각허가 결정이 취소되었다. 감정평가서에 대한 매각 물건의 하자가 이유였다. 신청서에 사진을 첨부하였는데, 집안 상태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다행인지 집행법원은 그 낙찰자의 손을 들어주고 매각허가 결정에 대한 취소를 받아들여 다시 매각을 실시하였다. 그렇게 또 다시 매각을 실시하여 매각이 되었고, 낙찰자는 또 다시 매각허가결정기일에 다른 낙찰자와 같이 불허가사유서를 작성하여 불허가신청을 냈다. 그러나 이 또한 기각되어 대금납부기일에 대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에게까지 왔다. 그런데 세입자는 유치권을 주장하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치권권리 취소신청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2009년 3월에 말이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매각되고 매각이 취소되기를 반복하여 채권자 근해안강망에서 보증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다.
2004년에 2004타경32138호 임의경매신청을 하여 세입자 ○○○씨가 3,500만 원에 대항력 있는 선순위 세입자로 현황 조사되어 있다고 하였고, 채권자 근해안강망 수산협동조합에서 2회 유찰이 되어 경매비용을 제외하면 남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경매절차를 취소시켰다. 이후 담보물 가격의 상승을 감안하여 2007년 다시 2007타경8846호 임의경매를 신청하였는데, 그때는 보증금이 증액되어 전세보증금이 4천만 원이라고 세입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채권자 보증서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채권자 근해안강망 수산협동조합이 세입자와 면담을 한 후 다음과 같이 진술한 적이 있다. 채무자 겸 소유자인 ○○○씨는 10년 이상 행방불명된 자로 전 소유자 ○○○씨와 전세계약 체결 후 소유권이 이전된 뒤 세입자와는 한 번도 만나지도 않았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적도 없으며, 전 소유자와 체결한 전세보증금액은 3,500만 원이라는 것이다.
낙찰을 받을 때 권리 신고한 매각물건명세서에는 보증금이 4천만 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채권자 보증서에 의하면 보증금은 3,500만 원이다. 그렇다면 500만 원이 만나지도 않은 소유자와 계약을 체결하여 증액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위장세입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 번 더 주의 깊게 기록을 열람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니 계약서 내용이 너무 허술했다. 임대인과 계약을 쌍방이 체결하였는데 임대인의 인적사항인 주민등록번호도 없었다. 또한 그때 당시 계약한 임대인의 이름이 등기된 소유자인 ○○○씨가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증액된 4천만 원의 계약서에도 임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지 않았으며, 계약날짜와 두 번째 소유자의 소유권이전일이 달랐다. 두 번째 소유자의 소유권이전일은 1997년 2월 6일인데 계약서 작성날짜는 1996년 1월 16일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계약서였다. 사실을 확인한 나는 모든 기록서류를 복사한 뒤 법원을 빠져나왔다.
>>>준비된 공격
법원에서 복사한 기록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핀 나는 세입자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세입자는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겨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던 어느 날, 수강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장님, 어떻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나요?”
“네, 내일 오후 시간이 되면 학원으로 한번 나오시지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인가요? 걱정이 되네요.”
“아닙니다. 진행사항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네, 그럼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세입자와는 대화로 해결이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곧바로 소송을
준비했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소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읽고 수정하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완벽한 소장을 작성하였다. 소장은 법원에서 기록 열람하여 복사한 내용을 첨부서류에 넣어 마무리하였다.
다음날 오후에 수강생이 왔다. 나는 그에게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다음 주에 소장을 접수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예정대로 소장을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접수시켰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세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입자는 화가 많이 난 목소리로 따지기부터 했다.
“아니, 법원에서 온 게 뭡니까? 소송을 넣으셨나요?”
“네, 제가 그렇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는데도 연락이 안 되더니 법원에서 소장을 받으니깐 연락을 주시네요?”
“…….”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시간이 없다고. 그리고 보증금을 건넸다는 확인서를 준비해서 연락주시면 확인하고 보증금을 확실히 건넸다는 게 인정되면 이사 가시는 날 지급하려고 했는데, 전화해도 받지 않고 문자로 전화를 달라고 했는데도 연락을 안 주시면 저보고 그냥 있으라는 말씀인가요? 그래서 확인하고자 소송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법정에서 모두 확인할 테니 준비해 주세요.”
그 말만 남기고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랬더니 전화통이 불이 나는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인가 모른 체하다가 전화를 다시 받았다.
“왜 그러시는데요? 전 할 말 다 했는데요.”
“아니 법으로 안 해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왜 꼭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시나요?”
“그럼 내일이라도 보증금을 건넸다는 확인을 시켜주세요. 그럼 소송을 취하하겠습니다.”
“……내일은 안 되고 내일모레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모레 연락을 주세요.”
통화를 마치고 나는 모레까지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피고에게서 답변서가 왔다.
답변서의 내용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원고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피고 본인은 선량한 대항력을 가진 세입자로써 최초 소유자 최기식은 최자춘과 형제지간으로 최자춘의 형인 최기식이 그 건물을 지어 분양하였으며, 피고 본인은 그때 당시 건축주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계약서는 최자춘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했는데 최자춘이 소유권을 이용석으로 옮길 테니 미리 이용석과 계약서를 작성하자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답변서를 받고 난 후 몇 주가 지나 최초 변론기일이 잡혔다. 변론기일 며칠 전에 나는 수강생을 만나 상세하게 내용을 전달하고는 변론기일에 법원으로 갔다.
법정에 들어선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입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세입자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 계속해서 얼굴을 붉히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세입자 쪽을 향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다른 사건들이 하나둘씩 끝나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판사가 사건번호를 부르고는 원고와 피고를 불렀다. 나는 수강생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떨지 말고 침착하라고 했다.
원고와 피고의 참석을 확인한 판사가 입을 열었다.
“원고는 피고가 정당한 대항력이 없는 위장세입자라고 주장하는데, 소장의 내용을 보면 피고가 계약서의 내용과 또한 현재 증거로 첨부한 서류내용을 토대로 살피어 위장세입자라고 말씀하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피고,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답변서로 제출하셨는데,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첨부서류가 제출되지 않았는데 지금 가지고 계시나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요?”
“지금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계약서 말고 다른, 즉 뭐 보증금을 은행으로 송금했다거나 아니면 소유자에게 직접 영수증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영수증은 있습니다.”
“소유자에게 직접 받으셨나요?”
“네, 소유자에게 직접 받았습니다.”
“그럼 소유자가 직접 영수증에 기재하여 작성했겠네요? 그러면 그때 당시 소유자에게 직접 건넸나요? 아니면 은행으로 송금했나요?”
“직접 주었습니다.”
“그래요? 원고, 피고가 영수증이 있다는데 그걸로 확인이 안 되나요?”
“판사님, 영수증은 누구나 위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세입자는 계약 이후에 한 번도 소유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수증만 가지고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소유자를 만나 소유자의 자필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확실한 자금 출처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큰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았으니 분명 은행에서 확인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흠……. 그래요.”
“피고, 그 영수증을 지금 가지고 있으니 법원에 제출하세요. 그리고 피고는 자금 출처가 확인될 수 있는 은행 기록들을 첨부하여 다음 기일까지 제출해 주세요. 다음 기일은 11월 25일 2시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1차 변론기일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법정에서 나왔다. 세입자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우리에게 뭐라 계속 욕을 해댔다. 나는 세입자에게 다가가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2차 변론기일이 되었다. 판사는 다시 사건을 진행했다.
“피고, 영수증만 제출되었네요? 이것만 가지고 보증금을 건넸다는 확인이 되지 않아 제출하라고 했는데, 기록을 찾을 수 없나요?”
“은행에 가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피고가 주장하는 보증금을 2차로 증액되어 소유자에게 건넸다는 것도 확인이 안 되나요?”
“네.”
“그래요? 둘 다 확인이 안 되면 피고에게 불리한데요? 다시 한 번 찾아보시고 다음 기일까지 제출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다음 기일에 최종 판결하겠습니다.”
이제 2차 변론기일까지 끝나고 마지막 판결만 남았다. 좋은 징조였다. 정상적인 세입자가 아니니 보증금을 건넸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그때 당시 적지 않은 돈을 현금으로 건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분명 수표로 건넸을 것이고, 그러면 자금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지막 번론기일만을 남기고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그런데 변론기일을 며칠 앞두고 세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만나자고 했다. 나는 변론기일이 끝나고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도 세입자는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약속장소로 나가자 세입자는 시간에 맞춰 나와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인근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모레가 최종 변론기일인데.”
“그래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말씀하세요.”
나는 느긋하게 세입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세입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히 은행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소송에서 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소송에서 지면 보증금을 받을 수 없지요. 그리고 강제집행을 하여 쫓겨나실 겁니다. 또 위장세입자로 형사고소도 되실 겁니다. 민사집행법에 의해 경매입찰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 그리고 민사로써는 손해배상까지 각오하셔야 될 겁니다.”
내 말에 세입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말씀해 보시지요.”
“저희는 변론기일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법원에서 제출하라는 서류도 없어 할 일도 없는데 빤한 것 아닙니까! 낙찰자 분도 이 물건을 싸게 사셨고, 또 우리가 그냥 비워줄 테니 이사비용이나 많이 챙겨주면 어떻겠습니까?”
“이사비용이요?”
항복 선언을 듣자 몹시 기뻤다. 그러나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를 요구하시나요?”
잠시 후 내가 물었다.
“천만 원만 주실 수 있나요? 저희도 사기를 당해서 이렇게 되었는데 보상 차원에서 좀 해주세요.”
“지금 결정할 수 없고, 소송도 다 끝났는데 이사비용으로 많이 요구하시네요?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오늘 결정해서 결론을 내죠.”
세입자가 갑작스럽게 재촉을 하니 생각해볼 사안이 아니었다.
“천만 원은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사비용으로 줄 수 있는 비용은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되겠네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세입자의 표정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신 담배를 피웠다.
“계속 소송을 해봐야 시간만 낭비일 텐데, 그러면 그쪽도 불편할 텐데요?”
세입자는 경고 아닌 경고까지 했다“저희는 상관없습니다.”
나는 강경하게 맞섰다. 상대에게 끌려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희도 각오하고 있는 부분이고, 또 아까 말했듯이 만약 우리가 승소하면 그쪽도 각오는 단단히 하셔야 될 겁니다. 만약 우리가 지면 그냥 보증금만 돌려드리면 될 거구요. 저희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습니다. 돈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내년에 가격이 오르면 그때 팔 생각이니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렸다. 세입자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 정도도 많이 생각해서 드리는 겁니다.”
“좋습니다, 100만 원만 더 주시죠. 그럼 깨끗하게 비우겠습니다.”
“안 됩니다. 200만 원에서 더는 드릴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세입자 자신이 인정한 결과이니 더 이상 가면 세입자 본인도 손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제시한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50만 원만 더 주시죠. 저희도 살면서 수리한 부분도 있고 해서……. 너무 고집부리지 마시고 그렇게 하시죠.”
그 말에 나는 더 이상은 안 좋겠다는 생각에 시원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럼 비우는 날짜가 빠르면 좋겠습니다. 언제쯤 비울 수 있는지요?”
“최대한 빨리 비울 수 있도록 날짜를 잡아서 전화하겠습니다.”
“12월 안에 비워주시고, 비우고 돈은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열쇠와 교환하시죠.”
“일부라도 먼저 줄 수 없는지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비우고 드리겠습니다.”
수유리 빌라는 그렇게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마지막 변론기일이 되어 최종 선고가 났다. 세입자는 나오지 않았다. 선고는 원고의 승소로 결론이 났고, 소송은 끝이 났다. 그리고 2주 후 판결에 대한 확정이 되었다.
세입자는 12월 10일까지 집을 비우겠다고 연락해 왔다. 나는 수강생에게 모든 게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수강생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푸짐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수강생은 그 어렵다는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물건을 낙찰 받아 조금은 긴 진실공방 끝에 몇 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벌었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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