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모시적삼
남현선 (2021.8. 신인상. 서울)
타는 듯한 햇살에 습기까지 머금은 무더운 여름날이면, 무심히 지나쳤던 빛바랜 기억이 떠오른다.
대여섯 살 무렵, 모를 심은 논에 물이 제대로 대어졌는지 모시적삼 차림의 할머니는 자주 칭얼대는 나를 업고 집을 나서시곤 했다. 해질 무렵 할머니 등에 업혀 들녘으로 나가면 산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어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쩌면 아련한 슬픔 한 가닥이었을까 아니면 할머니의 등을 차지한 승자의 기쁨이었을까........
그냥 걸어도 땀이 흐르고 힘들 지경인데 다 큰 손녀를 등에 업은 할머니, 풀 먹여 빳빳했던 할머니의 모시적삼은 온통 땀에 젖어 쉰내가 배어나온다. 그래도 등에 업혀가는 것이 마냥 좋아서 힘들었을 할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채 땀 냄새나는 등판에 코를 박았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5일장이 열린다. 장날에는 집안사람들이 먼 길을 걸어와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종갓집 종부인 할머니께 인사도 드릴 겸 우리 집을 찾는다. 친척들이 잠시 쉬어 가는 쉼터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쉼터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었던지 할머니는 장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바쁘셨다. 부추, 쪽파, 방앗잎, 양파 등 푸성귀를 잔뜩 넣은 부침개를 한 소쿠리 부쳐서, 점심나절 들릴 친척들을 기다리셨다. 한참을 기다리면 장을 다 본 친척들은 지친 발걸음으로 한 사람 두 사람 찾아와 마루에 걸터앉으며
“행님 그간 별일 없었지예”, “그래 자네 집도 무탈하제 모내기는 잘 마쳤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먼 길 와서 장을 보느라 지치고 허기진 친척들에게 부침개를 소쿠리 채 내 놓으며 “배 고프제 얼른 무라” 라고 연신 팔을 끌어당겼다.
할머니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꼿꼿한 양반 댁 따님이셨다. 할머니의 부모님께서는 딸자식이 형편이 조금은 나은 집으로 시집가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종가 댁 종부로 살면서도 생활은 지극히 검소하셨다. 하지만 장날이면 새벽부터 바쁘셨던 것은 사람들의 오고가는 정(情)을 기다리시느라 들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을 다 보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면, 할머니는 가끔 다락방에 고이 모셔둔 술 항아리에서 과실주 한 잔을 꺼내 드시고는 “청춘에 홀로되어~~~” 로 늘 얘기가 시작된다. 쓸쓸하고 고독한 세월을 담은 할머니 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는 교사 생활을 접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만 전염병으로 일본에서 돌아가셨다. 이후 할머니는 유복자인 아버지를 키우며 청상의 삶을 살아야했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시할머니, 시아버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오는 아들, 농사일을 돕는 식솔들, 그 많은 윗대 제사들 ……. 이 모든 것에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열여덟 나이에 시집와서 그렇게 종부의 역할을 해내셨다. 할머니의 성품은 때로는 빳빳하게 풀 먹인 모시적삼 솔기처럼 날이 서는가 하면, 누구도 근접하기 힘들만큼 단단하기도 했다. 또 절약이 몸에 배어 치약을 다 써갈 때쯤이면 밀대로 밀가루 반죽 밀 듯이 끝까지 짜서 썼다. 유난히 아끼고 식구들에게도 철저히 가르치셨다. 그런 이유로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갈등이 무거운 침묵으로 이어졌던 시간도 기억난다. 아무 설명 없는 침묵의 시간을 견디는 것은 지금도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 되곤 한다.
주변에서 그런 할머니를 지독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아마도 생활인으로서의 강인함과, 집안을 이끌어가야 했던 종부로서의 위엄, 그런 것으로 무장한 할머니를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었다.
집안의 울타리 역할을 하셨던 할머니. 마지막 소원은 당신의 안락함보다는 종부로서 선산을 마련하여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윗대 조상들의 묘를 한 곳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칼날 같은 바람에 홀로 모진 시간을 감내한 당신의 삶에 마지막 갈무리였으리라. 그 어떤 남성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할머니는 결국 그 일을 여자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내셨다. 하지만 미처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채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셨다. 꽤 오랜 시간 죄책감이 나에게 남겨졌다.
무더운 여름에도 할머니가 즐겨 입으시곤 했던 모시, 가볍고 투명하여 잠자리 날개에 비유되기도 하며 예로부터 바람을 입는다는 비유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그 한 자락의 모시로 완성되기까지에는 모시풀의 재배와 수확, 태모시를 만들고 이것을 째고, 삼고, 날고, 매고, 짜고 표백하는 어려운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완성된 모시직물로 한 벌의 옷을 만들어 걸치기까지,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짰던 옛날 아낙들의 삶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시옷 손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수고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가. 할머니는 모시를 누구보다 곱게 잘 짜셨다 한다. 흰 모시적삼을 입으시고 여인으로서의 서럽고 고독한 삶을 그 옷 속에 감추어 오셨던 것 같다. 남편 없이 종갓집 종부로서 살아온 날들에는 모시에 깃든 시간의 의미보다 훨씬 더 엄혹하고 매운 삶의 켜들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하얀 모시적삼 속에 가려졌던 할머니의 속살은 한여름 밤 어렴풋한 달빛 아래 등물을 칠 때면, 푸르게 비춰보였다.
숨이 턱턱 막혀오고 땅이 일렁이는 듯, 무더운 여름날에도 어김없이 곱게 빗은 쪽머리에 모시적삼까지 갖춰 입은 할머니.
문득 누구라도 나타날 듯이 대청마루에서 대문 저편을, 뒷짐 지고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모습. 평생 기다림으로 이어졌던, 땀 냄새 나는 할머니의 등이 새삼 눈에 선하다.
첫댓글
남현선 선생님.
2021년 5월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수필과비평작가회의 가족으로 환영합니다.
종갓집 종부이셨던 '할머니의 사랑과 인품'을 생각하는 등단작품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좋은글로 만나뵙기를 소망합니다.
남현선 선생님,
신인상 수상과
수필과비평 작가회의
회원 가입도 축하합니다.
종갓집 종부인 할머니의
삶인 모시적삼 글
잘 읽았어요~^^
남현선 선생님, <수필과비평> 신인상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고단하셨으나 기품이 있으셨던 종부의 삶이 녹아든 작품 잘 읽었습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