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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하)
민족일보 다시읽기 [219]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흑막을 왜 무더두려는가 (하)
이상두*
"불의를 알고서도
묵살하려는 자는 공범이다"
승전(앞의 글을 이어) = 애국자 백범선생의 심장을 물어뜯어 숨지게 한 집권자의 사냥개 안두희는 그래도 허공을 향해 자꾸만 무어라 울부짖었다.
옛날 원로원의 「폼페이우스」상 밑에서 「시저」를 찔러 죽인 「부루타스」가 「로마」 시민에게 자기의 행위를 변명하고 자기들의 행위가 애국적이었음을 호소역설했던 것처럼 민족의 노지도자를 살해한 안두희도 제 한 일이 옳았노라고 넋두리인양 뇌까렸다.
팔월삼일부터 열렸던 중앙고등군법회의 제일회 공판에서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관여 검찰관의 물음에 대해 안은 「국가의 방해물을 타도하는 것이다」라고 태연히 진술하면서 백범선생암살이 마치 국가의 방해물을 타도한 일 인양 말하고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것처럼 주장했다.
그리고 안두희는 그의 「시 역의 고민」이라는 책자 속에서 「... 백범이라는 우거진 나무를 베어 넘김으로써 한독당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고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준동하던 요마들을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안은 「공산당보다 더 나쁜 한독당」과 그 당의 영도자 백범을 없애 버리는 일이 「한독당의 요술망에 걸려서 역적이 될 뻔 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에서 건지는」 장한 일이라고, 자화자찬하였다. 그리고 안은 제3회 공판시에 「나의 살해행동은 애국적인 행동이다」라고 뻔뻔스럽게 소리쳤던 것이다.
민족적인 애국자를 암살한 용서 못할 범죄행위를 「애국적인 행위다」라고 우겨댄 것은 비단 장본인 안두희만의 일이 아니고 그를 배후에서 조종한 모든 반민족도배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안의 암살행위가 「애국적인 행위」로 되었기에 그는 총살을 면했고, 일 년 만에 감형의 은전을 받았으며, 형정지 처분으로 석방되었고, 육군중령까지 승진했는가 하면, 부정군납으로 치부까지 했었다. 민족의 지도자를 죽인 살인범은 이리하여 죽음의 벌이 아니라, 영예와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신의 노여움으로 옛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다는 그 유황불의 비를 자초하는 하늘과 역사를 거역하는 망동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살인범이 더욱이 민족적 지도자를 살해한 살인인 안두희가 이렇게나 죄값이 아니라 특전과 우대를 받아왔던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배후에는 권력과 음모의 총본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과 그리고 고위당국자가 아무리 단독범행이다 해본들 이는 도무지 돼먹지 않는 수작이다.
안이 그렇게도 우국지신념에서 백범선생을 살해하였다고 하나 일개 서북청년단의 단원이었던 그가 그리고 일개 육군소위가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일을 저 혼자의 뜻과 힘으로 해내지 못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안의 백범선생암살은 「로시아」의 「나로드니크」들이 「쓰아」를 암살한 것과 같은 정치권력의 보유자에게 정치권력을 갖지 않는 자가 하는 형태의 것도, 그리고 권력의 소유자 상호간에 직접으로 하는 형태의 것도 아니라 이는 집권자가 자객을 교준매수하여 정적을 넘어 뜨리는 형태의 암살인 것이다.
집권자 이승만이를 정점으로 하여 그에게 충성을 다한 자들이 하나로 되어 안두희라는 하수인을 시켜 이승만의 상대자 백범선생을 살해를 하였다.
백범선생은 1948년 봄 남북협상에 갔다 옴을 계기로 통일문제를 중심한 정치노선에 있어서 이승만과 판이하게 다른 입장에 옮겨 섰던 것이 사실이다.
이승만는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백범이 최강의 적이며 일인독재를 확립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존재였기에 마침내 그의 추악한 정권욕에서 백범선생을 암살시키고야만 것이다.
이러하였기에 이승만이가 생존하는 한 안도 함께 무사할 수가 있었고, 이승만적 체제가 존속하는 동안 백범선생암살사건의 흑막은 걷혀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백범암살사건을 비롯한 자유당 정권시대에 이루어졌던 모든 정치적음모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는 왔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으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구정권 때에 있었던 지도자의 암살사건이나 음모사건을 밝혀 죄없이 죽은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죄짓고 벌받지 않고 있는 자들을 처벌하는 일이다.
그런데 혁명정권을 자처하는 장정권은 모든 혁명의 사후처리를 기피내지 태만하는 것처럼 이 일 역시 의식적으로 「사보타쥬」하고 있다.
이조시대에도 「반정」이 일어나면 먼저 역적으로 몰려 죽은 선비들의 누명을 벗기고, 무고한 사람들을 반역자 로 처단 자 들을 벌했던 것이다.
헌데 사월혁명이 일어난 후 얼마 안 된 5월 24일 고정훈씨가 국제호텔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백범 김구, 죽산 조봉암 양선생의 정치적음모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극적인 폭탄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모든 백성들은 공감의 박수를 보냈고 이제야 혁명한 것 같은 맛이 나는구나하고 그 귀환을 주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에도 이승만전제정치의 「청산위원회」격인 허과정은 수사의 본말을 경도시켜 정치적음모사건의 진상조사는 하지 않고 고씨를 명예훼손죄와 공무집행방해로 서대문형무소에 잡아 가두고만 해괴망측한 처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윤길중 김기철 이명하 제씨를 비롯한 진보당사건의 출옥동지들과 재야혁신계의 인사들로 구성된 「진보당사건규명투쟁위원회」가 진보당사건과 그리고 간첩의 이름을 쓰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힌 죽산선생의 사형사건진상을 밝혀 줄 것을 위정당국에 진정했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아무런 말도 없는 판국이다.
그러나 백범선생이 나라 일의 「방해물」이 아니며, 안두희의 한 일이 「애국적 행위」가 아님이 분명하고 독재자 이승만이 추방되었고 도망쳤던 안두희가 잡힌 이제야 말로 백범암살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백범선생암살음모규명을 필두로 하여 몽양⋅죽산 양선생 살해사건 등도 차례로 밝혀져야 하고, 수많은 야만적 양민학살사건 등도 밝혀져야 옳다.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진상을 꼭 밝혀야 하겠다는 이유는 첫째, 혁명과업의 일환으로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장부통령의 피습사건을 규명처리하고 반독재투사들의 복권조치까지도 취한 현정부가 백범선생과 같은 애국자의 암살사건을 밝히지 않고 또 안두희를 일사부재리의 원칙 운운하여 석방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쏘련」에서도 「후루시쵸프」의 「반스탈린운동」을 계기로 「스탈린」에 의하여 「제국주의의 앞잡이」니 「히틀러의 주구」니 「인민의 적」이니하여 숙청되었던 「뚜하체프스키」원수 등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다고 비난받는 공산국가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에서마저 이러하거늘 인권을 존중해야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이 혁명이 일어난 이 땅에서 이고보면 이런 정치적 음모사건은 밝혀지는 것이 마땅한 노릇이다.
둘째는 애국자에 대한 대접을 위해서도 해야한다. 우리나라는 백범선생 등과 같은 혁명투사들의 희생적 항쟁이 있었기에 해방될 수가 있었다. 하길래 이 분들을 정성껏 받드는 것이 우리들의 도리이다.
생전에 홀대했다면 사후에라도 옳게 대접해야한다. 암살의 진상을 밝혀서 원통하게 돌아간 그 영혼이나마 고이 잠들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정치적 윤리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서도 그렇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는 빛을 잃고 모든 가치체계는 전도되고 있다.
마땅히 숙청되거나 자숙해야 할 민족반역자가 애국자 행세를 하고 부당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애국자는 그늘에서 불우하게 살고 푸대접 받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애국자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얼을 살려 비뚤어진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이지러진 정치적 윤리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진상은 꼭 규명돼야한다.
넷째는 백범선생의 유지를 살려 조국통일의 광장으로 나아가야하는 이유 때문이다. 백범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받고 남에게 의원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뜻대로 조국의 화평통일과 완전독립을 위해 백범선생은 김규식박사와 함께 1948년 4월 19일 평양으로 가서 「4김 회담」을 열어 분단된 조국의 통일에 애썼으며 급기야 이것이 암살의 큰 원인으로까지 된 것이다.
백범선생의 이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족의 비원인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먼저 백범선생이 국가의 「방해물」이고, 「남북협상론자는 공산당 앞장이다」라는 그릇된 인상을 깨끗이 벗겨야 한다.
다섯째,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암살사건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도 꼭 해야한다. 지도자를 암살하는 일은 용서 못할 반민족적행위며, 어떤 교묘한 정치적 음모도 조만간 그 진상이 폭로되어 음모 꾸민 원흉도 그 하수인도 가차없는 처단은 받고야만다는 산증거를 보여 현세와 후세의 정치인과 「테로리스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장정권은 모름지기 백범선생암살을 위시한 구정권하의 모든 음모사건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정권 자신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왜냐하면 이런 음모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소리를 저버린다면 국민대중들은 현정권을 반혁명정권이라 낙인찍어 비난할 것이요. 제2공화국에서 이 일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제3공화국을 동경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라스키」 교수는 「불의를 보고 묵인하는 자는 공범이다」라고 말했다.
애국자 백범선생에게 가해졌고, 아직도 풀려지지 않는 부당한 조처와 더 할 수 없는 욕됨을 보고 방관묵인한다면 현정부는 이정권의 「공범」이라는 오해와 비난지를 받아도 변명되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필자 본사 논설위원)
* 이상두(1931~1987) 경북안동에서 태어나 경북대 법정대를 졸업하고 성대 대학원을 수료한다. 이후 대구매일신문, 영남일보, 민족일보,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 『옥창 너머 푸른 하늘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언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제문제』 등이 있다.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7년 57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하)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하)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
白凡 金九先生의 暗殺
黑幕을 왜 무더두려는가 (下)
李相斗
"不意를 알고서도
黙殺하려는 者는 共犯이다"
承前 = 愛國者 白凡先生의 心腸을 물어뜯어 숨지게 한 執權者의 사냥개 安斗熙는 그래도 虛空을 向해 자꾸만 무어라 울부짖었다.
옛날 元老院의 「폼페이우스」像 밑에서 「시저」를 찔러 죽인 「부루타스」가 「로마」 市民에게 자기의 行爲를 辨明하고 자기들의 行爲가 愛國的이었음을 呼訴力說했던 것처럼 民族의 老指導者를 殺害한 安斗熙도 제 한 일이 옳았노라고 넋두리인양 뇌까렸다.
八月三日부터 열렸던 中央高等軍法會議 第一回 公判에서 「軍人으로서 가장 重要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關與檢察官의 물음에 대해 安은 「國家의 妨害物을 打倒하는 것이다」라고 泰然히 陳述하면서 白凡先生暗殺이 마치 國家의 妨害物을 打倒한 일인양 말하고 軍人으로서 가장 重要한 일을 한 것처럼 主張했다.
그리고 安斗熙는 그의 「시 逆의 苦憫」이라는 冊子속에서 「... 白凡이라는 우거진 나무를 베어 넘김으로써 韓獨黨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고 그 나무 그늘 아래서 蠢動하던 妖魔들을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安은 「共産黨보다 더 나쁜 韓獨黨」과 그 黨의 領導者 白凡을 없애 버리는 일이 「韓獨黨의 妖術網에 걸려서 逆敵이 될 뻔한 數많은 靑年들을 死地에서 건지는」 장한 일이라고, 自畵自讚하였다. 그리고 安은 第三回 公判時에 「나의 殺害行動은 愛國的인 行動이다」라고 뻔뻔스럽게 소리쳤던 것이다.
民族的인 愛國者를 暗殺한 容恕못할 犯罪行爲를 「愛國的인 行爲다」라고 우겨댄 것은 非但 張本人 安斗熙만의 일이 아니고 그를 背後에서 操縱한 모든 反民族徒輩들의 共通된 意見이었다.
安의 暗殺行爲가 「愛國的인 行爲」로 되었기에 그는 銃殺을 免했고, 一年만에 減刑의 恩典을 받았으며, 形停止處分으로 釋放되었고, 陸軍中領까지 昇進했는가 하면, 不正軍納으로 致富까지 했었다. 民族의 指導者를 죽인 殺人犯은 이리하여 죽음의 罰이 아니라, 榮譽와 勳章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分明 神의 怒여움으로 옛 都市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다는 그 硫黃불의 비를 自招하는 하늘과 歷史를 拒逆하는 妄動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殺人犯이 더욱이 民族的 指導者를 殺害한 殺人因 安斗熙가 이렇게나 罪값이 아니라 特典과 優待를 받아왔던 것인가. 그 理由는 簡單하다. 그의 背後에는 權力과 陰謀의 總本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安과 그리고 高位當局者가 아무리 單獨犯行이다 해본들 이는 도무지 돼먹지 않는 酬酌이다.
安이 그렇게도 憂國之信念에서 白凡先生을 殺害하였다고 하나 一個 西北靑年團의 團員이었던 그가 그리고 一個 陸軍少尉가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일을 저 혼자의 뜻과 힘으로 해내지 못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安의 白凡先生暗殺은 「로시아」의 「나로드니크」들이 「쓰아」를 暗殺한 것과 같은 政治權力의 保有者에게 政治權力을 갖지 않는 者가 하는 形態의 것도, 그리고 權力의 所有者 相互間에 直接으로 하는 形態의 것도 아니라 이는 執權者가 刺客을 敎晙買收하여 政敵을 넘어 뜨리는 形態의 暗殺인 것이다.
執權者 李承晩이를 頂點으로 하여 그에게 忠誠을 다한 者들이 하나로 되어 安斗熙라는 下手人을 시켜 李承晩의 相對者 白凡先生을 殺害를 하였다.
白凡先生은 一九四八年 봄 南北協商에 갔다옴을 契機로 統一問題를 中心한 政治路線에 있어서 李承晩과 判異하게 다른 立場에 옮겨 섰던 것이 事實이다.
李承晩는 單獨政府樹立에 反對하는 白凡이 最强의 敵이며 一人獨裁를 確立하는데 가장 妨害되는 存在였기에 마침내 그의 醜惡한 政權慾에서 白凡先生을 暗殺시키고야만 것이다.
이러하였기에 李承晩이가 生存하는 限 安도 함께 無事할 수가 있었고, 李承晩的 體制가 存續하는 동안 白凡先生暗殺事件의 黑幕은 걷혀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白凡暗殺事件을 비롯한 自由黨 政權時代에 이루어졌던 모든 政治的陰謀事件의 眞想이 밝혀질 때는 왔다.
새 政權이 들어서면 으레 해야 할 가장 重要한 일의 하나는 舊政權때에 있었던 指導者의 暗殺事件이나 陰謀事件을 밝혀 罪없이 죽은 이들의 名譽를 回復시키고 罪짓고 罰받지 않고 있는 者들을 處罰하는 일이다.
그런데 革命政權을 自處하는 張政權은 모든 革命의 事後處理를 忌避乃至 怠慢하는 것처럼 이 일 亦是 意識的으로 「사보타쥬」하고 있다.
李朝時代에도 「反正」이 일어나면 먼저 逆敵으로 몰려 죽은 선비들의 누명을 벗기고, 무고한 사람들을 反逆者 로 處斷 者 들을 罰했던 것이다.
헌데 四月 革命이 일어난 後 얼마 안 된 五月二四日 高貞勳氏가 國際호텔서의 記者會見을 통해 白凡 金九, 竹山 曺奉巖 兩先生의 政治的陰謀事件의 眞想을 暴露하는 劇的인 爆彈宣言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모든 百姓들은 共感의 拍手를 보냈고 이제야 革命한 것 같은 맛이 나는구나하고 그 歸還를 注目했던 것이다. 그런데 意外에도 李承晩專制政治의 「淸算委員會」格인 許過政은 搜査의 本末을 傾度시켜 政治的陰謀事件의 眞相調査는 하지 않고 高氏를 名譽毁損罪와 公務執行妨害로 西大門刑務所에 잡아 가두고만 駭怪罔測한 處事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尹吉重 金基喆 李明河 諸氏를 비롯한 進步黨事件의 出獄同志들과 在野革新系의 人士들로 構成된 「進步黨事件糾明鬪爭委員會」가 進步黨事件과 그리고 間諜의 이름을 쓰고 忘憂里共同墓地에 묻힌 竹山先生의 死刑事件眞相을 밝혀 줄 것을 爲政當局에 陳情했으나, 지금까지 이렇다할 아무런 말도 없는 版局이다.
그러나 白凡先生이 나라 일의 「妨害物」이 아니며, 安斗熙의 한 일이 「愛國的 行爲」가 아님이 分明하고 獨裁者 李承晩이 追放되었고 逃亡쳤던 安斗熙가 잡힌 이제야 말로 白凡暗殺事件의 眞想은 徹底히 糾明되어야 한다.
그리고 白凡先生暗殺陰謀糾明을 筆頭로 하여 夢陽·竹山 兩先生 殺害事件 等도 차례로 밝혀져야하고, 數많은 野蠻的 良民虐殺事件 等도 밝혀져야 옳다.
白凡 金九先生의 暗殺眞想을 꼭 밝혀야 하겠다는 理由는 첫째, 革命課業의 一環으로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張副統領의 被襲事件을 糾明處理하고 反獨裁鬪士들의 復權措置까지도 取한 現政府가 白凡先生과 같은 愛國者의 暗殺事件을 밝히지 않고 또 安斗熙를 一事不再理의 原則 云云하여 釋放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言語道斷이다.
「쏘련」에서도 「후루시쵸프」의 「反스탈린運動」을 契機로 「스탈린」에 依하여 「帝國主義의 앞잡이」니 「히틀러의 走狗」니 「人民의 敵」이니하여 肅淸되었던 「뚜하체프스키」元帥 等의 名譽回復이 이루어졌다 한다.
人間의 尊嚴性을 無視한다고 非難받는 共産國家 그리고 革命이 일어나지 않았던 狀態에서마저 이러하거늘 人權을 尊重해야하는 民主主義 社會에서 더욱이 革命이 일어난 이 땅에서 이고보면 이런 政治的 陰謀事件은 밝혀지는 것이 마땅한 노릇이다.
둘째는 愛國者에 대한 待接을 爲해서도 해야한다. 우리나라는 白凡先生 等과 같은 革命鬪士들의 犧牲的 抗爭이 있었기에 해방될 수가 있었다. 하길래 이 분들을 精誠껏 받드는 것이 우리들의 道理이다.
生前에 忽待했다면 死後에라도 옳게 대접해야한다. 暗殺의 眞想을 밝혀서 怨痛하게 돌아간 그 靈魂이나마 고이 잠들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民族正氣를 바로잡고 政治的 倫理의 正統性 確立을 爲해서도 그렇다. 해방 後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民族正氣는 빛을 잃고 모든 價値體系는 顚倒되고 있다.
마땅히 肅淸되거나 自肅해야 할 民族反逆者가 愛國者 行勢를 하고 不當한 權勢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愛國者는 그늘에서 不遇하게 살고 푸대접 받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現實이다. 愛國者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얼을 살려 비뚤어진 民族正氣를 바로 잡고 이지러진 政治的 倫理의 正統性을 確立하기 위해 眞想은 꼭 糾明돼야한다.
넷째는 白凡先生의 遺志를 살려 祖國統一의 廣場으로 나아가야하는 理由 때문이다. 白凡先生은 「白凡逸志」에서 「우리 民族으로서 하여야 할 最高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節制도 아니받고 남에게 依願도 아니하는 完全한 自主獨立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뜻대로 祖國의 和平統一과 完全獨立을 爲해 白凡先生은 金奎植博士와 함께 一九四八年 四月 一九日 平壤으로 가서 「四金會談」을 열어 分斷된 祖國의 統一에 애썼으며 급기야 이것이 暗殺의 큰 原因으로까지 된 것이다.
白凡先生의 이 崇高한 뜻을 받들어 民族의 悲願인 統一을 完遂하기 위해 먼저 白凡先生이 國家의 「妨害物」이고, 「南北協商論者는 共産黨 앞장이다」라는 그릇된 印象을 깨끗이 벗겨야 한다.
다섯째, 다시는 이런 悲劇的인 暗殺事件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도 꼭 해야한다. 指導者를 暗殺하는 일은 容恕못할 反民族的行爲며, 어떤 巧妙한 政治的 陰謀도 早晩間 그 眞想이 暴露되어 陰謀 꾸민 元兇도 그 下手人도 苛借없는 處斷은 받고야만다는 산證據를 보여 現世와 後世의 政治人과 「테로리스트」들에게 警鐘을 울려야 한다.
張政權은 모름지기 白凡先生暗殺을 爲始한 舊政權下의 모든 陰謀事件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張政權 自身을 爲해서도 有利하다. 왜냐하면 이런 陰謀를 밝힐 것을 要求하는 國民들의 소리를 저버린다면 國民大衆들은 現政權을 反革命政權이라 烙印찍어 非難할 것이요. 第二共和國에서 이일이 不可能하다면 어쩔 수 없이 第三共和國을 憧憬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라스키」 敎授는 「不義를 보고 默認하는 者는 共犯이다」라고 말했다.
愛國者 白凡先生에게 加해졌고, 아직도 풀려지지 않는 不當한 措處와 더 할 수 없는 辱됨을 보고 傍觀默認한다면 現政府는 李政權의 「共犯」이라는 오해와 非難지를 받아도 辨明되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筆者 本社 論說委員)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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